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
마르께스의 소설 《백년의 고독》에서 사람들은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며 살아갑니다. 그 실수 때문에
어떤 고독이 거듭되죠. 후대의 자손들도 선조와 비슷한
고독을 겪고요. 그러나 저의 판타지에서는 고독보다
재주가 더욱 커다랗게 반복됩니다. 마술 같은 재주와
귀신같은 솜씨로 우리는 몇 대를 횡단하며 연결됩니다.
엄마와 엄마의 아빠와 그 아빠의 엄마를 동시에 품은 채로
노래를 하고 글을 쓰면서 저는 무언가가 되풀이되고 있음을
느낍니다. 실은 내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어온 느낌.
내 몸이 그저, 재주가 흐를 만한 통로인 것 같다는 느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느낌. 옛날이야기로 시작했는데
벌써 이렇게나 가까이 와버렸습니다. 순남씨가 보시기에
백 년은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가 버리는 시간일지도 모르겠어요.
쉼 없이 무얼 바라고 버리며, 더욱더 오래된 제가 되어가려 합니다.
[이슬아, 끝내주는 인생, 70~71]
157
할아버지네서 함께 울던 우리들의 작은 인생이
여기까지 왔다.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더 멀리 가라는,
네가 가고 싶은 곳까지 멀리멀리 가보라는 말뿐이다.
우리는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드는 게 기쁜 일인지
슬픈 일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삶이 기쁨인지 슬픔인지
구분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아는 것은 잘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살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지 않듯이. _나랑 가장 닮은 너를 보면
[이슬아, 끝내주는 인생, 90~91]
158
젊은이들이 혹시 묻는다면 말할 것이다.
예전에는 나비라는 게 있었어요. 꿀벌이란 것도
있었고요. 바다에서 해수욕이라는 것을 할 수가
있었답니다. 가을은 가을 같았고 겨울은 겨울 같았고
봄은 봄 같았고 여름은…… 여름은 너무 여름 같았습니다.
그 말을 하며 우리 중 한 명이 눈물을 글썽일지도 모른다.
봄가을이 거의 사라진 세상에서 친구가 나에게 말할 것이다.
그때 너 되게 젊었는데. 그럼 나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한다.
젊은 게 아니고 어렸던 거야. 친구는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 사실 우린 아직도 어려. 그럼 내가 맞장구친다.
다들 영원히 어린애잖아. 그때도 하늘이 바다색일지
바다가 하늘색일지 지금은 알 수가 없다. _8월 이후
[이슬아, 끝내주는 인생, 102[
159
아프게 배운 건 잘 잊히지 않아. 늑대와 고양이의
죽음에서 배운 것들. 이 배움은 고개를 들어 너를
바라보게 해. 동물들의 각별한 형제인 너. 강하고 약한 너.
결점투성이인 너. 절대로 영원하지 않을 너……
너무나 유한한 너를,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해야지.
나중에 아프더라도 지금은 힘껏 그래야지.
그게 바로 내가 되고 싶은 최고의 나야. 고통과 환희가
하나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는 듯이, 비와 천둥의 소리를
이기며 춤추듯이, 무덤가에 새로운 꽃을 또 심듯이,
생을 살고 싶어. _그에게서 최고의 나를 발견한다.
[이슬아, 끝내주는 인생, 131]
160
“저의 글쓰기 스승 어딘이 대학생 때 썼던 문장을
들려줄게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이런 시였어요.”
공자, 맹자, 노자, 장자, 묵자……
미자, 옥자, 혜자, 순자, 희자……
이 시의 용맹함을 단번에 알아챘기 때문에 현은 웃었다.
오로지 남성 현인들만 기록되던 역사 옆에 할머니들의
이름을 나란히 놓다니 얼마나 좋은가. _신인들
[이슬아, 끝내주는 인생, 159]
161
살아남는 이야기는 끝이 없다. 나이 든 언니들은
지난날을 회상하며 말하곤 한다. 하나의 고생을
지나면 또 다른 고생이 있는 생이었다고. 그중에서도
어떤 언니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끝내주는 인생이었다고. 그 언니의 말을 들으면
너무 용기가 나서 막 웃는다. 나는 내가 고생
한복판에서도 이렇게 농담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희망한다.
“오, 끝내주는데?” 임종 직전에도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정말이지 끝내주는 인생이었어.” 그날이 죽는 날임을
미리 알아차릴 행운이 주어진다면 말이다.
삶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겠지만 메일 답장
대리인도, 마감 관리인도, 요가 강사도 아닌 전업 작가로
가능..한 한 오래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_끝내주는 인생
[이슬아, 끝내주는 인생, 218]
2024.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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