㉑ 독일 뤼겐 섬 백악암 절벽
독일 뤼겐 섬의 명물 중 하나는 끝없이 이어져 있는 너도밤나무 숲이다. 해안선을 따라 자라 있는 너도밤나무들은 그 높이나 규모에서 보는 이를 압도한다. 햇빛을 향한 나무들의 경쟁 때문에 숲에는 빛을 위한 자리가 없을 정도다. 울창한 숲은 멀리서 보면 공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어둠으로 빽빽하다. 그래서 이 숲을 처음 본 순간 예술은 역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브람스는 1번 교향곡을 완성하는데 21년이 걸렸다. 베토벤 이후 누구도 교향곡에 손을 대지 못하던 시대였다. 브람스는 이곳 뤼겐 섬에서 여름을 보내며 마침내 1번 교향곡을 완성했다. 그마저도 브람스 자신은 미완성이라고 여겼지만, 구두점을 찍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진전이었던 셈이다. 브람스는 친구에게 교향곡 작업을 할 때면 "거장의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고 털어놨다. 브람스는 1번 교향곡을 쓰면서 자기 자신뿐 아니라 베토벤이 남긴 유물과도 씨름해야 했다. 그래서 내게 뤼겐 섬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이 곳에 브람스가 거장의 발걸음 소리를 극복할 수 있게 도와준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터넷으로 찾아본 뤼겐 섬의 풍경은 아름다웠지만 직접 보지 않고서는 그 무언가를 알 수 없었다. 마침내 여행의 막바지에 뤼겐 섬에 도착했다.
뤼겐 섬은 슈트랄준트에서 지척이다. 슈트랄준트에서 출발한 기차는 낮은 제방 위에 놓인 철로를 따라 뤼겐 섬에 진입했다. 뤼겐 섬은 독일에서 가장 큰 섬인데도 한국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다. 사전 정보가 많지 않았는데, 그 덕분에 섬의 풍경 하나하나가 새로웠다. 철로는 뤼겐 섬의 주요 도시들을 하나씩 거쳐갔다. 도시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크지 않은 곳이었다. 기차가 출발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건물이 사라지고 구릉지대가 나타났다. 낮게 깔린 평야와 그 위에 살포시 얹어 있는 것 같은 구름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새벽까지 비가 내린 덕분인지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동유럽을 여행하며 봤던 구름들과는 많이 달랐다. 뤼겐 섬의 구름은 한결 가볍고 낮고 고요했다. 섬을 닮은 구름이었다.
기차가 목적지인 자스니츠 역에 도착했다. 뤼겐 섬 동쪽의 작은 해안 마을이었다. 역을 나서자마자 내리막길 끝에 바다가 보였다. 흡사 한국 동해의 작은 기차역 같은 느낌이었다. 비수기인 탓인지 역 앞에는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만 두어 대 있을 뿐, 인적조차 드물었다. 자스니츠에서 브람스의 흔적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물어볼 사람도 거의 없었을뿐더러 막상 섬에 도착하니 그럴 필요를 느낄 수 없었다. 자스니츠는 모든 게 19세기나 20세기 초에 멈춰 있는 것 같았다. 브람스가 걷고 마시고 봤을 모든 게 그대로 보존돼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나 또한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걷고 마시고 보기만 하면 될 일이다.
자스니츠는 섬의 해안도시답게 바람이 많이 불었다. 바람을 뚫고 항구에 내려가자 가족 단위의 관광객이 조금씩 보였다. 뤼겐 섬의 명물인 백악암 절벽을 보기 위해 유람선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우리도 유람선 티켓을 예매하고 근처를 둘러봤다. 슈트랄준트만큼이나 자스니츠에도 갈매기가 많았다. 노부부가 해안 산책로에서 갈매기들에게 과자를 던져 주고 있었다. 수십 마리의 갈매기들이 노부부 주위를 떠나지 않고 날갯짓하고 있었다. 노부부가 떠나고 난 뒤에도 갈매기 무리는 한동안 그 자리에 머물렀다. 자스니츠의 바다는 굉장히 맑고 투명했다. 파도도 거의 없어서 사진만 놓고 보면 거대한 호수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갈매기들은 이따금 하늘로 날아오를 때를 제외하면 거의 물 위에 앉아 있었다. 바닷바람이 매서웠지만 한동안 그 자리에 앉아 갈매기들과 눈인사를 나눴다. 갈매기들은 추운 줄도 모르고 물에서 나올 생각이 없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짐작도 할 수 없는 항구의 큰 나무에 이따금 올라가 앉기도 했다.
