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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욱 Jun 26. 2018

틀린 인생은 없어 다르게 살아도 괜찮아

보통 정도의 삶

입사 이후에 소개팅을 정말 자주 했다. 소개팅 시장은 1년에 두 번 대목을 맞는다. 벚꽃시즌과 크리스마스 시즌. 특히 이 시즌에는 거의 올타임 FA였던 나뿐만 아니라 많은 친구들도 주말마다 소개팅으로 달력을 채워갔다. 마치 취업 이후 남은 마지막 과제는 결혼인 것처럼. 반복적인 소개팅에 피로해질 때쯤 한 친구여자가 이런 말을 했다 '이젠 그냥 보통 정도의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싶다' 대부분의 친구여자들이 동의했다. 적당한 외모에 적당한 직장, 적당한 학벌, 적당한 가정환경을 가진 놈을 찾기가 그렇게도 힘들다는 것이었다. 근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보통 정도의 남자가 세상에 존재한다면 보통 정도의 삶도 존재할까? 우리나라에서 보통 정도의 삶은 어떤 것일까?

글쎄, 아마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보통 정도의 삶은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입사하여 좋은 배우자와의 결혼을 한 뒤 자녀가 잘 자라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로 이어지는 삶이 아닐까.  근데 뭔가 좀 이상했다. 우리나라 고질적인 병폐(학벌카르텔, 청년실업 등)도 다 그 보통의 삶을 살려고 하다가 발생하더라. 끊임없는 순환논리의 오류 같은. 이런 삶은 아니지 않나 싶었다.


그래서 뭐 어떻게 살 건데?

나는 평범한 보통 사람이었다. 정작 눈앞에 닥친 내 미래를 그릴 때 '그래서 뭐 어떻게 살 건데'의 고민의 끝은 '그래도 대기업 취업이 안정빵이지'라는 결론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사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우리가 그렇게도 피 말리며 경쟁한 고등학교 시절부터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우리는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 정해준 Track위에 올라 서있었다. 보통정도의 사람은 이름 난 학교에 가서 이름난 회사로 가는게 잘 사는 길이라는 대부분 생각하는 그 Track말이다. 하지만 Couchsurfing을 통해 다양한 삶을 가까이서 간접 경험해보면서 나의 이런 생각이 산산조각 났다. (Couchsurfing이란 '소파(Couch)'를 '찾아다니는 것(Surfing)을 뜻하는 말이다. 현지인은 여행자를 위해 자신의 카우치를 제공하고 여행자는 이들이 제공하는 카우치에 머무르며 함께 여행하는 커뮤니티다. Air B&B의 무료 판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첫 번째 삶  - 100% 자연주의자 Trevor

Trevor는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만 세상과 접촉하고 그 외에는 100% 자연 속에서 살아간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주일 중 2~3일 정도만 도시에 나와서 잠시 일을 하고 그 외에 시간에는 철저히 자연과 함께한다. 그의 집은 시내(사실 읍내가 거의 맞는 표현일 정도의 소도시)에서도 약 3~40분이나 차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정말 완전 깡깡촌 격오지였다. 그렇다보니 전기도 들어올 리 만무했다. 그래서 Trevor아저씨가 특제작한 풍력발전기에 의해서 전기를 만든다. 그러다 보니 저녁에도 전등 대신 촛불을 켠다. 옛날 옛적 시골 할머니 댁에 갔던 그런 마음으로 매우 아날로그적으로 살게 된다.

이 집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Trevor아저씨의 뒷 뜰 농장이었다. 농장에는 작은 정원이 있었는데 바람이 불면 잔잔한 소리를 내는 풍경(風磬)과 자유롭게 집주변을 노니는 새들을 위한 모이통이 있었다. 매일 아침이 되면 마치 디즈니 동화 속 공주들이 깨어나듯이 짹짹거리는 새들의 노랫소리와 아침 바람이 스치며 만든 풍경소리의 합주를 들으며 일어날 수 있었다. 매일 짜증내며 Snooze를 눌러 꺼버리는 알람과는 차원이 다른 순도 100%짜리 자연주의 감성이었다.

Trevor와 근처에서 Trevor와 같은 삶을 살고있는 그의 친구. 자주 그의 집에서 수제맥주를 나눈다고 했다.

그의 삶은 내게 너무 큰 충격이었다. 자연주의적인 삶, 도시와 문명의 편리함을 모두 포기한 삶.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한 번도 '이래볼까?'라는 고민 조차 해보지 않았던 삶이었다. 새로운 삶의 형태를 알게 되고 또 그 속에서 살아보니 너무 흥분됐다. 어쩌면 우리에게 익숙하던 보통의 삶이라는 Track이외에 또 다른 삶이 생각만큼 그리 멀리 있는건 아닐지도 몰랐다. 이제부터는 여행하며 사람을 만날 때 '유명 여행지를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죠?'라고 묻기보다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나요?'를 묻기로 했다.


