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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13일차> 베로나, 시르미오네..넘치게 좋았다
<이탈리아 16일차> 돌로미티, 길 위에서...친퀘토리
<이탈리아 17일차> 돌로미티, 트레치메 6시간이 남긴것
<그리스 3일차> 메테오라, 천공의 수도원이 기록한 것
"내 인생에 산토리니 같은 단어는 없었어. 여행을 좋아하지 않느냐고? 글쎄, 여행을 좋아해볼 기회가 적었지. 1년에 일주일 이상 휴가내기 어려운 시절도 있었고, 애들 중고등학교 때도 엄두 못냈지. 한동안 무척 바쁘기도 했고, 긴 여행은 로망이지 일상이 아니잖아. 그리스나 산토리니는 아무래도 여유가 필요한 곳이니 상상도 못해봤어. 우선순위도 높지 않았어. 아직 대만도 못 가본 내가 무슨 그리스를... 아, 그리고 난 유적지를 휴양지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아."
산토리니 해안에서 친구들과 점심을 먹으면서 나눈 대화다. 그 산토리니에 와버렸다. 인생 참 알 수 없구나.
눈이 부셨다. 하늘도 바다도 파랗게 빛났다. 하얀 집들과 파랑, 그리스 국기 색의 조합은 그냥 이 땅에서 나온 거구나. 공항에서 숙소로 10여분 달려와서 택시에서 내렸다. 뒷편으로 걸어가면 된다고 하더니, 건물 뒷편에 바로 해안 길이 나온다. 산토리니 첫인상은 이 사진이다.
여기서도 냥이를 만나니 반갑다.. 쟤도 그늘 좋은건 아는구나.
숙소에서 밖을 내다봤다. 절벽을 따라 이어진 피라 Fira 마을 해안의 작은 빌라다. 수영장을 갖춘 큰 집들은 보통 1박에 200만원도 넘는단다. 100만원 숙소가 즐비한데, 우리 숙소는 2박에 몇십만원 수준. 수영장 대신 작은 자쿠지가 있다. 방에서 바로 보이진 않지만, 테라스 뷰는 환상이다. 연이 수십 군데를 검색하고 찾아낸 집이다. 우리에겐 물론 이번 여행에서 가장 비싼 투자다.
북쪽으로 올라가면 이아 Oia 마을이란다. 산토리니의 이미지를 그대로 볼 수 있는 곳. 하얀 집들과 파란 돔들이 예쁜, 포카리스웨트 광고에 나오는 그 동네. 걸어서 2시간. 사진 저 끝에 조금 보이는 곳.
항구가 크지 않은 모양. 유람선들이 멀리 정박하고 있다. 작은 보트가 계속 왔다갔다 사람들을 실어나른다.
숙소 부근 식당. 어디가서 뷰맛집 이라는 얘기 함부로 못쓰겠다. 비현실적인 시간이다. 연은 20년 전 좋은 기억으로 남은 문어 스테이크를 골랐다. 물가는 아테네보다 1.5배 정도..
굳이 선인장까지 이름을 새겨서 남기는 심리는 무엇일까..
오후 내내 쉬었다. 낮잠은 언제나 옳다. 컨디션이 떨어진 연, 힘내자. 딸기는 늦은 오후, 볕을 뚫고 나가서 이런 곳을 보고 왔다.
산토리니에 귀한 친구가 저녁에 찾아 오기로 했다. 제네바에 사는 그가 이번주 마침 산토리니로 휴가 왔단다. 저가 항공 몇 만원이면 이런 곳에 오는게 유럽 사는 이들의 자유! 혹여 찾는데 어려울까, 숙소 앞 난간에 앉아 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설레임이 오랜만이다. 몇 번 만나지 못한 사이? 이것저것 부탁한게 연에겐 신기했나 보다. 실제 얼굴 자주 볼 수 있는 분은 아니다. 다만 어떤 생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어렴풋 알고 있다. 무조건 신뢰와 응원을 보낼 수밖에 없는 분이다. 1년 전 나의 사무실로 그가 찾아왔다. 그의 이야기는 모두 생경하고 충격적이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미디어가, 우리가 주목하지 않는 곳의 인권을 살피는 그의 일은 아마 외로울 수도 있겠다. 매번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 이어질텐데, 할 수 있는 건 실컷 수다를 떨면서 좋은 시간을 갖는 것. 한 존재에 마음을 싣는다는 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쉬운 일이기도 하다. 조금 어려워 본 뒤에 알았다. 마음을 나누는게 생각보다 엄청난 일이란 걸, 잘난척 살 때는 잘 몰랐지.이 여행은 그 정점에 있다. 그가 손 흔들며 왔다.
딸기가 장봐온 걸로 차린 산토리니의 저녁.
세계가 잊은 한센병, 아직도 손가락 딱딱 하는 사이 계속 새 환자가 등장한다는 걸 몰랐다. 약물 치료가 쉬운데도 손가락, 발가락이 떨어져나가는 이들이 있는지 몰랐다. 어떤 질병이 보건문제가 아니라 인권문제가 되는 분기점이 있다. 코로나로 무너진 의료시스템 탓에 가장 힘없는 약자들의 고통이 더 깊어졌다. 유엔에서 인권 일을 하는 친구의 이야기는 대부분 충격이다.
한국에 여전히 인신매매 이슈가 있는지도 몰랐다. "한국은 인신매매 수요처"라는 건 국제문제 전문가 딸기의 지적이다. 나만 몰랐나? 기준을 새삼 물었다. 돈을 주고 사람을 사면 그게 인신매매. 국제결혼이든 약속과 다른 노동이든 문제가 된다. 몰도바에서, 모로코에서 돈 벌겠다고 찾아온 여자들은 여권을 빼앗기고 성매매만 한단다. 불법이주자, 난민, 인신매매의 경계가 애매하다. 자의냐 타의냐? 개인이 그걸 다 알고 결정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섞여 있다. 그런 질문이 폭력적이다. 그런 노동으로 내몰리는 국가들의 처지, 개인의 사정이 다 복합적이지만 갑자기 민주주의 선진국, 문화강국이라는 한국, 부끄러운 일은 줄었으면 싶네.
어둠이 짙어지기 전의 모습. 우리의 대화는 아직 한창이라, 이쯤에서.
그의 말대로.. 한 여름 밤의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