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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욱 Jun 22. 2018

진짜 히치하이커는 엄지를 들지 않는다

위험하게 살아라

솔직히 고백하건대 내게 니체는 90년대 만득이 시리즈나 최불암 시리즈에서 처음 접한 이름이었다. 아는 사람은 아는 유-머계의 고전이다.

고전이란 누구나 들어는 봤지만 정작 읽은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라고 한다. 내게 니체도 그랬다. 코흘리개 어린이 시절 동네 문방구(그래 알파 문구점이 아니라 문방구!)에서 사 왔던 500원짜리 만득이 시리즈 덕분에 니체를 처음 알게 됐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을 뿐, 그 이상 뜻에 대해 궁금해본 적도 니체의 책을 읽은 적도 없었다. 꽤 많은 세월이 지나 회사원이 되어 우연히 마주친 유튜브를 통해 겨우 그 뜻을 알 수 있었다.


이진우 - 니체, 신이 죽은 시대를 말하다 1강(16:12)

“내 말을 믿어라.
실존의 가장 커다란 결실과 향락을 수확하기 위한 비결은
‘위험하게 사는 것!(Gefährlich leben)’이다.”
-니체-

니체는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라고 주문했다. '신이 죽었다'라는 것은 당시까지의 절대적 가치이던 신이 죽었다는 것이고 이는 더 이상 신이 너의 삶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너 스스로 삶을 결정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내가 그리도 좋아하는 여행조차 이제는 1년 365일 중 허락받은 연차 16일 내에서, 그것도 회사 업무에 지장이 가지 않게 합의되는 선에서 잘라서 가야만 하는 것이 큰 족쇄처럼 느껴지던 내게 빛과 같은 가르침이었다. 니체가 외쳤던 '위험하게 살아라'는 말은 대충 '살아지는 삶'이 아니라 삶의 주인으로서 삶을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실험적이고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삶'을 살라는 의미였다. 당시의 나는 안정적인 회사생활과 회사의 규칙, 규정에 맞춰서 살아지는 대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민하던 중이었다. 나도 외치고 싶었다. '회사는 죽었다'.


'위험하게 살아라'는 내 인생을 뒤흔든 한 마디였다.



진짜 히치하이커는 엄지를 들지 않는다

위험하게 살아라는 말의 참 뜻을 알고 나니 과거 내 삶이 얼마나 위험했는가 기억났다. 내 인생에 가장 위험하게 살았던 순간 중 하나는 히치하이킹으로 유럽여행을 하던 때였다. 히치하이킹을 할 때의 나는 분명 대충 살아지는 대로 산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위험하게 살 것을 선택했었다.


언제나 그렇듯 히치하이킹은 여행자들의 로망이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한 대학생 때에는 더더욱 그렇다. 또 언제나 그렇듯 로망과 현실은 꽤나 거리감이 있다. 아일랜드에서 히치하이킹으로 여행을 하겠다고 현지 친구들에게 얘기를 했을 때 반응은 '너 돌았냐?'였다. 반대하는 친구들의 논리는 당연했다. 세상이 동화 속처럼 아름답지만은 않다. 히치하이킹으로 여행을 하다가 범죄의 타깃이 되기 너무 쉽다 등('성선설' 증명하러 히치하이킹 나선 여성, 3주 만에 주검으로 발견)히치하이킹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정말 많았다. 이성적으로는 분명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자꾸 하지 말라니까 더 하고 싶은 청개구리 심보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니들 다 못한다고 했지? 내가 안전하게 하는 거 보여줄게'같은 마음도 들었고 안전에 관해서도 몇 가지 규칙(히치하이킹을 하게 되면 친구에게 어디서 어떤 차를 탔는지 공유하기, 밤늦게 히치하이킹하지 않기 등)만 제대로 지키면 어느 정도는 확보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호기롭게 가방을 메고 집 밖으로 나섰다. 음... 어디서부터 히치하이킹을 해야 하지? 도시 한 복판부터는 어려울 것 같으니 버스로 이동할 수 있는 최대한 가서 시도해보자. 시골 같은 종착지에 도착하자 호기롭게 영화에서 본 것처럼, 멋지게 엄지를 딱! 치켜올렸다. 뭔가 진짜 여행자가 된 듯한 묘한 뿌듯한 마음과 함께 기대감으로 가슴이 두근 거렸다. 

