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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웅 Jun 24. 2016

7. 안산(鞍山)의 가을






서대문 안산(鞍山)의 동쪽과 북쪽은 아카시아 나무가 많다.

과거 화재가 여러 번 발생한 흔적이 있고 화재로 인해 소나무를 비롯한 대부분의 나무들은 죽고 그 자리에 생명력 강한 아카시아 나무가 자라서 봄이면 아카시아 향기가 바람을 타고 동네까지 전해진다.

가을이면 푸르던 잎들이 노랗게 변하고 스산한 가을바람에 잎들을 무수히 땅에 쏟고 앙상하게 남은 가지가 가을을 찾는 이를 맞이한다.

단풍나무, 은행나무를 비롯해 낙엽 지는 나무가 많은 서쪽과 남쪽 지역은 붉은 단풍으로 노란 은행잎으로, 울긋불긋 수많은 낙엽들이 쌓여서 지나가는 이들의 마음도 빨갛게 노랗게 물들인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찾는 안산(鞍山)의 명소는 낙엽길과 단풍길 두 곳이다.

첫 번째는 서대문청소년수련관 위쪽에서 시작하여 안산자락길 입구까지 이어지는 낙엽길이다.

차량 통행을 통제하고 오로지 보행자만 다니도록 만든 길로 여름에는 하늘이 안 보일 정도로 숲이 우거져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고 가을이면 나무마다 내려놓은 잎들이 산책로를 가득 채운다.

무수히 낙엽이 떨어져서 길에 쌓이지만 시민들을 위해 치우지 않고 보존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수북하게 쌓인 낙엽을 밟으며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듣는 즐거움이 있다.

누군가가 말하기를 그 정도의 길은 한국에 널려있고 더 멋지고 아름다운 낙엽길이 많다고 하지만 작정하고 놀러 가야만 만날 수 있는 낙엽길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우리 삶의 일부가 되어 함께 생활하는 안산의 낙엽길은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가을의 추억과 사랑을 만들어 준다.

아침에는 조용히 명상에 잠기며 한적한 낙엽길을 걷는 즐거움을, 점심에는 식사 후 나른한 몸을 산책으로 깨우는 쉼의 공간으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저녁에는 드문드문 놓인 가로등 사이로 은은하게 비춰오는 불빛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가족, 연인과 함께 낙엽이 쌓인 길을 걷는 즐거움을 준다.

언젠가 아는 아이들과 이곳을 찾아서 낙엽에 뒹굴고 낙엽을 허공에 뿌리며 즐거운 가을날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이 아이들이 커서 스무 살이 되었지만 낙엽길을 걸을 때마다 그 가을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과 함께 했던 소중한 기억에 미소 짓곤 한다.


올 가을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안산(鞍山)의 낙엽길을 걸어보자.

그리고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고백해 보자.




두 번째는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위쪽의 만남의광장에서 시작하여 시계 반대방향으로 산허리를 돌아 연세대 후문을 지나 무악정에 이르는 단풍길이다. 길을 따라 걷는 동안 어린아이가 붉은색 페인트를 쏟은 듯 화려한 단풍의 모습에 감탄하게 된다. 아스팔트나 콘크리트로 포장한 도로가 아니라 흙으로 이루어진 단풍길을 걸으면 마음이 평안하고 차분해지며 단풍의 아름다운 빛에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설악산, 지리산, 내장산 등 내노라하는 명산의 단풍에 비할 수 없겠지만 서울 도심에서 사람이 붐비지 않고 호젓하게 단풍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많지 않기에 안산은 가을을 느끼기에 충분한 공간이다.

연세대 정문에서 후문으로 가는 길에는 은행나무에서 노란 잎들을 내려놓고 저물어가는 태양빛에 반짝거리고 후문 주변의 숲에는 훌훌 털어 쌓인 낙엽이 지나가는 이들에게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준다.

단풍길을 걸으면서 혼자가 아닌 둘, 하나가 아닌 여럿이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마음을 가지고 걷는 아름다운 풍경을 자주 보게 된다.

파란 가을 하늘과 빨간 단풍, 뉘엿뉘엿 저무는 태양과 노란 은행잎.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서대문 안산의 단풍길을 걸어보길 바란다.




가을이 아름다운 건 분명 단풍이 있기 때문이다.

겨우내 꽁꽁 숨겨둔 새싹을 틔우고 바람과 비를 맞으며 잎들을 키우고 뿌리를 키워간다.

가을이 지나 겨울이 오기 전 잎들을 다 쏟고 헐벗은 채 살아갈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연의 순리를 따라 잎들을 키우고 꽃을 피우고 자기 자신의 키를 키운다.

가을이 짙어갈 무렵 단풍은 잎들을 하나 둘 땅에 쏟고 찬바람 부는 겨울 속으로 걸어간다.

자기를 내려놓고 쉼과 평안을 얻는 것 그것이 가을의 단풍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이다.


가을빛은 붉다.

누군가가 물감으로 색칠을 한다고 해도 저렇게 아름다운 빛깔을 만들지 못한다.

파란 하늘에 떠있는 단풍은 그 빛깔이 더 선명하고 햇빛에 반사되어 속살이 다 보이며 그 색은 어여쁘다.

새색시 얼굴에 찍은 연지곤지처럼 안산의 가을은 붉그레하여 설렌다.




은행나무도 많이 있어 가을이면 노란빛이 햇볕에 반짝인다.

은행잎은 그 옛날 시집 사이에 끼워져서 사랑을 전하는 메신저 역할도 했고, 책갈피로 사용했었다.

달달한 시구절이나 문장을 넣어 내 마음을 전했고 괜히 은행잎 날리는 벤치에서 시집 한 권을 읽으며 낭만을 꿈꾸곤 했었다.

