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경욱 May 01. 2019

우리 동네 가장 소중한 가게가 되는 장사법

화재현장에서 죽는 것이 소방관의 최고 명예라면, 장사꾼에게 최고 명예는?

늦은 저녁 하루 장사를 마감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한적한 도로를 지나 골목길로 서서히 진입하는 구급차와 마주쳤다. 무슨 일이 생겼나 생각을 하고 있던 중에 구급차에서 소방관 한 분이 내리신다. 자세히 보니 어둑한 길거리에 누군가 쓰러져있는 것 같았다. '선생님, 어디 편찮으신 데 있으세요?' 소방관님의 친절하고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그 소방관님과 얼마 전 강원도 대형 산불 때 목숨을 걸고 화재진압과 인명구조를 했던 소방관님들이 겹쳐 보였다. 군인은 전장에서 죽는 것이 최고의 명예라고 했다. 자신의 안위보다 국민의 안전을 생각하며 목숨을 걸달려간 소방관 분들이라면 화재현장에서 생을 다할지라도 그 또한 최고의 명예라고 생각하시진 않았을까. 다시금 영웅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경외로운 마음을 가지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군인은 전장에서 죽는 것이 최고의 명예이고, 소방관에게는 화재현장에서 죽는 것이 최고의 명예라면, 장사꾼으로서 최고 명예롭게 죽는 일은 무엇일까? 도대체 어떻게 장사를 하면 군인과 소방관 정도로 명예롭게 죽을 수 있는 경지에 도달 할 수 있을까?


장사꾼도 자기만의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면 명예롭게 죽을 수 있을 것이다. 장터는 수많은 거래가 이뤄지는 곳이다. 그릇 장수, 신발 장수, 엿 장수까지 팔 사람이 팔 물건을 들고 오고 살 사람은 돈을 들고 시장으로 온다. 살 사람 그리고 팔 사람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장터는 분명히 '모이는 장소'다. 과거 장터의 역할은 현재 마트가 이어받았다. 마트는 장터처럼 여전히 하루에도 수 백 명이 '모이는 장소'다. 특히 동네 마트는 반경 3km 이내의 동네 사람들이 주요 고객이다. 그러니 동네 마트는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우리 동네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곳에서 동네 사람과 동네 사람 간의 연결을 시도해볼 수 있지 않을까. 마트라는 곳에서 단순히 물건과 돈만 교환되는 것이 아니라 동네 사람끼리 호흡을 나누고 웃음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장터를 만들다 죽는다면 장사꾼으로서 최고의 명예가 아닐까.


십시일반 그리고 고사리희망장터

우리 동네가 조금이라도 더 좋은 곳이 됐으면 좋겠다는 고민, 그리고 우리는 그 과정에서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쌓여 만들어진 것이 십시일반 프로젝트고사리희망장터이다.


십시일반 프로젝트란 열 번의 숟가락으로 밥 한 공기를 만들듯이 우리들마트와 고객이 함께 십시일반 하여 도움이 필요한 곳에 함께 기부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우리들마트에서 수박이 10통 판매가 됐을 때, 수박 1통을 기부하는데 이때, 우리들마트가 기부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수박을 구매한 10명의 고객 이름으로 기부하는 것이다. 고객들 대다수는 평소에 돕고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십시일반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한, 우리들마트고객은 특별한 추가적인 노력없이도 우리 동네를 위한 나눔을 간단히 실천 하는 셈이 됐다. 십시일반 한다고해서 제품 가격이 더 오르지는 않는다. 기부대상은 우리들마트가 위치한 산북동, 소룡동 근처의 양로원, 지역어린이센터 등을 대상으로 한다. 2018년 8월 수박을 시작으로 십시일반은 그 이후에도 포도, 김치, 딸기 등 제철과일들로 아이템을 바꿔오며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십시일반으로 동네 사람들에게 기부를 받은 지역아동센터 어린이들은 단순히 수혜자로만 남지는 않는다. 십시일반을 통해 마음을 나눔 받은 어린이들은 우리들마트 앞에서 고사리희망장터를 연다. 고사리희망장터에서는 아이들이 직접 제작한 공예품이나 액세서리 등을 직접 홍보하며 판매한다. 판매를 통해 발생한 수익금은 전액 다시 지역의 어르신들께 연탄으로 기부한다. 지역어린이센터 아이들은 고사리희망장터 홍보부터 연탄봉사를 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손으로 누군가와 온정을 나누는 경험을 하게 된다. 우리들마트는 그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지역주민센터와 협력하여 고사리희망장터가 잘 운영될 수 있도록 전반적인 행사 기획 및 운영을 돕고 판매 장소를 제공한다.


십시일반은 고사리희망장터와 별개의 프로젝트이지만 한편으로는 연결되어 있다. 각 행사를 구성하는 주체들은 단순한 기부자로서 혹은 수혜자로서 수동적으로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십시일반에서는 수혜자였던 사람도 고사리희망장터에서는 기부자가 될 수도 있고 십시일반에서는 기부자였던 사람도 고사리희망장터에서는 수혜자가 될 수도 있다. 최소한 우리 동네에서는 십시일반과 고사리희망장터가 제대로 운영되는 한 마을공동체 안에서 선순환이 일어날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근데 왜 해요?

