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
우리는 자연에게 위로를 구하지만 자연에게서
배우지는 못했다. 자연은 풍요로운 것이다.
우리도 세상을 풍요롭게 했으면 좋았을 뻔했다.
레이첼 카슨은 생명 그 자체가 기적이란 것에
깊게 감동 받았다. 사랑하는 것이 위험에 처할 때
두려움 없이 용기를 냈다. 그녀는 과학과 양심을,
과학과 미래를, 과학과 사랑을, 과학과 용기를 결합 시켰다.
우리가 익히 아는 바 사랑은 손을 뻗는 것이고
팔을 벌려 안는 것이고 몸이 다가가는 것이다.
사랑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사랑은 실천이고 행동이고 창조다.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것은 곧 『침묵의 봄』을 쓰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의 생명을 구했다.
꿈이 현실을 구했다. 그녀는 일생에 걸쳐 자신의 사랑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지 않았다.
[정혜윤, 앞으로 올 사랑, 104]
145
그리고 우리의 노트엔 애트우드의 단어가 아니라
부드러운 단어들이 가득 차야 할 것이다. 언제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멋진 보름달과 별을 위한 단어들,
상처받았지만 아직 남아 있는 아름다움에 대한 단어들,
우리의 다정함, 저마다 다른 웃음에 대한 단어들,
우리가 여전히 공유하고 있는 가치에 대한 단어들,
우리 모두를 위해 창조될 새로운 커다란 단어들,
새로운 인간 가능성에 대한 단어들, 산산히 흩어진
우리를 묶어줄 단어들, 지금 우리에게는 그런 단어들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렇게 삶을 언어로 바꾼다.
창조는 이렇게 다시 시작된다.
[정혜윤, 앞으로 올 사랑, 168]
146
나는 인디언들이 잃어버린 단어 하나를 기억하고 있다.
퍼퍼위. 아메리카 원주민의 말인데, 퍼퍼위는
‘버섯을 밤중에 땅에서 밀어올리는 힘'을 뜻하는 단어다.
내가 이 단어를 발견한 것은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출신의
로빈 월 키머러가 쓴 『향모를 땋으며」라는 책에서였다.
이 단어를 만든 사람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생명을 만드는
에너지가 우리를 감싸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런 것이 주변에 있다고 생각하면, 그런 것을 느끼기 시작하면
더 잘 살 수 있다. 키머러가 만난 그녀 부족에서 증조할머니뻘
되는 위치를 차지하는 원주민 할머니의 말에 따르면
언어는 그냥 말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담겨있는 문화다.
인디언들이 사라질 때 세상(자연)을 바라보는 가장 좋은 방식
하나가 사라져갔다. 가끔 아침 출근길에 공원에서 '퍼퍼위' 하고
속으로 한번 속삭여본다. 밤새 생명을 키운 보이지 않는 힘에
조금 더 가까이 있고 싶어서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힘들과 함께 힘을 낸다.
[정혜윤, 앞으로 올 사랑, 211]
147
나는 이제 내가 사랑해온 세계의 깊은 상처를 본다.
현재와 미래, 자연과 인간, 나와 타인, 이 모든 영역에서
길을 잃은 우리를 본다. 그러나 우리는 슬픔의 중지를
원할 수 있다. 불안의 중지를 원할 수 있다.
고통의 중지, 죽음의 중지 또한 원할 수 있다.
길을 잃을 때는 이야기를 미래의 관점에서 볼 줄
알아야 하고 앞날이 알고 싶다면 지향점과 방향성이
가리키는 쪽을 봐야 한다. 우리 시대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삶의 방향성을 바꾸는 것 뿐이다.
[정혜윤, 앞으로 올 사랑, 283~284]
148
보르헤스는 미래를 위해서 모든 사람이 모든
아이디어를 내는 세상을 믿었다. 희망은 모든 사람이
새 출발 해야 한다는 생각 속에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전과 같이 살기를 원치 않는 것’,
이것이 이 시대 희망의 말이다. 우리를 둘러싼
인간 조건은 절대 쉽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인간 조건은 계속 가혹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 속에서 사랑을 보고 싶다.
이 위험한 세상 한가운데서 홀로 애쓰고 있는 사람은
늘 감동을 준다. 약간이라도 나아지려고 다시 시작하는
사람도 감동을 준다.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면서도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도 감동을 준다. 자신이 맡은,
해야 할 일을 해내기 위해 가진 힘을 다 쓰는 사람도 그렇다.
나는 이런 것들을 사랑하면서 버티고 있겠다.
[정혜윤, 앞으로 올 사랑, 286]
149
알베르 카뮈가 『페스트」에서 그려낸 전염병의 질서는
다음과 같다. 처음엔 공포와 충격, 그다음은 짜증과
지겨움(불행의 단조로움), 그다음은 불신(타인을 필요로
하고 따뜻함을 원하면서도 다가가지 못하는 것),
그다음은 좀처럼 뭘 하지 않으려 하는 것, 그다음은
받아들임(전염병은 쉽게 끝나지 않으리라는 체념).
정작 무슨 일인가 일어나는 것은 그다음 단계다.
절망만 하고 있는 것도 견디기 힘든 일이라서
사람들은 묻기 시작한다.
“그럼 어떻게 다시 삶을 시작할 것인가?”
[정혜윤, 앞으로 올 사랑, 286]
2024.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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