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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lys Jan 19. 2022

티처뷰_부산 반여초 최호준 선생님

살며 가르치며 배우며 / 최호준_부산 반여초 교사

오늘은 부산 반여초 최호준 선생님을 인터뷰했습니다.


Q : 선생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전국 새넷 선생님들께 선생님을 소개해 주셔요.

A :  아이고, 제가 뭘(웃음) 제가 인터뷰 상대가 되다니 참 쑥스럽네요. 저는 어릴 적부터 꿈이 초등교사였고요. 부산교육대학교를 두 번 도전해서 합격했어요. 졸업 후에 부산에서 임용이 되어서 30년 간 교사 생활을 했습니다.



Q : 학교에서는 현재 무슨 역할을 하시는지요?

A :  아! 저희 학교가 다행복학교(부산 혁신학교)거든요. 그래서 교무업무지원팀 내에 다행복리더를 맡고 있습니다. 부산다행복학교에서는 ‘다행복부장’을 ‘리더’라는 이름으로 불러서 ‘다행복 리더’라고 불립니다.


Q : 아, 그러시군요. 선생님께서 반여초를 일궈냈다고 들었거든요. 반여초는 어떤 학교인가요?

A : 반여초등학교는 1974년에 개교했는데 그때 당시만 하더라도 학생 수가 엄청 많아서 ‘한강 이남에서 가장 큰 학교’라고 불릴 정도였답니다. 그런데도 계속 학생 수가 늘면서 반여초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워지니까 인근에 학교를 다시 지어야 했는데 학교 부지로 쓸만한 곳이 없어서 마을 외곽 군부대가 있던 자리에 어중간하게 위봉초등학교가 2003년도에 개교한 거예요. 위봉초는 마을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위치해서 기대한 만큼 학생 수가 확보되지는 않았어요. 그러다가 학생 수가 급격하게 줄면서 2020년도에 이 두 학교를 통폐합하면서 건물은 새 건물에 해당하는 위봉초등학교 건물을 쓰고, 반여동에 있으니까 이름은 반여초등학교 이름을 쓰게 되었어요. 그것이 지금의 반여초등학교입니다.



Q : 통폐합 이전 위봉초에 있을 때부터 학교를 완전히 바꿔놓으셨다고 들었는데요.

A :  부산의 혁신학교는 2015년부터 시작되었어요. 제가 있는 쪽이 해운대구거든요. 경기도는 2010년에 이미 시작된 혁신학교가 한참 꽃필 때쯤 해운대구에서도 뜻이 있는 선생님들끼리 부산에서도 혁신학교를 일궈내야 한다고 생각해서 2014년도에 ‘씨앗’ 동아리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그 당시 제가 근무하던 해운대구 모 학교에 ‘다행복’을 하려고 그 학교 교장 선생님께 계획서를 들고 갔는데 그 당시 교장 선생님은 거절하더라고요. 그래서 15년도부터 시작하려고 했던 혁신학교를 해운대에서는 운영하지 못하게 되서 씨앗동아리 선생님들이 우리가 뭔가 생각을 잘못했다 했어요. 왜냐하면 그 모 학교는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학교로 많은 교사가 선호하는 학교였기 때문이에요. 그런 곳에서 ‘다행복’을 하려 했으니 우리의 판단 미스였던거죠. 그래서 그 인근에 있는 위봉초등학교로 눈을 돌렸어요. 그 당시만 해도 전교 아이들 60퍼센트가 복지대상자 학생들로 구성된 학교였고, 교사들이 기피 하는, 반여동에 있는 아주 열악한 학교였어요. 그래서 그 학교에 가서 ‘다행복’을 하자고 의견을 모았어요. 그리고 그해 전보 가능한 씨앗동아리 선생님, 저 포함해서 네 분이 위봉초로 전근했습니다. 들어가서 학교 문화 혁신부터, 교사 간 소통, 교사와 학생 간 소통, 교사와 학부모 간 소통을 중점으로 많이 노력했어요. 씨앗동아리 선생님 중 두 분이 교사 학교운영위원으로 진출하고, 15년도 8월에 기존 교장 선생님이 정년 퇴임하시자 공모로 교장 선생님을 직접 뽑을 때 2016년도부터 혁신학교를 운영할 텐데 도와줄 의향이 있는지를 확답을 받았어요. 15년에 계획서를 넣어 16년도부터 19년도까지 혁신학교를 했지요.



