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하고 돈 벌기 위해 내려온 군산
나는 군산에 살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군산이 고향인 것은 아니다. 군산에 오기 전까지는 서울 및 수도권을 벗어나지 않고 살았다. 군산은 순전히 장사를 하려고, 돈을 벌려고 하다 보니 어쩌다 오게 됐을 뿐이다. 특별한 관계라고 해봐야 2008년 전국 여행을 할 때 한 번 들러봤었다는 것 정도일까. 이성당에 언제 다시 올 줄 모른다고 무식하게 단팥빵을 먹던 그때만 하더라도 내가 10여 년 뒤 이성당에서 10분 거리에서 살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는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정유사에 근무를 하고 있었기에 연봉을 높이기 위한 이직을 한다면 국내 타 정유사가 아니라 아예 해외 정유사로 이직을 하는 것이 연봉을 더 올릴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여기서 말하는 해외 정유사는 순이익만 애플의 2배라는 영업이익 세계 1위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Aramco) 같은 중동 기반 정유사들을 말한다. 아람코의 급여조건은 아람코 5년이면 국내에서 20년 치를 번다는 소문이 돌정도로 파격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또 아람코 같은 중동 기반의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면 연봉 상승도 상승이지만 사우디에서의 근무환경이 워낙에 고립되어 있기 때문에 딱히 돈을 쓸 수도 없어 강제적으로 돈을 모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물론 아람코가 주로 채용하는 포지션이 주로 화공 엔지니어이기에 문돌이 출신에 기획 업무만 몇 년 해본 내가 실제로 사우디에 갈 수 있었을지는 별개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말이다.
돈을 더 벌 수 있다면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근무하는 것마저도 내게는 별로 상관이 없었다. 그러니 어딘가에 딱히 특별한 연고가 없더라도 돈을 더 벌 수 있다면 사우디든 울산이든 군산이든 그 어느 곳에 살든지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어느 곳이 되더라도 그곳이 국내라면 사우디보다는 그래도 더 나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돈이 전부는 아니다. 인류 역사상 수많은 지혜로운 사람들도 오랜 세월 동안 그렇게 말했다. 나 또한 사우디까지 가려고 마음먹었던 그 순간에도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쯤은 이론적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 돈이 다가 아니라는 진리에 다다르기 전까지는 단순히 그 문장을 아는 것만으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일단은 벌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벌기나 하고 그런 말을 하자는 마음으로 돈을 벌기 위해 군산에 내려왔고 장사를 시작했다. 그래서 장사를 처음 시작한 내게는 돈이 다였다.
장사는 돈이 전부가 아니란 걸 알게 해 준 군산
군산은 아직 정(情)이 살아있는 곳이었다. 사실 서울에서 살 때는 자본주의의 친절함은 느끼기 쉬워도 따뜻한 정은 느끼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군산에서는 말로만 듣던 정이란 게 바로 이런 것 아닐까 싶은 순간이 많았다. 군산은 동네가 좁아 웬만해서는 한 다리만 건너면 서로 다 안다. 그래서 그런지 서로가 서로를 대하는 방식이 서울보다 훨씬 더 친밀하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과 마주치지만 대부분은 나와 관계없는 NPC처럼 스쳐 지나가는 서울의 삶과 군산의 삶은 다를 수밖에 없다.
구체적인 한 사례를 들자면, 어느 날은 할인행사를 하는데 우리 측 실수로 특정 제품이 할인가가 아닌 정상가로 잘못 계산된 적이 있었다. 뒤늦게 어떤 고객분께서 말씀해주셔서 알 수 있었지 잘못했으면 우리도 놓칠뻔한 날이었다. 그 고객분은 그 상품을 꽤 많이 사 가셨기에 차액도 꽤 많이 발생했었다. 우리가 실수로 잘못을 했으니 다시 처리해드리겠다고 말씀드리고는 내가 직접 고객분의 집을 찾아갔다. 아무리 실수라고 하더라도 내가 고객 입장이었다면 엄청 짜증 나고 안 좋게 생각하면 속은 기분도 들었을 것 같았다. 화난 고객의 얼굴을 상상하며 무거운 마음으로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곧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졌다.
