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회사 그만두고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면 행복하겠지?
퇴사를 한 이후 친구들의 연락이 잦아졌다. '행복하지? 아, 퇴사하고 싶다' 난 그저 웃으며 '힘들지?'라고만 대답했다. 이 진절머리 나는 거 그만하면 행복하겠지? 회사를 그만 두기 전 많은 사람들이 하는 생각이다. 특히나 사람이든 일이든 너무 힘들게 하는 날엔 '퇴사'라는 단어는 어느덧 성큼 다가와 옆구리를 쿡쿡 찌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퇴사가 핫 트렌드로 부상하고 판타지화 되어 이를 부추기는 분위기가 생기기도 한다. 물론 언제나 자신의 꿈과 행복을 찾아 주도적으로 도전하는 것은 얼마든 권장할만한 일이다. 다만, 퇴사는 그 과정에 한 이벤트일 뿐 절대 퇴사 하나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 이 글에서는 피부로 와 닿는 퇴사준비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사직서를 제출하기 전에 아래 3가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질문을 던져보면서 최종적인 점검을 해보면 좋을 것 같다.
최소 생존유지비용과 최소 현금흐름은 계산되었는가
회사가 지긋지긋하지만 내일도 출근하는 것은 바로 '월급뽕'의 막대한 위력 때문이다. 퇴사 후 이직이 아닌 다른 무언가(스타트업, 자영업, 크리에이터, 대학원 등)를 생각하고 있다면, 당분간 달콤하던 '월급뽕'은 잊고 살아야 한다. 웬수 같기도 하지만 없으면 더 웬수 같은 삶을 살게 만드는 돈. 퇴사를 생각한다면 이 돈부터 시작해보자.
내가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을 계산한다. 내가 전 재산 다 날리고 없으면 죽겠다 싶은 비용만을 포함했을 때 숨만 쉬고 산다면 얼마 정도 드는지를 산출했다.
월세(고시원급 50만 원)+식비(약 37.5만)+교통비(지하철 정기권 약 6만 원)만+기타 생활비(5만 원)
= 약 한 달 98.5만 원
그리고 실제로 퇴사 전 한 달 정도를 그렇게 살아봤다. 혹시라도 망했을 경우 앞으로 이렇게 살아야한다는 생각과 함께. 식비의 급격한 변화에 충격이 오긴 했지만, 예전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 시절 식빵 꼬다리에 설탕 뿌려가며 생존했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내가 아무리 망해도 대충 월 100만 원만 벌면 목숨은 이어 갈 수 있음을 확인했다.
그다음은 어떤 일을 해서든 최소한의 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지를 확인한다. 월 100만 원은 무슨 일을 해서든 벌 자신이 있었다. 당장 과외시장에 뛰어들어서 벌든, 막노동을 하든, 정 안되면 어디서 알바를 하든(물론 시간 효율성은 극히 떨어지는 일이긴 하겠지만) 최소한 월 100은 어떻게든 마련할 자신이 있었다. 어디서 어떻게 살아도 굶어 죽지만 않는다면, 월급뽕에서 벗어나 퇴사를 해도 죽지는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테슬라의 창업자인 엘론 머스크는 더 극단적으로 실험을 하기도 했었다.
(참고: 고통에 직면하다. 엘론 머스크의 하루 1달러로 살았던 이야기
Elon Musk explains why living off a dollar a day convinced him he could do anything)
하지만 당신이 매일 아침 아메리카노 한 잔에 행복한 사람이라면, 돈이 없어서 그 한 잔을 마시지 못했을 때 상실하게 되는 행복감에 대해서도 미리 계산해야 한다. 1주일에 한 번은 반드시 친구들과 시원한 맥주 한 잔은 꼭 해야한다면, 혹은 1년에 한 번 정도는 반드시 해외여행을 꼭 가야한다면, 반드시 최저 생존 비용에 포함시키기 바란다. 퇴사를 하고 그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다면, 퇴사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최저생계비를 산출하고 당신이 그 어떠한 경우에도 그 비용을 충당할 자신이 있다면, 퇴직서를 제출해도 좋다.
