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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웅 May 01. 2017

21. 안산(鞍山)풍경 - 홀로 가는 길

서대문 안산(鞍山)





1. 홀로 가는 길에서 사는 것을 배우라


일단 산에 오르라

버리고 비워서

거짓이고 가식이고 다 버려서

내장이 투명해지지 않았더라도

산에 오르라


그리고 나무에게 바위에게

지금은 죽은 듯 풀 한 포기에게

사는 것을 배우라


나의 거짓된 포장을 벗겨내고

상처뿐인 맨살을 드러내며

가장 깨끗하고 아름다운 삶을 배우라





2. 홀로 가는 길에서 내려놓음을 배우라


무수한 함성들이 파도처럼 일렁이는 도시를 벗어나

안산(鞍山), 그 겨울 속으로 들어간다

여름내 가지를 뻗어 잎들을 키우던

그 푸르고 깊은 산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한겨울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은

그 헐벗고 투명한 산이 나를 맞는다

겨울산에서 소유에 집착하지 말고

내려놓음을 배운다

그것이 물질이든 사람이든 그 어떤 것이든 말이다

내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남겨두고

다 내려놓고 버리라는 것이다





3. 홀로 가는 길에서 외로움을 배우라


홀로 가는 길을 두려워 말자

곁에 누가 없다고 쓸쓸해하지 말자

내 손을 잡아 줄 이 없다고

내 말을 들어줄 이 없다고

외롭다 생각 말자


인생이란 어차피 혼자 사는 것이기에

냉수 한병 챙기고 산에 오르자

산에서 만나는 나무 한그루

하늘을 날아가는 참새 한 마리

커다란 바위가

나의 든든한 친구가 되어

외로운 나에게 말 걸어 주리라

외로운 나를 위로해 주리라


홀로 가는 것이 아니라

참 많은 것이 나와 함께 한다는 사실을

홀로 가는 길에서 배우라





4. 홀로 가는 길에서 그리움을 배우라


같이 숨 쉬고 같이 호흡하고

그대의 손을 잡고

그대의 발길을 따라

함께 가는 길에는 그리움이 없다

나의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나의 사소한 몸짓에고 마음을 여는

내가 그대의 존재를 공기처럼 가벼이 여길 때

나에겐 그리움은 없다


먼길을 돌고 산길을 올라

아무도 아는 이 없는 길

바람 불고 비 오는 길

듣고 싶어도 들어줄 이 없고

보고 싶어도 만나줄 이 없는

내가 불러도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내가 손을 내밀어도 잡아줄 이 없는

그렇게 헛헛한 마음으로 홀로 선 이 길에서

내 맘 한구석 휑하게 달려드는 그리움을 본다


그대가 없어 외로운 길에서

그대가 없어 쓸쓸한 거리에서

차가워진 마음 사이로 불어오는

따스하게 밀려오는 봄바람처럼

그대를 향한 그리움을 배우라





5. 홀로 가는 길에서 배고픔을 배우라


어릴 적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가난과 빈곤의 시간 속에서

자식의 미래를 위하여

아직 깨우지 못한 어둠을 헤치고

들을 지나 산을 넘어

수십 리 길을 걸어 일하러 갔다


가끔 우는 산짐승 울음소리

스산하게 불어오는 바람

턱 밑까지 차오르는 숨을 참으며

나의 심장을 주어도 아프지 않을

나의 전부이자 살아가는 목적인

사랑하는 자녀의 배부름을 위해

헐벗고 고독한 길을 걸었다

그분의 배고픔과 주림과

그 맹목적인 사랑으로

우리는 오늘을 살고 있다


가난하지만 서로를 생각했던 그 풍요함은

부(富)하지만 서로에게 무관심한 가난으로

배 고프지만 작은 것도 나누던 그 풍요함은

배 부르게 내 것만 채우는 욕심의 가난으로

육체의 배고픔은 잊었지만

마음의 배가 고프다

사랑의 배가 고프다


하얗게 눈이 내려 발끝이 시려오는

비탈진 산길을 홀로 걸으며

물질의 풍요가 주는 마음의 배고픔을 배운다

무관심과 욕심이 만든 마음의 배고픔을 배운다

