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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은미 Apr 24. 2023

꽃 같은 스무 살

미야툰-38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을 때다.  5학년때부터 친구들로부터 나름 '그림 좀 그리는 애'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6학년에 올라오니 같은 반에  한 두 장 끄적거리는 게 아니라 연습장에 스토리가 있는 만화를 그리는 친구가 있었다. 반 아이들은 그 친구가 그린  한 권짜리 만화를  신기해하며 돌려보았다.  칸만화를 그리다니, 나보다 잘 그리는 애가 같은 반에 있으니 자존심도 상하고 질투도 났다. 그 뒤로 나도 연습장 앞 뒤로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중학교에 가니 같은 반에  만화를 잘 그리는 친구가 또 있었다.  우리는 자연스레 모여 친하게 지냈고 은근히 의식하며 경쟁도 했다.   


이 구도는 언니도 마찬가지였다. 언니와 난 각각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만화를 쫌 그린다는 친구들이 자석처럼 모여들어 만화동호회를 만들기로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언니들 세 명이 창단하고 동생들인 우리를 영입한 것이다. 

1991년 고 1 때  결성한 '가디록'은 만화불모지 울산 최초 만화동호회였다. '가디록'을 필두로 울산에서 여러 만화 동호회가 생기기 시작했다.  울산이 불모지라고 말하는 이유는 몇 년 전부터 부산, 대구, 서울에는 진작 만화동아리들이 생겨서 회지를 내고 전시회, 판매전 등 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모지 울산에 고등학생들이 만화동회회 스타트를 끊었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뿌듯하다. 


관심사가 같은 또래와 그림을 그려 책을 만드는 일은 그대로 내게 활기가 되었다. 16살 평범한 무채색 일상에 선명하고 컬러풀한 색 하나가 그어졌다.  분명 내 인생 새로운 기류의 시작이었다. 일본만화 해적판 일색이던 국내 만화는 80년대 후반부터  여러 장르의  잡지가 창간되고 만화 붐이 일었다. 90년대는 질적 수준이 높아지는 만화의 전성기였다. 나는 그 전성기를 만화동호회 활동을 하며 통과했다. 


우리는 졸업을 하고 꽃 같은 스무 살이 되었다. 삶의 형태가 너무나 달라지는 시기였다. 누구는 대학을 가고 누구는 취업을 하고 누구는 서울로 상경을 했다. 나는 취업을 했지만 평생 직장인이 되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우선 돈을 모아야 다음 진로 방향을 기약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3년을 불태웠던 가디록은 사춘기 여고생들을 행복하게도 했지만 관계 갈등도 낳았다.  몇 번의 몸살을 앓은 후 가디록은 학창 시절과 함께 안녕을 고했다. 어릴 때부터 딱풀처럼 붙어 함께 만화를 그렸던 언니도 가디록을 끝으로 언니의 인생을 따라 만화와 멀어졌고 나는  그중 마음이 맞는 멤버 세 명과 새로운 도약을 결의하며 새 동호회를 창단했다. 새 동호회 이름은 KEY였다. 


눈앞에 높게 솟은 문을 열려면 열쇠가 있어야 하는데 그 열쇠는 내가 가지고 있다.  열쇠를 돌려 잠긴 문을 열자는 의미로 동호회 이름을 KEY로 지었다. THE KEY는 그렇게 현실에서는 직장을 다니며 돈을 벌고 있었지만 만화가의 꿈을 잊지 않도록 이정표 역할을 해주었다.



미야작가 / 연은미

만화가 & 일러스트레이터



그림을 그릴 때나 그리지 않을 때나 삶은 계속됩니다. 먹고 자고 싸고 청소하고 지지고 볶고 일하고 사랑하며 하루가 지나갑니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지만 내 눈으로, 내 몸으로 보내는 날들입니다. 까먹기 대장이라 시작한 미야일상툰, 가볍게 즐겨주세요.


#인스타툰 #미야툰 #일상툰 #공감툰 #가족툰

https://www.instagram.com/_miyatoon_/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성장툰 #육아



<미야툰 그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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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미야 캐릭터 이야기 2 https://brunch.co.kr/@miyatoon/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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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웹툰을 정독하라! https://brunch.co.kr/@miyatoon/160/write

18화: 웹툰작가를 꿈꾸는 너에게 https://brunch.co.kr/@miyatoon/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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