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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Mar 28. 2024

Emotional은 감정적인가? 감성적인가?

말이 말을 걸어 글로 쓰는 이야기

동료와 대화를 하는데 Emotional의 번역을 '감성~'으로 해서 무슨 말인지 모호했는데, 감성 대신에 감정으로 바꿔 읽으니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는 취지의 이야기였습니다.


부족한 기록, 방치한 기록, ...

이야기를 듣는데, 최근에 번역을 하면서 겪은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그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영어와 한국말 사이에서 제가 느낀 가장 큰 차이는 차려진 기록의 양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가장 자주 이용하는 사이트 중에 하나인 위키피디아가 영문 사이트와 한국 위키백과의 정보량은 현격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최근 번역하면서 발견한 영어와 한국말 대응의 불일치 중에 하나는 어딘가 모르게 그 현상의 단면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어 단어 Column인데요. 신문 기사에서 쓰일 때 우리말은 '칼럼'이고, 프로그래밍 과정에서 쓰일 때 우리말은 '컬럼'입니다. 제 취향과 무관하게 구글링 결과가 그렇습니다.


차리지 않을 때 만들어지는 것

중국에 살 때, 주소지 신고(주숙등기)를 할 때 놀란 일이 있었습니다. 모든 외국인은 한자어로 자기 이름을 등록해야 합니다. 제 큰 아들의 한자 중에 한 글자는 중국에는 없는 한자였습니다. 민원을 대응하던 공무원이 한참 고민하더니 다른 한자 입력 체계(아마 한국의 한자 세트인 모양입니다)를 찾아서 결국은 찾아내어 저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제가 긍정을 표하자 그의 얼굴은 미소와 함께 '해냈다'는 뿌듯함이 가득했습니다.


묻지 않아 제 주관적인 짐작에 지나지 않지만, 자신이 정한 일의 기준에 부합하게 (대충 하지 않고) 해낸 것에 대한 자부심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칼럼과 컬럼이 그대로 방치되어 쓰이는 모습은 그 자부심과 정반대에 있는 느낌을 자아냅니다. 어쩌면 어질러진 방과 기술 부채 따위가 존재하는 이유와 같은 이치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방치한 상태로 두면, 우리는 그것이 물건이든 기억이든 코드든 찾아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버려지고 시간 압박이나 경제성의 이유로 같은 것을 더 만들고 그렇게 얽히고설킨 불필요한 복잡함 낳는 것이 아닐까요?


감정과 감성

이번에는 화제를 다시 감정과 감성 구분으로 돌아가 봅니다. 파파고에서 '감정의, 감정적인, 감성적인'을 순서대로 넣어보면 모두 영어로 Emotional이라고 번역합니다. '감정'과 '감성'을 키워드로 각각 구글링을 했습니다.


구글 요약이 주는 느낌은 꽤나 다릅니다. 하지만, 둘을 비교해 주면 좋을 듯해서 제미나이에게 물었습니다.


감정은 마음의 상태이고, 감성을 감정을 다루는 우리의 능력을 말합니다. 명확하게 다르지만, emotional 번역 과정에서는 상당한 혼선을 주네요. :)


말의 바탕치와 짜임새를 살펴보기

여기까지 살피는 데 그치지 않고 <말의 바탕치와 짜임새를 살펴보는 일>을 실천합니다.


감정(感情)은 느낄 감(感)과 뜻 정(情)을 요소(씨말)로 합니다. 풀이는 이렇습니다.

어떤 현상이나 일에 대하여 일어나는 마음이나 느끼는 기분.

'뜻을 느낀다'로 풀 수도 있을 듯합니다. 네이버 한자사전에 의지하여 씨말인 정(情)이 무엇인가 하고 또 묻따풀합니다. 뜻, 사랑, 인정 따위를 나타낸다고 합니다. 멋지네요. 씨말까지 즉, 요소까지 풀어 보길 잘했습니다. 한자 풀이에 드러난 심장 이미지가 눈에 띄네요.


이번에는 감성(感性) 풀이를 봅니다. 느낄 감(感)과 성품 성(性)을 합친 글자입니다.

「1」 자극이나 자극의 변화를 느끼는 성질.

사람이나 동물이 자극이나 자극의 변화를 느낄 때, 느끼게 되는 성질이 감성이군요. 그때 느낀 내용은 감정이라 할 수 있을 듯합니다.[1] 철학에서는 조금 더 엄밀하게 정의해서 쓰는 모양입니다.

    「3」 『철학』 이성(理性)에 대응되는 개념으로, 외계의 대상을 오관(五官)으로 감각하고 지각하여 표상을 형성하는 인간의 인식 능력.  


주석

[1] 놀랍게도 식물에 대해서도 감성이란 표현을 쓰네요.

「2」 『식물』 식물에 자극을 주었을 때 자극의 방향과는 상관없이 일부 기관이 일정한 방향으로 운동을 일으키는 성질. =경성.


지난 말이 말을 걸어 글로 쓰는 이야기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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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말이 말을 걸어 나의 차림을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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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일상에서 만난 낱말 바탕 풀이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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