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여행 산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냐 정혜승 Jun 25. 2022

<그리스 3일차> 메테오라, 천공의 수도원이 기록한 것

<이탈리아 1일차> 로마의 휴일, 그래도 팁

<이탈리아 2일차> 화려한 바티칸, 투박한 산탄젤로

<이탈리아 3일차> 로마 여행에서 놓치거나 놓칠뻔한

<이탈리아 4일차> 예나 지금이나 인간들이란

<이탈리아 5일차> 사기캐 토스카나에서 관광 대신 여행

<이탈리아 6일차> 몬테풀치아노, 로망이 이긴다

<이탈리아 7일차> 발도르차 평원의 빛과 바람

<이탈리아 8일차> 토스카나, 하늘이 다했다.

<이탈리아 9일차> 피렌체, 63층을 올라갔다니

<이탈리아 10일차> 오, 다비드.. 그리고 피스토야

<이탈리아 11일차> 파랗게 빛나는 친퀘테레..그리고

<이탈리아 12일차> 만토바 공국..가르다 호수
<이탈리아 13일차> 베로나, 시르미오네..넘치게 좋았다

<이탈리아 14일차> 구텐 탁, 돌로미티

<이탈리아 15일차> 돌로미티, 세체다에서 멈춘 시간

<이탈리아 16일차> 돌로미티, 길 위에서...친퀘토리

<이탈리아 17일차> 돌로미티, 트레치메 6시간이 남긴것

<이탈리아 18일차> 베네치아의 상인들

<이탈리아 19일차> 베네치아, 부라노 무라노

<이탈리아 20일차> 베네치아, 두칼레에서 키퍼에게

<이탈리아 21일차> 구겐하임& 베네치아 좋아진 이유

<그리스 2일차> 델피의 신탁, 우리의 제물은..


불교 박해를 피해 산으로 숨어든 조선 초기 사찰을 닮았다. 그리스 정교회의 수도사들은 기암절벽 정상을 피난처로 삼았다. 메테오라 Μετέωρα Meteora, 공중에 떠있는 바위의 도시. 약 1000년 전 수도사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지역이다. 그리스 북부 테살리아의 비옥한 평원을 침략하는 터키 오스만 제국의 공세를 피해 아타나시우스 수도사는 1356년부터 1372년까지 가파른 바위 꼭대기에 첫 수도원을 세웠다. 십수년에 걸쳐 수도원의 모습을 갖췄으니 그때도 쉬운 역사가 아니었다. 24개의 수도원이 세워졌고 오늘날 6개가 남았다.

인근 도시 칼람바카의 호텔에서 8시에 투어버스가 출발했다. 평원에 바위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첫인상은 아득하다. 바위 꼭대기에 밧줄로 나무통, 바구니를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사람과 물자가 오르락 내리락 했다는 건 들었지만 저기 어떻게 수도원을 지었지? 모두 천혜의 요새가 됐다. 1, 2차 세계대전에서는 실제 전장이 됐다.


가장 큰 수도원이라는   Monastery of Great Meteoron, Metamorfoses. 예전의 순례자와 달리 우리는 버스로 거의 올라왔다. 밧줄로 올라가지는 않지만 현재 입구는 아래쪽이라 다시 계단을 내려가서(기껏 오른 고도를 유지하지 않고ㅠ) 수도원 내부에서 천천히 올라갔다. 오전이기도 했고, 다행히 전날만큼 덥지 않았다. 41도 찍은 어제가 이상기온이었어!


사연 많고 굴곡 많은 수도원 내부는 정성으로 가꾼듯 예쁘다. 가이드도 목소리를 낮추듯 관광객에도 불구, 나름 고요한 공간이다. 바지를 입은 여자들은 들어갈때 스카프를 치마처럼 둘러야 한다. 여자 수도원은 따로 있다.


매우 인상적인 그리스 철학과 기독교의 만남. 왼쪽에서 세번째 삼각형을 들고 있는 이는 피타고라스, 그 오른쪽은 소크라테스, 오른쪽에서 두번째 세번째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다. 당신들이 거기서 왜 나와. 알고보면 피타고라스는 B.C. 5세기에 "God is nous(mind) and word and spirit, and the Word who woll take flesh from the father"라 말했고, 소크라테스는 "And his name will be knowm and honoured all over the world".. 아리스토텔레스는 B.C 4세기에 "Sometime in the future, somebody will arrive in this multi-divided earth...플라톤은... 아아. 이거 보다가 살짝 당황했다. 이게 후대의 해설인걸까.

옮기다가, 부질 없어서 사진을 함께 올린다.


메테오라에서 내려다본 도시 칼람바카.


