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사니즘을 넘어 장사2.0으로
장사는 나를 표현하는 도구이자 세상과 소통하는 수단이다
많은 예술가들은 '왜 예술을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나를 표현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사진가는 사진을 통해 자신을 표현(혹은 세상과 소통)하는 사람이고, 시인은 시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장사꾼은 왜 장사를 할까? 물론 일차적으로 '먹고살기 위해서' 일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일하는 목적이 단순히 돈에만 달려있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돈을 더 벌 수 있는 옵션을 선택(극단적으로는 마약밀매, 불법 성인사이트 운영 등)을 했을 텐데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 단순히 먹고살기 위해 서비스나 물품을 제공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는 것이 장사의 전부가 아니다. 사실 알고 보면, 장사꾼도 예술가와 다르지 않다. 장사를 한다는 것은 본인이 옳다고 믿는 가치와 철학을 본인이 옳다고 믿는 방법으로 현실에서 지속가능하게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조직문화, 보상체계, 브랜드 등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장사꾼은 장사를 통해서 자신을 표현하고 세상과 소통한다.
어떤 회사가 자신을 잘 표현한, 좋은 회사일까
그렇다면 어떤 회사가 자신을 잘 표현한 '좋은 회사'일까? 요즘 그렇게 잘나간다는 아마존? 브랜드충성도의 절대강자 애플? 판매 수익의 50%이상을 위안부 단체에 기부한다는 마리몬드? 좋은 회사란 누군가에게는 매출 사이즈가 큰 회사일 수도, 아니면 누구나 이름을 대면 알만한 브랜드를 소유한 회사일 수도, 그도 아니라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회사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각 개인이 가진 가치관에 따라 어떤 회사가 좋은 회사냐가 결정된다. 사실 '어떤 회사가 좋은 회사냐'는 질문은 '어떤 인생이 좋은 인생이냐'와 같은 정답이 없는 질문인 셈이다. 좋은 인생, 좋은 회사는 결국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인생,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회사이다.
조금 더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예를 들어보자. 우리 옆집에는 삼성이 형이 산다. 옛날부터 집에 돈이 좀 있었다고 하는데 최근에는 사업이 더 잘 돼서 돈을 참 많이 벌고 있다고 했다. 삼성이 형한테 인간미는 많이 느껴지지 않지만, 그래도 돈 하나는 기가 막히게 번다고 소문이 자자한 우리 동네 일등 부자다. 뒷집에는 파타고니아 누나가 산다. 누나네는 몇 번 놀러 가 봤는데 집안에 온통 서핑, 락 클라이밍 등 아웃도어 사진뿐이었다. 이 누나가 자연을 얼마나 좋아하냐면, 한 번은 뒷산에 불이 났는데 그 불 끄러 가야 된다고 오는 손님 다 돌려보내고 가게 문 닫고 불을 끄러 가기도 했다. 얼마를 벌든 버는 돈의 1%는 무조건 환경보호재단에 기부도 한다는데 정말 자연을 좋아하는 것 같다. 삼성이 형만큼 돈을 많이 벌지도 못하고 유명하지 않아도 파타고니아 누나는 자신의 삶에 굉장히 만족하는 것처럼 보인다.
삼성이 형 같은 일등 부자의 삶을 살든, 파타고니아 누나 같은 자연 보호자의 삶을 살든 그 누구도 둘 중 누가 더 좋은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에게 온전히 남은 것은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아가는 것뿐이다. 결국 장사도 사업도 마찬가지다. 매출의 성장과 같은 외형적 결과에 더 집중할지, 혹은 어떤 것도 희생하면서까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집중할지, 또 그 가치는 무엇일지 모두 다 장사를 하는 사람의 선택에 달려있다.
장사꾼의 선택을 소비자들은 냉정히 판단한다. 그 가치가 함께 할만한 것인지, 소비자 스스로에게도 나름의 가치를 제공하는 것인지. 엄중한 시장의 판단을 반복하며 장사꾼은 끊임없이 검증 받는다. 뜻을 함께하는 소비자들의 지지를 받기도 하고 그렇지 않다면 시장에 차갑게 외면 당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생존하는 장사꾼만이 지속적으로 자신을 표현해 낼 수 있다. 결국 장사는 단순히 자기만족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철저한 현실감각을 통해 끊임없이 소비자에게 가치를 제공하며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다.
