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하고 싶습니다. 특별한 비법이 있나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장사를 막 시작하며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당연히 장사가 망하지 않고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 재무적으로도 안정돼야 했지만, 생존의 걱정을 넘어 기왕 시작한 거 뭐가 어떻게 됐든 이 장사를 성공적으로 만들고 싶었다. 지금은 나름대로 고민 끝에 조금씩 답을 얻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성공의 기준에 대한 고민도 없이 그냥 막연히 성공만 하고싶었다. 햇병아리 장사 초보로서 도대체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감이 잘 오지 않았다. 모르면 공부해야지. 그때부터 성공적이라고 이름난 기업들은 어떻게 성공적으로 성장했는지 공부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스타트업 중 가장 성공적인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우아한형제들의 김봉진 대표는 성공 비결을 배민다움, 즉 '브랜딩'으로 꼽았다. 우리가 어떤 민족이냐고 물을 때도, 수수료 0%라는 파격적인 의사결정을 할 때도, 김봉진 대표의 무게중심은 '브랜드'였다. '이것으로 충분하다'로 유명한 무인양품 前회장인 마쓰이 타다미쓰 회장은 그의 성공 비결을 '구조'라고 했다. 무인양품의 90%는 구조라고 할 정도로 그는 시스템을 만드는데 집중했다. 세세한 행동까지 모두 규정한 무지그램(무인양품만매뉴얼)을 집대성하는 것으로 그는 무인양품만의 시스템과 '구조'를 만들어내며 무인양품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을 번 헤지펀드라는 브릿지워터를 이끄는 레이 달리오는 '원칙'이 브릿지워터의 성공 비결이라고 했다. 이처럼 각각의 기업이 성공한 이유는 모두 다 다르다.
각각의 기업이 성공한 이유는 다를지라도 성공한 기업가에게는 분명히 공통점이 존재한다. 그 공통점은 본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한 가지 '키워드'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그 키워드는 배민에게는 브랜드, 무인양품에게는 구조, 브릿지워터에게는 원칙이었다. 이 키워드들은 모두 기업가 삶에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는 가치이기도 했다. 김봉진 대표는 브랜드를 위해 사업을 한다고 할 정도로 브랜드 작업에 열정을 쏟는다. 마쓰이 타다미쓰 회장은 세이유 재직 18년 중 15년을 HR에서 보낸 인사전문가로 인력'구조'가 그의 비즈니스 인생의 대부분이었다. 레이 달리오는 단순히 회사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원칙'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믿으며 브릿지워터 모든 직원들과 그의 원칙을 공유하고 삶을 공유한다. 그들의 키워드를 살펴보고 나니 이런 질문이 내게 다가왔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키워드로 내 삶과 내 장사를 성공적으로 만들어 낼 것인가.
싸가지 있게 장사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내 삶과 내 장사에서 집중하고 싶은 키워드는 '싸가지'이다. '싸가지가 있다'는 것은 단순히 예의가 바르다라는 1차적인 의미 외에도 '친절하다'거나 'proactive 한 배려'가 느껴지는 것을 말한다. 혹은 좀 더 넓게 보자면 '정감이 간다'거나 '사람 냄새가 난다'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싸가지 있는 장사'란 싸늘한 기계적 친절로 물건과 돈을 교환하는 단순 계약적인 관계가 아니라 고객들 개개인과 깊게 교감하며 따뜻한 인간적인 관계를 형성해내는 것이다. 이 '싸가지 있는 장사'의 끝판왕은 아마도 고객에게서 '아, 이 사람은 잘 됐으면 좋겠다'하는 반응을 이끌어 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만 말하면 영 뜬구름 잡는 얘기가 돼버리니 연예인 중 가장 '싸가지 있게 장사'할 것 같은 사람을 생각해봤다. 나는 배우 유해진 님이라면 '싸가지 있는 장사'를 아주 잘할 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미 예능 프로를 통해 본인이 인간적인 매력이 철철 넘치는 '싸가지 있는' 사람임을 보여줬다. 뿐만 아니라 그는 미담 자판기라고 불릴 만큼 꾸준히 또 조용히 여러 곳에 따뜻한 마음을 전한다. 