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회, 드러커를 만나다 14
이번 글은 지난 글에 이은 복습입니다. 지난 글까지는 <경영자가 맞이하는 도전>의 존재를 모르고 있어서 3장 '경영자가 맞이하는 도전'에 대한 기록이 있는 줄 몰랐는데, 이에 대한 복습이 될 듯합니다.
이 책의 초판이 1954년에 출판되었습니다. 우리는 막 전쟁의 상흔을 극복할 때이고, 오늘날 재벌 기업의 씨앗이 '적산 불하' 형태로 미군정 하에서 시작되던 때인지라 서구가 말하는 '경영'이라는 개념은 이 땅에 없거나 불분명할 때 나온 책입니다.
그 후로 약 7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시점에 읽기에 '경영자가 맞이하는 도전'에 얼마나 공감을 할 수 있을지 흥미롭게 기다려집니다.
먼저 이전 글을 찾아보면 아래 문장을 인용하며 'Planning over Plan'을 떠올렸습니다.
신기술의 도래는 1930년 "계획지상주의자들"이 부르짖었던 모든 슬로건을 다시 상기시킨다.
그리고 이는 미래를 다루는 경영에서 '불확실성과 위험'을 제거하려는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뇌에서 불안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진 아미그달라는 삶으로 극복해야지 제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1]
지난 글에서 아래 문장을 인용하며 피터 틸이 강조한 <경쟁하지 말고, 독점을 창조하라>를 떠올렸습니다.
미래 예측에 관한 모든 항목은 하나같이 계획지상주의자들이 과거 우리들에게 강요한 처방으로부터 나온 것들이기 때문이다.
다시 곱씹는 지금은 최근 산행에서 떠올렸던 생각을 합니다. 오솔길을 걸으며 생각했던 세 가지 길에 대한 비유가 떠올랐습니다.
아직 길이 나지 않는 땅을 걷는 즉, 내가 만드는 길
희미하지만 흔적이 있는 오솔길과 명확하게 난 길
이를 넘어서 포장까지 된 포장도로 길
인생을 사는 데 있어 누구는 가 보지 않은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어떤 이들은 사회가 독려하는 길만 가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계획지상주의자들이 강요한'이란 표현을 들으면서 산행에서 생각했던 포장도로를 떠올렸습니다.
지난 글에서와 마찬가지로 드러커의 오토메이션에 대한 통찰은 탁월합니다.
오토메이션은 그 특성이 "기술적"인 것이 아니다. <중략> 새로운 기술이 지향하는 목적은 최대로 적합한 프로세스를 찾으려는 것이다.
지난 글에서는 프로세스에 대한 창준 님의 통찰을 인용하기도 했고, 프로세스를 숨겨 사용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프로덕트 관리' 개념과 UX의 연관성 표현을 시도했습니다.
'프로덕트 관리' 같은 개념은 70년 전에는 없던 것이지만, 드러커가 꿰뚫어 본 '기술과 경영의 관계'에 대한 통찰은 정말로 놀랍습니다. <제로 투 원>에서 피터 틸은 기술을 독점이라는 투자자들이 원하는 수준의 성장 방식의 열쇠라고 강조합니다. 페벗님들 중에서는 피터 틸이 지나치게 성장주의자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으나 그의 메시지의 순화 버전은 HBR에서 <혁신이 파괴적일 필요는 없다>라는 글로 회자되고 있습니다.[2]
자동화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를 두고 고려할 사항을 설명합니다.
오토메이션은, 프로세스상 중요한 것은 사전에 준비되어야 하고 또한 그것은 프로세스가 진행되는 동안 이미 결정된, 스스로 작동되는 통제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장치를 필요로 한다.
이전 글에서는 이를 인용하며 제가 썼던 <Configuration Item과 설정 경험의 진화>, <현실과 시스템 사이 매핑 기술의 진화> 등과의 연관성을 떠올렸습니다.