Q : 통폐합 과정이 쉽지는 않으셨을 텐데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A :  사실 10년 전부터 통합이야기는 거론이 되었답니다. 근데 그때마다 반여초 학부모의 반대가 엄청 심했대요. 위봉초는 마을과 뚝 떨어져 있어서 부산의 ‘동막골’ 같은 곳이라, 아침에 아이들이 집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었거든요. 19년도 10월에 그간 4년간의 혁신학교에 대한 노력으로 학부모들에게 신뢰를 얻은 우리는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었고, 그때 교육청에서 ‘혹시 안 되더라도 투표라도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기습적으로 투표를 실시했지요. 위봉초 학부모는 4년간 ‘다행복’하면서 학교를 일구었기 때문에 두 학교 통합에 별 불만이 없었지만, 집값 하락 등의 이유로 반여초 학부모들의 반대가 심해서 개표장에 경찰관 입회하에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개표를 했어요. 개표 결과 51대 49퍼센트라는 근소한 차이로 통합이 결정되었어요. 그때 반여초등학교 학부모들이 내건 조건이 있었는데 스쿨버스를 운영해달라는 것과 통합학급에 대한 지원을 충분히 해달라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우리 학교는 학생용 중형크기 스쿨버스 3대와 유치원생용 스쿨버스 1대 총 4대를 운영하고 있고, 통합학급도 3학급이나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위봉초에는 원래 유치원이 없었는데 반여초에 있던 유치원을 그대로 도입해 만들었어요. 시설 면이나 운영 면에서 모두 독보적이어서 우리 유치원에 들어오려는 부모님들의 경쟁이 아주 치열합니다. 그렇게 2020년에 통합이 되면서 새로운 반여초 혁신학교를 만든 지 벌써 2년이 되었어요.



Q : 앞에 말씀하신 내용 중에 위봉초에서 소통의 문화를 정착하기까지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A :  초등학교는 교실 단위로 교류가 잘 없어요. 그것을 어떻게 바꿔 볼까 고민했어요. 일단은 함께 위봉초로 갔던 네 명의 선생님이 각자 학년에 흩어져 있으면서 학년 소통부터 시작한 거죠. 늘 행사가 있으면 꼭 참여했어요. 등반대회, 학교 대항 배구대회에서 그 네 명이 솔선수범을 하면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해서 마음의 문을 열어 간 거죠. 좋은 의견이 있으면 이렇게 하는 게 어때요? 라는 정도로 제안했어요. 그런 제안 중 하나가 학생동아리를 학생들이 원하는 자치동아리로 운영하자는 거였어요. 5명 이상이 되면 동아리를 개설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었죠. 자기 동아리 홍보하는 포스터를 붙여 놓고 참여하고 싶은 학생들은 이름을 쓰고, 자기들이 계획하고 운영하는 동아리를 만들었지요. 그리고 늘 반갑게 인사하기 등이 선생님들 마음을 열었던 것 같아요. 그때 당시만 하더라도 혁신학교 계획서를 공모할 때 교직원의 동의를 구해야 했는데요, 각자 발로 뛰면서 서명을 해달라고 했어요. 그렇게 시작이 됐었어요. 찬성률이 70 몇 프로 정도 됐었는데 아쉬운 감은 있었지만, 부산시교육청 동의 기준인 50퍼센트는 웃돌았죠. 그래서 시작이 가능했어요. 정말 기쁘고 마음 설레었던 순간이었죠.



Q : 학부모와의 소통은 어떻게 하셨나요?

A :  다행복학교가 된 다음에 학부모의 사정은 말 그대로 옛날 학교 조직 그대로였어요. 학교운영위원장과 학부모회장이 있고, 전교 어린이회장의 어머니가 학부모회장을 맡는 그런 틀이었고 더군다나 위봉초에 막 전근했을 때는 학부모와 교사 사이가 안 좋은 상태였어요. 그 이유는 2010년도 정도에 어떤 선생님이 도서관 활동을 열심히 하셨는데, 학부모들을 도서관 도우미로 활용을 많이 하셨답니다. 학부모들과 정기적으로 독서동아리도 운영하셨다는데 나중에는 점점 그 학부모들이 학교 교육 과정까지 관여하시면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하더라고요. 관계를 잘못 맺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당시 정년 퇴임하신 그 교장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그 어머니들과의 관계를 정리하느라고 엄청 힘들었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갔을 때 학부모는 전혀 학교에 오지 못하게 하는 상태였어요. 이건 아닌데 ‘다행복’인데 큰 축인 학부모가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운영위원회에 들어갔으니까 학부모와의 소통은 어느 정도 되잖아요. 16년도부터 학부모 씨앗동아리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학부모 동아리방도 만들어 드렸거든요. 예산 지원도 해드리고요. 이전 학부모회는 학교와의 관계가 학부모가 중심이 되어서 수직적 조직 같은 모임이었다면 학부모 씨앗동아리는 조직의 개념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관심사에 따라 어머니끼리 5개 동아리가 만들어졌어요. 자체적으로 동아리 활동도 하시고, 아이들 교육활동에도 많은 도움을 주셨지요.



