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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욱 Jul 07. 2018

앙코르와트에서 만난 퇴사결심

도저히 안 되겠다 떠나자

시선을 잃은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치는 8시 40분 종각역에서 내게 유일한 숨구멍이 되어 준 것은 여행계획이었다. 갑갑한 현실을 훌훌 털고 잠시나마 현실을 외면할 수 있어서 좋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보다 정확히 하자면 여행을 떠나 낯선 땅에 도착하는 상상을 할 때면 예전 여행할 때의 나로 돌아간다는 기분 때문에 더 좋았던 것 같다. 나는 분명 히치하이킹으로(4화 참고), 카우치서핑으로(5화 참고) 흔들리는 불안을 자초했고 위험한 삶을 살았다. 그 덕분에 내 세계가 확장될 수 있었고 인생이란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때 여행의 맛을 잊을 수 없었던 나는 항상 모험을 찾아 여행을 떠났다. 어설픈 인디아나 존스라도 된 것처럼, 나의 여행은 항상 휴양이라기보다는 탐험에 가까웠다. 대기업병에 염증이 곪아 터져버린 내게 소독제를 부어줘야만 했다. 그렇게 회사에서 캄보디아 씨엠립으로 떠나는 비행기 티켓을 발권했다.


씨엠립에서 반드시 해야 할 것

씨엠립은 앙코르와트의 도시다. 그 중에서도 반드시 해야할 것은 앙코르와트의 일출 보기였다. 떠나기 전에는 전혀 몰랐던 사실이었는데 앙코르와트는 일출이 유명했다. 아마도 서양 관광자들의 오리엔탈리즘이 투영된 것 같기도 했다. 아시아 사람인 내가 봐도 앙코르와트가 신비스러운데 서양 사람들은 오죽할까. 거기다 일출과 사원이라니! (안개까지 곁들여진다면 그 신비로운 분위기는 오죽할까!) 

사진들을 보다 보니 왜 일출이 가장 유명한지에 대해서 이해가 갔다. 하지만 다른 여행자와 얘기를 하다 보니 일출의 진실을 알게 됐다. 그는 실제로 일출을 보러 갔다 왔는데 그거 다 사진빨에 포토샵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빨이야 뭐 이미 다년간 소개팅 경력으로 Discount해서 볼 수 있다고 대답했더니 그게 아니라며 자신이 찍은 사진을 보라고 했다.

그래 역시 세계적인 관광지 답구나. 참 징그럽게도 많구나. 근데 어딘가 내가 아침에 종각역에서 매일 보는 모습 같기도 하네. 그때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그 여행자가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일출 보기 좋은 스팟이 어디냐면.... Srah srang이라는 곳이야. 아, '이 약 한 번 잡솨봐'같은 언변은 무엇이란 말인가. Srah srang에서 목욕을 하면 관절염이 낫는다고 해도 믿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나는 매일 아침 종각역 6번 출구를 나와 즐비한 찌라시들을 이겨낸 사람이다. 나는 겨우 그런 사탕발림에 벌써 넘어가지 않겠다. 곧바로 구글에 Srah srang 일출을 검색했다.


고맙다 여행자여. 나는 내일 Srah srang으로 간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던 일출을 보러 가는 길

일반적으로 일출 시각은 5시 40분 정도쯤이다. 그 의미는 최소 5시 30분까지는 일출 장소에 도착해 있어야 제대로 된 일출을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씨엠립 시내에서 앙코르 와트까지는 약 20분, 그리고 앙코르 와트에서 Srah Srang까지는 또 추가로 약 10분 정도가 걸렸다. 그 말은 최소 5시에는 일어나 출발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와.. 좀 빡센데.. 하지만 지도를 보니 가는 길 자체가 복잡하거나 어려울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좋아 드디어 간다 Srah srang. 설레는 마음으로 조금 일찍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새벽 4시 반, 일찍 일어나 눈을 뜨니 밖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깜깜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이었으니까. 그래서 누군가 해가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했던 건가 싶을 정도로 깜깜했다. 분명히 일출 보러 가는 사람이 꽤 많다고 했는데 아직 도로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곧 앙코르 와트에 가까워질수록 툭툭이들이 조금씩 늘고 있었다. 늘어나는 툭툭이를 보며 '아 제대로 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20분을 달려 드디어 앙코르 와트에 가까워져 갔다. 아까 한산하던 도로는 온데간데 없었다. 도대체 이 많은 툭툭이들은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씨엠립 전 지역에 있는 툭툭이들은 오늘 총궐기대회라도 하는 건지 정말 많은 툭툭이들이 모였다. 아직 해가 뜨려면 시간이 꽤 남았는데도 북적북적했고 빵빵거리는 소리는 러시아워를 방불케 했다.


