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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욱 Jun 11. 2018

기름집 김 씨는 왜 퇴사 후 마트 삼촌 김씨가 되었을까

오빠랑... 지게차 타러 갈래?

Professional Businessman이 되고 싶습니다

 청운의 꿈을 안고 정유사에 입사했을 때, 입사 축하 자리에서 언제나 그렇듯 임원은 내게 물어왔다

임원 : 김경욱 씨는 회사에서 뭐가 되고 싶어요?
나 : Professional Businessman이 되고 싶습니다.

그때 내게 Professional Businessman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모습은 이랬다. 공항에서 멋지게 발표자료를 준비한다. 남들이 다 잠든 비행기에서도 혼자 고뇌에 차있다. 긴장감이 흐르는 PT 현장. 자신감 넘치는 발표가 끝난다. 외국인 Client가 웃으며 악수를 청한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헛웃음 나는 모습이지만, 그때의 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실제로 회사에서 그런 경험을 해볼 수도 있었다. 나름대로 꿈에 그리던 모습이 현실이 되었으니 어딘가 모르게 뿌듯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큰 게 하나 빠진 느낌이 들었다. 내가 이 회사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건 알겠는데. 과연 Professional 하게 일하고 있는 게 맞나? 


아니. 오히려 관료제 조직 속에서 타성에 젖어하던 대로만 일을 하고 있었다. 실제 Business와 무관하게 숫자를 마사지해서 임원이 원하는 그림을 그렸다. 보고를 위한 보고를 하고 회의가 길어질수록 회의만 늘어갔다. 사실 어느 직장인이나 입사를 하고 나면 똑같이 느끼는 고민이었다. 선배들도 나 같은 시절을 거쳤다고 한다.


글쎄... 내가 오래 산 건 아니지만, 여태까지의 내 인생은 이렇지 않았다. 회사를 더 다니다가는 '나다움'을 지키기 어렵겠다는 것, 그리고 눈이 반짝이는 사람이 아니라 동태눈을 가진 사람이 될 것 같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멋있음과 허명

허명의 껍질을 벗으면 겸손해진다. 겸손해지면 절실해진다. 절실함으로 파고들 때 자신의 문제점을 찾게 되고 해결책을 찾게 된다.

꼴찌를 일등으로 - 김성근

그래, 내가 취해있었던 것은 허명(虛名)이었다. 알맹이가 아니라 껍데기였다. 내게 있어서 Professional의 핵심은 그럴듯한 껍데기로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단단한 알맹이를 기반으로 언제 어디서든 매력적인 시장가치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당시 즐겨보던 티비프로의 한 장면을 보다가 머리가 띵해졌다. 최연승이란 한의사가 탈락의 시점에서 당시 대학생이었던 오현민을 보며 '나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라고 말하며 눈물 흘리는 이 장면.

실제로 회사에서 시니어 레벨의 선배님들께 가장 많이 듣던 말도 '나도 한때는 너 같은 시절이 있었는데...'였다. 말끝이 흐려지는 걸 봤을 때 석연찮은 아쉬움이 묻어있음은 분명했다. 선배들이 그런 말을 할 때면 내가 언젠가 나중에 오늘을 돌아보며 '옛날엔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라고 후회하기 싫었다. 지금 퇴사하지 않으면 분명히 오늘을 후회할 것 같다고 느껴졌다. 대기업이라는 허명에 더 익숙해질 것 같았다. 회사 속의 내가 나답지 않다고 느껴졌다. 내 색깔을 잃고 싶지 않았다. Businessman이 되고 싶었지 월급쟁이가 되고 싶지 않았다.


위험하게 살아라!(Gefährlich leben)

“내 말을 믿어라.
실존의 가장 커다란 결실과 향락을 수확하기 위한 비결은
‘위험하게 사는 것!(Gefährlich leben)’이다.”
-니체-

니체는 제대로 살려면 위험하게 살라고 했다. 생각을 거듭하다 보니 안정성과 가능성은 pay-off관계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안정적이면 안정적인 삶을 살아갈수록, 내게 허락된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못했다.

이 회사를 계속 다니면 내 인생은 안정적일 수 있지만, 10년 뒤 미래의 나는 김 과장 이외에 달리 그려지지 않았다. 이런 안정적인 환경에서 10년을 보낸 후 그때도 지금처럼 시장가치를 유지할 자신이 없었다. 적당한 때에 적당히 결혼해서 적당한 곳에 집을 얻고 적당한 취미생활을 하며 적당히 삶에 찌들어가는 그런 모습이 내 미래일 것만 같았다. 적당히 살고 싶지는 않았다. 안정적인 김 과장보다 가능성이 열려있는 내가 되고 싶었다. 오늘보다 내일이 기대가 되는 사람. 지금 하는 일, 혹은 지금까지 한 일보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더 길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위험한 삶을 살아야만 했다.

그래서?

그래서 나는 소상공인이 되기로 했다. 보통 다들 퇴사 후 거창한 로켓이 되기를 꿈꾸거나, 전 세계를 누비는 자유로운 여행자를 꿈꾼다. 하지만 나는 너무 거창하고 뜬구름 잡는 무언가를 좇기보다 작지만 확실하게 비즈니스를 만들어 내는 게 Professional Businessman으로 가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했다. 전통적인 분야에서도 온전하게 비즈니스를 만들어 냈을 때 로켓이 될 수 있는 내공을 갖추고 여유를 내서 자유로운 여행자도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활용할 자원이 많은 회사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는 것보다 진짜 바닥에서 소상공인으로 시작해서 처음부터 온전한 비즈니스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진짜 Professional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실 거창한 무언가를 하려면 결국 '돈'이 문제더라.. 사실 돈부터도 좀 벌어야 했다.)