두 번째 삶 - 100% 도시남자의 끝 Ben

Trevor와 대척점에 서있는 Ben은 독일의 대도시 Frankfrut의 청담쯤 되는 노른자 한가운데에 살고 있었다. 집의 위치가 상징하듯이 Ben의 삶은 High-tech의 최첨단을 달리며 엄청 세련되게 살고 있었다. 드라마 속 지식인의 상징인 서재는 집 한쪽 벽면을 꽉꽉채우며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드라마 속 부의 상징인 수 천만 원 한다는 고가의 그랜드 피아노가 떡하니 있었다. 그는 요새 피아노 독학법에 대해 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독일에서는 이미 출판이 끝났고 미국과 중국 출판 계약을 앞두고 있다고 했다. 와... 이거 멋있잖아. 저녁에는 바비큐 파티를 하자며 테라스를 보여주었다. 내가 재빨리 나가 풍경을 보겠다며 문을 열려는 찰나 그는 아주 시크하게 검지를 까딱거렸다. 그리고 리모컨을 누르니 자동으로 문이 스르륵 열렸다. 와... 허세 넘치지만 진짜 멋있잖아.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이런 곳에서 이렇게 살 수 있게 된 걸까. Ben은 과거 닷컴 버블 시절 창업을 했다고 했다. 온라인 항공권 예약 시스템을 설계했고 이를 루프트한자에 매각하며 예약시스템을 만들어준 뒤 Exit 하고 지금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산다고 했다. 그러면서 으레 성공한 사람들이 말하듯 당시에는 별거 아닌 것도 돈이 되는 시절이라 단순히 운이 좋았던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을 이어가는 와중에 홍콩의 출판사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에게서 내가 그토록 원하던 Global Professional Businessman의 삶을 볼 수 있었다.



세 번째 삶 - Nudist Linz남

가장 충격적이었던 삶은 오스트리아의 작은 도시 Linz에서 만났던 친구의 삶이었다. 이 친구는 참 희한하게도 Nude가 ism이 된 친구였다. 굳이 우리말로 하자면 나체주의자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 이 친구는 첫 만남부터 조심스럽지만 직접적으로 '너 내가 어떤 사람인 줄은 알지?'라고 물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말을 이어갔다. '나는 너의 선택을 존중해. 하지만 Nudist의 집에서 Couchsurfing을 한다면 너도 Nudism을 경험해보면 좋겠어'라고 말했다. 벗으라는 소리였다. 초면에 악수하고 통성명하고 Where are you from? 까지는 일반적이었지만 그다음이 '옷 벗을래?'라니. 그것도 마치 '커피 마실래?'처럼 쉽게 물어보다니. 너무 큰 충격이었다. 말을 잇지 못하고 망설이는 내게 그는 다양한 옵션을 제시했다.

1. 둘 다 시원하게 벗는다 - 그의 추천, 마치 Chef's choice같이
2. Linz남은 Full Nude를 시행하고 나는 옷을 입는다
3. 그냥 둘 다 옷을 입는다.

사실 2번 안에는 더 상세한 옵션들이 있었지만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그는 이런 일이 익숙한지 계속 1번을 유도했다. '한국 남자들은 군대 간다며? 거기서는 2년 동안 샤워도 같이 하니까 남자끼리 벗고 있는 건 이상한 게 아니라던데?'. 그래, 맞는데 생활관에서도 다 깨알딱 벗고 있진 않아 인마. 혹시 강제로 벗길까봐 속으로만 말했다. 나는 3번을 선택했다. 그는 젠틀했고 나의 선택을 존중해 주었다.

왠지 Nudist라고 하니 히피적 성향이 강한 여행자 거나 아니면 아주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예술가라고 상상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 그는 정신과 의사였고 EU 시민의회 같은 곳에서 의정활동에도 참여하는 파트타임 정치인이기도 했다. 겉은 멀쩡한 양반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그는 어쩌다 Nudist가 되었을까. 정신과 의사답게 그는 왜 본인이 Nudist가 되었는지 나름의 자가진단 결과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초-중등학교 시절 아주 엄격한 카톨릭계 기숙학교에서 생활을 했다. 청소년기의 남자애들은 으레 그렇듯 성적인 장난을 많이 치기도 한다. 하지만 카톨릭계 학교의 특성상 아주 엄격한 규율로 학생들을 규제했고 체벌도 아주 심했다고 했다. 본인도 어렸을 적 성적인 장난을 치다가 걸려서 체벌을 엄청 호되게 당했다고 한다. 그 이후로 강력한 억압의 트라우마 때문에 옷을 벗을 때마다 자유가 느껴진다고 했다. 특히 야외에서 Naturist로서 Full nude상태에 있을 때면 자연과 연결된 느낌마저 든다고 했다.

이 친구 나비족이었나...?