낭만을 제거하는 최소 경험은 확보되었는가
무슨 일을 하든 항상 낭만과 현실은 괴리가 크다(참고: 게스트하우스에 낭만은 없더군요) 아무 것도 모르고 낭만에만빠져 퇴사하지 않도록 최소 경험이 필요하다. 최소 경험이란 퇴사 후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서 최소한 이게 낭만적인 꿈만 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현실의 맛을 미리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 최소경험을 겪기 전에는 대충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막상 시작하고나면 쓰디쓴 현실의 맛을 경험하게 되기에 퇴사 전 미리 간을 보기를 추천한다.
스타트업계에는 MVP(Minimum Viable Product)라는 용어가 있다. 말 그대로 최소 실행 가능한 요소만을 설계하여 빠르게 제품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최종목표가 자동차라면, 앞바퀴, 뒷바퀴, 차체, 내장재 등을 순차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바퀴 두 개 위에 판을 얹어 굴러가는 것(스케이트)를 먼저 만들어보고 더 잘 굴러가는 킥보드, 자전거를 거쳐 최종적으로는 가장 잘 굴러가는 자동차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처음부터 자동차를 만들려고 무겁게 덤벼들어 앞바퀴부터 만드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MVP의 핵심이다.
좀 더 피부에 와닿게 작은 카페의 사장이 되는 것과 최소경험을 생각해보자. 자동차와 보드의 본질은 '굴러 가는 것'이다. 장사의 본질도 '굴러가는 것'(꾸준히 이익을 내는 것)이다. 카페를 이에 대입해보면 자동차는 바다가 보이는 카페, 꽃과 감성이 넘치는 카페 등 내 '꿈의 카페'인 셈이다. 보드는 뭐가 어쨋든 '최소한 고객이 방문하는 카페'인 셈이다.
자동차:보드 = 꿈의 카페: 최소한의 고객 방문하는 카페
그렇다면 고객에 집중하는 체험을 해보면 된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진상 손님은 얼마나 자주 만나는지, 나는 이런 진상 손님들을 잘 대응하고 버틸 수 있는지, 내가 생각한 것처럼 인스타에 감성 글귀만 올리면 고객이 바로 유입 되는지 일단 한 번 해보는 거다. 실제로 진상손님을 만나보고 대응해보고, 인스타 반응을 직접 느끼면서 최소 경험들이 축적되게 되면 낭만 뒤에 숨어있던 현실의 민낯을 볼 수 있게 된다.
최소 경험을 통해서 낭만을 지우고 하고자 하는 일의 민낯을 확인했고 여전히 원한다면, 퇴직서를 제출해도 좋다
존버(존나게 버틴다) 정신이 탑재 되어 있는가
회사 안의 삶이 아니라 회사 밖의 삶을 선택하는 것은 안정성보다 가능성을 선택하는 일이고 현재가치보다 미래가치를 선택하는 일이다. 미래가치가 현재가치로 치환되기까지는 수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또 시간이 필요하다. 그 막연하고 깜깜한 길을 걷는 기간 동안 우리는 '존버'할 수 있어야 한다.
1816년 7월 2일 해군 군함 메두사 호가 난파했다. 일부는 구명보트를 타고 대피했지만, 나머지는 뗏목을 만들어 탈 수밖에 없었다. 13일 동안 물도 식량도 없이 표류한 이들의 뗏목은 죽음과 질병, 폭동과 광기, 기아와 탈수, 식인의 생지옥이 되었다.
<메두사 호의 뗏목>은 물도 식량도 없이 생지옥이 펼쳐지는 그 절망의 순간을 그린다. 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200여년 전의 그림에서 우리가 가야할 '존버의 길'을 찾을 수 있다. 사실 이 그림은 13일간의 표류 뒤에 구조선을 발견하는 순간을 묘사했다. 하지만 그림만 언뜻 봐서는 어디가 구조선을 발견하는 순간이라는 건지 알기 어렵다.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실물은 거의 실제 인물 크기로 그려져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조선은 우측 상단 끝 수평선 저 너머에 정말 손톱만큼 아주 작게 그려졌을 뿐이다. 내가 생각하는 '존버'란 이런 것이다. 뗏목 위의 사람들이 모든 걸 포기하고 있을 때에도 저 멀리 수평선에 비친 아주 작은 그림자를 보고도 가진 것 모두를 쏟아내며 구조를 요청하는 그런 사람들처럼 행동하는 것. 우리도 아주 작은 희망이겠지만, 그 희망을 끝까지 보며 가진 것을 모두 쏟아내며 존버 하는 것이다. 막막하고 깜깜한 길을 걸어가고 있는 만큼, 아주 작은 빛이라도 크게 볼 수 있는 존버 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래야지만 끝까지 버티고 살 수 있다.