Q : 반여초 학급수가 어떻게 되나요?

A : 2015년에 위봉초와 반여초는 각각 24학급 정도였는데 4년 동안 위봉초가 ‘다행복’을 하면서 같은 학군에서 위봉초에 입학하려는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위봉초보다 반여초 학생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어요. 위봉초에 두 학급이 들어올 때 반여초 한 학급만 입학하던 셈이니까요. 통폐합된 지금은 15학급이에요. 특수반 3학급이 있고요.



Q : 통합학급이 3학급이나 있다니 꽤 많은 편인데요?

A :  우리 학교가 너무 좋다는 소문이 나서 우리 학교 학군이 아닌데도 특수아동 어머니들이 우리 학교로 일부러 전학을 시키더라고요. 그래서 통합반 학급수가 많이 늘어났어요.



Q : 이쯤에서 궁금해지네요. 반여초의 비전은 뭔가요?

A :  통합 전의 위봉초의 비전은 ‘어울려 꿈꾸고, 더불어 성장하는 행복한 학교’였거든요. 반여초와 통합하면서 새로 비전을 정하느라 선생님들과 1박 2일간 밤을 꼬박 새우며 ‘배움으로 꿈꾸고, 당당하게 나아가는 우리’로 세웠어요. 2015년에 위봉초는 보통의 여느 학교들처럼 그 당시 교육 문제로 심각했던 교실 붕괴가 몇몇 학급에서 일어나서 아이들이 제멋대로 행동하고, 모 학년 선생님들은 일찍 출근하지 않아서 오죽했으면 교감 선생님이 담임이 출근할 때까지 그 학년 복도를 지키고 서 계실 때도 많았어요. 학교폭력과 민원이 폭주하는 그런 안타까운 학교였어요. 그걸 하나하나 바꾸어 나간 거죠. 학생들과 생활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아이들의 자존감이 너무 낮다는 거였어요. 자기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줄 모르고, 사람과의 대화나 관계 맺음의 방법도 서툰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이름만 불러도 겁을 먹거나 반항적인 언행으로 자신을 방어하려는 반응을 보였어요. ‘다행복’학교를 운영하면서 교사 초빙제를 도입하였고, 초빙되어 오신 선생님들이 사랑으로 아이들의 상처를 보듬고 마음을 어루만지는데 엄청 공을 많이 들였어요. 새 비전의 ‘당당함’은 아이들의 ‘자존감 회복’의 의미를 뜻해요. 우리 아이들이 어떠할 때 당당할까를 고민하며 교육 과정을 구상하게 되니까요.



Q : 선생님들이 늦게 출근했다는 게 충격적이네요.

A :  그래서 교육 혁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사 자신의 혁신이라고 생각해요. 자기 혁신이 먼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출발점이어야 해요. 그때 전체 교사는 아니지만 그런 선생님이 계셨다는 거지요.



Q : 교실 붕괴가 일어난 학교를 혁신할 때 선생님들도 말 못 하는 상처를 받으셨을 거 같은데 그 상처 회복에 대해 어떤 관심을 기울이셨나요?

