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돌 Dec 22. 2017

제주 한달살기, 에필로그이자 다시 프롤로그_1

한 달 여행의 마무리와 퇴사 결심, 제주 여행 한눈에 보기





집으로 돌아와서 맞이한 첫날 아침은 평소와 같은 듯하면서도 달랐다. 개학날 아침의 기분 같았다고나 할까. 방학이 끝나 서운했던 한편 새 학기를 앞두고 내심 설레던 그런 기분 말이다. 한 달에 걸친 여행을 끝내고 나니 아쉬운 마음도 있었으나 비로소 출발점에 선 듯한 긴장감이 들었다. 일반적인 의미의 '현실'에서 완벽하게 벗어난 제주 여행이었기에, 다시 마주한 일상이 출근길이 아니란 사실이 낯설면서도 좋았다.


휴직 기간은 한 달이나 더 남아있었다. 다니던 스타트업 이사님의 배려 덕분이었다. 그는 직장 상사라기보다는 고마운 형에 가까웠던 사람으로, 누구보다도 나의 고민과 결정을 존중해 주는 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느긋할 수가 없었다. 빨리 결정을 내리는 게 회사와 나 양쪽 모두에 좋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변하지 않을 선택지는 두 가지뿐일 터였다. 복직하거나, 퇴직하거나. 


사실 난 정답을 이미 품고 있으면서도 문제지를 막 받아 든 학생처럼 망설이고 있었다. 여행의 판타지에서 벗어나고 보니 여전한 현실이 제주에서처럼 낭만적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망설임의 가장 큰 원인은 '구체적 대안'의 부재였다. 청년들의 퇴사가 하나의 추세이기도 한 요즈음 그렇기 때문에 가장 경계할 선택으로 흔히 언급되는 게 뭔지는 익히 알고 있었다. 이직이나 재취업, 창업이 준비된 퇴사가 아니라면 웬만해서는 다니던 곳에 붙어있으라는 '교훈'도, 회사가 전쟁터라면 밖은 지옥이라는 '경고'도 모두 일리 있는 말이기는 했다. 


그럼에도 나는 결국 퇴사를 결정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 열흘 만이었다. 주위의 교훈이나 경고 같은 걸 잘 듣는 성격이었다면 애초에 이직(두 번째 회사였다)이나 휴직 같은 건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물론 '정도'에 대한 반발심 따위로 중요한 결정을 내린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나의 결정은 올레길에서, 오름에서 이미 내려져 있던 게 확실했다. 다만 그걸 입 밖으로 꺼내어 현실화하고, 그렇게 바뀔 현실에 스스로를 맞춰 나가기 위한 결단에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했을 뿐이다.


지금의 퇴사가 단기간의 여행이라는 판타지를 통해 장기간의 고생이라는 현실로 이어진다 할 지라도 나는 내 결정을 존중할 것이다. 어차피 단기간의 고생으로 장기간의 판타지를 누릴 생각은 없었으므로, 생겨먹은 대로 살아갈 뿐이다. 오로지 나 자신의 마음만을 들여다본 후에 내린 결정이기에 그 어떠한 탓도 하지 않고 버텨갈 자신이 있다. 여행 그 후, 나름대로 이것저것 해 보며 잃었던 나를 찾아가는 중이므로 아직까지 퇴사를 후회한 적도 없다. 


이런저런 이유로 꾸물대다가 늦게나마 제주에서의 한 달을 제법 그럴듯하게 정리했다고 자부한다. 당시에 TV프로그램 '효리네 민박'을 촬영 중이라는 소식으로 제주도가 핫이슈였는데 어느덧 시즌2를 제작할 거란 소식이 들려온다. 제주에서든 서울에서든 빠르게만 흐르는 시간에 조금 더 정신을 차려 나아갈 뿐이다. 여행은 다시 시작되기 전까지는 끝났지만, 여정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일단 이걸로 나는 대책 없이 만족 중이다.




지금까지 '제주 한달살기' 여행기는 출발하기까지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Day1부터 30일까지를 나름대로 정리해 서술했다. 여행 중에 동행이 몇 차례나 바뀌었던 데다, 짧은 하루도 있었고 긴 하루도 있었으므로 나름대로 그날의 성격에 맞게 분류해 타이틀을 달았으며 기본적으로는 시간순의 배열을 지켰다. 