특별한 이유 없이 촬영장 근처 소방서를 응원차 들러 커피를 나누고 기념사진도 한 명 한 명 함께 찍었다는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그의 꾸준한 선행이 알려져 2017년에는 아름다운 예술인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많은 것이 갖춰져야 하는 것 같다. 이 기회에 하나하나 씩 갖춰가면서 살아가겠다'라는 말과 함께 상금 전액을 기부하며 다시 한번 미담 자판기로써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이런 사람이라면 '싸가지 있는 장사'를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장사를 할수록 '잘 됐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을 이끌어 낼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사실 이미 영화판에서 '싸가지 있는' 연기 장사를 하며 '잘 됐으면 좋겠다'는 반응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낸 적이 있다. 과거의 그는 주로 씬스틸러로서 존재감을 강력히 발했지만, 극을 이끌어가는 주연이라고 말하기에는 어딘가 약간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럭키(2016)에서 그는 당당하고 독보적인 주연으로서 온전히 무게중심을 자신에게 가져오며 럭키를 확실한 유해진 원맨영화로 만들었다. 유해진을 위한 영화에서 주연으로 마음껏 연기하는 그의 모습은 영화 속 주인공 형욱이 배우로서 하나하나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과 겹쳐 보였다. 영화가 마무리될 때쯤엔 짜릿한 반전을 기대하기보다는 비록 동화 같은 해피엔딩일지라도 영화 속의 형욱은 '꼭 잘 됐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들게 했다. 형욱을 향한 마음이기도 했고 유해진 님에 대한 마음이기도 했다. 그런 관객들의 응원이 모아져 럭키는 약 700만 관객을 불러들이며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이루었다. 오랜 세월 그가 걸어온 길은 유해진만의 결을 만들어 내었고 그 결이 뿜어내는 그만의 '싸가지'에 사람들은 마음을 줄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의 '싸가지 있는 연기 장사'는 끝판왕인 '꼭 잘 됐으면 좋겠다'에 이르렀다.
싸가지 있는 놈은 잘 됐으면 좋겠다.
유해진 배우님이 럭키를 통해 보여준 것처럼 '싸가지 있는' 사람에게는 관심이 가고, 믿음이 가고, 하나라도 더 팔아주고 싶다. '불만제로', '소비자고발'등의 프로들이 지적하듯이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돈을 위해 거짓말하는 장사치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장사꾼을 대할 때 '소비자는 봉이 아니다'의 마음으로 일단 경계를 하고 보기 마련이다. 소비자의 입장에 서게 되면 나 또한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장사를 함에 있어서 누군가 관심을 가져준다는 것, 믿음을 가져준다는 것, 하나라도 더 팔아준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지원이다. 유해진 님처럼 '싸가지 있는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면, 고객과 함께 호흡하며 그들과 따뜻한 관계를 만들어온 사람이라면, 그래서 누군가는 '저 사람은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사람이라도 해주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에게는 눈속임이나 장난질을 경계하는 의심의 눈빛이 아니라, 이 사람은 믿을만하다는 신뢰의 눈빛을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응원을 받을 수 있을 때쯤에야 성공에 대해 말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근원적인 경쟁력 없이 '저는 싸가지 있는 놈이니 좀 도와주십시오'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아무것도 없는데 싸가지만 있다고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답게 풀리지는 않는다. 한두 번은 싸가지를 봐서 도와주지만 비즈니스인 이상 꾸준히 지속 가능하려면 소비자가 지불하는 재화의 가치보다 소비자가 실제 느끼는 가치는 최소한 비슷하든지 아니면 커야 한다. 유해진 님도 마찬가지다. 배우로서 연기력이 갖춰져 있지 않거나 관객에게 어떤 가치도 줄 수 없다면 그는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비즈니스의 기본, 장사의 기초가 탄탄해지게 된 상태에서 싸가지가 얹어졌을 때 진정 그 효과는 제대로 발휘된다.