나는 마트를 시작했다

오픈기념 경품행사에 모인 고객들

마트는 아주 친숙하고 전통적인 비즈니스다. 그리고 매일 먹는 먹거리가 제품의 주가 되기 때문에 가장 생활에 밀접해있는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다. 사람들의 먹거리, 생필품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 때문에 경기 영향도 비교적 덜 받고 한 방에 큰돈은 못 벌더라도 꾸준히 돈은 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소문이 사실인지 검증하기 위해 중소규모 마트들의 감사보고서를 전자공시시스템(dart.fss.or.kr)에서 찾아보기 시작했다. (* 전자공시시스템에는 주요 대기업뿐만 아니라 소기업들 감사보고서도 공시된다) 여러 중소규모의 마트들의 재무결과를 정리한 결과. Tech기반 스타트업 같은 폭발적인 영업이익률을 기록하진 못해도 분명히 중소형 규모의 마트들은 꾸준히 돈을 벌고 있었다. 이들 레퍼런스를 참조하여 대략적인 추정손익계산서를 작성하고 여러 시나리오를 그려봤다. 사업성이 분명하다면(=돈이 벌린다면) 뛰어들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 돈이 된다면 일단 해보자

나는 그렇게 본격적인 소상공인의 삶으로 진입했다. 안정적인 회사를 뛰쳐나온 순간 안정성의 문은 굳게 닫혔지만 가능성의 문은 동시에 활짝 열렸다. 소상공인으로서 살아가며 생각지도 못한 다이내믹한 이벤트도 참 많았고 어디서 말로만 듣던 일들이 눈 앞에 벌어지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하기도 했다. 이제는 내 살아생전 내가 직접 운전할 거라 생각지도 못했던 지게차를 익숙하게 운전하기도 한다.

오빠랑 지게차 타러갈래?

여러 낯선 경험들이 새로운 만큼 재무, 인력, 영업, 마케팅 심지어 고객 컴플레인까지 이 곳에서 벌어지는 A to Z를 모두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 되었기에 정말 힘들 때도 많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과거보다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비행기에서 고뇌에 차다가 외국인 Client와 웃으며 악수를 나누지는 않지만, 매일매일 이 지역의 새로운 고객들을 만나고 포도 한 박스, 수박 한 통의 Deal을 만든다. 최소한 회사에 있을 때보단 Professional Businessman을 향해 조금씩 조금씩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 든다. 광화문 한복판에서 근무했던 2년 7개월보다도 지난 소상공인 2년 동안 훨씬 더 Professional 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소상공인으로서 살아가는 지금이 좋다. 내일 또 지긋지긋한 회사에 좀비처럼 출근하는 기름집 김씨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일 그리고 또 모레 어떤 내가 될지 불확실한 지금의 마트 삼촌 김씨가 좋다.


Executive Summary : 
오빠랑 지게차 타러 갈래? (안정적 기름집 김 씨는 왜 불안정적인 마트삼촌 김씨가 되었을까) 

1부 - 대퇴사시대

0화 : 대퇴사시대, 도대체 왜 퇴사하세요?

1화 : Professionalism, 멋있잖아요

2화 : 노인의 얼굴에 나이테 대신 동심이 내린 이유

3화 : 내가 만난 '난놈'들의 공통점

4화 : 진짜 히치하이커는 엄지를 들지 않는다

5화 : 틀린 인생은 없어 다르게 살아도 괜찮아

6화 : 꿈을 강요하는 사회

7화 : 일출 보러 가다가 퇴사결심

8화 : 새장 속의 새는 새가 아니다 (Brunch Editor's Pick)

9화 :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10화 : 사직서를 준비하는 네가 알면 좋을 세 가지


2부 - 소상공인 라이프 소상히 알려드립니다.

11화 : 가라앉을 것인가 헤엄칠 것인가

12화 : 고객관리의 핵심은 메아리다

13화 : 그대, 존경받아 마땅한

14화 : 네비 있으세요?

15화 : 이 길로 가는 게 제대로 가는 걸까

16화 : 행복하자. 아프지말고

17화 : 영민할 것인가 따뜻할 것인가

18화 : 우리 동네에서 가장 소중한 가게

19화 : 모범생 남 대리가 사업을 말아먹은 이유는

20화 : 칼퇴할 수 있고 주말근무 없으면 워라밸일까? (Brunch Editor's Pick)

21화 : 왜 장사하는가

22화 : 이 가게, 한 달에 얼마 벌까?

23화 : 사장님, 이렇게 팔아서 남아요?

24화 : 진상의 평범성(Brunch Editor's pick)

25화 : 가장 오래된 빵집, 이성당이 잘 나가는 이유

26화 : 유해진에게 배우는 싸가지경영

27화 : 무른 귤과 아버지

28화 : 백종원이 말하는 장사 마인드

29화 :  이 식당은 50분만 일하면 한끼가 무료입니다

감사인사 : 꿈 하나를 이루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이성당 사장님을 만났어요)

30화 : 성심당은 파리바게뜨가 부러울까?

31화 : 그 자켓을 사지 말라던 파타고니아의 오랜 진심

감사인사 : 또 하나의 꿈이 이뤄졌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감사합니다

32화 : 어쩌다 대기업 그만두고 마트를 하게 됐어요?(Brunch Editor's Pick)

33화 : 울었다. 밥을 먹다 울었다.

34화 : 쿠팡의 시대, 동네마트 생존전략

35화 : 그렇게 마트가 된다

36화 : 가족같이 일하기 vs 가족이랑 일하기

37화 : 우리 동네 가장 소중한 가게가 되는 장사법

38화 : 현직 마트 삼촌입니다. 질문 답변드립니다

39화 : 군산에서 장사한다는 것

40화 : 사업... 나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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