구조선을 향해 팔을 가열차게 흔들던 사람처럼 존버 정신을 갖췄다고 판단되면 사직서를 제출해도 좋다.
~하면 행복한 인생은 없다
행복에 조건문은 없다. ~하면 행복해지겠지, ~하고 나면 행복하겠지는 모두 우리의 환상일 뿐이었다. 대학 갔더니 행복했던가, 취업하고 나니 행복했던가, 결혼하고 나면 무조건 행복하던가? 이제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퇴사한다고 행복하지 않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행동하는 한 여러 가지 이벤트를 겪을 수 있다. 퇴사는 그런 여러 가지 이벤트 중 하나일 뿐 행복을 위한 보증수표는 되지 못한다.
나는 퇴사가 판타지화 되어 장려될 대상도 아니고 그렇다고 뜯어말려야 될 정도로 잘못된 선택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퇴사는 한 개인이 고민한 결과 나올 수 있는 여러 가지 선택 중 하나일 뿐이다. 다만 퇴사를 꿈꾸는 사람은 돈에 대해서, 낭만과 현실에 대해서, 그리고 끝까지 해내는 힘에 대해서 반드시 고민해봐야 한다. 이 고민의 과정을 거친 뒤 당신의 선택이 퇴사이든, 퇴사이지 않든 그 고민이 당신의 삶을 더욱 단단히 해줄 것이라 믿는다.
Executive Summary :
오빠랑 지게차 타러 갈래? (안정적 기름집 김 씨는 왜 불안정적인 마트삼촌 김씨가 되었을까)
1부 - 대퇴사시대
0화 : 대퇴사시대, 도대체 왜 퇴사하세요?
3화 : 내가 만난 '난놈'들의 공통점
4화 : 진짜 히치하이커는 엄지를 들지 않는다
6화 : 꿈을 강요하는 사회
7화 : 일출 보러 가다가 퇴사결심
8화 : 새장 속의 새는 새가 아니다 (Brunch Editor's Pick)
9화 :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10화 : 사직서를 준비하는 네가 알면 좋을 세 가지
2부 - 소상공인 라이프 소상히 알려드립니다.
11화 : 가라앉을 것인가 헤엄칠 것인가
12화 : 고객관리의 핵심은 메아리다
13화 : 그대, 존경받아 마땅한
14화 : 네비 있으세요?
15화 : 이 길로 가는 게 제대로 가는 걸까
16화 : 행복하자. 아프지말고
17화 : 영민할 것인가 따뜻할 것인가
18화 : 우리 동네에서 가장 소중한 가게
19화 : 모범생 남 대리가 사업을 말아먹은 이유는
20화 : 칼퇴할 수 있고 주말근무 없으면 워라밸일까? (Brunch Editor's Pick)
21화 : 왜 장사하는가
22화 : 이 가게, 한 달에 얼마 벌까?
23화 : 사장님, 이렇게 팔아서 남아요?
24화 : 진상의 평범성(Brunch Editor's pick)
25화 : 가장 오래된 빵집, 이성당이 잘 나가는 이유
26화 : 유해진에게 배우는 싸가지경영
27화 : 무른 귤과 아버지
28화 : 백종원이 말하는 장사 마인드
29화 : 이 식당은 50분만 일하면 한끼가 무료입니다
감사인사 : 꿈 하나를 이루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이성당 사장님을 만났어요)
30화 : 성심당은 파리바게뜨가 부러울까?
31화 : 그 자켓을 사지 말라던 파타고니아의 오랜 진심
감사인사 : 또 하나의 꿈이 이뤄졌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감사합니다
35화 : 그렇게 마트가 된다
36화 : 가족같이 일하기 vs 가족이랑 일하기
37화 : 우리 동네 가장 소중한 가게가 되는 장사법
38화 : 현직 마트 삼촌입니다. 질문 답변드립니다
39화 : 군산에서 장사한다는 것
40화 : 사업... 나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