십시일반이나 고사리희망장터를 얘기하다 보면 종종 사람들이 이렇게 묻는다. '좋은 일 하시네요... 그런데 왜 하는 거예요?' 사실 단순히 경제적인 논리만으로 따졌을 때 십시일반이나 고사리 희망장터는 돈 되는 일은 분명히 아니다. 홍보효과가 있으니 결국엔 돈 되는 일이지 않냐 반문하는 사람도 혹 있을지 모른다. 물론 수치화되지 않는 홍보효과야 당연히 있긴 하겠지만 즉각적인 홍보효과를 기대했다면 차라리 검증된 다른 방법으로 인력, 시간, 돈을 투입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오히려 십시일반이나 고사리희망장터는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기존의 홍보 방법에 비해 손과 비용이 더 많이 소요된다. 당장 돈 되는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들마트가 지속적으로 십시일반과 고사리 희망장터와 같은 곳에 힘을 쏟는 이유는 우리 동네가 '소중한 동네'가 되길 원하고 그 가운데 우리들마트가 나름의 역할을 해내며 '우리 동네에서 가장 소중한 가게'가 되길 원하기 때문이다.


할머니 병문안을 갈 때면, 나는 항상 주전부리를 챙긴다. 약과나 모나카, 양갱 같은 주전부리를 드리면 할머니는 한 번도 빠짐없이 같은 병실의 다른 어르신들 먼저 나눠주라고 채근하신다. 처음엔 굳이 왜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작은 빵 한 조각까지도 나눠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왜 그렇게 작은 것마저도 나누려고 하셨는지 알 수 있다. 병실의 다른 할머니들은 비록 작은 주전부리에 지나지 않지만 그 작은 마음에도 크게 감사해주셨고 환한 미소로 반겨주셨다. 그리고 이 과정을 지켜보는 우리 할머니의 표정은 누구보다도 가장 환하셨다. 남몰래 빵을 한 조각이라도 더 먹는 것보다 작은 조각이라도 서로 나누면서 눈을 마주치고 한 번 더 웃는 것이 더 행복한 일이었다.


십시일반이나 고사리희망장터도 마찬가지다. 내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내가 먹을 빵만 챙긴다면 남은 그저 생면부지의 남으로 남는다. 그렇지만, 크든 작든 십시일반이나 고사리희망장터를 통해서 우리 동네에 나 외에 누군가가 존재하고 서로를 조금이라도 생각하고 있다는 그 마음을 나누면, 그때는 남이 남으로 남지 않는다. 그 순간에는 서로 눈을 맞출 수 있고, 이웃이 될 수 있고, 웃음을 나눌 수 있다. 나는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을 나누는 이런 행사가 많아지는 것이 우리 동네가 '소중한 동네'가 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것같이 동네 마트는 하루에도 수 백명씩 '동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그 공간에서 동네 사람들이 서로를 인식할 수 있는 약간의 Nudge를 줄 수 있다면, 서로 보고 한 번이라도 웃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면, 어쩌면 우리는 이 곳을 단순한 마트를 넘어 이 동네를 조금 더 행복한 공간으로 만들 수 있지는 않을까. 나는 이러한 시도가 장사꾼으로서 좋은 물건을 좋은 가격에 제공하는 것 외에도 이 동네에 기여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이 장사꾼으로서 명예롭게 죽을 수 있는 일이라고 믿는다.


우리들이 만들어갈 우리 동네에서 가장 소중한 가게

사람이 먹기 위해서만 사는 것이 아니듯, 기업의 목적도 돈에만 있지 않다. 크든 작든 각각의 기업은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자신의 가치를 추구한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를 실현해 내는 것 또한 기업의 중요한 성과다. 우리들마트가 추구하는 가치는 '우리 동네가 소중한 동네가 되는 것'이고, 십시일반과 고사리희망장터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를 가장 우리답게 소화할 수 있는 결과물이다.


우리들마트의 고객은 정말 다양하다.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갓난아이부터 지팡이를 짚고 다니시는 어르신까지, 이 지역에서 나고자란 토박이부터 한국땅을 처음 밟은 외국인까지. 다양한 연령과 다양한 배경의 다양한 사람들이 우리들마트를 찾을 때마다, 최소한 우리들마트의 지붕 아래에서는 각각의 다양한 이유로 행복했으면 하는 것이 우리의 바람이다.


