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변화시킨 사람을 사랑한다.
영원한 사랑 - 일부일처제, 배타적인 낭만적 사랑-을
믿고 실천하는 자의 고통은 상대가 자신을 변화시킨
그 순간을 영원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 순간을
지속시키기 위해,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기에 고통은 필연적이다.
조증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대개 사랑의 황홀감은
몇 개월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 인생의 매 순간을 혁신하며
‘나날이 새롭게’ 사는 사람은 매우 드물기 때문에
영원한 사랑은 이루어지기 어렵다. 중단없는 상호 발전을 통해
관계의 질이 진화하지 않는다면, 그 뒤 시간은
‘아주 오래된 연인들‘의 권태와 제도를 통한
감정의 구속만이 남을 뿐이다.
[정희진, 혼자서 본 영화, 68~69]
151
몇 년 전 나는, 오랫동안 몰두해온 어떤 관계의
상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물 밖으로 내던져진
물고기처럼 숨이 가빠 끊어질 것 같았고 매일 밤
흐르는 눈물로 귀에 물이 찼다. 그 누구의 위로도
도움이 되지 않을 때 한 친구가 이렇게 말해주었다.
“다른 세상으로 갈 수 있어.” 이 말이 나를 살렸다.
지금의 나는, 나의 일부분일 뿐이다.
현재 나의 감정, 고통, 기쁨, 슬픔, 지식, 업적……
이 모든 것들은 곧 과거의 것이 된다.
그리고 과거는 돌아오지도 않고 반복되지도 않는다.
[정희진, 혼자서 본 영화, 70]
152
타인과 함께하는 시간이 지루하고 아까운 유형과
파트너와의 관계가 좋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는 시각은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내내 애달프고 쓰라리고 슬펐는데,
내 친구들은 마이애미의 해변처럼 행복하고 밝은 영화라고 했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 완전히 다른 결론이 났다.
새삼스러울 것 없는 얘기지만, 우리가 본 영화는
우리의 인생과 붙어 있다. 몸으로 영화를 본다.
영화의 내용은 감독의 ‘연출 의도‘가 아니라 관객의 세계관에
달려 있다. 누구나 자기의 삶만큼 보는 것이다.
[정희진, 혼자서 본 영화, 97]
153
사랑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쉽다’.
그것은 동일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전엔 적대했으나 지금은 선망하게 된 타인,
나는 다가갈 수 없는 다른 세계에 사는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일은 경험하기 힘든 인간성이다.
사람은 사상, 사랑, 권력으로 변하지 않는다.
사람은 사람만이 변화시킬 수 있다.
<타인의 삶>은 타인의 삶이 나의 삶에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으며 나는 얼마만큼의 대가를
지불 할 수 있는 인간인가를 질문한다.
[정희진, 혼자서 본 영화, 110]
154
질투는 자기 증오이며 자기 몰두이자
결국 자기도취다. 질투와 성찰은 같은 장소에서
출발하지만 방향은 정반대다.
성찰은 자기로부터 출발하고 자기로 돌아오는 사유지만,
질투는 질투 대상에 대한 자기중심적 해석이기 때문에
사고의 중심이 타인에게 있다. 바로 그 의미에서
질투는 자기중심이 없는 상태다. - <질투는 나의 힘>
[정희진, 혼자서 본 영화, 149]
155
‘침묵 당함’은 또 다른 폭력이다.
상처를 숨기는 대신, <거북이도 난다>에서처럼
고통에 대한 설명 불가능성을 향해 돌진하는 것,
자기 상처를 응시하는 것이 평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전쟁이 ‘간헐적’ 폭력이라면, 전쟁과 평화의 분리는
우리 삶을 구성하는 일상적 폭력이다.
영화는 피 흘리는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타인에게 말 걸기를 시도한다. 절박하게.
일상적 폭력을 평화라고 믿는, 침묵하는 모든 이들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고통스럽지만 아름다운 영화다.
[정희진, 혼자서 본 영화, 160]
2024.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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