A :  우리는 ‘다행복’을 시작하면서 선생님들과 교직원 다모임을 한 달에 필요하면 네 번까지 가지면서 소통했어요. 책상 배치를 둥글게 앉아서 회의가 아닌 소통의 모임으로 형태부터 바꾸는 거죠. 스승의 날에는 우리끼리 자축하면서 급식실, 행정실 식구들까지 초대해서 같이 게임 하면서 칭찬 릴레이도 하고, 마니또도 하고, 소소하지만 선생님들이 교실 속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나누고 대화하며 다독였던 것 같아요. 선생님들은 내면의 상처를 잘 내비치지 않지만, 그것도 저 스스로가 건너야 할 강이라고 목표를 잡았기에 다독이면서 옆 사람을 챙기면서 소통했어요. 그러다 보니 신기하게도 1년, 2년 지나면서 거칠었던 아이들이 달라지더라고요. 아이들의 눈빛과 행동이 선량하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선생님들의 상처는 눈 녹듯 사라진 것도 같아요. 그리고 어느새 여기에서 7년 있다 보니까 입학한 신입생부터 졸업생까지 모든 아이를 봤잖아요. 아이들이 학교 오기를 좋아하는 게 보이더라고요.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서 모든 것을 얻는다’라고 말해요. 코로나 때문에 학교에 못 와서 아이들이 너무 힘들어했어요. 학교에 와야 진짜 맛있는 급식을 먹을 수 있거든요(웃음). 처음 학교 안 온다니까 좋아하다가 시간이 길어지니까 너무 힘들어했지요.



Q : 코로나 영향력은 없으셨나요?

A :  2020년에는 나라에서 개학을 늦췄잖아요. 그때 빼고는 전교생이 등교했고요. 특히 2021년에는 전교생이 340명 정도밖에 안 돼서 전면 등교했어요. 중간에 확진자가 한 명 나오긴 했는데 추가 확진자는 나오지 않았어요. 우리 학교는 층별로 학년이 다르고 학교 건물이 엄청 커서 한 명이 나오더라도 다른 학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아주 적어요.


Q : 그랬군요. 그럼 이제 선생님 수업 이야기 들려주세요.

A :  2015년도에는 3학년 담임을 했었고요. 현재는 3~6학년 학생들 음악 전담 교사를 맡고 있어요. 음악 교사로서 문화적, 정서적 부분에 아이들을 변화시키려고 노력을 많이 했지요. 지역적으로 음악적 소양이 많이 떨어져요. 5학년 기준으로 20명이면 그중에 악보를 읽을 줄 아는 학생은 5명 정도밖에 되지 않아요. 그래서 기초부터 하고 있는데 음악적 접근이 어려워서 특히 3학년은 가락 악기로 처음 다루는 게 리코더가 있어요. 리코더를 단계적으로 접근하려고 노력을 하고, 주로 가창도 많이 해요. 그리고 우리 학교에는 리코더 오케스트라가 있어요. 그것도 공모 계획서를 넣어서 예산을 확보해서 운영하고 있어요. 우리 학교 아이들의 수준으로는 일반 오케스트라는 만들 수가 없어요. 바이올린이 40대 정도가 있지만 연주할 수 있는 학생이 없어요. 무엇이 좋을까 고민하다가 리코더 오케스트라를 만들었어요. 공개모집으로 진짜 음악을 좋아하는 학생들을 받았어요. 그리고 2021년 12월 23일 제5회 정기연주회를 열었어요. 정기연주회는 1년에 한 번씩 열고 있어요. 1년에 한 번씩 여는 연주회니 벌써 오케스트라가 결성된 지 5년이 된 거죠. 주로 토요일 오전에 연습하거든요. 연주곡 연습을 완성하면 음악 나눔 활동이라 해서 교실로 가서 멋진 음악을 들려주는 거예요. 1학년부터 음악을 들었던 아이들이 지금은 오케스트라 단원이 돼서 연주하고 있어요. 리코더 초기 단원이 고 1까지 올라갔는데 마을에 리코더 오케스트라를 만들어보려고 마을 교육공동체와 연계해서 노력하고 있어요. 이번 정기연주회에도 그 선배 단원들이 많이 왔었어요. 아이들이 발표를 통해 자존감도 높이고 정서적으로 많이 안정되고 그런 것 같아요.



Q : 와, 정말 대단하시네요.

A :  사실은 제가 학교에서 하는 것이 문화예술뿐만 아니라 스포츠도 많이 하고 있거든요. 체육 쪽은 제가 농구를 좋아해요. 농구동아리는 고등학생까지 마을 단위로 구성이 되어있어요. 우리 학교 강당에서 토‧일요일 아이들이 막 운동을 해요. 이 프로그램을 주말에 운영해요. 이게 어느 정도 정착이 되야 넘길 수 있겠다 싶어서 정착할 때까지 농구강사도 뽑아서 농구 기술도 배우게 했는데 지금 아이들 실력이 엄청 좋아졌어요. 부모님들 말씀이 주중에는 아이들 깨우기가 힘든데 토요일만 되면 일어나라고 할 필요가 없대요.(웃음) 학교에 농구하러 간다고. 여름에는 새벽 6시에 학교에 온다고 경비 아저씨가 제발 늦춰달라고 할 정도로 아이들이 열성적이에요. 집에 있으면 아이들이 게임밖에 안 하거든요. 엄마들은 저만 보면 90도로 절을 하지요(웃음). 교감 교장 선생님도 엄청 한 마음이 되어서 지지를 많이 해주세요. 코로나 상황인데도 체육관을 개방해 주시고, 아이들 간식도 학교에서 지원해 주시니까. 그렇게 막살고 있습니다.