가난하지만 그 가운데 사랑으로 풍요한 것이

참 아름다운 배고픔이란 사실을 배운다





6. 홀로 가는 길에서 오르막을 배우라


누구나 내가 가는 길이

땀과 눈물과 희생으로 맞이하는 오르막보다

쉼과 평안과 즐거움으로 다가오는 내리막이길

가난과 절망과 시련의 오르막보다

부와 희망과 행운의 내리막이길

평지를 지나서 명예에 다다르고

내리막을 달려서 부(富)에 이르기를

그렇게 기도하며 오늘을 살아간다


홀로 가는 길에서 평지는 그리 길지 않다

끝도 없이 펼쳐진 탁 트인 길은 내 시선에만 있을 뿐

내딛는 걸음마다 오르막이고 내리막이다

나만 오르고 너는 오르지 않는 길이 아니라

누구나 다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며

참 공평한 길을 걷는다


내 인생의 높이가

당신의 높이보다 높지 않으며

내 인생의 깊이가

당신의 깊이보다 깊지 않으며

내 인생의 넓이가

당신 삶의 넓이보다 넓지 않음은

누구나 오르막을 살고 내리막을 살기 때문이다


오늘 걷고 있는 길이 오르막이라고

힘들어하지 말자

그 오르막을 지나야 정상에 닿고

탁 트인 넓은 세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걷고 있는 길이 내리막이라고

두려워하지 말자

내리막을 지나야 가장 순수한 나에 닿고

다시 정상을 꿈꿀 수 있기 때문이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홀로 가는 길에서

한 걸음씩 올라 정상에 다다르는

작은 걸음이 쌓여 큰 꿈이 되는

오르막을 배우자





7. 홀로 가는 길에서 나눔을 배우라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옆집은 없다

문을 열면 바라다 보이는 이웃은

그저 내 옆에 사는 한 사람 한 가족일 뿐이다

가끔 지나치며 눈인사를 하고

상투적인 안부를 물을 뿐

그들의 내 생활과는 무관한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일 뿐이다


콩 한쪽도 나누어 먹고

이웃집의 밥그릇 숫자까지 알고

오늘 저녁 반찬이 무엇인지

내일 어떤 옷을 입을지 알 수 있던 시절

물질적인 가난을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베풂과 섬김으로 채우던 시절

그 시절보다 우리의 삶이 행복하지 않음은

우리가 물질의 소유함 보다 나눔에

더 관심을 두지 못한 때문이다


홀로 가는 길

내가 소유한 모든 것을 다 가지고 갈 수 없는 길

그 길을 감에 있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내 생명의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것

그 최소한의 것만을 가지고 길을 나서자

더 많은 것은 짐이 되고

긴 여정에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할 뿐이다


인생이 홀로 가는 길이라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자

아주 사소한 것이 누구에게는 절실함이고

아주 작은 것이 누구에게는 커다란 바람이기에

이웃을 향해 손을 펼쳐 마음을 나누어 보자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는 말

물질을 나누면 마음도 나눌 수 있기에

환하게 웃는 얼굴로

아주 작은 것부터 나눠보자


그러면

홀로 가는 길이 행복해질 것이다

홀로 가는 길이 함께 가는 길로 변할 것이다





8. 홀로 가는 길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배우라


자연이라는 세상은

싹이 나고 잎이 자라고

이슬을 먹고 햇빛을 만지며

꽃이 피고 열매 맺는다

스산한 바람에 잎들을 떨구고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하얀 눈 속에서도 생명을 꿈꾼다


