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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웅 Jun 29. 2016

8. 안산(鞍山)의 겨울





안산의 겨울은 아카시아 나무, 메타세콰이어 나무가 추운 겨울이 오기 전 잎들을 다 떨어뜨리고 앙상한 가지로 시작한다. 소나무를 비롯한 사철 푸른 나무는 많지 않아서 겨울이면 숲에 가려서 보이지 않던 작은 오솔길들이 보이고 산의 속살들이 드러난다.

겨울이면 멀리 북쪽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은 북한산을 넘어 안산(鞍山)과 인왕산을 지나 도심의 높은 빌딩으로 이어진다. 바람과 마주하는 안산의 북쪽은 찬바람이 그대로 닿아 추운 편이고 남쪽과 서쪽은 안산이 가려준 덕분에 잔잔한 바람과 따스한 햇볕으로 덜 추운 편이다.

겨울바람은 황사와 오염된 공기를 몰아내고 투명한 하늘과 넓은 시야를 만들어 주기 때문에 그 어떤 계절보다도 겨울에 안산에 오르면 서울의 경치를 깨끗하게 볼 수 있다.

안산(鞍山) 정상 봉수대와 안산자락길의 여러 전망대에 올라서 바라보면 사방이 빌딩과 아파트 숲이고 진회색의 콘크리트로 칙칙하지만 내가 살고 있고 내가 꿈꾸는 서울의 풍경을 마음에 담을 수 있고, 마음이 넓어지고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이 있어 행복하다.

동쪽으로는 인왕산과 경복궁, 동남쪽으로 남산이 바라다 보이고 남쪽으로 관악산, 북쪽으로는 북한산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서대문과 마포 일대 그리고 유구히 흐르는 한강의 모습이 비쳐온다.

서울의 서대문구, 중구, 종로구, 마포구, 은평구의 즐비한 빌딩과 촘촘히 배열된 주택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가장 가까운 곳에 독립문공원과 그 속에 위치한 서대문형무소가 보인다.

겨울 안산(鞍山)의 가장 좋은 점은 이렇듯 서울의 경치를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도심 한가운데서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추위에 움츠린 어깨를 펴고 운동으로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도 안산이 가진 좋은 점이다.


[겨울이면 안산의 대부분의 나무는 잎들을 쏟아내고 한 겨울을 지난다]



겨울철에는 추위 때문에 안산을 찾는 사람이 적어 호젓하게 안산자락길을 걸을 수 있다.

봄부터 가을까지 제법 알려진 탓에 많은 시민들이 안산에 올라 산 곳곳에 돗자리를 깔고 대화를 나누고, 나들이하는 사람들, 운동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한적한 곳에서 쉼과 힐링을 얻으려면 아침 이른 시간이나 저녁 늦은 시간 그리고 점심시간에 맞추면 안산을 조용히 구경할 수 있다.

하지만 겨울철에는 언제 산에 오르더라도 산이 주는 평안함과 위로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멀리 산허리를 돌아가는 길, 정상을 향해 오르는 계단길, 헐벗은 나무 사이 오솔길. 안산을 한 바퀴 돌면서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안산자락길을 돌아보면 겨울의 움츠린 마음이 사라지고 자연으로 부터의 위로와 마음의 평안을 느낄 수 있다.

북한산이나 설악산과 같은 경치가 아름답고 하얀 눈이 덮여 있고 뾰족한 봉우리가 하늘에 닿은 명산은 아니지만, 계절마다 고운 옷 갈아입고 찬바람 맞으며 묵묵히 우리를 기다려주는 안산(鞍山)은 서울 시민에게는 참 고마운 존재이다.

 

[안산의 겨울은 산이 내장이 훤히 들여다 보이고 그리고 지나온 길, 지나온 세월이 보인다]



눈이 내리는 날 안산(鞍山)에서 서울 도심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서울은 겨울에 눈이 어쩌다 한 번씩 내리기 때문에 눈이 오는 풍경은 자주 볼 수 없지만 눈이 내리는 날이면 온 세상은 하얀빛, 하얀 물결이 된다. 평상시 검은색과 회색으로 치장한 도시의 우중충함이 하얀빛으로 물들고, 이를 눈에 담으려는 사람들이 안산 정상 봉수대와 안산자락길을 많이 찾는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대변되는 서울의 모습이 순백의 아름다움으로 변하는데 특히 눈이 내린 날 밤 안산에 올라 도심을 바라보면 건물을 덮고 있는 눈과 불빛들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며 아늑하고 포근한 풍경을 연출한다.

지난겨울, 일요일 오후 짧은 시간에 안산(鞍山)에도 눈이 내렸다.

그 짧은 시간을 기다리던 나는 카메라 하나 둘러매고 우산 없이 하얀 눈을 맞으며 안산자락길을 걸었다.

어릴 내 고향은 눈이 많이 왔다. 가지가 부러질 만큼 소나무와 잣나무에 눈이 쌓이고 한길씩 빠지는 눈길을 헤치며 눈사람을 만들고 언덕에서 썰매를 탔었다. 학교 가는 길에 썰매를 타고 온 친구도 있고 학교를 마치면 동네 친구들과 지치도록 눈싸움을 하며 놀았던 기억이 났다.

눈이 내리는 날 안산(鞍山)은 오래된 기억을 찾아주는 고마운 존재이다.

