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은 모어 일행에게 유토피아인들이 사후세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이야기 한다.
"유토피아인들은 죽기 싫어하는 것을 나쁜 징조라고
생각합니다.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그 영혼이 자신의
죄를 인식하고 있으며,그로 인해 닥쳐올 형벌에 대한
불길한 예감 때문에 죽음의 공포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즐겁고 낙관적인 태도로 죽음을 맞이한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도 슬퍼하지 않습니다.그들은 장례식에서
기쁨에 찬 노래를 부르며 그 사람의 영혼을 기꺼이
신에게 맡깁니다.그리고 슬픔보다는 마음에 존경심을
품은 채 시체를 화장하고,그 자리에 비명을 새겨 비석
을 세웁니다.
어느 선량한 한 사람이 품은 애정의 정도는 그의 다른
모든 훌륭한 품성들처럼 죽음에 의해 감소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확장된다고 믿습니다.
사실 그들은 고인들을 거의 수호천사로 여기기 때문에
어떤 문제들을 마주칠 때 더 확실한 신념을 가질 수
있습니다.게다가 선조가 함께 있다는 생각은 남볼래
나쁜 짓을 하지 못하게 하도록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토피아 사람들은 영혼의 존재를 믿는다. 영혼은
육체와 별개로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한
우주는 신의 섭리에 의해 움직인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 이는 내세에 대한 믿음으로 연결되고 존엄한 인간으로서 도덕인 삶을 영위하게 한다. 즉, 영혼의
안식을 위해 도덕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영혼의 존재를 믿기 때문에 유토피아인들은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다. 죽음을 신의 부름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삶에서 지은 죄를 알기에 내세에서의 처벌에 대한 공포로 느낀다고 생각
했다. 억지로 끌려오는 사람을 신이 환영해 줄 리도
없다고 생각 했다. 이런 사람들의 장례식 또한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 된다.
그러나 신의 부름을 받고 즐겁게 죽는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다. 장례식에서 찬송가를 부르고 고인의 영혼을 신에게 맡긴다. 그리고 고인의 공적을
기리는 비석을 세운다. 행복한 마음으로 신의 부름을
받는 고인을 기쁜 마음으로 회상한다.
고인의 고귀한 성품을 회상하는 것이 살아 있는 사람들
에게 덕을 권장하고 고인을 기쁘게 해주는 것이라고
믿었다. 보이지는 않지만 영혼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언행을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모든 행동에 대해서 조심하게 된다.
고인은 살아 있는 사람을 자유롭게 찾아다니고 살아
있는 사람들의 언행을 모두 지켜 보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조상이 늘 함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다른
사람 모르게 나쁜 일을 하지도 않는다. 완전한 행복에는 완전한 자유가 포함되어 있고, 죽었다고 생전에 친밀했던 사람들을 보고싶어 하는 감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믿고 있다.
사후의 행복을 위해 선행과 봉사를 생활화 하고 사는
사람도 있다. 노동과 선행만이 사후의 행복을 보장해
준다고 믿는 일종의 수도사들이다. 이들은 노예들
보다도 더 심한 노동을 하고 육체적인 노동뿐만 아니라 환자를 돌보는 일도 했다.
수도사들은 인간적인 쾌락을 거부하고 완전한 금욕을 실천하는 사람들과 봉사는 하지만 금욕은 거부하는 사람들로 분류되었다. 금욕적인 삶을 영위하는 수도사
들은 철저한 독신주의와 육식을 하지 않는다. 모든
쾌락들을 죄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들은 유토피아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고 그들의 삶 또한 생기 있고 명랑했다.
기독교 적인 삶에서 재물과 권력 같은 세상에서의
성공은 죽으면서 모두 두고 떠난다는 믿음이있다.
언제 신의 부름을 받고 불려 갈지 모른다는 삶을 살고
있다고 믿는다. 오늘날에도 참다운 기독교인은
세상적인 가치에 집착을 하면 안된다고 믿는다.
자신들이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누고 베풀며,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며 평화롭게 사는 것은 단지 기독교만의 삶의 철학이 아니라 인류 공통이 지닌 삶의 태도이다.
사후세계에 대한 이러한 모어의 생각은 플라톤의
사상과도 일치한다.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영혼 불멸설
과 영혼 회귀설을 에르의 전설이라는 신화를 인용해서
설명하고 있다.육체는 죽어어 멸하나 영혼은 분리되어 내세에서 살아간다.현세에서 정의롭고 올바르게 산
영혼은 천국에서 천 년을 행복하게 살고,정의롭지
못한 영혼은 지옥으로 떨어져 천 년을 벌을 받고
힘들게 산다.이윽코 천 년이 지나고 영혼은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기 위해서 자신이 살아갈 인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좋은 운명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지혜를 갖추어야 하며, 철학적 삶을 통해 지혜를
갖추어야 할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에르의 전설 내용
이다.
2500년 전 그리스 시대 플라톤 때 부터 사후세계의
존재를 믿는 사상은 기독교 사상으로 이어졌고
모어의 유토피아에서도 그 사상은 그대로 녹아있다.
사후세계가 존재하든 안하든 사후세계를 믿고
열심히 정직하게 삶을 살아가는 것,그래서 죽어서도
천당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사후세계를
부정하는 것 보다 더 인간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물리학적으로도 우리의 몸은 죽어 없어져도 육체는
분해되어 우주 공간 어디엔가는 원자로 남아 다시
다른 원자와 결합하여 또다른 무엇인가로 남아 있으니
개인적으로는 플라톤의 사상을 지지하고 싶다.
땅에서 보면 높낮이가 보이나 하늘에서 보면
다 도찐개찐 아니겠는가? 짧은 인생,주어진 시간
동안 겸손하게 조금 손해 본다고 생각하고 이타적
인 삶을 살 때 세상은 모어가 그리는 유토피아
아니겠는가?
결국 유토피아는 마음 속 겸손에 있는 듯 하다.
ᆢPlato Won
인문학과 추상화의 만남..
Easy 人文Art
ㆍ토마스 모어 유토피아 28과 중
25.유토피아인이 바라 본 사후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