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업 가족과 일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때 회사 분위기를 묘사할 때 '가족 같은 회사'라는 표현을 썼다. 상상해보자면 가족 같은 회사는 아마도 함께 일하는 동료 간에 따뜻한 정이 넘치는 푸근한 회사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가족 같은 회사는 실제로 '내 가족 같은 회사'가 아니라 '내가 족같은 회사'로 쉽게 치환된다는 것을. 이처럼 가족같이 일하는 것도 보통일은 아닐 텐데 실제로 가족과 함께 일한다는 것은 어떨까? 가족과 함께 약 3년 동안 마트를 운영하고 있는 입장에서 가족과 함께 일하는 것에 대해 나눠보려고 한다.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 많은 사람들이 동업을 고려한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기에 혼자 시작하기보다 동업으로 서로의 빈틈을 채우려는 생각이다. 험난한 파도가 넘치는 망망대해를 혼자 뛰어드는 것보다 누군가 함께하는 것이 심적으로 많이 의지가 되는 건 사실이니까 동업은 선택할 수 있는 옵션 중 하나다. 그러나 팀워크와 동업은 엄연히 다르다. 비즈니스계에는 누군가를 떼어놓으려면 동업하게 하라는 말이 있다. 즉, 웬만해서는 동업은 하지 말라는 것이 비즈니스계의 불문율이다. 그래서일까 동업의 연관검색어는 성공이 아니라 분쟁이다. 서로의 빈틈을 채우는 것은 동업만이 유일한 옵션이 아니다. 훌륭한 팀을 꾸리고 단단한 팀워크를 다지는 것으로도 빈틈은 충분히 메울 수 있다.
특히 동업 중에서도 가족 동업을 생각한다면 더더욱이 말리고 싶다. '다른 집은 몰라도 우리 집은 괜찮을 거 같은데요?'라고 생각하신다면 더 말리고 싶다. 3년 전의 내가 그렇게 생각했었으니까. 가족으로서 같이 '산다는 것'과 같이 '일을 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게다가 가족 동업은 친구 동업이나 지인 동업 같은 다른 동업보다 더 큰 단점들이 존재한다.
가족과 함께 일할 때 생기는 문제점
1) 의사결정권을 나누기가 어렵다
아무리 가족이라 하더라도 의견 대립이 없을 수는 없다. 직원으로서 일을 할 때는 이해되지 않는 의사결정에 대해서 '네가 망하지 내가 망하냐'라고 생각하고 내 뜻을 포기해도 그만이다. 하지만, 가족 동업의 경우에는 그럴 수 없다. '너만 망하냐 나도 망한다'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말 아니라고 생각하면 필사적으로 반대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결정적인 의사결정에 있어서의 논의는 꽤나 격렬해진다.
가족 동업의 경우 회의는 대부분 밥상머리에서 이뤄지게 된다. 밥상머리에서 밥풀 튀기는 격론을 나누다 보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것이 밥알인지 울분인지 구분이 안될 수도 있다. 심지어는 논의가 더 격화되면 밥 먹는 것조차 때려치우게 되는 경우도 있다. 돌아보면 우리 집 식탁이 무거웠으니까 안 엎어졌던 것뿐이지 만약 나무 식탁 같은 것이었다면 엎어져도 수백 번은 엎어졌을 것 같다.
다른 동업의 경우 지분율을 51:49 등으로 조정하여 누군가 완벽하게 의사결정을 컨트롤할 수 있겠으나, 가족 동업의 경우 명확한 지분율 설정이 어렵고 혹 명시적 지분율이 있다 하더라도 실질적인 의사결정은 지분율대로 되지 않기에 의사결정 시에 문제가 생길 소지가 다분하다.