나는 小富由勤,大富由天(소부유근, 대부유천)이라는 말을 믿는다. 작은 부자는 근면한 것만으로도 될 수 있지만, 큰 부자가 되는 일은 하늘에 달렸다는 뜻이다. 하늘에 달렸다는 것은 모든 것이 운에 달렸다는 뜻이 아니다. 유가에서는 민심(民心)이 천심(天心)이라 했다. 그러니 '큰 부자는 하늘에 달렸다'는 것은 함께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民心)이 감동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다. 이성당이나 성심당은 오랜 세월 동안 진심으로 지역을 위해 일해오고 있고 그 진심에 호응해준 고객들 덕분에 지역을 넘어 전국구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런 경우가 하늘을 감동시킨 경우가 아닐까. 이성당과 성심당은 매출액 같은 외형적인 지표도 크게 성장했지만 지속적으로 수많은 지역 고객들에게 사랑과 응원을 받고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면 분명한 '대부(大富)'를 거느렸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진심이 우리 동네 고객들에게 온전히 전달될 수 있다면, 어쩌면 우리도 이성당이나 성심당 같은 지역에서 사랑받는 가치 있는 '대부'를 거느린 기업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십시일반 메시지중 아직도 기억에 남는 메시지는 '사랑은 줄 수 있을 때 주는 것'이다. 비록 우리가 아직 이성당, 성심당만큼 큰 회사는 되지 않았지만, 많은 고객들이 우리를 선택해준 덕분에 우리에게는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여력이 존재한다. 사람이 빵을 위해서만 살지 않지만 빵 없이도 살 수는 없다. 우리는 우리나름대로 지속가능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중이다. 언젠가 어떤 이유에서든 사랑을 줄 수 없게 되기 전까지는 최선을 다해서 그동안 받은 사랑을 함께 나누겠다. 우리가 걸어가는 이 길의 과정에서 참 많은 이웃들과 함께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고 이 길의 끝에서 '우리 동네에서 가장 소중한 가게'가 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그리고 바라건데 각각의 동네에 각각의 이유로 소중한 가게가 많아지고 이로인해 한 사람이라도 더 웃을 수 있는 하루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ecutive Summary : 
오빠랑 지게차 타러 갈래? (안정적 기름집 김 씨는 왜 불안정적인 마트삼촌 김씨가 되었을까) 


1부 - 대퇴사시대

0화 : 대퇴사시대, 도대체 왜 퇴사하세요?

1화 : Professionalism, 멋있잖아요

2화 : 노인의 얼굴에 나이테 대신 동심이 내린 이유

3화 : 내가 만난 '난놈'들의 공통점

4화 : 진짜 히치하이커는 엄지를 들지 않는다

5화 : 틀린 인생은 없어 다르게 살아도 괜찮아

6화 : 꿈을 강요하는 사회

7화 : 일출 보러 가다가 퇴사결심

8화 : 새장 속의 새는 새가 아니다(Brunch Editor's pick)

9화 :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10화 : 사직서를 준비하는 네가 알면 좋을 세 가지


2부 - 소상공인 라이프 소상히 알려드립니다.

11화 : 가라앉을 것인가 헤엄칠 것인가

12화 : 고객관리의 핵심은 메아리다

13화 : 그대, 존경받아 마땅한

14화 : 네비 있으세요?

15화 : 이 길로 가는 게 제대로 가는 걸까

16화 : 행복하자. 아프지말고.

17화 : 영민할 것인가 따뜻할 것인가

18화 : 우리 동네에서 가장 소중한 가게

19화 : 모범생 남 대리가 사업을 말아먹은 이유는

20화 : 칼퇴할 수 있고 주말근무 없으면 워라밸일까?(Brunch Editor's pick)

21화 : 왜 장사하는가?

22화 : 이 가게, 한 달에 얼마 벌까?

23화 : 사장님, 이렇게 팔아서 남아요? - 박리다매 경제학

24화 : 진상의 평범성(Brunch Editor's Pick)

25화 : 가장 오래된 빵집, 이성당이 잘 나가는 이유

26화 : 유해진에게 배우는 싸가지경영

27화 : 무른 귤과 아버지

28화 : 백종원이 말하는 장사 마인드

29화 :  이 식당은 50분만 일하면 한끼가 무료입니다

감사인사 : 꿈 하나를 이루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이성당 사장님을 만났어요)

30화 : 성심당은 파리바게뜨가 부러울까?

31화 : 그 자켓을 사지 말라던 파타고니아의 오랜 진심

감사인사 : 또 하나의 꿈이 이뤄졌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감사합니다

32화 : 어쩌다 대기업 그만두고 마트를 하게 됐어요?(Brunch Editor's Pick)

33화 : 울었다. 밥을 먹다 울었다.

34화 : 쿠팡의 시대, 동네마트 생존전략

35화 : 그렇게 마트가 된다

36화 : 가족같이 일하기 vs 가족이랑 일하기

37화 : 우리 동네 가장 소중한 가게가 되는 장사법

38화 : 현직 마트 삼촌입니다. 질문 답변드립니다

39화 : 군산에서 장사한다는 것

40화 : 사업... 나도 할 수 있을까

이전 11화 군산에서 장사한다는 것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회사원 김씨 마트삼촌 김씨가 되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