일반적인 경제학의 가장 큰 오류는 '사람은 이성적인 동물이며 합리적인 결정을 한다'는 가정이다. 물론 두부 값 50원, 콩나물 값 100원도 꼼꼼히 따지는 것이 소비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소비자는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인 결정을 꽤 자주 내린다. 싸가지없는 놈은 꼴도 보기 싫지만, 싸가지 있는 놈을 자주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응원하게 된다. 그 마음이 커지면 '저 사람은 잘됐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나는 그런 응원이 모여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 혼자 아무리 잘나 봐야 고객들에게, 협력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외면받으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 나름대로 고민의 끝에 내린 내가 생각하는 성공은 '우리 동네에서 가장 소중한 가게'가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 싸가지는 성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어제보다 더 '싸가지 있는 장사'를 하고 싶다.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365일 24시간 싸가지가 있기는 어렵다. 어제도 몇 번 싸가지 없었던 것 같은데 반성한다. 사실 이 글은 오늘 하루도 더 싸가지 있게 장사해보자는 나의 다짐이다.
유해진 배우님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해 '예스'라고 할 수 있기를 이라는 명언을 좋아한다. 그랬으면 한다. 그걸 바라보면서 산다.'
그가 그랬던 것처럼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가지 있는 삶에 대해 '예스'라고 말하고 싶다. 그걸 바라보며 살겠다. 나는 아직도 부족한 병아리다. 마음이 흐트러질 때마다 이 글을 다시 읽으며 부단히 더 노력해야겠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배민처럼, 무인양품처럼, 브릿지워터처럼 성장해서 나의 키워드는 '싸가지'였다고 말하고 싶다.
Executive Summary :
오빠랑 지게차 타러 갈래? (안정적 기름집 김 씨는 왜 불안정적인 마트삼촌 김씨가 되었을까)
1부 - 대퇴사시대
0화 : 대퇴사시대, 도대체 왜 퇴사하세요?
3화 : 내가 만난 '난놈'들의 공통점
4화 : 진짜 히치하이커는 엄지를 들지 않는다
6화 : 꿈을 강요하는 사회
7화 : 일출 보러 가다가 퇴사결심
8화 : 새장 속의 새는 새가 아니다(Brunch Editor's pick)
9화 :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10화 : 사직서를 준비하는 네가 알면 좋을 세 가지
2부 - 소상공인 라이프 소상히 알려드립니다.
11화 : 가라앉을 것인가 헤엄칠 것인가
12화 : 고객관리의 핵심은 메아리다
13화 : 그대, 존경받아 마땅한
14화 : 네비 있으세요?
15화 : 이 길로 가는 게 제대로 가는 걸까
16화 : 행복하자. 아프지말고.
17화 : 영민할 것인가 따뜻할 것인가
18화 : 우리 동네에서 가장 소중한 가게
19화 : 모범생 남 대리가 사업을 말아먹은 이유는
20화 : 칼퇴할 수 있고 주말근무 없으면 워라밸일까?(Brunch Editor's pick)
21화 : 왜 장사하는가?
22화 : 이 가게, 한 달에 얼마 벌까?
23화 : 사장님, 이렇게 팔아서 남아요? - 박리다매 경제학
24화 : 진상의 평범성(Brunch Editor's Pick)
25화 : 가장 오래된 빵집, 이성당이 잘 나가는 이유
26화 : 유해진에게 배우는 싸가지경영
27화 : 무른 귤과 아버지
28화 : 백종원이 말하는 장사 마인드
29화 : 이 식당은 50분만 일하면 한끼가 무료입니다
감사인사 : 꿈 하나를 이루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이성당 사장님을 만났어요)
30화 : 성심당은 파리바게뜨가 부러울까?
31화 : 그 자켓을 사지 말라던 파타고니아의 오랜 진심
감사인사 : 또 하나의 꿈이 이뤄졌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감사합니다
35화 : 그렇게 마트가 된다
36화 : 가족같이 일하기 vs 가족이랑 일하기
37화 : 우리 동네 가장 소중한 가게가 되는 장사법
38화 : 현직 마트 삼촌입니다. 질문 답변드립니다
39화 : 군산에서 장사한다는 것
40화 : 사업... 나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