2) 퇴근해도 계속 봐야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가족도 가끔가다 봐야 사이가 더 좋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아무리 가족이어도 라이프스타일이 100% 같을 수 없기 때문에 아주 사소한 부분이라도 어디선가는 부딪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매일매일 얼굴을 본다는 것은 서로 부딪칠 리스크가 커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족 동업은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끊임없이 얼굴을 계속 마주해야 한다. 갈등으로 인해 서로 잠시 관계가 안 좋아졌을 경우에, 회사라면 퇴근한 이후에는 속시원히 까먹어버릴 수라도 있지만, 가족 동업의 경우 퇴근을 해서 집에 가도 얼굴을 계속 볼 수밖에 없다. 물리적으로는 각자 다른 공간에 있다 하더라도 한 지붕 아래에서 멀리 떨어질 수는 없기에 불편한 공기를 느낄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3) 잘못하면 가족이 깨집니다. 감수하시겠습니까
갈등은 어느 비즈니스에서든 일어난다. 대기업 회의실에서든 자영업자의 사업장에서든 그리고 가족 동업자의 밥상머리에서든. 회사의 경우 갈등이 극에 달하면 퇴사하면 그만이다, 다른 동업의 경우 최악의 상황에 서로 찢어지고 사업을 정리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가족 동업이 최악으로 가면 돈보다, 사업보다, 이 세상 그 무엇보다 더 중요한 가족이 깨져버린다. 이 점은 내가 가장 걱정하고 우려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내게 있어서 항상 최우선 순위는 가족이다. 그런데 매일같이 치열한 격론이 이어지고 몸도 마음도 예민해질 때면 나도모르게 가족에게 날 선 말들을 날리고 있었다. 정말 아차 싶었다. 사업이 너무 잘돼서 100억을 벌든 1,000억을 벌든 가족이 깨지면 그 돈이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다. 과연 돈을 위해서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을 거는 것이 맞는 건지 진지하게 고민이 되는 순간도 있었다. 가족 동업의 가장 큰 리스크는 최악의 순간 가족마저 깨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도 굳이 동업할 거라면 가족과 함께
가족 동업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사업은 혼자서 못하겠다면, 굳이 꼭 누군가와 동업을 해야 한다면, 동업 파트너로서 가족은 그나마 가장 나은 대안이 아닐까 생각한다. 앞서말한 치명적인 가족 동업의 단점을 뛰어넘는 장점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 물론, 이 또한 가족 간의 관계가 좋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1) 공동의 가치를 추구한다
각각의 가족은 나름대로 내부적으로 공유하는 가치가 존재한다. 각 개인의 삶은 자세히 살펴보면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한 지붕 아래에서 가족으로 약 30여 년간 같은 사건을 겪다 보면 아무래도 비슷한 가치관을 갖게 되기가 쉽다. 우리 집 같은 경우에는 특히 '성실'이라는 가치를 가족구성원 모두가 추구하는 편이다. 누군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성실히 내가 내 양심을 지키며 꾸준히 노력하면 반드시 결실이 돌아온다고 믿는다. 실제로 우리 가족이 살아온 역사가 그랬고 아마 앞으로도 이 가치는 우리 가족 모두가 지키고 살아갈 것이다.
이런 공동의 가치는 다른 동업자들은 쉽게 공유하기 어렵다. 2~30여 년 이상 다른 환경, 다른 사건을 겪고 완전히 다른 가치관을 형성한 친구나 비즈니스 파트너 같은 다른 동업자들과는 나름의 Fit을 맞추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스타트업에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자원을 투여해가면서 나름의 Culture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가족은 이미 나름의 Family Culture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 어떤 가치에 기반해서 어떤 의사결정이 이뤄졌는지를 공감할 수 있는 폭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 동업은 다른 사람과의 동업보다는 비교적 의사결정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고 일관된 방향으로 사업을 이끌어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2) 기여도 및 업무부담에 따른 불만이 별로 없다
동업의 가장 큰 단점은 '잘 되면 내 탓, 안되면 니탓'이다. 세상 어느 군필자든 자기가 근무한 부대가 제일 힘들고 세상 어느 부서 직원이든 자기 업무가 제일 힘들다. 그렇기에 동업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나는 이렇게 빡세게 일하는데 쟤는 왜 놀아? 그리고 왜 똑같이 나눠?'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이다.
그러나 가족 동업은 구성원 각자가 본인의 역할을 누구보다 열심히 일할 것이라 믿고 실제로 그렇기 때문에 굳이 내탓니탓을 나눌 의미가 없다. 어차피 가족이라는 한 울타리 안에 있기 때문에 누가 일을 더하든 덜하든 크게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내가 일을 덜 했을 때 상대방에게 업무부담이 더 늘어날까를 서로 걱정하게 된다. 더욱더 적극적으로 서로 백업해줄 수 있다. 실제로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죽일 놈 살릴 놈하고 싸웠다 하더라도 혼자 독박 써서 일하고 있으면 결국엔 도우러 나서는 것이 가족이다.