그리고 눈은 이 세상의 많은 부분을 생략한다. 도시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사건들도 덮는 듯하고 무심하게 내뱉은 신음들도 잠든 듯하다. 조용히 귀를 두드리는 바람을 맞으며, 하얗게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아무도 걷지 않은 안산에 올라 발자국을 남기며 추억을 만들어 보는 행복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


[안산에 눈이 오면 칙칙한 도심의 빛이 하얗게 반짝인다]



새해 새 아침, 온 가족이 안산(鞍山)에 올라 일출을 보며 한해 소망을 기원하는 것도 안산의 겨울이 주는 행복이다. 매년 1월 1일에는 많은 사람들이 안산 정상에 올라 일출과 함께 새로운 다짐과 염원으로 새해를 맞이하고 있으며, 서대문구청에서는 더 많은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돋이 행사를 열고 있다.

멀리 도심의 지평선에서 붉게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하는 일.

생각을 열고 마음을 열고 새해 새 아침을 맞이하는 일.

그것이 서대문 안산(鞍山)의 겨울이 우리에게 주는 기쁨이다.

또 한 가지 안산을 오르면서 추운 겨울을 견디기 위해 자신이 그렇게 사랑했던 잎들을 내려놓은 나무에게서 소유하려는 욕심으로 가득 찬 우리의 삶을 돌아볼 수 있다.

하나, 둘 가지려고 소유하려고 움켜쥐느라 주위를 돌아보고 나를 돌아볼 기회가 없었다. 인생의 마라톤길에서 잠시 쉬어도 좋은데, 먼 곳을 바라보며 내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아도 좋은데 앞 만 보고 달려왔다. 이제 안산(鞍山)에 올라 지나온 세월과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는 소망한다.

그리고 제법 찬바람이 부는 쌀쌀해진 날씨에 산길을 걸으며 쓸쓸함과 고독을 느껴보고 가장 가까운 사람, 언제나 변함없이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산길을 걸으며 쓸쓸함과 고독을 느껴보자]



겨울산의 매력은 봄과 여름가 가을이 주는 화려함은 사라지고 수묵화를 보듯 단색으로 간결하게 표현된다. 봄부터 가을까지 이르는 동안 새싹, 푸른 잎, 붉고 노란 꽃잎, 노란 은행과 빨간 단풍 등 화사한 옷을 갈아입고 보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기쁨을 주지만, 겨울 안산은 화려함이 주는 감동이 보다 여백이 주는 쉼이 있다.

즉 색깔이 주는 감동보다는 흑백의 단순함이 주는 평안이 있다.

산 곳곳의 등산로를 폐쇄하여 사람의 발길을 끊음으로써 자연 스스로 회생하도록 만드는 것 처럼 안산(鞍山)의 겨울은 우리 스스로 회생할 수 있는 쉼과 평안을 준다.

사람들로 붐비던 안산자락길에 드문 드문 여백이 생기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정자에도 여백이 생기고 복잡한 마음 한구석에도 여백이 생기면, 경쟁하듯 달려온 길 위의 시간들을 떠나서 드문드문 보이고, 없는 듯 보이는 겨울 안산(鞍山)에서 쉼과 평안을 가져보길 바란다.

한 구비 돌아서면 새로운 풍경이 다가오고, 오르막을 오르고 나면 내리막이 나오듯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 뒤를 돌아보며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안산(鞍山)의 겨울은 흑백의 단순함과 여백이 주는 쉼과 평안이 있다]





(2016년 1월)



# 이 글의 모든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



안산산책[鞍山散策]의 전체 글모음

1.     프롤로그 : https://brunch.co.kr/@skgreat/160

2.     안산(鞍山)에 오르는 이유 : https://brunch.co.kr/@skgreat/161

3.     안산(鞍山) 가는 길 : https://brunch.co.kr/@skgreat/162

4.     안산(鞍山)의 봄 : https://brunch.co.kr/@skgreat/163

5.     안산(鞍山)의 여름 : https://brunch.co.kr/@skgreat/164

6.     안산(鞍山) 풍경 – 벚꽃 피던 날 : https://brunch.co.kr/@skgreat/175

7.     안산(鞍山)의 가을 : https://brunch.co.kr/@skgreat/165

8.     안산(鞍山)의 겨울 : https://brunch.co.kr/@skgreat/166

9.     안산(鞍山)에서 바라본 서울 풍경 : https://brunch.co.kr/@skgreat/167

10.   안산(鞍山) 야경 : https://brunch.co.kr/@skgreat/183

11.   안산(鞍山) 자락길 (Ⅰ) : https://brunch.co.kr/@skgreat/221

12.   안산(鞍山) 자락길 (Ⅱ) : https://brunch.co.kr/@skgreat/222

13.   안산(鞍山) 풍경 – 눈 내리던 날 : https://brunch.co.kr/@skgreat/224

14.   안산(鞍山) 풍경 – 안개 끼던 날 : https://brunch.co.kr/@skgreat/223

15.   안산(鞍山) 풍경 – 단풍 들던 날 : https://brunch.co.kr/@skgreat/225

16.   안산(鞍山) 풍경 – 낙엽 지던 날 : https://brunch.co.kr/@skgreat/230

17.   안산(鞍山) 풍경 – Black & White : https://brunch.co.kr/@skgreat/228

18.   안산(鞍山) 중턱자락길 : https://brunch.co.kr/@skgreat/227

19.   안산(鞍山)의 산사 – 봉원사 & 기원정사 : https://brunch.co.kr/@skgreat/229

20.   안산(鞍山) 풍경 – 눈 내리던 날(Ⅱ) : https://brunch.co.kr/@skgreat/278

21.   안산(鞍山) 풍경 – 홀로 가는 길 : https://brunch.co.kr/@skgreat/282

22.   안산(鞍山) 풍경 – 밤에 피는 벚꽃 : https://brunch.co.kr/@skgreat/331  

23.   안산(鞍山)에서 바라본 서울 풍경(Ⅱ) : https://brunch.co.kr/@skgreat/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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