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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Nov 01. 2015

이 가을, 교토로 떠나야만 하는 이유 6가지

모든 여행은 훌륭하다 #22

어떤 여행이 좋지 않겠냐마는 특별히 더 좋은 여행은 분명 있다. 내겐 이 가을의 교토 여행이 그랬다. 종일 걸어도 힘든 줄 모르겠고 시계를 볼 틈도 없이 즐거웠다. 엊그제는 배고픈 줄도 모르고 8시간을 걸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6가지 쯤 이유가 있었다. 만약 이 6개 중 서 너 개 이상에 해당한다면 이 가을 교토는 분명 당신에게도 특별히 더 좋은 여행지가 될 듯. 


1. 올가을 단풍을 제대로 만끽하고 싶다면

2. 여고 수학여행의 낭만이 그립다면

3. 간절히 바라는 뭔가가 있다면

4. 걷는 여행을 좋아한다면

5. 길거리 주전부리를 지나치지 못한다면

6. <심야식당>의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다면




1. 올가을 단풍을 제대로 만끽하고 싶다면


가을이다. 한국의 단풍은 불현듯 닥쳐온 추위와 함께 저물어가고 있다지만 교토의 가을은 11월의 첫날에도 여즉 한창이다. 조금씩 단풍이 녹음을 물들이며 가을의 절정을 향해 내닫고 있는 교토. 단풍의 명소로 꼽히는 곳이 열 손가락으로도 다 헤아리기 어려울 지경이다. 못다 즐기고 끝나버린 한국의 단풍이 아쉽다면 아직 설익은 교토의 단풍을 찾아 떠나는 것도 좋을 듯. 


이번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교토의 단풍 명소는 아라시야마 사가노 토롯코 열차였다. 열차의 뚜껑은 투명한 유리다. 창은 뚫려 있어 열차가 가르는 교토의 가을 바람이 숭숭- 내 머리카락을 날린다. 강줄기 너머 서서히 무르익기 시작한 단풍을 보고 있으니 마냥 좋았다. 열차를 탄 1시간, 무언가 다른 시간을 산 느낌이다. 



사가노 토롯코 열차


오코치 산소는 내 멋대로 꼽은 두번째 단풍 명소. 우리 돈 1만원 쯤 되는 입장료 탓에 붐비지 않는다. 일본의 옛배우 오코치가 평생의 꿈 삼아 이 정원을 가꾼 세월이 30년이라 하니 그의 정성에 많은 이들이 덕을 본다. 


오코치 산소


사실 굳이 명소를 꼽을 것도 없이 교토의 모든 곳이 붉게 물들어가고 있다. 1주일 쯤 후엔 온통 빨갛지 않을까. 


긴카쿠지
아사카 신사


단풍잎 하나 주워다 책에다 끼웠다. 이 얼마만에 끼운 단풍 책갈피란 말인가! 이 책에 두꺼운 먼지가 덮일 무렵 우연히 이 단풍을 발견했으면 좋겠다.  





2. 여고 수학여행의 낭만이 그립다면


이따금 여고 시절이 그립다. 어른들 말씀마따나 말똥 굴러가는 소리에도 꺄르르 웃고 떨어지는 잎사귀 하나에도 눈물짓던 그 때의 그 느낌을 한 번 쯤 되새김질해보고도 싶다. 그래서 교토 곳곳을 누비고 있는 이 아가씨들의 모습에 자꾸 눈이 갔다. 고운 기모노를 차려 입고 머리카락 한 올까지 곱게 넘긴 그녀들이 여고생 마냥 발그레한 볼에 설렘을 가득 묻히고 있었다. 그 옛날 수학여행이 떠올랐다. 




쉼없이 친구와 깔깔대며 교토의 이곳저곳을 눈으로, 사진으로 남기는 그녀들의 모습이 참 소녀같았다. 여고시절 친구들과 함께 이 곳에 온다면 꼭 나도 저렇게 해보겠노라 10번 쯤 생각했다. 



사실 처음에 기모노 차림의 그녀들을 보았을 때 흔히 아는 게이샤가 아닌가 했지만 고운 옷 차려입고 교토의 가을을 만끽하고 있는 여행객이었다. 일본인 뿐만 아니었다. "나 여기서 사진 찍어줘!"하는 한국인도 있었고, 파란 눈에 금발 아가씨도 쑥쓰러운 표정으로 촘촘한 걸음을 걷고 있었다. 하루에 4만원이면 빌려 입을 수 있다고. 



기왕 예쁘게 차려입고 기분 낸 김에 멋진 청년들이 힘찬 기합으로 끌어주는 인력거를 타보는 것도 좋겠다 싶다. 단, 2명 기준 10분에 4만원 꼴.



교토 여행을 통틀어 가장 극적인 탄성을 자아낸 최고의 기모노 아가씨는 이 분이다. 