30분이 지났다.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다. 차들은 쌩쌩 지나가기만 할 뿐이다. 1시간이 지났다. 영화에서는 금방 잡는 거 같던데... 팔을 좀 더 열심히 흔들어야겠다. 2시간이 지났다. 만약에 이게 영화였다면 히치하이킹은 성공도 못하고 영화가 끝날 시간이었다. 히치하이킹은커녕 속도를 줄여 관심을 보이는 사람 조차 없었다. 방법을 바꿔야 했다. 머리를 쓰자. 아, 그래 행선지를 쓰면 좀 낫지 않겠어? 준비해온 스케치북에 쓱쓱 행선지를 적었다. 

글씨 한 번 기가 맥히게 썼다. 혼자서 벌써 만족하고 있었다. 호기롭게 다시 길 위에 섰지만 그래도 반응이 없다. 해는 점점 저물어 가는데 초조하다. 히치하이킹은 범죄의 표적이 되니 마니 한 소리는 모두 헛소리였다. 애당초에 히치하이킹 자체가 잘 되질 않는다. 친구 놈들 나쁜 놈들 지들이 안 해봤으니까 이렇게 어려지도 몰랐지.


일단은 가만히 서있기는 뭐해서 대충 이정표 보면서 걸어오긴 했는데 점점 더 시골길만 나올 뿐 사람의 흔적이 드물어진다. 아침의 당당했던 기세는 서서히 없어져가고 있었다. 걷다 보니 유명하진 않지만 나름 관광지 같아 보이는 산이 나왔다. 에이 히치하이킹도 안되는데 한 번 구경이나 해야지 하고 산 쪽으로 발길을 향했다. 무슨 아일랜드에서 제일 오래된 나무든가 군락이든가 그랬던 거 같은데 관심 밖이었다. 오직 어떻게 하면 히치하이킹을 할 수 있을까 생각뿐이었다. 그러던 중 어떤 부부와 눈이 마주쳤고 간단한 눈인사를 했다. 부인께서 발을 헛디딜뻔한 걸 살짝 도와드렸는데 발음이 아이리쉬는 아닌 것 같았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산을 함께 올랐다. 독일에서 온 부부고 아일랜드 여행을 하고 있다고. 자연스럽게 나도 여행 중이고 히치하이킹을 하려고 하는데 난생처음이라 이거 너무 어렵다고 자연스레 하소연을 하게 됐다. 부인께서 말씀하셨다. '그럼 우리 여기 보고 어디(=내 행선지) 갈건데 태워줄까?'


세상에. 히치하이킹은 이렇게 하는 거였다. 엄하게 도로 위에서 손을 흔들 시간에 이렇게 얼굴 맞대고 얘기를 했어야 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됐지만 히치하이킹은 도로에서 엄지를 치켜세워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주유소나 주차장 같은 차를 세울 수 있는 곳에서 간단한 Small talk이후에 정중히 요청하는 것이 이 바닥의 도리였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놈이 엄지를 치켜세우고 있다고 해서 차를 세워 그를 환영할 가능성은 너무 적었다. Small talk은 히치하이커 입장에서도 안전에 도움이 된다. 선택지 없이 길에 세워준 차를 무작정 타는 것보다 최소한 이 놈이 범죄자인지 아닌지 간이라도 보면서 선택할 여지라도 있으니 말이다. 그제야 나는 진짜 히치하이커는 엄지를 치켜세우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2011년 당시의 역사적인 1호 히치하이킹 인증샷. 독일 천사부부는 여전히 행복하시기를

분명 히치하이킹은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여행 방법은 아닐 있다. 하지만, 내가 그런 이유로 히치하이킹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면 평생 히치하이킹은 엄지를 치켜세워야만 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일을 해결하려 할 때도, 히치하이킹 이전의 나처럼 엄지부터 치켜세우거나 행선지를 쓱쓱 써서 기다리고 있었을지 모른다. 독일 부부가 내게 준 가르침은 단순히 '어떻게 히치하이킹을 잘 할 것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할 것이냐'이기도 했다. 겉으로 보기엔 위험한 짓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나를 성장하게 하는 짓이었다.


위험하게 살아가고 싶은 나, 정상인가요?