다시 곱씹어 보니 기업 차원에서 '진정한 통일체'를 이루되 구성요소 사이에서는 '느슨한 결합(loosely-coupled)'을 이뤄야 한다는 말로 압축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득템을 한 기분입니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한 직후에 생기는 부작용인지 다음 문장도 '느슨한 결합으로 진정한 통일체 이루기'의 부연처럼 느껴집니다.
일차적인 것은 프로세스가 처리할 수 없는 것을 제거하거나, 프로세스가 계획된 결과를 생산하도록 프로세스를 조정하거나 하여 프로세스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통제장치가 프로세스에 항상 내장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오직 이런 개념들이 충분히 고려된 후에야 각종 기계들과 장치들을 효과적으로 부착할 수 있게 된다. <중략> 이런 기계화가 곧 오토메이션 그 차체는 아니다. 그것은 다만 오토메이션의 결과이며, 또한 오토메이션에 필수적인 것도 아니다.
한편, 다음 문장을 읽으면서는 제가 꽂혀 있는 '협업'이란 개념이 떠오릅니다.
오토메이션은 작업 조직의 한 개념이다.
구글링 해 보니 현재까지 무려 244개의 글에서 '협업'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한편, 핸드북을 구현한 시드 시브랜디의 <세계 최대 규모의 완전 원격근무 기업 CEO에게 배우기>는 지리적 제약까지 극복한 대규모 협업 사례에 대한 힌트를 제공합니다.
<경영자가 맞이하는 도전>에서 아래 문단을 인용하면서 테슬라를 떠올렸습니다.
깊이 생각하고 계획하는 경영자, 그리고 새로운 도구를 고안해 그것들을 생산하고 또 그것들을 유지보수하고 사용하는 고도로 훈련받은 기능공과 근로자를 필요로 할 것이다. 이 같은 변화가 빠르게 확산되는 것을 막는 주요 장애물은,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훈련받은 사람들이 부족하다는 사실 때문이라는 점은 거의 틀림없다.
또한 인간과 기술의 파트너십을 말하는 '새로운 관계 맺기'도 하나의 양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HBR 기사에 기초해서 쓴 <자동화는 생산성보다 유연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도 진보적인 협업 사례를 다루고 있습니다.
한편, 3장의 마지막 절인 <경영자에 대한 수요>는 70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전혀 다른 영감을 줍니다.
오늘날 평사원으로 간주되는 많은 사람들이 경영층이 수행하는 업무를 떠맡을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대다수의 기술자들이 경영자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어야만 할 것이고, 그리고 경영자적 관점에서 사물을 보고 또 생각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중략> 새로운 기술은 ... 오히려 극단적인 분권, 유연성, 그리고 자율적 경영을 촉구하게 될 것이다.
이전에는 HBR 기사 <진격을 위한 비허가형 기업>에 대한 연상만 언급했습니다. 다시 곱씹는 지금은 ChatGPT로 인해 단순한 정보 수집이나 편집 등의 일이 대체되는 상황에 결부시켜 드러커의 글을 이해하게 됩니다. 만일 AI에 의해 강화된 뉴타입의 경영자들이 <진격을 위한 비허가형 기업>을 만난다면 그들의 생산성은 놀라운 수준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다음 문장은 70년 전에 드러커가 쓴 원칙은 지금도 유효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오토메이션을 경영의 일부로 간주하지 않는다면 경영의 본질에 대한 그 어떤 설명도 충분하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경영의 일부로 프로덕트 리더십이 추가되는 현실이니까요.
[1] 제가 계획보다는 실행에 무게감을 싣는 경향이 종종 지나칠 때가 있습니다. 실행 계획이 아예 없는 상태로 실천을 하자는 주장이 아닌데, 종종 청자들이 그렇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2] <혁신이 파괴적일 필요는 없다> 기사는 피터 틸의 주장 자체를 인용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제가 보기에는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바가 거의 같아 보였습니다.
9. 경영자가 맞이하는 도전
11. 기업은 혼란 속에서 경제적 생산을 늘려가는 기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