가이드북과 같은 정보성이라든지 블로그와 같은 홍보, 리뷰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으므로 콘텐츠 구성과 분류가 용이하지 않았을뿐더러 읽는 이를 고려한 여행지 안내나 설명도 부족한 게 사실이다. 단지 공감에 기반한 에세이로써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제주 여행의 감상을 써내고 싶었고, 이에 충실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했을 뿐이다. 긴 메모보다는 한 장의 사진이 보다 많은 기억을 떠올려 주었기 때문에 글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사진에 따라 여행 코스와 글 단락에 변화를 주었다.   


요약하자면, 나의 이 여행기는 30대 청년이 진로를 고민하다 무작정 제주도에서 한 달을 지낸 뒤 결국에 퇴사하기까지의 에세이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민낯 그대로의 감상을 지향했으되 여행기 본연의 정보와 즐거움은 잃지 않도록 곳곳에 나름의 색조 화장을 했으나 피부톤을 바꿀 만큼의 거짓은 결코 없음을 자신한다.


마무리하며,  '동행'과 '지역'에 따라 제주 여행의 컨셉과 코스를 소개하고 그에 맞는 콘텐츠들을 찾아보기 쉽도록 분류해 놓았다. 다음은 그중 첫 번째로 누구와 함께 여행했느냐에 따라 다섯 가지로 나누어 본 제주 여행이다.




1. 동행에 따른 제주 여행의 다섯 컨셉


홀로 떠난 30일의 여행 중 절반 가량의 기간은 혼자가 아니었다. 친구, 연인, 가족뿐 아니라 새로 만난 외국인들까지 번갈아 함께하며 다채로운 여행을 즐길 수 있던 것이다. 덕분에 외로울 겨를이 없었고 혼자만의 시간을 더 소중하게 여길 수 있었다. 동행들에게는 아무래도 내가 가이드 노릇을 해야 했으므로 이미 가 봤던 장소를 다시 찾는 경우가 있었는데, 한 번 가 봤던 곳이라고 해서 시들하다거나 지루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1) 혼자 여행

    

아름다운 관광지를 구경하고, 맛집에서 식사를 하고, 조용한 카페에서 차분히 글과 사진을 정리하기. 홀로 여행할 때의 여행 패턴은 대개 이러했다. 때로는 숲길을 산책하고 또 때로는 갤러리나 박물관을 찾는 등 혼자서 충분히 사색했던 시간은 역시 돌아볼수록 풍성하고 건강했다.





2) 커플 여행


나의 한 달 여행을 누구보다 응원하고 또 부러워했던 그녀, 여자 친구와의 5일은 어느 때보다 길게 함께한 여행이라 더욱 특별했다. 제주도를 같이 여행한 건 벌써 세 번째였지만 4일 이상은 처음이었기에 그동안 못 가봤던 곳들을 여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 여행 취향이 비슷한 우리 커플에게 제주의 아름다운 관광지와 다양한 레저 체험이야말로 해외여행 못지않은 맞춤 코스다. 





3) 우정 여행


내가 여행 중이라는 얘길 듣고 무작정 3일의 휴가를 써서 제주도로 온 친한 형이 있었다. 무려 전 직장의 상사였던 그는 그러나 나와 워낙에 격의 없이 지내던 사이라 웬만한 친구보다도 즐겁고 편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다. 인간관계는 어떠한 사회적인 틀이나 형식에 상관없이 나와 맞고 안 맞고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란 사실을 다시금 알려준 형과의 3일 여행에 '우정'타이틀이 안 붙을 수가 없다. 





4) 가족 여행


마음으로만 품고 있던 효도 여행을 여동생 덕분에 제주도에서 바로 실천할 수 있었다. 엄마, 이모, 여동생 3명의 여행 가이드 역할을 했던 나흘 간은 그동안 알고 있던 제주의 가장 좋은 장소들 위주로 편안한 시간이 되게 하려고 노력했다. 하루 종일 비가 쏟아진 서귀포에서의 하루를 적절한 전시 관람으로 대체했던 코스마저도 만족스러웠던 세 여인과의 동행이었다. 





5) 이색 여행


프랑스인 친구 Pierre와의 인연에서 비롯된 이틀은 그야말로 해외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하루는 최남단 마라도를, 하루는 한라산 정상을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방문해 내게도 뜻깊은 제주의 관광지를 외국인의 시선으로도 볼 수 있는 이색적인 경험을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주 한달살기 Day30 : 30박 31일째의 평범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