사진 촬영이 금지된 예배당 안쪽은 정교한 벽화와 금 세공된 샹들리에 등 나름 화려하다. 벽화는 주로 순교한 성인들이 고문당하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산채로 살가죽이 벗겨지는 장면, 손발이, 머리가 잘리는 장면을 기록했다.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신을 부정하지 않았고, 끝내 성인으로 추앙받게 된 역사다.
기독교 박해는 당시 그리스를 침략한 터키가 아니더라도 예수님의 십자가부터 시작해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던가. 권력자 로마 황제가 개종하기 전엔 고난의 세월이었지. 이 박해의 가해자와 피해자는 누구인가. 대중이 욕망에 반해서 지속가능한 권력은 없다. 문득 영화 '라스트 듀얼'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강간당했다고 남자를 고발한 여자는 자칫 무고죄가 인정될 경우, 산채로 화형당할 처지다. 모여든 군중들은 그 구경에 대한 열망을 감추지 않는 분위기였다. 내가 안전한 가해자 측이라면, 누군가를 차별하고 탄압하고 박해하는 일에 인간은 쉽게 동의하지 않던가? 한때는 기독교인이 당했고, 조선시대 불교와 천주교가 그랬고, 현대사에서도 유대인만 피해자가 아니다. 일본인은 관동대지진 때 재일교포들을 탄압했고, 난징대학살을 저질렀다. 일본인은 그 무렵 미국에서 구금되고 박해당했다. 빈과 연은 캘리포니아 폐광 지역 답사에서 당시 일본인 수용소와 기념관을 보고 왔다. 미얀마의 로힝야족을 비롯해 다른 종족을 학살한 보스니아 전쟁, 르완다 내전은 오래되지 않았다. 시리아 내전은 진행형이다. 차별은 어디에나 있다. 아시안 여성인 나는 검문 검색에 어려움이 없었는데 박물관에서도 내 앞의 아랍인은 가방 속까지 뒤지더라. 그리스 투어버스에서 만난 한국 분은 이탈리아 사람들이 아시안을 차별한다고 분개했다. 단어도 끔찍한 '마녀사냥'은 온라인에서 되살아났고, 한때 노무현 대통령에게 우리 대부분은 가해자 아니었나. 모든걸 한 사람 탓만 하던 시절을 지울 수 있을까? 벽화 속 누군가는 고결한 순교자란게 분명하지만, 가해자는 누구인가. 다른 종교, 다른 종족을 탓하는 것은 오히려 쉽다. 우리는 때로 같은 무리에서도 사소한 차별로 시작해 잔인해진다. 회개하고 용서받으면 된다는 건 정말 속 편한 이들이다. 기록은 때로 피해자 편에서 이뤄지고, 때로 가해자, 승자의 역사로 남는다. 속사정은 몹시 복잡한 변수들이 엮여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이 잔인하다. 난 분명 성선설 쪽 인간이었거늘.

예전엔 저 베란다로 밧줄을 내렸고, 사람과 물자를 끌어올렸단다. 오늘날에는 케이블카로 운송한다. 관광객 용도는 아니고 수도원의 실제 수요용. 오른쪽 사진은 멀리서 찍어 잘 보이지 않지만 놀이동산에서 볼듯한 모습이다.


연이 찍은 사진이 훨씬 선명하다. 그래도 현장의 경외감을 부를 수는 없지만.

잘 찍은 연의 사진
폰 기종이 달라서 그런지, 연 사진 색감이 더 좋다.  아이폰은 넘 밝은 장소를 예쁘게 담지 못한다.



지나가는 길 곳곳이 장관이다. 메테오라는 안에 들어가는 것 보다 거리를 두고 멀리서 보는게 훨씬 경이롭다. 우리는 성 스테파노스 수도원까지 들렸다. 크게 다르지 않지만 좀 더 아담하다. 검은 전통 복장의 수녀님들만 계시는 곳이다.

역시 내려다본 칼람바카.


오전 투어는 점심으로 마무리. 그리스 샐러드와 양고기는 어디나 맛있다. 무사카를 시도했다. 이런거였구나. 내가 알던 무사카는 뭐지?


아테네로 돌아가는 길은 버스에서  쉬는 시간이다. 이렇게 충전해도 몸이 뻐근하다. 슬슬  여행이 막바지로 가고 있다는  실감한다. 자다깨서 이렇게 브런치 정리도 하고.. 메테오라에서 아테네는 350km 정도 거리다. 12 델피, 메테오라 투어는 그리스 여행을 준비하면서 바로 꽂혔던 코스. 좋았다.

그리고.. 저녁 7시쯤 아테네 도착. 투어버스 중간에 내려준 덕분에 100m 걸어서 숙소에 왔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아파트가 2박에 275유로. 이탈리아의 반값 정도인듯. 걸어서 4분 거리의 식당 Lithos Tavern 을 검색해 나갔는데, 온동네 청년은 다 모인 분위기다. 양고기와 무사카, 로컬 맥주 세병으로 40유로에 근사한 저녁. 피사체에 대한 애정 듬뿍인 연의 사진ㅎㅎ 


숙소 아파트 옥상에서 아크로폴리스가 보인다! 이 미친 야경이라니. 동네 슈퍼에서 11유로에 사들고 온 그리스 화이트 와인을 마시며, 오늘 우리 대화 주제는 이주민 아동과 청소년 이슈. 연과 딸기 관심사가 이어지면서 대화가 뜨거웠다. 탑 저널에 논문을 싣고 출판하는 과정은 거의 2년..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연의 고민에 공감한다. 그래서 내가 박사 논문을 안 썼지..음. 하지만 연과 딸기 둘이 공동작업을 하면 좋겠다. 일하는 생각을 하다니, 우리가 충분히 논건가? 그럴리 없는데...  

매거진의 이전글 <그리스 2일차> 델피의 신탁, 우리의 제물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