앙코르 와트로 향하는 툭툭이들은 동그라미 지점에서 모두 좌회전을 해서 갔다. Srah srang을 향하는 나는 모든 툭툭이들을 뒤로한 채 우회전을 했다. 분명 동그라미 지점에서 난 왠지 모를 승리감이 들었다. '이 멍청이들 너희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사람 구경만 하게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포장도로가 끝났다. 응? 이상한데? 뭐지? 길을 잘못 들었나. 일단 조금 더 가보기로 한다. 하지만 흙도로만 이어진다. 영 아니다 싶어 왔던 길을 다시금 되돌아가 본다. 다시 동그라미 지점이다. 분명히 Srah srang이정표는 우측을 가리키고 있었다. 잠시 전의 이유모를 승리감이 당혹감으로 빠르게 바뀌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저 툭툭이들을 따라가야 할까. 오늘의 멍청이는 내가 되는게 아닐까. 잠시 생각해봤다. 오늘 난 무조건 Srah srang을 향해 끝까지 간다. 일출을 보지 못해도, 못먹어도 GO한다! 서둘러 다시 오토바이를 돌렸다. 꽤 갔던 길을 다시 돌아온 터라 시간을 많이 허비했다. 곧 해가 뜨려고 하고 있었다.


오토바이로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끊임없이 덜덜 덜덜 거리는 바람에 손도 엉덩이도 함께 덜덜 덜덜 떨리고 있었다. 어느새 도로 위를 달리는 건 나와 칠흑 같은 어둠 속 앞을 밝히는 헤드라이트뿐이었다. 그래도 Srah srang을 향해 달리는 동행이 한 둘은 있을 줄 알았는데 나뿐이라니 뭔가 이상했다. 그렇게 좋은 곳이라면 누군가는 함께 달려야 하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어디선가 길거리를 배회하는 개들이 짖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컹컹! 으르렁 컹컹! 아직 해가 뜨지 않았으니 이 놈들이 가까이 있는지 소리로밖에 알 길이 없다. 소리로 봐 선 한 둘이 아니다.  동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인데 조금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이대로 가다가 길 한 번 잘못 들면 길거리 미친개에게 물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그림이다. 게다가 더 무서운 건 그런 사고가 나더라도 이 낯선 땅에 그걸 알아줄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와씨... 이거 아닌데 돌아갈까. 불안감이 들었지만 이제 와서 되돌아 갈 수는 없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무조건 달려 끝장을 보기로 했다. 조금씩 세상은 밝아져 가고 있었다. 곧 해가 뜬다. 얼른 Srah srang을 찾아야 한다. 조금 더 가다 보니 조그마한 동네가 나왔다. 반가운 마음에 길을 좀 물어보려 했더니 사람은 없고 개들만 있다.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게 영 불안하다. 개들에게 원망을 가득 담은 시선만 던진 채로 떠난다.


정말 불안하다.......


제대로 찾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때.


 

드디어 만났다. Srah srang.

Srah srang은 분명히 아름다웠다. 그곳에 도착한 건 내가 첫 번째였다. 그리고 내 뒤로 서양인 한 커플만 왔을 뿐이다. 우리들은 눈인사만 조용히 나눈 채 Srah srang에서 아름다운 일출을 아주 평화로우면서도 신비한 분위기 속에서 만끽할 수 있었다. 뺨 끝을 스치는 바람까지 상쾌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일출이었다.