길은 걸어가면서 만들어진다
장사를 막 시작한 1년 차에 했던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하면 이 조직을 생존하게 만들 수 있는가였다. 재무적으로 지속 가능하도록 매출을 발생하고 비용을 관리하는 것이 제일 큰 고민이었다. 생존의 고민을 어느 정도 벗어난 2년 차에 드는 가장 큰 고민은 '우리는 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세상에 무엇을 표현해 낼 수 있는가'이다. 함께 일하는 우리 모두는 어떤 것을 옳다고 생각하는가.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 우리는 여기서 어떤 긍정적인 영향력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가. 오랜 대화 속에서 함께하는 사람들과 끊임없는 고민을 나눈 결과 십시일반이나 고사리 희망장터와 같은 활동을 통해서 '우리 동네에서 가장 소중한 가게'가 되고 우리 동네를 가장 소중한 동네로 만들기 위해 조금씩 걸어 나가고 있다.
장자에는 '道行之而成(길은 걸어가는 데서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우리 나름의 길을 걸으며 우리만의 답을 내리고 있다. 그리고 이 길을 걸으면서 우리만의 길이 만들어질 것을 믿는다. 철학이 있고 없음에 따라 장사꾼이 될 것인가 한낱 장사치가 될 것인가가 갈린다. 작은 장사를 하든 큰 장사를 하든 한낱 장사치가 되지 않고 장사꾼으로서 세상에 우리를 잘 표현해 낼 수 있기를 바란다.
Executive Summary :
오빠랑 지게차 타러 갈래? (안정적 기름집 김 씨는 왜 불안정적인 마트삼촌 김씨가 되었을까)
1부 - 대퇴사시대
0화 : 대퇴사시대, 도대체 왜 퇴사하세요?
3화 : 내가 만난 '난놈'들의 공통점
4화 : 진짜 히치하이커는 엄지를 들지 않는다
6화 : 꿈을 강요하는 사회
7화 : 일출 보러 가다가 퇴사결심
8화 : 새장 속의 새는 새가 아니다(Brunch Editor's pick)
9화 :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10화 : 사직서를 준비하는 네가 알면 좋을 세 가지
2부 - 소상공인 라이프 소상히 알려드립니다.
11화 : 가라앉을 것인가 헤엄칠 것인가
12화 : 고객관리의 핵심은 메아리다
13화 : 그대, 존경받아 마땅한
14화 : 네비 있으세요?
15화 : 이 길로 가는 게 제대로 가는 걸까
16화 : 행복하자. 아프지말고.
17화 : 영민할 것인가 따뜻할 것인가
18화 : 우리 동네에서 가장 소중한 가게
19화 : 모범생 남 대리가 사업을 말아먹은 이유는
20화 : 칼퇴할 수 있고 주말근무 없으면 워라밸일까?(Brunch Editor's pick)
21화 : 왜 장사하는가?
22화 : 이 가게, 한 달에 얼마 벌까?
23화 : 사장님, 이렇게 팔아서 남아요?
24화 : 진상의 평범성(Brunch Editor's pick)
25화 : 가장 오래된 빵집, 이성당이 잘 나가는 이유
26화 : 유해진에게 배우는 싸가지경영
27화 : 무른 귤과 아버지
28화 : 백종원이 말하는 장사 마인드
29화 : 이 식당은 50분만 일하면 한끼가 무료입니다
감사인사 : 꿈 하나를 이루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이성당 사장님을 만났어요)
30화 : 성심당은 파리바게뜨가 부러울까?
31화 : 그 자켓을 사지 말라던 파타고니아의 오랜 진심
감사인사 : 또 하나의 꿈이 이뤄졌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감사합니다
35화 : 그렇게 마트가 된다
36화 : 가족같이 일하기 vs 가족이랑 일하기
37화 : 우리 동네 가장 소중한 가게가 되는 장사법
38화 : 현직 마트 삼촌입니다. 질문 답변드립니다
39화 : 군산에서 장사한다는 것
40화 : 사업... 나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