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인클로저 운동으로 대변되는,당시 영국농민들의 처참한 생활상을 비판하고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 정신을 이어받아, 영국 기득권층에 이상적으로 추구해야 할 국가상을 제시한 작품이다.
유토피아는 토마스 모어가 만든 말로,그리스어인 'ou 없는' 과 '장소,toppos"를 결합해서 만든 단어에서 유래하였다."not a place" 즉 현실세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곳이다.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는 세상,유토피아의 기원은 2400년 전 쓰였던 플라톤 국가론까지 올라간다. 지혜의 지혜를 지닌 철학자 중의 철학자,즉 철인이 통치하는 나라를 이상적인 국가로 설명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서 비현실적이라고 비판
받았던 사상이다.
그러나 유토피아 사상의 시초는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캄파넬라의 태양의 나라,베이컨의
뉴아틀란티스가 출간되었던 근세 초기,16세기를
탄생의 시기로 본다.
유토피아는 중세적 사회질서에서 근세적 사회질서
로 옮겨가던 시기에 탄생하였다.이 시대가
바로 르네상스 부흥운동이 활발히 벌어진 시대 였으며,유럽 사회적 모순에 대한 반성과 근세 과학
기술이 탄생한 시기였다.
중세,신 중심의 사고에서,근세,인간 중심의 사고로
이동한 시대가 르네상스 시대이다.인간중심의 사고
로 정치,사상,문화,예술 분야에서 활동한 사람들을
휴머니스트,인문주의자라 칭한다.토마스 모어는
영국 태생으로 북유럽 르네상스 시대 대표적인
인문주의자였다.
르네상스 운동은 14~16세기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문예부흥운동으로 독일,영국,프랑스 등 전 유럽으로
전파되어 정치,문화,예술,사상등 전 분야에서 영향을
미쳐, 서양문화의 어머니로 비유되기도 한다.
토마스 모어가 꿈꾸었던 유토피아는 인간의 존엄성
과 자유를 최우선으로 추구하였던 나라였다. 대표적
인 르네상스 시대 작품으로 평가받는 이유이자 토마스
모어를 인문주의자로 지칭하는 이유이다.
유토피아는 초기 자본주의 시대였던 1516년, 영국에서쓰였다.1500년 당시 영국 농민들의 생활은 처참했다.'양들이 사람을 잡아먹고 있다'는 인클로저 운동 (enclosure moverment)이 대대적으로 일어났던시기에 영국 농민들의 처참한 삶의 현장을 고발한작품이 유토피아였다.
영국 플랑드르에서 모직 공업이 흥성해 양모 값이
급등하자,영국 귀족들은 땅에서 생계를 이어온 농민
들을 내쫓고 이 땅을 밀밭에서 초지로 바꾸어 양 떼를
키우기 시작한다.하지만 이 과정에서 쫓겨난 농민들
을 받아줄 생산시설은 없었다.결국 농민들은 거리의
부랑자로 내몰렸다.당시 법은 이들에게 냉혹해서 농민들이 자신의 고용주를 만나지 못하면 매를 맞거나
배고파서 저지른 단순 절도죄로 처형당하기도 하였다.
토마스 모어는 이런 상황을 개인의 불행이 아닌 사회적잘못으로 정의한다. 6시간만 노동하는 나라, 사유재산을 폐지하여 공동생산,공동분배의사회주의 나라,주민 자치제로 주민이 주인인 나라,여가 시간에 독서를 즐기고마음대로 교육받을 수 있는 나라인 유토피아를꿈꾸었던 것이다.
유토피아가 탄생한 시기는 또한 르네상스 시대였다.
이 무렵 지중해 한 가운데 반도국가 이탈리아는 무역으로 많은 돈을 번 도시들이 생겨 났다. 피렌체, 베네치아, 피사, 밀라노 같은 도시들이 그것이다.그 무렵 유럽의 도시들에서는 그리스 로마의 문화를 다시 부활시키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기시작했다. 인간의 아름다움과 자연의 과학원리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를 바탕으로 예술과 문학에 새로운 바람이 일기 시작한다.
모든 중심이 신으로부터 인간으로 넘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르네상스는 사람들에게 인간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믿음을 심어 주었다. 르네상스가 일어나기 전, 유럽 문명의 중심은 창조주 하나님이다. 인간 역사의 중심이 인간이 아니라 신이었던 시기다. 철학과 과학 등 대부분의 학문들은 신학을 위해 존재했고, 모든 가치는 그리스도 사상에 바탕을 두고 정리되었다.
신과 영혼에 심취한 아우구스티누스, 몰락의 위기에 처한 기독교를 철학적으로 완성한 토마스 아퀴나스 같은 뛰어난 철학자들에 의해 기독교 문명은 천년 이상을 이어갔다.
이 시대에 이탈리아에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보티첼리 등 유명한 미술가들이 위대한 걸작들을 남겼다. 르네상스가 화려하게 꽃핀 이들의 작품을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 이탈리아 특히 피렌체에서 르네상스가 발달 할 수 있었던 것은 막대한 부를 축적한 메디치 가문의 후원과 역할이 크다.
시간이 지나면서 르네상스는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전 유럽으로 퍼져 나갔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로 사람들의 우주관을 바꾸는 혁명 같은 일이 났고, 루터에 의한 부패한 카톨릭 교회의 개혁으로 신과 인간 개인의 만남이 더 중요하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스페인에서는 세르반테스가 중세 기사를 우스꽝스럽게 풍자하는 돈키호테가 나왔고, 네덜란드에서는 토마스 모어의 친구이기도 했던 에라스무스가 모어의 집에 머물면서 어리석은 신을 칭찬한다는 제목으로 교회와 교황을 비판하는 우신예찬을 썼다.
15세기 후반에 영국 역사에 오점을 남겼던 장미전쟁이 끝난 후, 헨리8세는 절대 군주의 왕권을확립하는 시기였다. 이 시기에 영국에서 필요했던 것은 로마 교황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한 종교개혁과 영국의 국수주의였다. 영국에서의 르네상스는 엘리자베스 1세가 집권한 16세기 후반부터다.
영어 순수화 운동을 통해 세련미가 부족했던 영어를 아름답게 가꾸기 시작했고, 셰익스피어는 로미오와줄리엣, 햄릿, 리어왕 등의 작픔으로 영어의 언어적 수준을 한층 더 높이게 되고, 영문학사상 가장 화려한 엘리자베스 시대의 문을 열게 된 것이다.
모든 사회적 경제적 진보의 시기에는 대중들은 고통을 받는다.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친 대중들의 탈출구로, 당시 부패한 왕권정치와 귀족들을 조롱하고 비판하며 토마스 모어는 유토피아를탄생시켰다.
세상에 유토피아는 허상일까? 실존일까?
이성이 용기의 도움을 받아 욕망을 절제하면 세상 모든 곳이 유토피아일 수도 있다.실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