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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은미 Apr 25. 2023

저돌적 스무 살

미야툰-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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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돌적 직장인이라고 쓰고 철없는 직장인이라고 읽겠다. 

회사 출근하면 부서 책장에 떠억하니 <가디록>부터 <KEY> 동호회 회지가 자리 잡고 있었다. 회사 직원들에게 회지를 팔다니  철이 너무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민망하다. 그런 내 행동을 귀엽게 봐 준 좋은 사람들 덕분에 직장 3년을 잘 다닐 수 있었으니 나는 인복도 많다. 

직장 2년 차 때 자취를 시작했다. 직장 바로 코 앞에 집을 구했는데 룸메이트는  KEY 멤버 '명'이었다. 자취방은 여러 새 대가 모여사는 오래된 2층짜리 한옥이었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회사 뒤쪽 구불구불한 골목길과 골목 끝에 있는 파란색 대문이 떠오른다. 주인은 바로 옆집에 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 부부였다.  보증금 60만 원에 6만 원 하는 한 칸짜리 방에 둘이 함께 지냈다. 부엌문이 현관문이었다. 부엌문을 열고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가면 다락방이 하나 딸려 있었다. 미닫이 부엌문 가운데 기다랗게 대롱거리는 자물쇠는 엉성했다. 문을 흔들면 자물쇠가 쏙 빠질 것 같았다. 어느 날 다른 방에 세 들어 사는 남자가 창문으로 우리를 지켜본 것에 놀라 소리를 지르고 법석을 떨었다. 그나마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었는데 그 뒤로 누가 또 우리 방을 들여다볼까 봐 불안했다. 여자끼리 사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그럼에도 그곳은 처음으로 갖게 된  나만의 공간이었다. 만화책, 책상, 그림도구 등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채울 수 있어서 행복했다. 4~5달에  한 번씩 만화  회지 마감할 때는 자연스럽게 자취방이 아지트가 되었다. 멤버들과 밤늦게까지 음악을 틀어놓고 웃고 떠들며 원고를 편집하고 라면을 끓여 먹었다. 

이사 올 때 중고 TV를 샀는데 화질이 좋지 않았다. 가끔 영화가 너무 보고 싶을 때 명과 비디오방에 갔다. 비디오를 고르고 어두운 방에 누워 영화를 보았다. 가끔은 음악감상실에 가기도 했다. 

어느 날 명은 전화국에서 컴퓨터처럼 생긴 생소한 기기를 대여해 왔다. 하이텔 접속기였다. 파란색 창에 전국팔도 모르는 사람과 온라인으로 채팅을 할 수 있는 신기한 물건이었다. 처음엔 친구가 채팅을 하는 것을 구경만 하다 서울에 그림 그리는 남자애랑 채팅을 주고 받았는데 직접 해보니 너무 재미있었다. 


자취를 시작할 때 아빠에게 주말에는 집에 가겠다고 약속을 했기에 토요일이 되면  집에서 어정쩡하게 있다가 아빠 옆에서 겨우 잠을 자고 다음날 출근하며 집을 나섰다. 그때는 내 관심사에 빠져서 아빠 마음이 어땠을까 깊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부모가 되어 자식이 스무 살 언저리에 자취를 한다고 하면 걱정이 태산일 같다. 집에 딸 혼자 쓸 수 있는 칸이 없어서 자취한다는 말에 반대도 못한 아빠의 마음은 무척 씁쓸하지 않았을까. 그게 계기였는지 모르지만 아빠는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아파트에 큰 마음먹고 청약을 넣어 아파트를 장만했고 방을 만들어 주셨다. 이사를 한 집에 가니 연두색 새 책상이 내 방에 놓여 있었다. 



미야작가 / 연은미

만화가 & 일러스트레이터



그림을 그릴 때나 그리지 않을 때나 삶은 계속됩니다. 먹고 자고 싸고 청소하고 지지고 볶고 일하고 사랑하며 하루가 지나갑니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지만 내 눈으로, 내 몸으로 보내는 날들입니다. 까먹기 대장이라 시작한 미야일상툰, 가볍게 즐겨주세요.


#인스타툰 #미야툰 #일상툰 #공감툰 #가족툰

https://www.instagram.com/_miyatoon_/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성장툰 #육아



<미야툰 그림일기>

14화: 미야 캐릭터 이야기 1 https://brunch.co.kr/@miyatoon/166

15화: 미야 캐릭터 이야기 2 https://brunch.co.kr/@miyatoon/167

16화: 일찍 데뷔해서 다행이야 https://brunch.co.kr/@miyatoon/162

17화: 웹툰을 정독하라! https://brunch.co.kr/@miyatoon/160/write

18화: 웹툰작가를 꿈꾸는 너에게 https://brunch.co.kr/@miyatoon/174

19화: 나를 러너라고 불러주세요 1 https://brunch.co.kr/@miyatoon/159/write

20화: 나를 러너라고 불러주세요 2 https://brunch.co.kr/@miyatoon/175

21화: 만화남매 & 현실남매  https://brunch.co.kr/@miyatoon/163

22화: 세대교체를 대하는 자세 https://brunch.co.kr/@miyatoon/164

23화: 사춘기의 특징 https://brunch.co.kr/@miyatoon/168

24화: 엄마, 그거 어딨어? https://brunch.co.kr/@miyatoon/165

25화: 남편의 고등어 추어탕 https://brunch.co.kr/@miyatoon/170

26화: 내 별명은 블랙홀 https://brunch.co.kr/@miyatoon/169

27화: 고양이손 훈련기 1 https://brunch.co.kr/@miyatoon/171

28화: 내가 주고 싶은 문화유산은... https://brunch.co.kr/@miyatoon/172

29화: 왕년의 실력 https://brunch.co.kr/@miyatoon/176

30화: 운동과 모유수유, 가슴의 관계는? https://brunch.co.kr/@miyatoon/177

31화: 부부간 호칭의 부작용 https://brunch.co.kr/@miyatoon/178

32화: 사춘기의 바다 https://brunch.co.kr/@miyatoon/179

33화: 꼬꼬마맘님들 힘내요 https://brunch.co.kr/@miyatoon/101

34화: 시시한 행복 https://brunch.co.kr/@miyatoon/182
35 화: 나의 만화 입문기-1 https://brunch.co.kr/@miyatoon/183#comment

36화: 나의 만화 입문기-2 https://brunch.co.kr/@miyatoon/184

37화: 나의 만화 입문기-3 https://brunch.co.kr/@miyatoon/185

38화: 꽃같은 스무살  https://brunch.co.kr/@miyatoon/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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