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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웅 Sep 08. 2016

14. 안산(鞍山) 풍경 - 안개 끼던 날





가장 가까운 곳의 경치가 곧 내가 만나고 느낄 수 있는 대부분의 경치가 된다.

그렇기에 어디에 사느냐, 어떤 자연환경에 사느냐가 중요하다.

산 아래 사는 사람은 사계절 산이 주는 아름다움을 만나게 되고, 수평선이 아득한 바닷가에 사는 사람은 파도와 지나는 배가 들려주는 정겨운 소리를 듣게 되고, 남한강 주변에 사는 사람은 이른 아침 세상을 감추듯 몰려오는 안개를 보게 된다.

나는 서울 무악재역 근처에 살고 있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안산이나 인왕산의 풍경을 매일 보고 지냈다.

서대문구에 위치한 안산은 그 높이가 296m 밖에 안 되는 나지막한 산으로 근처에 강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일 년에 안개 끼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다.

이것은 안산뿐만 아니라 한강 주변도 마찬가지여서 개인적으로 공해 때문에 안개가 잘 끼지 않는 것 같다. 다른 지역은 비가 오는 날에 안개가 같이 끼는 경우도 있는데 비만 내릴 뿐 안개는 없고 일교차가 큰 날씨에도 안개를 만나기 힘들다.

예전에 경기도에서 근무할 때 고삼지, 대대저수지, 용담저수지를 비롯한 많은 저수지에서 물안개를 만났었다.

새벽 네시에 일어나서 저수지를 향해 갔고 안개를 실컷 보고 출근시간까지 되돌아오곤 했었다.


안개가 내리면 세상이 묽다. 흐릿하고 뿌옇


안개는 나무를 안아준다. 그 품에 가려서 보이지 않도록 꼭 안아준


안개는 내가 아는 것을 감춘다. 그리고 알지 못하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이 마음일지라도...



안개를 만날 수 있는 날이 오려나 기다림 반 포기 반 상태인 어느 날

보슬비가 조금씩 내리는 안산자락에 안개가 내려앉았다.

이 정도의 안개를 만난 것은 행운, 얼른 카메라와 우산을 들고 안산자락길을 향해 걸었다.

비가 와서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지만 하나, 둘 뽀얀 안개 위를 걷는 사람들은 아름다웠고 행복해 보였다.

그 길을 가는 동안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안개와 눈에 대해 생각했다.

한겨울 안산자락에 내린 눈은 아주 환하고 맑은 하얀색, 그래서 마음도 맑아지고 깨끗해지는 것 같다.

눈은 나무나 길, 바위 같은 사물을 덮어서 하얀 눈빛이 그대로 빛나는 것인데 안개는 아주 작은 물방울들이 공기 중에 떠다니며 내가 바라보는 곳의 나무를 가리고 바위를 감추는 것이다.

눈은 자기 자신이 사물에 붙어 자기 색깔을 입혀서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고, 안개는 사물과 사물 사이에 자신이 쌓이고 쌓여서 서로를 아득하게 가려주는 것이다.

눈은 사물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덧입혀지고, 안개는 사물은 그대로 유지하고 자기가 모이고 쌓여 그 사이를 가리기 때문에 둘 다 사물의 형태는 유지된다.

시각적으로 확연히 보이는 눈과 아주 작은 알갱이로 그 형태가 보이지 않는 안개.

둘 다 물로 만드는 것이지만 하나는 겨울을, 하나는 봄을 대변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이다.

그러고 보니 안개는 마음이 맑아지기보다는 저 너머 어디쯤에 있을 것 같은 나의 사랑을 기다리는 먹먹함, 아직을 찾아오지 않았지만 이 안개 걷히고 나면 나를 향해 다가올 그리움 같은 것이다.

아주 오래된 책을 꺼내서 한 페이지씩 읽어가는 느낌이라고 할까.


내가 숲을 거닐듯이 안개가 숲을 거닌다. 안개가 숲을 부르는 소리가 먹먹하


저 길을 지나서 닿는 곳에서 또 안개를 만나면 네가 그리워 또 왔노라 말하리라. 사랑하는 이에게 말하듯이...


안개가 내린 길, 혼자는 쓸쓸하다. 그럼에도 내가 그 길을 가는 것은 그 길 끝에 꿈이 있기 때문이



예로부터 인생을 안개에 비유했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세상을 안개라 했고 우리의 불안한 미래를 안개라 했다.

확실히 보이지 않기에 불안하고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 수 없어 답답하기 때문이다.

안개가 끼어있는 길도 그 속으로 들어갈수록 희미하던 사물이 확실해지듯이 불안한 미래, 계속되는 고난과 역경도 그것을 극복하고 조금 더 나아가면 어느새 걷히고 미래가 밝아온다.

조금 더 다가가면 뿌옇게 빛나던 꿈들도 햇살에 선명하게 보이게 된다.

안개는 사물과 사물 사이, 나와 타인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너 사이에도 존재하는데 그 안개가 서로를 가려서 오해를 하고 다투지만 그 마음의 안개를 걷어내면 보이지 않던 그대가 보이고, 사랑하는 그대의 마음이 보이게 된다.