봄에 잎을 틔우고 여름에 잎을 키우고 가을에 노랗게 변하고 겨울에 떨어져서 바닥에 뒹굴고 다시 봄에 잎을 틔우고.

매년 반복이지만 때를 따라 정확히 해야 할 일들을 하고 맺어야 할 열매를 맺는 은행나무가 어쩌면 우리보다 낫다는 생각도 든다.

바람이 불어 은행잎들이 작은 못에 쌓이고 부는 바람에 일렁인다.

가을이 깊어가면 나무도 그렇게 자기의 소중한 것을 내려놓고 다가오는 겨울을 맞는다.

정말 힘들다고 생각되는 것 그것을 내려놓으면 추운 겨울을 지나 새 봄이 오듯이 우리에게도 밝은 내일이 오리라 믿는다.




도시의 철조망에도 가을이 왔다.

고운빛의 단풍도 철조망을 넘지 못하고 그 곁을 서성이며 기다림으로 가을을 맞는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그와 같아서 철조망도 있고 높은 담장도 있어서 넘지 못하고 부딪히고 넘어지게 되지만 그 언젠가 나를 키워 담장을 넘어 빛으로 자유로 꿈으로 나갈 수 있기에 오늘에 최선을 다하면 좋겠다.

가을길을 걷는다는 것이 그저 단풍을 보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지나온 나의 삶을 돌아보고 새로운 마음을 품는, 그리고 내 주위 사람들을 바라보는 기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철조망 너머의 자유를 찾아 훨훨 날아갈 그날이 올 때까지 걷고 뛰고 달리자.




가을날 오후 4시쯤, 서쪽으로 해가 조금씩 기울어 그림자를 드리우고 그 햇빛조차 노랗게 물들어 갈 때쯤 안산의 단풍길을 다녀올 것을 추천한다.

모든 단풍과 낙엽은 햇빛을 받을 때 그 빛에 내장까지 투영되어 아름다운 또 다른 빛을 만들어 낸다.

길게 그림자가 생기고 빛이 있는 곳과 그림자가 지는 곳이 명확히 분리되면서 노란 석양에 단풍들이 은은한 빛으로 물들어 그 빛이 아름답다.

오전에는 안산의 동쪽이나 정상의 봉수대에 올라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내일을 꿈꾸고, 오후에는 안산의 서쪽의 낙엽길이나 단풍길을 걸으면서 오늘을 조용히 마무리하고 쉼과 평안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단풍의 아름다운 빛도 마음에 가득 담았으면 좋겠다.

 



여름철 열심히 물을 길어 올려 잎들을 키우고 뿌리를 키우고 살았다.

내 몸 어딘가 벌레 먹은 상처에 아팠지만 지금까지 잘 견디고 이기고 살아왔다.

이제 추운 겨울을 살아가고자 잎들을 내려놓으려 한다.

내년 봄 새로운 나를 만들고자 내 안의 수많은 잎들을 내려놓으려고 한다.

수북이 쌓이고 비에 젖고 눈에 밟히며 내년 봄에 나를 위한 자양분이 되어 다시 돌아오리라.

산에 오르며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과 식물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참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어떤 심정으로 산에 오르든지 산은 늘 그 자리에서 묵묵하게 우리를 반기며 쉬어가라고 내려놓으라고 말한다.

나무가 잎들이 땅에 쏟듯 너의 욕심이나 미련을 버리라고 말한다.






(2015년 11월)



# 이 글의 모든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



안산산책[鞍山散策]의 전체 글모음

1.     프롤로그 : https://brunch.co.kr/@skgreat/160

2.     안산(鞍山)에 오르는 이유 : https://brunch.co.kr/@skgreat/161

3.     안산(鞍山) 가는 길 : https://brunch.co.kr/@skgreat/162

4.     안산(鞍山)의 봄 : https://brunch.co.kr/@skgreat/163

5.     안산(鞍山)의 여름 : https://brunch.co.kr/@skgreat/164

6.     안산(鞍山) 풍경 – 벚꽃 피던 날 : https://brunch.co.kr/@skgreat/175

7.     안산(鞍山)의 가을 : https://brunch.co.kr/@skgreat/165

8.     안산(鞍山)의 겨울 : https://brunch.co.kr/@skgreat/166

9.     안산(鞍山)에서 바라본 서울 풍경 : https://brunch.co.kr/@skgreat/167

10.   안산(鞍山) 야경 : https://brunch.co.kr/@skgreat/183

11.   안산(鞍山) 자락길 (Ⅰ) : https://brunch.co.kr/@skgreat/221

12.   안산(鞍山) 자락길 (Ⅱ) : https://brunch.co.kr/@skgreat/222

13.   안산(鞍山) 풍경 – 눈 내리던 날 : https://brunch.co.kr/@skgreat/224

14.   안산(鞍山) 풍경 – 안개 끼던 날 : https://brunch.co.kr/@skgreat/223

15.   안산(鞍山) 풍경 – 단풍 들던 날 : https://brunch.co.kr/@skgreat/225

16.   안산(鞍山) 풍경 – 낙엽 지던 날 : https://brunch.co.kr/@skgreat/230

17.   안산(鞍山) 풍경 – Black & White : https://brunch.co.kr/@skgreat/228

18.   안산(鞍山) 중턱자락길 : https://brunch.co.kr/@skgreat/227

19.   안산(鞍山)의 산사 – 봉원사 & 기원정사 : https://brunch.co.kr/@skgreat/229

20.   안산(鞍山) 풍경 – 눈 내리던 날(Ⅱ) : https://brunch.co.kr/@skgreat/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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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안산(鞍山) 풍경 – 밤에 피는 벚꽃 : https://brunch.co.kr/@skgreat/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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