또 성과공유에 대해서도 큰 불만이 없다. 누가 더 가져가는지에 대한 문제는 어차피 오른쪽 주머니에 넣을 것인가 왼쪽 주머니에 넣을 것인가 같은 문제기 때문에 굳이 따질 의미가 없다. 이런 가족 간의 관계는 세상 어떤 팀에서도 쉽게 만들 수 없는 케미라고 생각한다.
3) 고독을 덜어준다
크든 작든 한 사업체를 운영하는 일은 실제로 꽤나 고독한 일이다. 어떠한 문제 상황과 이에 대한 의사결정에 대해 의견은 줄 수 있어도 그 누구도 대신 책임져주지는 않는다. 온전히 본인의 결정이고 본인의 책임이다. 또, 어떤 이유에서건 밖에 내놓지 못하는 말들은 혼자 속으로 끙끙 앓는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경영자는 고독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가족 동업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가족은 운명공동체이고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속에 있는 이야기를 가감 없이 모두 털어놓고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수 있다. 의논 과정 또한 다른 동업자들과의 관계보다는 보다 깊고 진하게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고독감을 가족이라고 해서 완벽하게 덜어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다른 어떤 동업보다도 가족 동업은 함께 고민하고 의지하며 험난한 비즈니스 환경을 해쳐나가기에 적합하다.
망망대해를 헤쳐나가는 또 하나의 방법, 가족 동업
가족 동업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분명한 단점을 가지고 있다. 의사결정권, 불편함의 연속, 가족이 깨질 수 있다는 위험성은 내가 '계속할 수 있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한 큰 허들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서 각각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들을 조금씩 찾을 수 있었다. 서로 싸울 만큼 싸워보다 보니 의사결정을 할 때 어떻게 얼마큼 양보해야 할지를 알 수 있었고, 갈등이 발생하면 어디서 어떻게 해결하고 어떤 마음으로 집에 들어가면 되는지를 발견했고, 다른 무엇보다 소중한 가족을 지키면서 사업을 계속 이어가는 법을 배웠다.
이 모든 문제 해결의 핵심은 서로를 믿고 조금 더 배려하고 조금만 더 양보하는 것이었다. 남이었다면 쉽지 않았을 해결방법이지만, 가족이기에 가능한 해결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해결방법을 터득했다고해서 갈등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가족 동업의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크게 와 닿는다. 그렇기 때문에 기왕 동업을 해야만 한다면 다른 어떤 동업 파트너보다 가족 동업이 낫다고 생각한다.
요즘 제일 잘 나간다는 아마존의 시작 조차 그의 아내 맥킨지를 첫 파트너로 맞으면서 시작됐다. 최근 거대 공룡이 된 이후 베조스와 맥킨지는 이혼을 결정했지만, 아마존 초기 맥킨지가 일조한 것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맥킨지의 도움 없이는 지금의 아마존도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부인 맥킨지가 뛰어난 사람이어서도 그렇지만, 맥킨지가 베조스의 부인이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톨스토이는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고 했다. 각각의 가정이 각각의 사정을 갖고 있기에 절대로 우리 가족의 동업 모델이 모든 가족 동업에 적용될 수는 없다. 어떤 집은 부모와 자식이 추구하는 가치가 전혀 상반될 수도 있고 어떤 집은 가족 간에도 '잘되면 내 탓 안되면 네 탓'을 하며 자기의 몫을 욕심낼 수도 있고 어떤 절체절명 위 순간에서도 서로 힘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잘만 하면 가족 동업은 다른 누구와도 만들 수 없는 가족만의 케미를 이용해서 무엇보다 탄탄한 기반을 만들 수 있다. 가족 간에 열심히 싸우고 더 열심히 화해하며 서로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 서로 힘을 북돋아 줄 때,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시너지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서로 힘을 주며 걸어간 그 길의 끝에는 '잘돼서 우리 탓, 더 잘돼서 우리 탓'만 남아있기를 바랄 뿐이다.
1부 - 대퇴사시대
2부 - 소상공인 라이프 소상히 알려드립니다.
24화 : 진상의 평범성(Brunch Editor's Pick)
35화 : 그렇게 마트가 된다
36화 : 가족같이 일하기 vs 가족이랑 일하기
37화 : 우리 동네 가장 소중한 가게가 되는 장사법
38화 : 현직 마트 삼촌입니다. 질문 답변드립니다
39화 : 군산에서 장사한다는 것
40화 : 사업... 나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