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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욱 Aug 27. 2018

우리 동네에서 가장 소중한 가게

일본에서 가장 소중한 회사

우연치 않은 기회에 어떤 책을 만났다. 책 제목은『일해줘서 고마워요』.  제목이 꽤 감성적이지만 마음을 촉촉이 적셔주는 감성 에세이가 아니라 일본의 어떤 한 회사 이야기다. 1937년 문을 연 일본이화학공업은 80년이 넘게 분필을 생산해온 회사다. 이 회사의 분필 시장 점유율은 50%를 넘는다. 여기까진 여느 일본의 강소기업 스토리와 크게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다른 히든챔피언들과 다른 점은 이 회사가 '일본에서 가장 소중한 회사'로 뽑혔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 회사가 왜 일본에서 가장 소중한 회사라는 걸까. 이 회사는 유니클로, 도요타와 같이 일본에서 매출이 가장 큰 회사라든가 무인양품같이 어마어마한 디자인이나 브랜드력을 가진 회사는 분명 아니다. 그럼에도 이 회사가 소중한 이유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일본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80년 넘게 존속해온 이 회사 직원의 74%는 지적장애인이며 정말 가족같이 이들을 교육하고 육성하고 있다. (2018년 1월 기준, 총 85명 중 63명, 출처:일본이화학공업 공식 사이트) 또한 이 회사의 경영자인 오야마 사장은 선대에서부터 이어져내려 온 그들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 등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이면서도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하게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Yasuhiro Oyama
장애인들이 분필과 키트파스(일본이화학공업의 특허제품)를 만들어준 덕분에 이 회사가 운영되고 있지요. 나에게는 또 하나의 책임이 있습니다. 그것은 장애인들이 운영하는 회사라도 안정된 경영을 실현해야 하고, 또 그들이 사회와 사람들에게 공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가는 것이죠. 물론, 넘어야 할 큰 산이기는 하지만 나의 목표는 안정된 회사 경영입니다.


회사의 성과가 단순히 재무성과만 있을까?

회사의 성과라고 하면 보통 우리는 매출, 영업이익 등을 생각하기 쉽다. 아마도 매년 쏟아지는 경영목표들이 변화, 혁신을 외치면서도 결국에는 'Global Top ○진입, 2020 매출 ○○○조 달성'류의 것으로 귀결되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하지만 회사의 성과가 단순히 재무실적만을 의미할까? 우리 삶에서 돈이 큰 부분을 차지하긴 하더라도 우리 삶의 목적이 온전히 부의 축적에만 있지 않듯이 회사의 목적 또한 온전히 재무실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회사가 믿는 가치를 어떤 형식으로라도 구현해 내는 것 또한 기업의 주요'성과'다.


이화학공업의 장애인 고용 비율이 70%를 넘는다 하더라도 인원수는 63명일 뿐이다. 단순 장애인 고용의 숫자만으로 비교한다면 아마 일본 대기업과 그 숫자 차이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화학공업이 가장 소중한 이유는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최대한 많은 지적장애인들에게 '일하는 기쁨'이라는 가치를 함께하며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궁극적인 행복은 

- 사랑받는 것, 
- 칭찬받는 것, 
- 도움을 주는 것, 
-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 

이 네 가지라고 한다. 

일을 통해서는 사랑받는 것 이외의 세 가지 행복(칭찬, 도움주기, 필요한 존재되기)을 얻는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 사랑마저도 일을 하면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동네에서 가장 소중한 가게

이 책을 덮고 나서 다시 한번 우리 스스로를 생각해보게 됐다. 그래, 우리도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회사는 되지 못할지 몰라도 우리 동네에서 가장 소중한 가게는 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우리가 하루아침에 장애인을 70% 이상 고용할 수 있는 여력은 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우리의 방식으로 가장 소중한 가게로 발전하기 위해 노력해나갈 뿐이다. 우리는 이 지역에서 어떤 장점에 기반해서 어떤 가치를 지향하며 어떤 성과를 만들어 낼 것인가.


내가 생각하는 소중한 가게의 이미지는 우리 동네에 사는 많은 어린이들이 나중에 어른이 되어 어린 시절을 되돌아봤을 때, '그때 그 가게가 있어서 참 좋았는데'라고 생각할 수 있는 추억들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런 흐름 속에서 고객들과 함께 시작한 것이 십시일반 이벤트다. 열 번의 숟가락으로 한 공기의 밥을 만들듯 수박이 10통 이 판매되면 주변 이웃에게 수박 1통을 고객과 함께 기부하는 이벤트를 만들어 진행했다. 실제 수박을 기부할 때는 우리 가게 이름을 내거는 것이 아니라 함께한 10명의 각각 이름이나 응원 메시지를 대표로 기부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어린이들이 메시지를 남길 수 있도록 최대한 유도했고 또 실제 기부 대상도 지역 아동센터를 중심으로 놓았다.