Q : 막사는 게 아닌데요? 주말에도 쉴 틈이 없으시네요. 선생님 가정은 괜찮으신 거지요?

A :  하하하, 우리 가정은 아주 괜찮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학교에는 염소, 닭, 공작새가 있어요. 얘들 먹이를 주느라 주말에 학교에 가지 않을 수가 없어요. 닭은 40마리나 있거든요.



Q : 네? 40마리요? 우리 학교에도 재작년에 발명반 선생님이 부화시킨 닭 12마리가 있었는데 소음 문제로 민원이 들어와서 수탉이 먼저 농장으로 갔고, 그 선생님이 전근 가시면서 관리의 문제로 모두 농장에 보냈어요. 근데 닭 40마리를 키우세요?

A :  도시 학교에서는 키우기 어렵죠. 우리 학교는 부산의 ‘동막골’이라고 했잖아요. 다른 학교에서 부화를 시킨 다음에 닭들이 자라니까 민원 때문에 감당이 안 되면 우리 학교로 들고 와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40마리로 불어난 거죠. 닭들은 한 닭장 안에 합사시키는 게 쉽지 않거든요. 그래도 다 받아줍니다(웃음). 그중에 알을 낳는 녀석이 25마리 정도 돼요. 달걀이 나오면 다 수거해서 대바구니에 모은 다음에 교무실에 있는 슬로우쿠커로 구운 계란을 만들어서 교실에 일일이 배달해요. 엄청 맛있어서 아이들이 정말 좋아해요(웃음).


Q : 공작새는 어떻게 사신 거예요?

A :  저희가 산 게 아니라 다른 학교에서 공작새를 부화시켰나 봐요. 근데 공작새는 울음소리가 4킬로나 가요. 그러니 도시 학교에서 민원을 감당할 수 있었겠어요. 그래서 ‘동막골’ 같은 우리 학교에 오게 된 녀석들이에요. 공작새는 수컷 두 마리가 있는데 날개를 펴면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이제 다 커서 공작새 암컷도 들여와야 할 것 같아요(웃음). 우리 학교 부지가 엄청 넓어요. 군부대 부지였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운동장 펜스 너머 그 바깥 터가 또 넓거든요. 거기에 염소를 키워요. 예전엔 40마리 넘게 있었어요. 지금은 여러 마리 팔고 염소가 10여 마리 남았어요. 그 몇 마리가 금세 새끼를 낳아서 항상 식구가 불어나요. 그리고 텃밭도 엄청나요. ‘다행복 가족사랑’ 텃밭은 추첨해서 가족들에게 분양했고, 학급별로도 텃밭이 있어서 심고 싶은 식물을 심고 가꾸며 꼬마 농부가 되지요.


Q : 와, 이 정도면 협동조합을 만들어도 되겠어요.

A :  네, 안 그래도 그런 생각도 하고 있어요. 우리 학교는 빈 곳이 하나도 없어요. 교장 선생님은 목공동아리를 지도하시고, 교감 선생님은 컴퓨터동아리를 운영하세요. 보안관(배움터 지킴이) 선생님도 텃밭 동아리를 해주세요. 그래서 우리 학교가 텃밭 경연대회에서 전국 대상을 받았어요. 농림부 장관상을 받은 거예요. 전국 아름다운 학교 대회에서는 금상 받았고요.그리고 2020~2021 교육실습 협력학교도 했어요. 부산에 교육실습 협력학교는 몇 군데가 돼요. 한 기수에 20명 정도 교육실습생이 오는데 실습 기간이 끝나고 이 교생 선생님들한테 설문하면 다시 오고 싶은 학교로 단연코 1위로 뽑히는 거지요.



Q : 계속 감탄만 나오네요. 이렇게 훌륭하게 혁신학교를 만드셨잖아요. 근데 구성원이 바뀌면 혁신이 흔들리는 경우를 봤어요. 반여초의 지속 가능한 혁신에 대한 고민은 하시나요?

