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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ato Won Sep 20. 2018

3. 진정한 휴머니스트, 토마스 모어


500년 전 토마스 모어가 꿈꾸었던 유토피아는 아직

달성되지 않은 상상의 세계이다.그러나 우리는
유토피아를 통해 우리가 꿈꿀 수 있는 이상향을 만날 수 있다.우리가 현실 사회를 개혁하고 변화시키고자 할 때

유토피아는 그 길잡이 노릇을 할 수도 있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새로운 사회와 이상적으로

추구해야 할 미래를 상상하는 힘을 키우고 우리 사회를

보다 나은 세상으로 이끌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

하게 하는 지침서이기도 하다.


토마스 모어는 진지하게 이상 사회를 제시하지만,동시

에 농담과 역설을 곳곳에 심어 놓아 참담한

현실을 비꼬으고 지나친 이상과 정의를 추구한다면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전체주의,제국주의,가부장주의,소규모공동체 등이

너무 이상주의적 생각이라는 것이다.근대에 들어

전체주의.제국주의가 기승을 부린 것을 보면 토마스

모어의 시대를 앞선 통찰력은 대단하다.


"고결한 양심,불멸의 영혼" 토마스 모어의 묘비명이다.

토마스 모어는 중세 말인 1478년에 태어나 1535년 반역죄로 사형을 받아 생을 마감한다. 법관이던 존 모어의 차남으로 런던에서 태어났다. 그는 12살이 되어
종교계의 큰 지도자이자 캔터베리 대주교인 ‘존 모턴’ 의 시복으로 들어 갔다.  14살 되던 해에는 그의 추천으로 옥스포드에 들어가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배웠다 하지만 부모의 뜻으로 옥스포드를 중퇴하고, ‘뉴인법학원’ 에 들어가 23세의 젊은 나이에 변호사가 되었다.

1504년 그의 나이 27세에 “모든 권력은 부에서부터 나온다” 고 믿었던 헨리7세 시대에 하원 의원이 되어
그의 세금 정책에 반대 하다가 의원직을 잃고 인문학의
길로 접어 들었다. 그가 그 시대에 쓴 ‘리처드3세”
라는 책은 훗날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처드 3세’
원전이 되기도 했다.그는 세속적인 안락에 빠질 것을 두려워하여 항상 금욕적인 생활을 하고, 심지어는
평생을 거친 모옷만 입었다.

1509년 절대 왕정의 시작을 알리는 헨리 8세가 등극하자 그는 영국의 정치와 외교의 중심에 서게 된다. 1510년 런던 부시장이 되고, 1515년에는 영국과의 양모 무역 분쟁을 겪게 된 플랑드르에 외교 사절로 파견되어, 그곳에서 유토피아를 집필하게 된다. 1529년 플랑드르 외교 분쟁 해결의 큰 성과로 대법관이 됨과 동시에, 오늘날 수상에 해당하는 ‘상서경’ 직을 수행하게 된다. 하지만 상서경이 그의 마지막 공직이 된다.


헨리 8세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의 형님의 부인이었던 케서린과 일종의 정략 결혼을 하게 된다.
순탄치 못한 결혼 생황을 하다가 궁녀였던 앤불린과의 사랑에 빠져 케서린과 이혼을 하게 된다. 이 문제에 대해서 토마스 모어는 공개적으로 헨리 8세를 비난하지는 못하고, 끝까지 침묵만 지키다. 마침내 1534년 앤불린의 대관식에도 참석하지 않고 행동으로 자신의 뜻을 표현했다.또한 왕위계승법에도 끝까지 서명을 하지 않아 반역죄로 투옥되게 이른다.


모어는 런던탑에서 15개월 동안이나 갇혀 있었고, 옥중에서도 진실하고 충직한 신하는 영혼과 양심을 존중해야 한다는 신념만으로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그해 7월 6일 단두대의 이슬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생을 마감하는 그 순간까지도 그는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유머를 잃지 않았고,
형을 집행하는 형리들도 일일이 포옹하면서 헨리8세를 위해서 기도해 줄 것을 부탁 했다. 그리고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하면서 “나는 왕의 충실한 신하로
죽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에 앞서 하느님의 신하로
죽는 것입니다”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긴다.


유토피아가 꿈이 아닌 현실에서도 발판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진실한 정치가, 인문주의자로서 신념을 위해 처형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힘없는 이들이 겪는 해악을 막고 정의를 증진시키는데 온 힘을 기울인 사람” 이라고 평했다.

"내 목이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 죽음 앞에서도
당당했던 토마스 모어,생명보다 신념을 택했던 토마스 모어는 이 시대 지식인이자 지도자들이 어떻게 행동
해야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행동하는 양심이였다.
그의 묘비명은 묘비에만 새겨진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도 새겨진다.


우리의 지도층에 토마스 모어는 있는가?

목숨을 대신 신념을 택하진 못하더라도 인사권에

목매여 개미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자기 소신을

떳떳히 밝히지 못하는 이시대의 관료들이나,

도덕적 우월감에 젖어 어설픈 학문으로 국민을

대상으로 시험삼아 정책을 펼치는 참모들이나

도찐개찐 아니겠는가?


그대들이여! 인사권에 목숨을 걸지 말고 그대들의

양심에 목숨을 건다면 유토피아는 현실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ᆢPlato Won



인문학과 추상화의 만남..

Parallax 人文Art

 

ㆍ토마스 모어 유토피아 28과 중

 

1.현실에는 없는 이상향,유토피아  

2.유토피아 탄생 배경ᆢ인클로저 운동과 르네상스 

3.진정한 휴머니스트, 토마스모어

4. 유토피아의 주인공, 라파엘 히드로다에우스 

5.돈에 의해 좌우되는 한,진정한 정의나 번영은 없다 

6. 초승달 같은 작은 섬나라,유토피아 

7.봉건 사회와 장원 제도 

8. 가혹한 처벌에도 범죄자는 줄지 않는가 

9.범죄는 처벌하되 생명은 존중한다 

10.빤짝이는 것은 황금이 아니라  하늘의 별들이다 

11.노동은 미덕인가? 

12. 공정한 분배가 실현되는 섬나라 

13.황금으로 요강을 만드는 나라 

14.정신적 즐거움과 배움을 추구한 사회 

15.유토피아인들은 그리스인들의 후손? 

16.해석이 까다로운 법일수록 정의와 멀어진다 

17,유토피아의 특이한 사회풍습 

18.전쟁을 통해 얻을 영광은 없다 

19.오직  때문에 싸우는 용병들 

20.에피쿠로스 철학과 스토아 철학 

21.다양한 종파가 공존하는 유토피아 

22.종교의 자유는 인간 고유의 권리 

23.사제의 권위와 역할 

24.돈이 없어지면 그곳이  유토피아 

25.유토피아인이 바라  사후세계 

26 .인간의 오만 

27.유토피아는 사상서 인가?문학서 인가? 

28.Parallax Thin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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