처음 진행하는 행사였음에도 불구하고 5일 만에 196명의 고객들이 함께해주셨고 총 211통의 수박이 판매되었다. 이렇게 모인 21통의 기부 수박은 지역 아동센터와 어르신들 쉼터에 함께 나눠 폭염을 견디는데 조그마한 힘이 될 수 있도록 했다. 십시일반은 고객에게도, 기부 대상에게도, 또 우리 스스로에게도 따뜻한 기억이 되었다. 그래서 1회성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매월 지속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또한 곧 공개할 예정인 고사리 장터(지역 어린이들이 만든 제품을 판매하여 발생한 수익을 지역 어르신들에게 기부하는 행사) 또한 같은 고민의 흐름 속에서 탄생했다. 아직 우리가 '우리 동네에서 가장 소중한 가게'라고 자부하기에는 멀었지만 십시일반이나 고사리장터같은 이벤트들을 한 회, 한 회 만들어가며 꾸준히 한 발씩 나아가다 보면 분명 소중한 가게 근처 어딘가에 닿아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우리나라의 소상공인은 300여만 명이라고 한다. 300여만 가게가 하루 평균 20명의 고객을 매일 상대한다고 해도 약 6,000만 명이다. 우리나라 인구가 5,200만이니 대한민국 인구 모두를 포함하고도 800만이 남는다. 음식점이 됐든, 편의점이 됐든, 혹은 카페가 됐든 하루에 한 번쯤은 어딘가 소상공인의 가게를 찾게 되기 마련이다. 만약에 소상공인들의 가게 하나하나가 각각의 이유로 소중한 가게가 될 수 있다면 또 고객들은 그런 소중한 가게의 가치를 인정하고 이를 더욱 이용해준다면 그때는 우리나라 전체가 조금 더 웃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최저임금 인상, 임대료 갈등, 카드 수수료 문제 등 어느 때보다도 영세 소상공인들이 장사해나가기 어려운 시기다. 주머니 사정을 넘어 존폐를 고민하는 생존 수준의 위기의 시대인 것도 사실이다. 300여만 소상공인의 생존권을 이야기하는 이 시점에 소상공인 스스로 소중한 가게로 발전하기 위한 고민, 그리고 소상공인의 고민을 알아보고 소중한 소비를 하는 소비자의 선택이 합쳐져 조금 더 아름다운 대한민국으로 한 발 더 나아가기를 기도한다. 아직은 아름다운 동화 같은 비현실적인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때일수록 소중한 가게로 가는 길이 더 소중하다고 믿는다.



Executive Summary : 
오빠랑 지게차 타러 갈래? (안정적 기름집 김 씨는 왜 불안정적인 마트삼촌 김씨가 되었을까) 


1부 - 대퇴사시대

0화 : 대퇴사시대, 도대체 왜 퇴사하세요?

1화 : Professionalism, 멋있잖아요

2화 : 노인의 얼굴에 나이테 대신 동심이 내린 이유

3화 : 내가 만난 '난놈'들의 공통점

4화 : 진짜 히치하이커는 엄지를 들지 않는다

5화 : 틀린 인생은 없어 다르게 살아도 괜찮아

6화 : 꿈을 강요하는 사회

7화 : 일출 보러 가다가 퇴사결심

8화 : 새장 속의 새는 새가 아니다 (Brunch Editor's Pick)

9화 :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10화 : 사직서를 준비하는 네가 알면 좋을 세 가지


2부 - 소상공인 라이프 소상히 알려드립니다.

11화 : 가라앉을 것인가 헤엄칠 것인가

12화 : 고객관리의 핵심은 메아리다

13화 : 그대, 존경받아 마땅한

14화 : 네비 있으세요?

15화 : 이 길로 가는 게 제대로 가는 걸까

16화 : 행복하자. 아프지말고.

17화 : 영민할 것인가 따뜻할 것인가

18화 : 우리 동네에서 가장 소중한 가게

19화 : 모범생 남 대리가 사업을 말아먹은 이유는

20화 : 칼퇴할 수 있고 주말근무 없으면 워라밸일까? (Brunch Editor's Pick)

21화 : 왜 장사하는가

22화 : 이 가게, 한 달에 얼마 벌까?

23화 : 사장님, 이렇게 팔아서 남아요?

24화 : 진상의 평범성(Brunch Editor's pick)

25화 : 가장 오래된 빵집, 이성당이 잘 나가는 이유

26화 : 유해진에게 배우는 싸가지경영

27화 : 무른 귤과 아버지

28화 : 백종원이 말하는 장사 마인드

29화 :  이 식당은 50분만 일하면 한끼가 무료입니다

감사인사 : 꿈 하나를 이루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이성당 사장님을 만났어요)

30화 : 성심당은 파리바게뜨가 부러울까?

31화 : 그 자켓을 사지 말라던 파타고니아의 오랜 진심

감사인사 : 또 하나의 꿈이 이뤄졌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감사합니다

32화 : 어쩌다 대기업 그만두고 마트를 하게 됐어요?(Brunch Editor's Pick)

33화 : 울었다. 밥을 먹다 울었다.

34화 : 쿠팡의 시대, 동네마트 생존전략

35화 : 그렇게 마트가 된다

36화 : 가족같이 일하기 vs 가족이랑 일하기

37화 : 우리 동네 가장 소중한 가게가 되는 장사법

38화 : 현직 마트 삼촌입니다. 질문 답변드립니다

39화 : 군산에서 장사한다는 것

40화 : 사업... 나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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