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12일(목) 밤 8시
매년마다 피어나는 벚꽃을 만나러 서대문 안산으로 갔다
연희동 서대문구청을 지나 경사가 있는 길을 걸어서 오르다 보면
왼쪽으로 벚꽃마당이 있는데
이곳에 조롱조롱 매달아놓은 청사초롱과
은은하게 벚꽃을 비춰주는 조명과
그 빛에 화사하게 춤추는 벚꽃이 있다
매년 거의 같은 시기에
같은 나무에서 벚꽃이 피지만
그 벚꽃길을 걷는 나에게
올해 벚꽃이 더 화사하고 예쁜 것은
내가 감수성이 더 풍부해진 것이 아니라
실제로 더 예쁜 꽃들이 피어난 것이 아니라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으니
작은 나무 하나가 소중하고
작은 꽃 하나에 마음이 먹먹해 지기 때문이다
수줍은 진달래
하얀 속살을 드러낸 목련
여린 잎 밀어 올린 아카시아
가시를 세우고 잎을 피우는 찔레꽃
노란빛 물결을 이루는 개나리
그리고 화사한 공주 같은 벚꽃
꽃과 꽃이 만나 꽃무리를 이루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 추억을 만드는
안산의 봄 밤이 벚꽃에 익어간다
1.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서 시작하여
안산자락길 입구까지 이어지는 숲길
자동차가 다닐 수 없는 보행자 전용도로에
벚꽃이 가로등에 반짝인다
누구나 다 혼자 살 수 없듯이
나 혼자 반짝반짝 빛날 수 없듯이
안산의 벚꽃은 가로등이 있어 빛나고
그 길을 걷는 사람이 있어 화사하다
2.
그 옛날 장가갈 때 들고 갔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들고 섰던
누군가를 기대하며 기다리던
청사초롱을 매달아 놓았다
빨갛고 파란빛들이 소박한 숲길을
벚꽃이 되어 걷고
바람이 되어 걷는다
3.
벚꽃이 꽃비가 되어 내리고
그 꽃길을 그대와 걷는다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벚꽃은 더 선명하게 비치고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귀가 열리고 마음이 열린다
바람이 전하는 말과
그대가 마음으로 전하는 말이
안개처럼 흘러 내 마음에 닿는다
4.
작은 꽃이 하나가 뭐 그리 소중한가
보름 남짓 화사하게 웃다가
봄을 부르는 빗줄기에 쏟아져 내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 어딘가에서 썩어가겠지만
벚꽃이 누구에게는 희망이어서
내년에도 만나기를 기약하고
벚꽃이 누구에게는 추억이어서
내년에도 소중한 이와 함께 하기를 바라고
벚꽃이 누구에게는 그리움이어서
벚꽃이 질 때까지 돌아올 그를 기다린다
작은 꽃잎 하나가 모여 벚꽃 나무를 이루고
벚꽃 나무가 모여 봄을 이루듯
작은 꽃은 봄의 시작이고
그대와의 사랑의 시작이다
5.
파란 하늘 아래 하얀 벚꽃
어두운 하늘 아래 하얀 벚꽃
누가 더 예쁜가
햇살에 빛나는 벚꽃
가로등에 빛나는 벚꽃
누가 더 화사한가
속살이 훤히 비치는 벚꽃
속살을 숨겨두고 은은한 벚꽃
누가 더 아름다운가
이 모든 것을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은
바로 당신이다
당신의 얼굴이 예쁘면
당신의 모습이 화사하면
당신의 마음이 아름다우면
모두 다 예쁘고 아름답지 않을까
6.
벚꽃잎에
파란빛이 비치면 파랗게 빛나고
빨간빛이 비치면 빨갛게 빛난다
벚꽃잎에
아침햇살이 닿으면 투명하게 반짝이고
저녁노을에 닿으면 붉은색으로 물든다
자기의 색깔이 있음에도
자기의 모습이 있음에도
그대의 색을 받아들이고
그대의 빛에 물들 줄 아는
벚꽃은 배려와 사랑이다
7.
아주 어릴 적은 엄마 손을 잡고
학교 다닐 때는 친구들과
청춘의 봄에는 그대 손을 잡고
벚꽃 핀 길을 걸었다
아이들 손을 꼭 잡고
부부 서로 손을 꼭 잡고
지팡이를 꼭 잡고
벚꽃 핀 길을 걷는다
나는 남았는데
나의 엄마는 없고
나의 친구도 없고
나의 소중한 그대도 없고
오직 바람에 흔들리는 벚꽃나무와
그 나무 밑동 어딘가에서 움트는
소중한 추억들이
봄바람에 쏟아져 내린다
8.
