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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아리다 Oct 02. 2023

You Raise Me Up

Emotions 19. 절망 desperatio



절망 (desperatio)이란
의심의 원인이 제거된 미래 또는 과거 사물의 관념에서
생기는 슬픔이다.(...) 공포에서 절망이 생긴다.

<에티카> 스피노자


<절망> 죽음으로 이끌 수도 있는 치명적인 장벽

희미하게 흔들리던 촛불처럼 존재하던 희망이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 절망이 찾아온다. 미래에 대한 어설픈 기대, 혹은 불안한 희망이 없었다면, 우리는 그렇게 절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절망은 냉철한 이성을 가진 사람보다는 우유부단한 성격의 소유자에게 더 자주 찾아오는 감정이다.

<강신주의 감정수업> p214



 도서

<시지프 신화> 알베르 카뮈


 영화

미비포유 Me Before You

더 리더 The Reader : 책 읽어주는 남자


 음악 & 뮤직비디오

Sabotage_Bebe Rexha

Not today_Imagine Dragons (미비포유 OST)

Surprise Yourself_Jack Garratte

You raise me up_임형주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OST)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 뿐이다. (...) 인생이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시지프 신화> 알베르 카뮈



'절망'은 '바라볼 것이 없게 되어 모든 희망을 끊어 버림', '실존 철학에서, 인간이 극한 상황에 직면하여 자기의 유한성과 허무성을 깨달았을 때의 정신상태'라고 정의한다. desperatio는 '실망, 절망, 자포자기'의 뜻을 갖고 있다.



눈 앞이 캄캄해서, 마치 터널 속에 갇힌 느낌, 절벽에 선 듯한 기분. 그 절망의 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을 내야 할 때가 있다. 인생은 어차피 부조리하다고 하니까. 터널은 그저 지나가는 순간일 뿐이고, 절벽에 서 있다면 우린 그나마 안전한 곳에서 위험한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터널 속에서, 절벽 위에서 언제까지 있어야 하는지 그 끝을 알 수 없을 때 우리는 불안해진다. 그리고 절망한다. 어쩌면 어떤 기대와 희망이 있을 때 우리는 더 쉽게 실망하고 절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Bebe Rexaha의 곡 Sabotage는 그런 우리의 나약한 마음이 담긴 노래다. 



Sabotage_Bebe Rexha



앞에서는 인생이 과연 살 의미를 가지는지 어쩌는지가 문제였다. 이번에는 반대로 인생에 의미가 없으면 없을수록 더 훌륭히 살아갈 수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어떤 경험, 어떤 운명을 살아낸다는 것은 그것을 남김없이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시지프 신화> 알베르 카뮈



사고로 전신마비가 되자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윌 트레이너와 그를 간호하기 위해 온 루이자 클라크가 서로에게 스며들어가는 영화 미비포유 (Me Before You)는 존엄사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 영화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절망감.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삶은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존엄을 지키는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것이 삶에 대한 존엄을 지키는 것일까. 



Not today_Imagine Dragons (미비포유 OST)



'삶을 의미있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오히려 더 힘들 때가 있다. 삶이란 원래 의미없는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고 나면, 꿈꾸는 멋진 삶 대신 지금 이대로의 삶과 나로도 충분할 수 있다. 무언가 희망하지 않고, 기대하지 않기에 절망도 실망도 하지 않게 된다. 절망적인 두려움은 결국 나에게서 시작되는 감정일 뿐이다. 그럴 땐 나 스스로에게 놀라움을 경험하는 건 어떨까.



미비포유의 OST이기도 한 Jack Garratt의 Surprise Yourself는 뮤직비디오 속 등장하는 일반인들의 두려운 표정과 사소하지만 어떤 걸 해내거나 지나고 난 후 활짝 웃는 미소 속에서 절망에 휩싸인 인간이 언제든 그 고통과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절망이란 얼마든지 스스로 극복될 수 있는 감정인 것이다.



Surprise Yourself_Jack Garratt (미비포유 OST)


Surprise Yourself_Jack Garratt (미비포유 OST 가사 해석)


의식으로의 복귀, 일상적인 삶의 졸음으로부터 탈출이 부조리의 자유의 첫걸음이다.

<시지프 신화> 알베르 카뮈



영화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에서 한나는 글을 읽고 쓸 줄을 모르는 문맹이다. 이 영화는 마치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에서처럼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그보다 더 개인적인 수치심과 자존심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속 인물인 한나는 악인이 아니었고, 오히려 순진한 문맹인이었다. 그러나 한나는 자신이 문맹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싶었고, 더욱이 사랑했던 마이클에게 그 사실을 모르게 하는 것이 목숨보다 더 소중했다. 한나의 좌절과 절망은 개인의 진실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기에, 사회적으로 지탄받고 죄값을 치르기에 이른다. 어쩌면 그것이 더 억울할 법도 한데, 그녀는 다른 곳에서 절망한 것이다.