좀 다르게 살아도 괜찮아

물론 외국이라고 해서 저들의 삶이 평범한 삶인 것은 아니었다. 그곳에서도 분명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수가 더 많았다. 이 세 사람의 삶이 내 뇌 속에 깊숙이 박힌 이유는 이들을 통해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보통의 삶 이외에도 새로운 자기만의 색깔을 밝히는 삶은 '스스로의 용기와 선택'에 의해서 충분히 가능했다. 우리가 그동안 사회로부터 강요받아온 보통의 삶이라는 Track이외에도 수 많은 대안적인 삶이 이제는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만나본, 내가 살아본 그들의 삶은 그들이 어마어마하게 특별한 사람이어서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스스로 자신있게 그들의 삶을 '선택'했고 이를 '실행'했을 뿐이었다.

그래, 살아간다는 것은 정해진 Track을 열심히 달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열심히 살아가는 한 언제나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 누구도 나를 대신해서 어떻게 살 지 대답해줄 수 없다. 온전히 본인이 내린 답만이 정답이다. 나는 그토록 익숙한 '보통의 삶'만큼은 살고 싶지 않았다. 내 속에 깊숙이 자리한 청개구리가 튀어나온 것인지는 모르겠다. 보통의 삶의 Track을 따라가는 것은 능동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피동적으로 살아지는 대로 사는 것이라고 느껴졌다. 내가 고민하고 내가 결정한 Track은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우리 사회가 이런 Track이 살기 좋다고 모범답안처럼 제시하고 주입한 삶이었으니까. 어차피 한 번 밖에 못사는데 대충 살아지는 대로 살고 싶지는 않았다. 망해도 내 결정으로 망하고 싶었다.


퇴사라는 결정은 이직을 전제로 하지 않는 한 우리 사회가 정한 보통의 삶이라는 Track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그 Track에서 벗어나려 할 때면 수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그렇게 살아도 괜찮아?' 퇴사를 고민하던 그 때쯤 내게 필요한 한 마디는 '다르게 살아도 괜찮아'라는 말이었던 것 같다. 그래, 우리가 잘 알듯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틀린 삶은 없다. Track위를 반듯하게 따라가지 않아도 괜찮다. 다르게 살아도 괜찮다. 


나는 그들의 삶을 통해 '다르게 살아도 괜찮아'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Executive Summary : 
오빠랑 지게차 타러 갈래? (안정적 기름집 김 씨는 왜 불안정적인 마트삼촌 김씨가 되었을까) 


1부 - 대퇴사시대

0화 : 대퇴사시대, 도대체 왜 퇴사하세요?

1화 : Professionalism, 멋있잖아요

2화 : 노인의 얼굴에 나이테 대신 동심이 내린 이유

3화 : 내가 만난 '난놈'들의 공통점

4화 : 진짜 히치하이커는 엄지를 들지 않는다

5화 : 틀린 인생은 없어 다르게 살아도 괜찮아

6화 : 꿈을 강요하는 사회

7화 : 일출 보러 가다가 퇴사결심

8화 : 새장 속의 새는 새가 아니다 (Brunch Editor's Pick)

9화 :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10화 : 사직서를 준비하는 네가 알면 좋을 세 가지


2부 - 소상공인 라이프 소상히 알려드립니다.

11화 : 가라앉을 것인가 헤엄칠 것인가

12화 : 고객관리의 핵심은 메아리다

13화 : 그대, 존경받아 마땅한

14화 : 네비 있으세요?

15화 : 이 길로 가는 게 제대로 가는 걸까

16화 : 행복하자. 아프지말고

17화 : 영민할 것인가 따뜻할 것인가

18화 : 우리 동네에서 가장 소중한 가게

19화 : 모범생 남 대리가 사업을 말아먹은 이유는

20화 : 칼퇴할 수 있고 주말근무 없으면 워라밸일까? (Brunch Editor's Pick)

21화 : 왜 장사하는가

22화 : 이 가게, 한 달에 얼마 벌까?

23화 : 사장님, 이렇게 팔아서 남아요?

24화 : 진상의 평범성(Brunch Editor's pick)

25화 : 가장 오래된 빵집, 이성당이 잘 나가는 이유

26화 : 유해진에게 배우는 싸가지경영

27화 : 무른 귤과 아버지

28화 : 백종원이 말하는 장사 마인드

29화 :  이 식당은 50분만 일하면 한끼가 무료입니다

감사인사 : 꿈 하나를 이루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이성당 사장님을 만났어요)

30화 : 성심당은 파리바게뜨가 부러울까?

31화 : 그 자켓을 사지 말라던 파타고니아의 오랜 진심

감사인사 : 또 하나의 꿈이 이뤄졌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감사합니다

32화 : 어쩌다 대기업 그만두고 마트를 하게 됐어요?(Brunch Editor's Pick)

33화 : 울었다. 밥을 먹다 울었다.

34화 : 쿠팡의 시대, 동네마트 생존전략

35화 : 그렇게 마트가 된다

36화 : 가족같이 일하기 vs 가족이랑 일하기

37화 : 우리 동네 가장 소중한 가게가 되는 장사법

38화 : 현직 마트 삼촌입니다. 질문 답변드립니다

39화 : 군산에서 장사한다는 것

40화 : 사업... 나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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