유람선은 20여 명 정도가 탈 수 있는 작은 배였다. <MISS ALEXANDER>라는 이름을 가진 빨간 배였다. 10여 명 남짓한 사람이 유람선을 탔다. 나이가 지긋한 부부도 있었고, 젊은 커플도 눈에 띄었다. 배는 천천히 바다로 나아갔다. 하얗고 푸른 바다를 가르며 조금씩 북으로 움직였다. 생맥주를 한 잔 마시며 백악암 절벽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뤼겐 섬의 역사를 설명해주는 안내 방송이 나왔지만 독일어라서 대부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배가 10여분 정도 북쪽으로 나아가자 뤼겐 섬의 하얀 절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그림에서 봤던 새하얀 절벽은 아니었다. 오랜 세월 탓에 절벽은 군데군데 무너져 있었고, 그 사이로 흙과 진흙이 하얀 절벽을 흘러내렸다. 그럼에도 뤼겐 섬의 하얀 절벽은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큼 아름다웠다. 칼로 자른 듯한 하얀 절단면 위로 검은 너도밤나무 숲이 두텁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위로는 비구름이 반쯤 자리잡은 하늘이 있었다. 이 풍경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까지. 바다와 절벽과 나무와 구름이 이 곳에서는 온전히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따금 구름 사이로 새파란 하늘이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럴 때면 각자의 색을 간직한 바다와 절벽과 나무와 구름, 그리고 하늘이 한 눈에 들어왔다.
유람선 밖으로 나가 거센 바닷바람을 맞으며 그 풍경을 넋 놓고 지켜봤다. 브람스는 이곳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을까. 그 마음을 짐작할 수는 없지만, 브람스가 머물렀을 때와 지금의 풍경이 다르지 않으리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바다와 돌, 나무, 하늘 이런 것들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이따금 색이 바래거나 조금씩 깎여나갈 수는 있어도 그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모든 변화를 초월해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켜나가는 것이다. 넓디넓은 하늘 아래 수십 년 잠깐 살다 가는 사람과 그 사람이 창조하는 예술의 자리는 어디일까. 음악과 미술, 문학은 감히 자연의 자리를 넘보지 않는다. 베토벤의 교향곡들이 운명과 영웅을 노래한 것처럼 브람스의 교향곡도 그만의 소명이 있었다. 브람스는 마침내 베토벤을 넘어서 21년간 붙잡고 있던 악보에 마지막 구두점을 찍었다.
미스 알렉산더는 백악암 절벽 끝까지 간 뒤 뱃머리를 남쪽으로 돌렸다. 발트해의 망망대해를 앞에 두고 배는 항구로 돌아섰다. 세상의 끝까지 나아갔다 돌아서는 기분이었다. 수평선 너머로 나아가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스웨덴이 지척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쩐지 더 이상 육지라고는 나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머리 속으로 브람스의 1번 교향곡 4악장을 떠올렸다. 이번 여행을 앞두고 계속해서 들었던 그 부분이었다. 마지막 절정 부분의 장엄한 선율들이 어쩐지 이곳의 풍경을 닮아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끝에 다다른 듯한 절정의 기분, 더 이상의 모험은 없을 것만 같은 안도감이었다.
배 안의 사람들은 처음 만난 사이였지만,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며 이 순간을 마음 깊이 간직하고자 했다. 모두들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한편으로는 아쉬움도 남았다.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베를린에서 기차로 네 시간 거리인 뤼겐 섬에 다시 올 일이 있을까. 아쉬움이 마음속에서 구름처럼 번져갔고 나는 카메라를 품 안에 넣었다. 눈으로만, 기억에만 풍경을 담아보려고 했다. 사람의 기억력이 얼마나 보잘 것 없고 위험한 지 잘 알지만, 눈 안에 이 풍경을 담고자 했다. 그렇게 하얀 절벽을 한참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파도를 가르는 배의 힘찬 엔진 소리, 귓등을 치고 가는 거센 바닷바람의 소리가 가득했다.
프롤로그
① 부다페스트 밤의 풍경
② 부다페스트 키슈피파 레스토랑
③ 부다페스트 테러하우스
④ 부다페스트 리스트 박물관
⑤ 빈 제체시온 클림트 <베토벤 프리즈>
⑥ 빈 벨베데레 미술관
⑦ 빈 벨베데레 미술관
⑧ 빈 프라터, CAFE SPERL
⑨ 빈 미술사 박물관
⑩ 프라하에서 읽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⑪ 플젠 필스너 우르켈 공장
⑫ 프라하 오페라 하우스 <카르멘>
⑬ 프라하 <슬라브 서사시>
⑭ 프라하 <무하 미술관>
⑮ 프라하 성 비투스 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
⑯ 베를린 홀로코스트 추모공원
⑰ 베를린 영화제 '죽여주는 여자' 관람기
⑱ 베를린 함부르거 반호프 현대미술관
⑲ 베를린을 떠나며
⑳ 슈트랄준트 항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