인간은 자신을 사랑해주길 바라는 사람에게서 위로 받는다. 그 위로는 동정심이나 연민이 아닌 사랑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한나는 자신을 위해 책을 읽어주던 마이클이 자신이 문맹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동정이나 연민이 되리라고 여겼을 것이다. 끝까지 사랑이길 바랐기에 죽음을 택한다. 이는 미비포유의 윌도 마찬가지다. 사랑이라는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기에 결국 그도 존엄사를 택했다.



사랑하는 이 앞에서 스스로가 작아지는 열등감은 자존심만 키운다. 이것은 자존감과 다른 것이다. 스스로 일어설 수 없기에 상대방이 자신을 일으켜 줄 수 밖에 없다. 그저 조금 모자란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될 것을, 알량한 자존심이 그 사랑을 무너뜨리고, 절망하게 된다. 안타까운 일이다.



You Raise Me Up_임형주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OST)



누구나 절망의 순간을 겪는다. 모든 것을 스스로 이겨 낼 수는 없다. 그럴 땐 사랑하는 이에게 기꺼이 손을 내밀고, 어깨에 기대어도 괜찮다. 조금 부족한 나여도 살아가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 



우리가 사랑을 하고, 나누는 것은 대단한 사람이어서가 아니고, 서로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도 아니다. 서로를 지탱해주고, 넘어지면 일으켜 주는 역할을 통해 우리는 더욱 사랑하게 된다. 



'Surprise Yourself'가 모든 상황에서 가능하다면 좋겠지만, 당연히 쉽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땐 당당히 일으켜 달라고 하자. 뭐 어떤가. 다음엔 내가 손을 내밀어 줄 수 있으면 되니까.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도 사랑이자 가치있는 삶이 아닐까. 'You Raise Me Up'은 우리를 살게 하는 힘이자 사랑하는 사이에서 언제나 유효하다.



설익은 사유는 그 주제를 삶에서 멀어지게 하지만, 깊이 있는 사고는 그것을 삶으로 되돌아가게 한다.

<시지프 신화> 알베르 카뮈



스피노자의 48가지 감정 카테고리
(감정의 포스팅 순서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 땅의 속삭임
1. 비루함(낙담)  2.자긍심  3. 경탄  4. 경쟁심  5. 야심 6. 사랑 
 7. 대담함  8. 탐욕  9. 반감  10. 박애 11. 연민  12. 회한

� 물의 노래 
 13. 당황 14. 경멸 15. 잔혹함 16. 욕망  17. 동경  18. 멸시 
19. 절망  20. 음주욕 21. 과대평가  22. 호의  23. 환희  24. 영광

� 불꽃처럼
25. 감사 26. 겸손 27. 분노 28. 질투 29. 적의 30. 조롱
31. 욕정  32. 탐식 33. 두려움 34. 동정  35. 공손 36. 미움 

� 바람의 흔적
37. 후회  38. 끌림  39. 치욕  40. 겁 41. 확신  42. 희망 
 43. 오만  44. 소심함 45. 쾌감 46. 슬픔 47. 수치심 48. 복수심

48가지 감정은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바탕으로 한 <강신주의 감정수업>의 목차를 따랐으며,
감정에 관한 포스팅은 도서 내용과 별개로 헤아리다가 선정한 음악과 이야기로 진행됩니다.




✅ 이전 포스팅


48가지 감정 위로 음악은 흐르고

48 Emotions <Prologue>


� 땅의 속삭임

Emotions 01.비루함, 낙담(adjectio) 자존감을 회복할 때

Emotions 02. 자긍심 acquiescentia in se ipso '당당히 할 수 있다'는 단단한 믿음

Emotions 03. 경탄 admiratio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Emotions 04. 경쟁심 aemulatio '권투 말고 건투를 빌며' 

Emotions 05. 야심 ambitio 야생의 생명력으로 야심차게

Emotions 06. 사랑 amor  마주 잡은 은유의 기쁨

Emotions 07. 대담함 audacia 무모한 질문에 대한 무한한 대답 

Emotions 08. 탐욕 avaritia 갈망할수록 갈증나는

Emotions 09. 반감 aversio 'Make it better'

Emotions 10. 박애 benevolentia 'We are so beautiful'

Emotions 11. 연민 commiseratio 사랑이라 믿었던 연민

Emotions 12. 회한 conscientioe 오지 않은 슬픈 나날의 두려움


� 물의 노래

Emotions 13. 당황 consternatio 연습은 실전처럼 실전은 연습처럼

Emotions 14. 경멸 contemptus 꽃 향기만 남기고

Emotions 15. 잔혹함 crudelitas 진심으로 빌게

Emotions 16. 욕망 cupiditas 욕망한다 고로 존재한다

Emotions 17. 동경 desiderium 희망의 세기를 향해

Emotions 18. 멸시 despectus 본질 속 카프카적 진주처럼



✅ 지난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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