Srah srang을 가는 방식과 내가 살아온 방식

해가 온전히 뜰 때까지 나는 Srah srang에 계속 있었다. 그리고 여기까지 오는 길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됐다. 그래 어쩌면 내가 살아온 인생은 사실 오늘 Srah srang에 다다른 방식과 유사하지 않았나? 대부분의 친구들이 대중교통과 호스텔을 미리미리 예약할 때 히치하이킹에 도전하고 카우치서핑으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던 것처럼. 툭툭이들이 모두 좌회전을 할 때도 나는 우회전을 했었다. 분명 그 길은 많은 이들이 가보지 않은 길이었기에 불명확하고 불안한 길이었다. 나 스스로 가면서도 이 길이 무조건 맞아 라고 확신할 수도 없었고 절대 안전하고 증명됐다고 할 수 없는 길이었다. 가다가 죽어도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그런 길. 내가 좋아서 스스로 자초한 불안이었다. 하지만 그 길을 선택한 덕분에 결국 난 Srah srang에 다다를 수 있었고 대다수의 관광객들은 사람에 치이며 실망할 때 나는 고즈넉한 아침을 만끽하는 여행자가 될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은 흔들리는 불안을 자초하며 항상 우회전을 선택했다. 우회전을 후회하지 않는 인생이었고 또 우회전으로 얻은 여러 경험은 내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회사에서의 내 삶은 어땠을까. 분명 안정적인 삶이었다. 회사를 다니는 한 우리나라 전체 평균으로 봤을 때는 부족하지 않은 삶을 보장해주는 회사였다. 회사의 선배들, 그리고 동기들도 대부분 안정적인 삶을 살기 원했다. 그렇게 살기 원한다면 충분히 그렇게 살 수 있었다. 하지만 회사에서의 삶은 분명 아쉬웠다. 우회전하고 싶은 본성을 숨겨가며 좌회전해야 하는 삶이었다. 나는 흔들리는 불안을 자초해서라도, 일출을 못 보는 한이 있더라도 새로운 길을 가보고 싶었다. 남들이 다 가는 뻔한 길이 아니라 가보지 않은 길도 가보고 싶었다. 그제야 머릿속이 깨끗해졌다. 그래, 회사에서의 삶과 나의 삶은 맞지 않는다. 회사가 구려서가 아니다. 분명 회사는 대기업병에 걸려있긴 하지만 여러 가지 기회가 있는 곳이다. 단지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과 나의 삶의 방향이 제대로 맞지 않았을 뿐이었다. 나의 삶은 계속 우회전하고 있었는데 회사는 좌회전을 가리키고 있었다.


다시 한번 Srah srang을 보았다. 맑아진 내 머릿속만큼 푸른 하늘을 맑게 비추고 있었다.

그래 오늘 여기서 확실히 결심했다. 퇴사한다.


Executive Summary :
오빠랑 지게차 타러 갈래? (안정적 기름집 김 씨는 왜 불안정적인 마트삼촌 김씨가 되었을까) 


1부 - 대퇴사시대

0화 : 대퇴사시대, 도대체 왜 퇴사하세요?

1화 : Professionalism, 멋있잖아요

2화 : 노인의 얼굴에 나이테 대신 동심이 내린 이유

3화 : 내가 만난 '난놈'들의 공통점

4화 : 진짜 히치하이커는 엄지를 들지 않는다

5화 : 틀린 인생은 없어 다르게 살아도 괜찮아

6화 : 꿈을 강요하는 사회

7화 : 일출 보러 가다가 퇴사결심

8화 : 새장 속의 새는 새가 아니다 (Brunch Editor's Pick)

9화 :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10화 : 사직서를 준비하는 네가 알면 좋을 세 가지


2부 - 소상공인 라이프 소상히 알려드립니다.

11화 : 가라앉을 것인가 헤엄칠 것인가

12화 : 고객관리의 핵심은 메아리다

13화 : 그대, 존경받아 마땅한

14화 : 네비 있으세요?

15화 : 이 길로 가는 게 제대로 가는 걸까

16화 : 행복하자. 아프지말고

17화 : 영민할 것인가 따뜻할 것인가

18화 : 우리 동네에서 가장 소중한 가게

19화 : 모범생 남 대리가 사업을 말아먹은 이유는

20화 : 칼퇴할 수 있고 주말근무 없으면 워라밸일까? (Brunch Editor's Pick)

21화 : 왜 장사하는가

22화 : 이 가게, 한 달에 얼마 벌까?

23화 : 사장님, 이렇게 팔아서 남아요?

24화 : 진상의 평범성(Brunch Editor's pick)

25화 : 가장 오래된 빵집, 이성당이 잘 나가는 이유

26화 : 유해진에게 배우는 싸가지경영

27화 : 무른 귤과 아버지

28화 : 백종원이 말하는 장사 마인드

29화 :  이 식당은 50분만 일하면 한끼가 무료입니다

감사인사 : 꿈 하나를 이루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이성당 사장님을 만났어요)

30화 : 성심당은 파리바게뜨가 부러울까?

31화 : 그 자켓을 사지 말라던 파타고니아의 오랜 진심

감사인사 : 또 하나의 꿈이 이뤄졌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감사합니다

32화 : 어쩌다 대기업 그만두고 마트를 하게 됐어요?(Brunch Editor's Pick)

33화 : 울었다. 밥을 먹다 울었다.

34화 : 쿠팡의 시대, 동네마트 생존전략

35화 : 그렇게 마트가 된다

36화 : 가족같이 일하기 vs 가족이랑 일하기

37화 : 우리 동네 가장 소중한 가게가 되는 장사법

38화 : 현직 마트 삼촌입니다. 질문 답변드립니다

39화 : 군산에서 장사한다는 것

40화 : 사업... 나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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