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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_혼자가 혼자에게

by 영진

170

뭔가를 빨아들이려면, 작은 것을 커다랗게 느끼려면,

미지근하기만 한 대기를 청량한 것으로 바꿔서

받아들이겠다면 어느 정도 메마른 상태여야만 가능하다.

물론 이 사실은, 여행에만 적용되지는 않는다. 우리가

엄살을 부리며 사는 건 그래서다. 우리가 자주

메말라 있는 것은 곧 좋아질 거라는 잠재적 신호가

왔음을 알려주는 것.

[이병률, 혼자가 혼자에게, 13]



171

당신이 혼자 있는 시간은 분명 당신을 단단하게

만들어 준다. 어떻게 혼자인 당신에게 위기가 없을

수 있으며, 어떻게 그 막막함으로부터 탈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혼자 시간을 쓰고, 혼자 질문을

하고 혼자 그에 대한 답을 하게 되는 과정에서

사람을 괴롭히기 위해 닥쳐오는 외로움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당신은 그 외로움 앞에서 의연해지기

위해서라도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면서 써야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을 목숨처럼 써야 한다. 그러면서

쓰러지기도 하고 그러면서 일어서기도 하는 반복만이

당신을 그럴듯한 사람으로 성장시킨다. 비로소

자신의 주인이 되는 과정이다.

[이병률, 혼자가 혼자에게, 16]



172

나도 누군가를 좋아한 적이 있다.

좋아하는 그 자체보다는, 오로지 누군가를

좋아하면서 파고들어 가는 감정만을 좋아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사랑이었을 때는

달랐다. 파도의 높이도, 서로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파괴력도 충격적이었다. 그 굉장함은 사랑이 종말을

맞이하고도, 그리고 세월이 몇 겹으로 바뀌고 나서도

마음에 큰 빚을 지게 했다. 사람들은 그 갚을 수도

없는 빚을 ‘힘들다'라는 말로 건조하게 축약해 사용하곤

하지만, 모든 것이 끝나버렸는데 어떻게 어렵지 않을 수

있으며 그 어려운 상태가 고작 ‘힘들다'라는 것이라면

수제비를 먹고 나서 밀가루를 먹었다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이병률, 혼자가 혼자에게, 21]



173

누구나 다 아는 명백한 사실 앞에서 무심히

자유로운 마음을 앞세울 수도 있는 사람.

그럴듯하거나 그럴 만한 별 기분도 아닌 상황에서

팝콘 터지듯이 웃어젖히는 사람.

-내가 바라는 건 하나, 오래 보는 거-

[이병률, 혼자가 혼자에게, 62]



174

유행하는 것에 자주 지갑을 여는 사람보다

지난 유행이라도 과감히 그걸 자기 것으로

소화해 즐길 줄 아는 사람이면 좋겠다.

나에게 오지 않아도 좋고, 나를 좋은 친구라

인정하지 않아도 좋으니 그렇게 믿는 거리에

있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내가 바라는 건 하나, 오래 보는 거-

[이병률, 혼자가 혼자에게, 63]



175

누군가에게 산은 무의미일 수 있더라도 나에게는

명백한 의미다. 산을 넘을 때마다 생각한다.

힘겹게 산을 넘을 때마다 힘겹게 한 사람을

여행했던 순간을 떠올린다. 산을 넘는 것 같지만

실은 ‘한 사람’을 만나는 과정, 그대로를 따라가

보는 것이다. 한 사람을 아느라, 만나느라,

좋아하고 사랑하느라. 그리고 표정이 없어지다가,

멀어지다 놓느라…… 마치 산을 넘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한 사람을 가졌다는 것은 그 한 사람을

등반하여 끝내 정상을 보겠다는 것, 아닌가.

한 사람의 전부를 머리에 가슴에 이고 지고 오른다.

산을 넘으며 한 사람을 생각한다.

그러면 하나도 힘이 들지 않다. 한 사람의 무게 때문이다.

[이병률, 혼자가 혼자에게, 84~85]



176

이 삶을 장악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인생길 위에서 누구를 마주칠 것인가

기다리지 말고, 누구를 마주칠 것인지를

정하고 내 인생길 위에 그 주인공을

세워놓아야 한다. 만나고 싶은 사람은

만나게 되어 있다는 믿음이 우리를

그 사람 앞에까지 ‘데려다 준다’.

그 믿음의 구름층은 오래 우리를 따라오면서

우리가 지쳐있을 때, 물을 뿌려주고,

우리가 바싹 말라 있을 때 습기를 가득 뿌려준다.

-만나고 싶은 사람은 만나게 되어 있다-

[이병률, 혼자가 혼자에게, 255]



2024.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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