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초단과 반민초단의 익살스러운 상호비방을 마케팅에 활용하라
제32회 도쿄올림픽이 폐막했다. 다시 정치 뉴스가 주요 일간지의 지면을 채우고 있다. 물론 오는 8월 24일부터 제16회 도쿄 패럴림픽이 열릴 예정이지만, 그간 국내 언론의 보도 행태를 복기해보면 패럴림픽 뉴스가 정치 콘텐츠를 밀어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그렇지. '유통 상식사전'이라는 문패를 달고 있는 브런치 매거진에 대놓고 주요 대선 후보의 이름을 거명하다니. 불경하기 그지없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이달 초 인스타그램에 아이스크림을 먹는 영상을 올렸다. 아이스크림의 색깔은 민트색이었고, ‘민초단 모여라’라는 해시태그가 달려 있었다. 그는 민트초코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민초단(민트초코를 좋아하는 사람)’임을 수줍게 고백했다.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윤 전 총장 관련 기사에 의레 달리는 민감한 정치적 현안에 대한 격론이나 대결적인 언어들은 힘을 받지 못했다. 네티즌들은 그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민트초코에 대한 호불호에 따라 자유로이 코멘트를 달았다.
‘민초(民草)’가 아니라 ‘민초(민트초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대선을 몇 개월 앞두고 유력 후보의 공보팀에서 SNS 콘텐츠 아이템으로 민초를 선정했다는 것. ‘민초’가 후보의 이미지를 더욱 친근하게 만들 수 있으며, 특히 젊은 세대와의 접촉면을 늘리는 데 ‘민초VS반민초’라는 일종의 밈(meme)이 호소력이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리라.
(보수 정당에 속한 정치인에게 젊은 세대와의 긴밀한 소통은 중요 과업이다. 2030 표심이 요즘 좀 무서운가. 또 검찰조직의 수장이었다는 커리어가 긍정적인 점만 있지는 않을 터. 민초파 선언은 '탈권위'의 이미지도 심어주는 효과도 있었을 것이다. )
딱딱한 정치권에서 식료품업계로 눈을 돌려보자. 초코파이, 초코송이, 다이제씬 등에 민트를 입힌 한정판 스낵이 출시됐다. 민초단의 거듭된 요청에 부응한 결과물이다. 오리온은 이 희소한 제품을 알리는 체험단을 모집했다. 한 지원자의 비장한 댓글이 눈에 들어온다. “반민초단도 사진과 글을 보고 민며들게 하고 싶습니다!” ‘민며들게’라니. 민초로 스며든다는 의미인 만큼, 반민초단에게는 잔혹한 형벌임에 다름 아니다. 민초단과 반민초단의 갈등 구도는 그 자체로 재미 요소로 기능한다. 그런 맥락 아래 민초단은 민트초코 셀프 홍보대사를 자처한다.
“반민초단도 사진과 글을 보고 민며들게 하고 싶습니다!”
올 초 배스킨라빈스(배라)의 민트 초콜릿칩의 출하가 일시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수입 원료 수급이 지연되면서 벌어진 해프닝인데, 혹자는 이 사건은 ‘민초의 난’으로 명명했다. 이런 뉴스 자체가 배라에게는 마케팅이 되었던 것일까? 배라는 몇 달 뒤 ‘민트 초콜릿칩’과 ‘엄마는 외계인’의 변증법적 산물인 ‘민트초코봉봉’을 선보였고, 출시 20일 만에 200만 개를 판매하는 기염을 토했다.
취향 공동체의 결집을 촉구하는 뮤직 비디오도 이 아이스크림의 인기를 견인했다. ‘민초대세선언’이라는 흥겨운 노래는 민초국 시민들의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였다. “그새 좀 서러웠지 이제는 달라졌어 민초의 대세 선언”이라며 소수의 취향으로 내몰렸던 민초단을 위무하는가 하면, “민초와 반민초의 평화의 시간”을 말하며 포용과 화합의 길을 제시하기도 했다. 배라는 민초의, 민초에 의한, 민초를 위한 콘텐츠를 내놓는 데 성공하였다. 아이스크림판 게티즈버그 연설이다.
