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여행은 훌륭하다 #21
언제 가을이 왔나 싶은데 곧 10월이다. 이대로 몇 번 쯤 빨래를 돌리고 나면 아예 새로운 옷을 꺼내야 할 때가 온다. 다음 계절은 겨울이다.
생각만으로 알-싸해지는 겨울의 한기는 사람을 로맨틱하게 만든다. 꽁꽁 언 몸을 핑계로 손 꼬옥 잡고, 슬쩍 팔짱 끼고, 스윽 안기는 계절이지 않나. 그 뿐일까. 뿌옇게 김 서린 유리창 아래 앉아 뜨겁게 따뜻한 코코아 한 잔 하고 있노라면 없던 사랑도 샘솟을 성 싶다. 그 중 백미는 눈 snow 이다. 무심코 바라본 창 밖으로 하얀 눈을 본 순간- 우리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린다. 그들은 만나고 마주보고 함께 눈을 맞는다.
눈, 로맨틱, 성공적.
혹 당신이 세상에 없는 무뚝뚝이라 해도 이 곳에선 로맨틱해지지 않을 방도가 없다. 오로지 눈만이 가득한 한겨울의 훗카이도. 혹 다음의 3가지에 눈길이 길게 머문다면 올 겨울 훗카이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 볼 것.
1. 눈부신 설원에서 연인과 눈싸움을 해보고 싶다면
2. 시리도록 차가운 맥주 한 모금이 생각난다면
3. 눈 덮인 료칸에서 즐기는 노천온천이 궁금하다면
물론 우리 아파트 주차장에서도 눈싸움은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시트콤이지 영화용은 아니다. 설원 위의 눈싸움이 영화가 되려면 보이는 건 오로지 눈 뿐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위에 우리만 있어야 한다. 그런 곳이 훗카이도 비에이다.
나무는 인간의 연애사에 참견하지 않는다. 좋은 배경이 되어 줄 뿐.
그 유명한 '나잡아봐라'도 가능하다. 단, 방수가 되는 복장이 아니라면 나잡는 대신 사람 잡을지도.
눈싸움에 꽁꽁 얼어버린 몸은 간이역에서 녹일 수 있다. 우리가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에서 느꼈던 그 감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던 간이역 난로.
맥주는 힘이 세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에만 그런 건 아니다. 손발이 꽁꽁 얼어붙은 한겨울에도 맥주는 그 손에서 기꺼이 장갑을 빼게 한다. 훗카이도의 매력 중 하나는 별 모양으로 우리에게 각인된 삿포로 맥주를 만날 수 있다는 점. 삿포로 맥주 박물관이 훗카이도에 있기 때문이다.
저 벽돌, 저 기둥, 저 별.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것은 자꾸 '상상'하게 만들었던 건물의 외관이었다. 무언가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고여 있을 것만 같았다. 본디 박물관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1890년 공장으로 만들어진 건물이란 이유가 클 듯 싶다.
우리 부모님이 초딩 시절 만들어진 광고 속 삿포로. 삿포로의 브랜드 히스토리 뿐 아니라 맥주가 만들어지는 과정도 쉽게 설명되어 있었다. 물론, 내 관심사는 아니었지만.
맥주값이 저렴한데다 훗카이도를 대표하는 각종 주전부리도 함께 즐길 수 있다. 천연암반수를 우물물 길어 마시는 것 마냥 신선하게 즐기는 기분이다.
어렸을 때부터 참 좋아했던 순간이 있다. 추운 겨울, 전기장판을 따뜻하게 틀어놓고 눕는다. 보일러를 틀지 않은 방의 공기는 차갑다. 몸 아래로 느껴지는 온기와 위로 느껴지는 한기의 조합은 환상적이었다. 한겨울의 노천 온천은 그 환상의 끝판왕이다.
뜨거운 온천물에 몸을 깊숙히 담근다. 눈 앞엔 쪽빛 하늘과 하얀 달, 흐드러지게 핀 꽃나무가 전부다.
온천을 마친 후 방에서 즐기는 식사 역시 호젓함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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