내가 바라보지 않아도

하찮은 일에 마음 졸이는 순간에도

자연은 생명을 낳고 키우고

그 생명들이 또 다른 생명을 낳으며

긴 역사를 만들어 간다


홀로 길을 가다 보면

나의 무관심에 버려졌지만

화사한 꽃을 피우고

달콤한 열매를 맺는 나무

아기자기 얘기하는 작은 식물들과

아름답게 노래하는 새들을 만난다


반갑게 손을 흔드는 잎

환한 미소로 반겨주는 꽃

이제는 나이가 들어 속이 텅 비어 가는 고목

나풀거리며 생명을 이어주는 나비와

긴 겨울의 고통을 이기고

연분홍 꽃망울 올리는 꽃들이 들려주는

가슴 따뜻한 위로의 말을 듣는다


앙상한 가지를 보듬고

찬바람 부는 긴 겨울을 지나

노란 꽃망울 하나 밀어 올리고

수줍게 웃어주는 개나리에게서

연분홍 미소 짓는 진달래에게서

순백의 고고함이 돋보이는 목련에게서

시련을 이기고 끝까지 살아남아

자기의 가장 빛나는 모습으로 세상을 비추는

자연에게서 아름다움을 배우자





9. 홀로 가는 길에서 감사를 배우라


홀로 가는 길에서 감사를 배우라

주저앉지 않고 걸을 수 있는 건강한 다리

오르막의 가쁜 숨을 견디어 준 심장

잡으려고만 하지 않고 나누어 준 손

좋은 것과 바른 것을 보여 주던 눈

나쁜 것이든 좋은 것이든 가림 없이 들려준 귀

좋은 향기를 맡으며 숨을 쉬는 코

그리고 아주 작고 사소하지만

내가 가는 길을 묵묵히 함께 걸어준 나의 몸

그것이 없었다면 난 죽은 생명이다

살아가게 생명을 준 모든 것에 감사한다.


이 세상 혼자 사는 이 없다

잘 생겨도 힘이 세고 높은 지위에 이르러도

나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갈 수 없다

세상에 올 때도 부모의 사랑으로 왔고

가족의 희생과 도움으로 지금에 이르렀으며

무수한 이들의 기도와 나눔으로

오늘을 살고 있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

따스하게 내밀어 주는 손이

정겹게 바라봐 주는 눈빛이

용기와 위로가 되는 희망의 말들이

그리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사랑이

내 인생길의 등불이 되고

내 삶의 희망이 되었다

그들에게 감사한다


무엇보다

능력 없고 보잘것없으며

욕심을 부리다 좌절하기도 하고

갖은 욕설과 다툼으로 아프기도 하는

나의 무책임함 속에서도

나를 떠나지 않고

그 모든 어려움을 함께 나눈

나 자신에게 감사한다


홀로 가는 길에서

자연과 그 자연을 닮아가는 나와

나를 아는 모든 것들에게 감사한다





10. 홀로 가는 길에서 사랑을 배우라


홀로 가는 길은

외롭고

고독하며

짙은 어둠으로 앞이 보이지 않고

거친 풍랑으로 생명이 위태롭다


바람이 끊이지 않아 넘어지고

거침없이 쏟아지는 눈발에 좌절하고

장맛비가 세상을 덮어 꿈이 사라지며

햇빛이 뜨거워 목이 마르다


때로 거친 들판이었다가

넓고 평온한 평야였다가

춥고 시린 겨울이었다가

회사하고 아름다운 봄이기도 하다


그 길을 가는 동안

지쳐 쓰러지지 않음은

낙심하여 좌절하지 않음은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나를 사랑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기도와 도움과

사랑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손을 잡아 주는 이

지칠 때 엎어주고 부축해 주는 이

좌절할 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이

작은 것을 나누고 베풀어 주는 이

나의 말에 귀를 열어 들어주는 이

가진 것 없고 보잘것없어도

나를 이해하고 친구가 되어준 이

그들의 사랑의 힘이 있어

이 험난한 인생길을 걷고 있다


내 마음을 더듬어

가장 크고 빛나고 아름다운 것을 꺼내서

나를 사랑한 모든 이에게 드리고 싶다








# 이 글의 모든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



안산산책[鞍山散策]의 전체 글모음

1.     프롤로그 : https://brunch.co.kr/@skgreat/160

2.     안산(鞍山)에 오르는 이유 : https://brunch.co.kr/@skgreat/161

3.     안산(鞍山) 가는 길 : https://brunch.co.kr/@skgreat/162

4.     안산(鞍山)의 봄 : https://brunch.co.kr/@skgreat/163

5.     안산(鞍山)의 여름 : https://brunch.co.kr/@skgreat/164

6.     안산(鞍山) 풍경 – 벚꽃 피던 날 : https://brunch.co.kr/@skgreat/175

7.     안산(鞍山)의 가을 : https://brunch.co.kr/@skgreat/165

8.     안산(鞍山)의 겨울 : https://brunch.co.kr/@skgreat/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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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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