“그새 좀 서러웠지 이제는 달라졌어 민초의 대세 선언”
“민초와 반민초의 평화의 시간”
- 라비, <민초대세선언> 中
애경산업은 배라와 협업해 민초 치약칫솔세트를 내놓았다. 반민초단이 민초를 치약 맛으로 규정하는 것에 대한 유쾌한 반란이었다. 보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색적인 디자인은 눈길을 끌었고, 식품류가 아닌 제3의 상품군으로 확장했다는 것 또한 특기할 만했다. 단순히 웃음만 유발하려고 만든 것은 아니다. 그러면 역효과가 나기 십상이다. 2080 특유의 치약 제형에 민트·초코 배색을 입히는 두 줄 무늬 기술을 적용했고, 상쾌한 민트향도 첨가했다.
지금도 민초단과 반민초단의 익살스러운 상호비방이 이어지고 있다. 호불호가 갈리는 아이템을 그저 외면하기보다는 그 자체가 스토리텔링이 되고 자연스러운 바이럴 효과를 일으키게 유도하는 것, 그러면서도 제품의 완성도를 높이면서 차별화된 재화를 완성하는 것이 긴요하다.
한정판 제품에서는 기존 제품의 특성과의 연결이 작위적이어서는 안 되며, 출시 시점의 어떤 사회적인 맥락과 조응되면 더욱 폭발력이 있을 것이다. 민초와 반민초, 당신은 어느 쪽인가? 가까운 마트에 들어가서 신나는 ‘사상검증’의 매력에 빠져보길 권한다.
* 명대신문에 기고한 글을 일부 수정했습니다.
** 제목만 보고 정치 칼럼으로 보시는 분이 없기를... 바라옵니다.
(특정 정치인에 대한 제 개인적 평가가 '유통 상식사전'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난센스^^;)
석혜탁sbizconomy@daum.net
석혜탁
- <쇼핑은 어떻게 최고의 엔터테인먼트가 되었나>, <오늘이 가벼운 당신에게 오늘의 무게에 대하여> 저자
- 사보/칼럼 기고 문의 sbizconomy@daum.net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3498897
<석혜탁의 유통 상식사전> 목차
■ 유통 상식사전 #1. VR스토어
VR스토어 오픈, 쇼핑의 미래는 VR백화점? - 현대백화점, 마이어백화점 등 VR(가상현실)에 관심을 쏟는 유통산업계
https://brunch.co.kr/@hyetak/13
■ 유통 상식사전 #2. 레트로 마케팅
국내 대표 복합쇼핑몰 롯데월드몰의 ‘레트로(retro) 마케팅’ - 상품뿐 아니라 추억과 향수, 분위기와 이미지를 판매하는 롯데월드몰
https://brunch.co.kr/@hyetak/21
■유통 상식사전 #3. 전자가격표시기(ESL)
- 오프라인 매장의 가격표시 변화, ESL의 성공 열쇠는?
https://brunch.co.kr/@hyetak/22
■ 유통 상식사전 #4. 그린(green) 마케팅
- 그린 마케팅의 핵심은 지속성
https://brunch.co.kr/@hyetak/26
■ 유통 상식사전 #5. 센트(scent) 마케팅
- 후각과 소비의 상관관계 그리고 프루스트 현상
https://brunch.co.kr/@hyetak/28
■ 유통 상식사전 #6. 만화카페
- 만화카페, 새로운 ‘문화 쉼터’의 부상
https://brunch.co.kr/@hyetak/29
■ 유통 상식사전 #7. 극장 속 도서관
- CJ CGV의 씨네 라이브러리가 보여준 2가지 차별점
https://brunch.co.kr/@hyetak/30
■ 유통 상식사전 #8. 맨플루언서 마케팅
- 남심(男心)을 잡기 위한 묘책은?
https://brunch.co.kr/@hyetak/31
■ 유통 상식사전 #9. 탈모시장
- 전직 대통령의 아들도 고민하는 탈모, 유통업계의 과제는?