A :  혁신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어떤 분은 “시스템이다.”, 어떤 분은 “사람이다.”라고 하시죠. 저는 거기서 어느 쪽에 치우치느냐 하면 ‘사람이다’에 치우치거든요. 많은 사람은 시스템이라고 하는데 교육만큼은 사람이 하나의 문화인 것 같아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걱정이 된다고 해서 해결이 될 방안이 나오는 것도 아닌 거 같아요. 중요한 것은 제가 이제까지 해 왔던 이게 본보기도 아니고, 최상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 나름대로 할 수 있는 모습이었거든요. 사람이 바뀌면 당연히 시각이나 철학이 달라지니까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혁신을 가져올 거라고 봐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크게 걱정은 안 해요. 새로운 그릇에 새로운 문화를 담으면 되거든요. 그 나름의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 갈 거라고 믿기 때문에 걱정은 하지 않아요. 구성원이 바뀌었는데 옛날 그 모습 그대로를 요구할 수 있겠어요? 그 구성원과 기존 문화 간의 교류를 통해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가는 거지요.



Q : 그러니까 혁신에 전형은 있을 수 없고 구성원이 바뀌면 그 구성원에 의한 변화가 일어나야 혁신이 지속되는 거라고 보시는 거군요.

A : 네, 바로 그거예요. 너무나 당연한 거예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혁신은 자기 혁신으로부터 시작해요. 새로 오신 분들, 그 한 분 한 분이 멀리 내다보고 다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 자기 혁신을 통해 새로운 혁신으로 나아가는 게 혁신문화입니다. 저희가 관계 혁신을 이루고, 교육과정의 혁신을 추구해서 예체능을 마을과 함께 이루어지게 만들어놨지만, 다른 누군가가 우리 학교에 와서 과학, 독서를 중심축으로 혁신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Q : 새넷은 언제 가입하신 거예요?

A :  몇 년 전에 부산에 있는 어떤 샘과 새넷 샘끼리 일본 여행을 갔어요. 그 다음에 새넷에 가입했어요. 사실 회원으로서 두드러진 활동을 하지 않아서 새넷 회원으로서 드릴 말씀은 없네요. 동막골에 처박혀서 내 나름의 철학으로 열심히 하자 했는데 그것이 이렇게 됐네요. 어쩌다 보니 30년이 흘렀어요. 우리 학교에 새넷 샘이 또 한 명 있는데 엄청 열심히 하세요. 제가 그 선생님께 좀 살살 해라. 쉬면서 해라. 맨날 얘기하는데. 서로가 그러고 있는 거지요(웃음).



Q : 마지막으로 올해 비전이나 새넷에 제안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A : 올해가 통합 3년 차이긴 한데 통합이 되던 첫해였던 2020년에 코로나로 인해서 아이들과 통합프로그램이라든지 처음부터 기반을 다진다는 어떤 주춧돌을 제대로 밟지 못한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원래 위봉 아이들과 반여에서 온 학생들이 학교에 대한 인식이 나뉘어 있어요. 위봉 아이들은 자기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말하는데 반여 아이들은 여전히 마음을 쉽사리 열지 못하는 게 보여요. 그런 부분이 아직까지는 아쉬워요. 여건만 허락한다면 올해를 통합 1년 차라고 생각하고, 반여에서 온 아이들도 똑같은 우리 학교 아이들이니 좀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더불어 자기 혁신을 해야 한다. 진짜 제가 제 자신에 대해 돌아보고 초심으로 돌아가고 혁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올해의 목표는 반여초와 위봉초와 하나가 되는데 집중하는 것, 제 스스로 자기 혁신을 하는 것 이렇게 두 개 잡았습니다. 새넷에 제안하고 싶은 말씀은 없고요. 올해는 저도 회원으로서 새넷 활동에 좀 더 관심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올해는 새넷 웹진도 관심 있게 읽어주시고, 새넷 학습터에도 꼭 참여해주십시오. 역시 교사는 교육할 때 가장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교육에 아낌없이 열정을 불태우고 계신 선생님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감동적이었습니다. 일요일에 귀한 시간 내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정말 즐거웠습니다.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2021 겨울호 목차+


들어가는 글_2021 새넷 겨울호


1. 시론


2. 포럼 & 이슈


3. 특집


4. 전국 NET


5. 수업 나누기 & 정보 더하기


6. 티처뷰_teacherview


7.이 책 한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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