왜 실수를 하게 됐는지 자초지종을 설명드리려고 하자 괜찮다며 날도 더운데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다고 말하시면서 김치를 먹냐고 물어보셨다. 얼떨떨한 나는 당연히 먹는다고 했다. 그러자 그 고객분은 당신이 직접 담가 둔 김치라며 검은 봉지에 갓김치를 주섬주섬 담기 시작하셨다. 내친김에 이것도 맛있다고 먹어보라며 매실장아찌도 한 봉지 가득 담아주셨다. 너무도 감사했지만 동시에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당신을 번거롭게 하는, 나쁘게 보면 속이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실수를 했는데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김치를 나눠주시고 매실장아찌를 나눠주시다니.
서울이었다면 아마도 대부분의 경우 짜증스러운 반응을 보였거나 고객이 오해한 채로 이미 인터넷 어딘가에 나를 악덕업주로 비난하는 리뷰가 올라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혹 마음씨 좋은 분을 만난다 하더라도 이렇게 직접 만든 김치나 장아찌까지 나누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이 가득 담긴 갓김치와 매실장아찌의 맛이 기가 막히게 좋았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 사건이 있은 이후에도 그 고객분께서는 종종 샌드위치나 장미꽃차 같은 것들을 '그냥 하는 김에 좀 더 했어'라며 인심 좋은 웃음과 함께 가져다주셨다. 그 덕에 항상 나는 먹을 것, 마실 것 부자가 됐다. 무엇보다 그 고객과 단순히 서비스 제공자와 고객 이상의 관계를 맺었다. 더 이상 익명의 '고객'이 아닌 '김옥주 할머니'와의 관계가 시작됐다.
스스로를 반성하게 됐다
김옥주 할머니의 정이 넘치는 따뜻한 배려를 겪고 나자 스스로를 다시 한번 돌아보고 반성하게 됐다. 그동안 진심을 다해 접객을 하긴 했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계속 나도 알게 모르게 계산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평균 객단가보다 높은 고객, 낮은 고객을 구분했고 LTV(Life Time Value)를 계산했을 때 우리에게 득이 되는 고객, 득이 되지 않는 고객을 구분했다. 악성 컴플레인을 처리할 때마다, 사은품을 더 달라면서 막무가내로 빼앗아가는 사람을 볼 때마다 내가 입는 손실은 그렇게도 빨리 계산이 됐다. 스스로에게 아니라고 했지만 어쩌면 나는 고객 머리 위에 숫자를 계속 새기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계산기 같은 마음을 가진 나는 고객을 한 사람의 소중한 사람이라기보다는 그 사람이 지출하는 돈의 크기로만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삶의 많은 부분을 포기하고 군산에 내려왔다. 이 곳에서 나의 목적은 돈이었기에 가장 효율적으로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최고라고 여겼다. 매출 = 객 수 x 객 단가라는 공식 아래 사람을 숫자로 치환해왔다.
그런데 김옥주 할머니 같은 정이 넘치는 대다수의 감사한 고객들을 만나고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상거래 이상의 관계를 맺으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실제로 내가 대하고 있는 것은 돈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정이 넘치는 사람들이었다. 돈을 쓰는 익명의 고객님이 아니라 김옥주, 도인경처럼 각각의 이름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냥 사람도 아니고 따뜻한 마음을 함께 나눠주는 감사한 분들이었다. 정이 넘치는 고객들과 매일매일 함께하다 보니 정말 돈이 다가 아니라는 생각에 다다르기까지는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기억 속 어딘가 묻혀있었던 상도의 '장사는 이문을 남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다'라는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장사를 해보기로 했다. 비록 아직 이 정도면 벌만큼 벌었다고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돈을 만져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매출을 극대화하고 비용을 최소화하는, 돈만 벌기 위한 경영효율을 극대화한 장사가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장사를 해보겠다고 마음먹었다. 계산기로만 계산한다면 비용 효율이 나지 않는 일일지라도 사람을 남기기 위한 일들을 한번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지속 가능한 구조안에서 우리가 생존하는 한 우리 이웃도 우리도 함께 한 번 더 웃을 수 있는 일들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게 군산에서 만난 감사한 이웃분들이 내게 가르쳐주신 정(情)의 의미였기 때문이다. 또 그동안 감사한 이웃분들이 나눠주신 정을 우리가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보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5화 : 그렇게 마트가 된다
36화 : 가족같이 일하기 vs 가족이랑 일하기
37화 : 우리 동네 가장 소중한 가게가 되는 장사법
38화 : 현직 마트 삼촌입니다. 질문 답변드립니다
39화 : 군산에서 장사한다는 것
40화 : 사업... 나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