https://brunch.co.kr/@hyetak/34
■ 유통 상식사전 #10. 복층 편의점
- 2층 공간 활용의 상상력
https://brunch.co.kr/@hyetak/35
■ 유통 상식사전 #11. 시스루(See-through) 마케팅
- 시스루 마케팅, 품질에 대한 자신감과 그에 따른 고객의 신뢰
https://brunch.co.kr/@hyetak/37
■ 유통 상식사전 #12. 젠더 감수성
- 유통업체들이 꼭 지녀야 할 ‘젠더 감수성’
https://brunch.co.kr/@hyetak/38
■ 유통 상식사전 #13. 액티브 시니어
- ‘액티브 시니어’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해야 살아남는다
https://brunch.co.kr/@hyetak/40
■ 유통 상식사전 #14. 유(乳)업계
- 유(乳)업계, 흰 우유 외에 다른 곳에도 눈을 돌리다
https://brunch.co.kr/@hyetak/41
■ 유통 상식사전 #15. 홈트
- ‘홈트’의 인기 이유, 그리고 유통업계의 대응
https://brunch.co.kr/@hyetak/48
■ 유통 상식사전 #16. 무인 매장
- 무인 매장, 유통혁명의 총아?
https://brunch.co.kr/@hyetak/51
■ 유통 상식사전 #17. 무슬림 마케팅
- 16억 무슬림을 향한 유통업계의 구애
https://brunch.co.kr/@hyetak/52
■ 유통 상식사전 #18. ‘트렌드 박물관’ - 편의점
- 살아 있는 ‘트렌드 박물관’ 그리고 얼리어답터
https://brunch.co.kr/@hyetak/55
■ 유통 상식사전 #19. 비엥 비에이르
- 비엥 비에이르(Bien-Vieillir), 멋진 어르신들의 존재미학
https://brunch.co.kr/@hyetak/57
■ 유통 상식사전 #20. 이란 시장
- 이란에서 성공신화를 쓰는 한국 기업들
https://brunch.co.kr/@hyetak/59
■ 유통 상식사전 #21. 유통 빅3 본사 이전
- 롯데, 신세계, 현대백화점 유통 빅3의 본사 이전
https://brunch.co.kr/@hyetak/61
■ 유통 상식사전 #22. 왝더독(Wag the dog) 현상
- ‘게이미피케이션’과 ‘하비테인먼트’로 읽는 왝더독 소비심리
https://brunch.co.kr/@hyetak/62
■ 유통 상식사전 #23. 업태별 협회
- 각기 다른 유통업태를 대변하는 각종 협회
https://brunch.co.kr/@hyetak/63
■ 유통 상식사전 #24. ‘오프라인’으로 나가는 홈쇼핑
- 기존 오프라인 강자까지 위협할 수 있는 이색 콘텐츠를 발굴해야 한다
https://brunch.co.kr/@hyetak/70
■ 유통 상식사전 #25. 그레이네상스
-‘Grey(백발)’와 ‘Renaissance(부흥, 전성기)’의 합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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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통 상식사전 #26. 퇴튜던트(퇴근+스튜던트)
- ‘퇴튜던트’, 퇴근 후 그들은 학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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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통 상식사전 #27. 이마트 1호점
- 개점 4반세기 ‘이마트 창동점’ 초심을 잊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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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통 상식사전 #28. 몰캉스
- ‘서프리카’에서 쇼핑과 피서를 한 번에 해결하는 ‘몰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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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통 상식사전 #29. 독립운동가 기념 도시락
- ‘편도족’들에게 역사의식을 환기하는 GS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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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통 상식사전 #30. 매장(賣場)과 매장(買場)
- ‘매장(買場)’이 많아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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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통 상식사전 #31.‘VIB족’과 키즈카페
- ‘VIB족’을 잡기 위한 키즈카페의 과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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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통 상식사전 #32. 리바이벌(revival) 마케팅
- 서주 아이스크림의 재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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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통 상식사전 #33. 제약사의 브랜드 매장과 푸스펙족
- 제약 전문회사가 만든 건강기능식품 브랜드 스토어 ‘뉴 오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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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통 상식사전 #34. 차 안의 미니 편의점 ‘카고(Cargo)’
- 리테일 플랫폼으로 우뚝 선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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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통 상식사전 #35. ‘와인웍스’, 유통공간 속 취향
- 현대백화점 ‘와인웍스’, 리테일 공간에 취향을 입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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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 상식사전 #36. 플렉스(Flex) 소비문화 단상
- ‘엄근진’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90년대생들의 망탈리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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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 상식사전 #37. 모디슈머
- 모디슈머 DNA 그리고 짜파구리의 존재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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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 상식사전 #38. 리사이클링-공병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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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 상식사전 #39. 코로나 0년, 리테일 생존법
- 드라이브스루와 가상 출국여행의 흥행에서 힌트를 얻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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