사물을 가린 눈도 봄이 되면 녹아서 없어지듯이 안개도 햇살이 활짝 내리면 서서히 물러가기에 지금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서있지 말고, 답답하다고 안개가 없는 곳으로 떠나지 말고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가면 그대가 바라는 꿈이 다가올 것이다.

산자락길은 안개의 꿈이다.

그 꿈을 향해 걸어가는 것, 그것이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안개가 낀 길은 인생의 굽이짐과 같다. 굽이짐을 지나야 곧음이 오듯 안개가 지나야 네가 온


안개가 자욱하다고 망설이지 말자. 걷다 보면 내가 걸었던 길이, 내가 가야 할 길이 더 선명해진다.



내 고향 안개가 내린 날에는 어머니가 트럭을 타고 배추를 심으러 가셨다.

안개가 자욱한 길에서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나는 돌아보지 못했다.

멀리 장말거리를 지날 때쯤 가려서 보이지 않는 그곳을 멍하니 바라보며 마음 한구석이 아리고 아팠다.

새벽안개 내리는 그 길을 걸어 나는 고향을 떠났다.

먹고살기 위해 사람 냄새가 가득한, 사람들의 신음이 귓가에 쟁쟁한 그곳을 향해 떠났다.

어젯밤 어머니는 글썽거리는 눈물로 긴긴밤을 보냈고 나는 아직 땅거미가 내린 그 길을 따라 안갯속으로 사라졌다.

한참을 뒤따라오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안개에 가려진다.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

내가 지나온 안개가 어젯밤 어머니의 눈물 같아서 한참을 울먹였다.

고향에서 만난 안개는 서로에게 참 아팠다.

아팠다는 표현보다는 그리웠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참 보고 싶은 고향의 안개 너머로 어머니가 있다.



안개는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담는 그리움이다. 나도 누군가의 안개이고 싶

 

안개를 생각해 보자.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멈칫할 수 있지만 멈추지 말고 조금만 더 가보자. 빛이 다가올 때까지......



안개가 내리는 안산자락길을 두 시간 동안 걸었다.

수십 번을 걸어서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다 알 수 있음에도 안개가 낀 그 길은 내가 아는 길이 아니었다.

저 고개를 넘으면 무엇이 있을까?

저 구비를 돌아서면 어떤 풍경이 다가올까?

이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기대하는 마음으로 걸었던 기억은 정말 오랜만이다.

그녀를 만나러 가던 길, 병원에서 낳은 두 아이를 만나러 가던 길에서 느낀 행복한 감정이었다.

비가 함께 내리고 습도도 높아 찜통더위에 온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지만 마음은 상쾌했다.

이 안개 걷히고 나면 또다시 세상을 향해 달리겠지만, 달리다가 부딪혀서 힘들고 아파하겠지만 나는 아이들의 안개를 걷어야 하는 아버지니까 더 열심히 살아야지 다짐한다.


해가 산허리를 두른다.

동쪽부터 서서히 안개가 걷힌다.

 







(2016년 5월)



# 이 글의 모든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



안산산책[鞍山散策]의 전체 글모음

1.     프롤로그 : https://brunch.co.kr/@skgreat/160

2.     안산(鞍山)에 오르는 이유 : https://brunch.co.kr/@skgreat/161

3.     안산(鞍山) 가는 길 : https://brunch.co.kr/@skgreat/162

4.     안산(鞍山)의 봄 : https://brunch.co.kr/@skgreat/163

5.     안산(鞍山)의 여름 : https://brunch.co.kr/@skgreat/164

6.     안산(鞍山) 풍경 – 벚꽃 피던 날 : https://brunch.co.kr/@skgreat/175

7.     안산(鞍山)의 가을 : https://brunch.co.kr/@skgreat/165

8.     안산(鞍山)의 겨울 : https://brunch.co.kr/@skgreat/166

9.     안산(鞍山)에서 바라본 서울 풍경 : https://brunch.co.kr/@skgreat/167

10.   안산(鞍山) 야경 : https://brunch.co.kr/@skgreat/183

11.   안산(鞍山) 자락길 (Ⅰ) : https://brunch.co.kr/@skgreat/221

12.   안산(鞍山) 자락길 (Ⅱ) : https://brunch.co.kr/@skgreat/222

13.   안산(鞍山) 풍경 – 눈 내리던 날 : https://brunch.co.kr/@skgreat/224

14.   안산(鞍山) 풍경 – 안개 끼던 날 : https://brunch.co.kr/@skgreat/223

15.   안산(鞍山) 풍경 – 단풍 들던 날 : https://brunch.co.kr/@skgreat/225

16.   안산(鞍山) 풍경 – 낙엽 지던 날 : https://brunch.co.kr/@skgreat/230

17.   안산(鞍山) 풍경 – Black & White : https://brunch.co.kr/@skgreat/228

18.   안산(鞍山) 중턱자락길 : https://brunch.co.kr/@skgreat/227

19.   안산(鞍山)의 산사 – 봉원사 & 기원정사 : https://brunch.co.kr/@skgreat/229

20.   안산(鞍山) 풍경 – 눈 내리던 날(Ⅱ) : https://brunch.co.kr/@skgreat/278

21.   안산(鞍山) 풍경 – 홀로 가는 길 : https://brunch.co.kr/@skgreat/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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