이제는 그저 평범한 회사원이 되었지만, 입사 전까지만 해도 내 삶은 꽤나 다이내믹하고 위험했다고 자부한다. 현지 친구가 장기 털린다고 하지 말라고 그렇게도 뜯어말리던 히치하이킹으로 여행을 하면서 진짜 히치하이커는 어떻게 히치하이킹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 과정이 아주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기에 내게 깊이 새겨진 가르침이다.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말하는 짓들은 히치하이킹 때처럼 실제로 해보기 전까지는 진짜 위험한지 아닌지 조차 모르는 것들이 많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위험하다고 알려 짓'이었지 정말 '위험한 짓'은 아닐 수도 있었다. 히치하이킹의 가르침처럼 이런 짓을 과감히 도전할 때 기존에 내가 알던 것과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다른 곳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었다. 매번 같은 방식으로 질문하고 같은 방식으로 답을 찾으려고 할 때는 절대로 얻을 수 없는 해결방법이다. 무식할 정도로 위험한 길들을 고집했던 이유는 위험한 짓을 했을 때 제대로 배우고 내 세계가 확장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깨지지 않고 있다면, 위험하지 않다고 느낀다면 대체로 성장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니체의 위험하게 살아라는 외침은 과거의 잊고 있던 나의 모습과 회사에 삶을 맞기는 살아지고 있는 나를 되돌아보게 해주었다.


결론에 한 발더 가까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회사는 죽었다'



Executive Summary : 


1부 - 대퇴사시대
오빠랑 지게차 타러 갈래? (안정적 기름집 김 씨는 왜 불안정적인 마트삼촌 김씨가 되었을까) 

0화 : 대퇴사시대, 도대체 왜 퇴사하세요?

1화 : Professionalism, 멋있잖아요

2화 : 노인의 얼굴에 나이테 대신 동심이 내린 이유

3화 : 내가 만난 '난놈'들의 공통점

4화 : 진짜 히치하이커는 엄지를 들지 않는다

5화 : 틀린 인생은 없어 다르게 살아도 괜찮아

6화 : 꿈을 강요하는 사회

7화 : 일출 보러 가다가 퇴사결심

8화 : 새장 속의 새는 새가 아니다 (Brunch Editor's Pick)

9화 :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10화 : 사직서를 준비하는 네가 알면 좋을 세 가지


2부 - 소상공인 라이프 소상히 알려드립니다.

11화 : 가라앉을 것인가 헤엄칠 것인가

12화 : 고객관리의 핵심은 메아리다

13화 : 그대, 존경받아 마땅한

14화 : 네비 있으세요?

15화 : 이 길로 가는 게 제대로 가는 걸까

16화 : 행복하자. 아프지말고

17화 : 영민할 것인가 따뜻할 것인가

18화 : 우리 동네에서 가장 소중한 가게

19화 : 모범생 남 대리가 사업을 말아먹은 이유는

20화 : 칼퇴할 수 있고 주말근무 없으면 워라밸일까? (Brunch Editor's Pick)

21화 : 왜 장사하는가

22화 : 이 가게, 한 달에 얼마 벌까?

23화 : 사장님, 이렇게 팔아서 남아요?

24화 : 진상의 평범성(Brunch Editor's pick)

25화 : 가장 오래된 빵집, 이성당이 잘 나가는 이유

26화 : 유해진에게 배우는 싸가지경영

27화 : 무른 귤과 아버지

28화 : 백종원이 말하는 장사 마인드

29화 :  이 식당은 50분만 일하면 한끼가 무료입니다

감사인사 : 꿈 하나를 이루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이성당 사장님을 만났어요)

30화 : 성심당은 파리바게뜨가 부러울까?

31화 : 그 자켓을 사지 말라던 파타고니아의 오랜 진심

감사인사 : 또 하나의 꿈이 이뤄졌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감사합니다

32화 : 어쩌다 대기업 그만두고 마트를 하게 됐어요?(Brunch Editor's Pick)

33화 : 울었다. 밥을 먹다 울었다.

34화 : 쿠팡의 시대, 동네마트 생존전략

35화 : 그렇게 마트가 된다

36화 : 가족같이 일하기 vs 가족이랑 일하기

37화 : 우리 동네 가장 소중한 가게가 되는 장사법

38화 : 현직 마트 삼촌입니다. 질문 답변드립니다

39화 : 군산에서 장사한다는 것

40화 : 사업... 나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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