3. 간절히 바라는 뭔가가 있다면


교토엔 신사가 무척 많다. 그리고 그 곳에선 많은 이들이 두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은다. 사실 어떤 신을 믿는지는 상관없지싶다. 경건한 분위기 속에 저마다의 신에게 가족의 건강, 나의 행복과 인연을 빌게 된다. 긴 줄도 흔들고 연못에 동전도 던진다. 부적도 사고 소원을 담은 나무판도 내건다. 그들을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내 안에 있던 간절한 소망이 꺼내진다. 


기요미즈데라, 오토와노타키


소원을 비는 방법은 상당히 다양했는데 기요미즈데라의 오토와노타키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떨어지는 세 줄기 물을 바가지로 받아 마시려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다. 재미있는 건 애정, 금전, 건강운을 상징하는 이 세 줄기 물을 모두 받아마시면 오히려 효험이 떨어진다고 한다. 모든 것을 가지려 하는 것 자체가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노노미야 신사


신사에서 모시고 있는 신에 따라 기도의 종류가 달라질 듯도 싶다. 사랑을 이루게 해주고 아이를 갖게 해 주는 신을 모시고 있다는 노노미야 신사엔 유독 젊은 여성들이 많았다. 


간절한 표정의 그들이 어떤 기도를 했을지 궁금했다. 신사 곳곳에 걸린 목판을 읽고 있자니 사람들이 바라는 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족의 건강과 행복. 나도 태어나 처음으로 속마음을 적어 걸었다. 





4. 걷는 여행을 좋아한다면


도시 전체가 볼거리로 뒤덮인 교토는 걷기 여행에 완벽한 도시다. 더군다나 가을이다. 바람은 차갑지만 옷깃을 여밀 정도는 아니다. 오래 걸으며 흘린 땀을 식혀주기 딱 적당한 바람이 교토에 불고 있다. 교토에 머무는 동안 이틀은 대중교통을 전혀 이용하지 않았다. 하루에 15km 쯤 걸었던 것 같다. 



그 덕에 가이드북에 나오는 명소 뿐 아니라 차를 탔다면 보지 못했을 풍경과 사람 구경을 실컷 할 수 있었다. 교토의 골목과 가정집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가모가와 강변은 우리네 한강마냥 교토 시민들의 휴식처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늦은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우리네 시골 간이역을 연상시키는 작은 역과 마주쳤다.




5. 길거리 주전부리를 지나치지 못한다면


많은 여자들에게 여행의 꽃은 주전부리다. 일본을 여행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눈으로 먼저 유혹하는 주전부리들이 여행객의 발길이 닿는 곳에 촘촘히 깔려 있다. 신사로 가는 좁다란 골목도 예외는 아니다. 무얼 먹을까 심각하게 고민하다 이내 한 입 베어물고 품평(?)을 하는 여성 여행자들의 모습이 정겨웠다. 



냄새로 유혹하는 음식이 있고, 눈으로 꼬시는 음식이 있다. 이 병아리 모양 주전부리는 단언코 후자였다. 보자마자 귀여움에 넋이 나가 아기 볼 꼬집듯 눌러보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나만 그런게 아니었는지 눌러보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시내 명소에 조연처럼 붙은 주전부리가 뭔가 아쉬웠다면 대놓고 먹자판을 벌일 수 있는 니시키 이치바에 들르는 것이 좋을 듯. '교토의 부엌'이란 별칭이 결코 아깝지 않을 만큼 멋진 400m 남짓의 음식 시장이다. 


니시키 이치바, 계란말이 전문점




6. <심야식당>의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다면


몇 해 전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을 봤다. 늦은 밤 문을 열어 이른 아침에 닫는 가게. 특별한 메뉴없이 손님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준다. 어둡고 구석진 골목길에 들어서는 사연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는, 그런 가게가 심야식당이다. 한 잔 술과 한 그릇 음식, 한 마디 위로가 필요한 밤이면 <심야식당>을 꿈꾸곤 했다. 그리고 엊그제, 폰토초를 걸으며 생각했다. 저 문 너머가 심야식당이 아닐까. 


낮엔 그저 평범하고 좁은 골목길.



5시 무렵, 하나 둘 불을 밝힌다. 



어둠이 짙어졌을 때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는 폰토초. 



3명이 나란히 걸으면 꽉 찰 만큼 좁은 골목 좌우로 불 하나에 의지한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저 얇은 천을 걷어 올리고 들어갈까, 3번 쯤 고민했다. 



단, 문제가 하나 있다. <심야식당>과 닮은 건 어두운 골목과 등이 주는 이미지일 뿐, 가격은 전혀 비슷하지 않다는 것. 책에서 이 곳의 물가가 몹시 비싸다는 것과 자칫 바가지를 쓸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읽은 것이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무턱대고 분위기에 취해 아무 가게나 들어갔다면 지금쯤 말도 안 통하는 일본 경찰서에서 한국 대사관에 전화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접시를 천 그릇 쯤 닦다가 지문이 없어져 출입국에 문제가 생겼을 지도. 




올해엔 가을의 교토에 왔다. 벚꽃에 휩싸인 봄은 어떨까. 온통 푸를 여름은, 흰 눈이 모든 사물에 내려앉을 교토의 겨울은 어쩔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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