벚꽃 핀 길을 그대와 함께 걷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대의 손으로 전해 지는 사랑을
내 마음에 담는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벚꽃 핀 길을 부모와 함께 걷는다면
알마나 좋을까요
대화 속에서 전해지는 깊은 사랑이
아이들의 마음에 닿는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벚꽃 핀 길을 친구와 함께 걷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만나면 즐겁고 헤어지면 아쉬운 마음이
친구에게 전해진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어두운 밤에 등불이 되는
칙칙한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힘든 세상길에 위로가 되는 그대와
벚꽃길을 걸어보면 어떨까요
9.
무수히 쏟아지는 빛은 어둠에 사라지고
아주 작은 빛 하나에 시선을 두고
보고 싶은 것에 집중할 수 있는 건
밤이 주는 단순함이죠
세상의 소리는 어둠에 잠기고
아주 작은 소리 하나에 귀를 열고
작은 꽃들이 전하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건
밤이 주는 단순함이죠
더하고 붙이고
곱하고 쌓고
처진 뱃살처럼 나의 생각을 위협하는
세상의 빛을 덜어내고
세상의 소리를 털어내고
밤 속으로 들어가면 어떨까요
벚꽃 속으로 걸어가면 어떨까요
10.
봄바람에 피어난 꽃이
길을 따라 걷다가
날이 저물어 머문 곳에
벚꽃을 따라 늘어선 청사초롱
두 팔을 흔드는 가지
올망졸망 열린 꽃
그대와의 정겨운 대화
마음을 가득 채운 사랑
같은 곳을 바라보고 걷는 길에
봄을 재촉하는 꽃비가 내린다
피어난 꽃이야
봄바람에 날리고
봄비에 젖어
이제 사라지겠지만
그래도
벚꽃은 봄이고
벚꽃은 꿈이고
벚꽃은 사랑이기에
오늘 벚꽃 핀 길을
밤이 되어 걷는다
달이 되어 걷는다
그대 사랑이 되어 걷는다
# 이 글의 모든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
1. 프롤로그 : https://brunch.co.kr/@skgreat/160
2. 안산(鞍山)에 오르는 이유 : https://brunch.co.kr/@skgreat/161
3. 안산(鞍山) 가는 길 : https://brunch.co.kr/@skgreat/162
4. 안산(鞍山)의 봄 : https://brunch.co.kr/@skgreat/163
5. 안산(鞍山)의 여름 : https://brunch.co.kr/@skgreat/164
6. 안산(鞍山) 풍경 – 벚꽃 피던 날 : https://brunch.co.kr/@skgreat/175
7. 안산(鞍山)의 가을 : https://brunch.co.kr/@skgreat/165
8. 안산(鞍山)의 겨울 : https://brunch.co.kr/@skgreat/166
9. 안산(鞍山)에서 바라본 서울 풍경 : https://brunch.co.kr/@skgreat/167
10. 안산(鞍山) 야경 : https://brunch.co.kr/@skgreat/183
11. 안산(鞍山) 자락길 (Ⅰ) : https://brunch.co.kr/@skgreat/221
12. 안산(鞍山) 자락길 (Ⅱ) : https://brunch.co.kr/@skgreat/222
13. 안산(鞍山) 풍경 – 눈 내리던 날 : https://brunch.co.kr/@skgreat/224
14. 안산(鞍山) 풍경 – 안개 끼던 날 : https://brunch.co.kr/@skgreat/223
15. 안산(鞍山) 풍경 – 단풍 들던 날 : https://brunch.co.kr/@skgreat/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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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안산(鞍山) 중턱자락길 : https://brunch.co.kr/@skgreat/227
19. 안산(鞍山)의 산사 – 봉원사 & 기원정사 : https://brunch.co.kr/@skgreat/229
20. 안산(鞍山) 풍경 – 눈 내리던 날(Ⅱ) : https://brunch.co.kr/@skgreat/278
21. 안산(鞍山) 풍경 – 홀로 가는 길 : https://brunch.co.kr/@skgreat/282
22. 안산(鞍山) 풍경 - 밤에 피는 벚꽃 : https://brunch.co.kr/@skgreat/331
23. 안산(鞍山)에서 바라본 서울 풍경(Ⅱ) : https://brunch.co.kr/@skgreat/332
(2018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