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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욱 May 03. 2019

현직 마트 삼촌입니다. 질문 답변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현직 마트 삼촌입니다. 스타벅스를 매일 가는 사람도 스타벅스에서 일하지 않는 한 스타벅스에 대해서 모든 걸 알지는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혹시 마트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있으셨나요? 현직 마트 삼촌이 모르는 거만 빼고 전부 다 답변드리겠습니다. 마트에 관해 궁금한 내용 있으시면 댓글로 물어봐주세요!


1. 마트에 있는 거, 다 먹어봤어요?

제가 식탐이 많은 사람은 아니라서 다 먹어보지는 않았습니다. 생각보다 마트에는 제품이 꽤 많습니다. 중형급 규모의 저희 마트만 해도 등록된 제품 기준으로 약 2만여 개의 제품이 있는데요. 그중에서 먹을 수 없는 비식품이 약 8천 개, 식품으로 분류되는 제품은 약 1만 2천 개 정도입니다. 식품만 하루에 한 품목씩만 먹어본다고 해도 약 33년 정도 걸리네요. 오래 살아야겠습니다.


종종 신제품이 나오거나 시즌 상품이 나오면 먼저 먹어보기는 합니다. 고객분들이 '어떤 맛이에요?' 물어보셨을 때 답변해드리려고요. 먹어봐야 잘 팔죠. 최근에 먹어본 신제품 중에서는 풀무*의 꼬불꼬불 물냉면 맛있더라고요. 라면 형태의 냉면인데 면발도, 양념장도 제 취향에 맞아서 좋았습니다.


2. 신선식품 안 팔리는 건 다 먹나요?

제가 먹어서 처리해야 하는 것도 있고요. 안 먹어도 되는 것도 있습니다. 마트에서 이뤄지는 거래형태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합니다. 직매입, 수수료/임대매장, 대리점 거래인데요. 각 거래조건에 따라 먹어버릴지 아닐지가 결정됩니다.


직매입의 경우 말 그대로 제가 100% 사입하는 제품들이라서 안 팔리면 100% 책임져야 합니다. 저희 같은 경우에는 채소, 과일은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관리를 잘해도 신선식품(채소, 과일, 정육, 수산 등)은 선도유지를 위해 폐기해야 하는 상품들이 나오는데요. 상품성이 떨어지는 채소나 과일이 나오면 모두 제 뱃속에 버려야 합니다. 덕분에 이 일을 시작하고나서부터 과일을 참 많이 먹었습니다. 그리고 집에는 남은 과일로 만든 각종 과일잼들로 가득하고요. 또 멀쩡한 과일 먹어본 지도 오래됐네요. 그나마 장점이라고 하자면, 어쨌든 과일 자체를 자주 먹게 되면서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났을 때 피부가 좋아졌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수수료/임대거래거나 대리점 거래를 하는 식품이라면 안 먹어도 됩니다. 수수료/임대 거래조건은 Shop in Shop개념으로 보시면 됩니다. 수수료는 판매액의 일정 비율을 수수료로 지불하는 형태고요 임대는 말 그대로 매장 내에서 일정 구역을 임대료를 내고 영업을 하는 형태를 말합니다. 이 경우에는 입점한 업체가 직접 선도관리를 하기 때문에 굳이 제가 안 먹어도 됩니다. 먹고 싶으면 제값 주고 멀쩡한 걸로 사서 먹습니다. 대리점 거래를 하는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대리점과 처음에 거래할 때 반품이 되는 조건으로 계약을 합니다. 이 경우, 유통기한이 임박하거나 지난 제품들은 대리점이 반품해주거나 혹은 새 제품으로 교환해줍니다. 예를 들어, 유통기한이 지난 두부가 나왔다면, 대리점 사장님께서 반품을 해주시거나 아니면 유통기한이 긴 새 두부로 교환을 해주시는 것이지요. 그래서 제가 두부는 많이 안 먹습니다.


3. 그럼 반품 조건으로 대리점 거래하는 마트는 가격이 비싼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반품 조건 유무에 따라 입점 단가가 달라지기도 하는 건 사실이지만 입점 단가는 복합적으로 결정됩니다. 단순히 반품 조건 유무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마트의 매입 규모, 유통기한 내 판매하지 못하고 반품이 나오는 비율, 결제조건 등 여러 가지에 따라 상호 합의되기 때문에 반품 조건으로 거래한다고 해서 무조건 가격이 비싸진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대리점 입장에서도 무반품 조건으로 거래하더라도 매출 규모가 작거나 결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굳이 거래할 의미가 없겠지요. 반면에 반품 조건이 있더라도 매출 규모가 크거나 실제 반품률이 높지 않거나 결제 조건이 좋다면 실제로는 후자의 거래가 이득이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마트와 대리점간에 협상을 통해 최접점을 찾는 셈입니다.


4. 카트에 꼭 동전 넣어야 하나요?

그거라도 안 하면 카트가 너무 많이 없어져요!! 대형마트 카트는 동전 넣게 되어있죠? 동전 조차 안 넣으면 카트가 회수가 너무너무 안된다고 하더라고요. 한 대형마트는 카트 외부 반출을 막기 위한 장애물을 설치했다가 고객들의 반대로 인해 장애물을 다시 철거한 사례도 있습니다. 사실 저희 카트에는 동전은 따로 넣지 않아도 되는데요. 그래서 그런가 실제로 카트 끌고 집까지 가시는 분들 종종 있습니다. 마트 밖으로 카트를 가져가신 분도 설마 카트를 훔쳐가시려고 하시진 않았겠지요. 나중에 내가 장 볼 때 가져다 놓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했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 종적을 감추는 카트가 어마어마합니다. 저희도 지금까지 사라진 카트가 한 두대가 아닙니다. 게다가 카트 가격이 생각보다 비싸거든요. 약 20만 원 정도 합니다. 5대만 없어져도 마트 입장에서는 아무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100만 원 손해 보는 셈입니다. 카트와 더불어 장바구니도 스멀스멀 사라지는 아이템 중 하나입니다. 카트 자꾸 없어지면 저 짜장면도 못 사먹습니다. 탕수육은 욕심내지 않을게요. 짜장면은 먹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5. 시식 여사님들은 잘 팔리면 보너스가 있나요?

보너스가 올라가진 않고요 자존감이 올라갑니다. 대부분 시식 여사님은 마트 직영보다는 협력업체 파견이 많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파견업체에서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지만, 대부분은 그 업무를 전담해서 담당하는 직원이기 때문에 인센티브가 아니라 정해진 월급으로 받으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많이 파나 적게 파나 월급 똑같으면 열심히 안 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근데 옆에서 지켜보면 시식 여사님들은 대부분 오랜 경험과 프로정신으로 무장하신 베테랑 분들이라 오히려 판매량이 저조하면 스스로 부담을 많이 느끼시는 것 같아요. 누구든 파는 사람은 잘 팔리면 기분 좋고 안 팔리면 기분 안 좋거든요. 저희 가게에 오셨던 판촉사원 분들은 대부분은 잘 팔아 주시고 기분 좋게 돌아가십니다.


6. 계산하기 전에 실수로 병을 깼어요. 어떡하죠?

괜찮습니다. 저희는 실수로 깨진 경우에는 돈 안 받습니다. 가끔은 내가 깨질 때도 있고 병이 깨질 때도 있는 거죠. 괜히 깨진 병 때문에 다치지만 않으셨으면 됩니다. 예기치 못한 실수로 마트에서 병을 깨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고객 과실이긴 하지만 마셔보지도 못한 걸 또 돈까지 내야 되나 괜스레 억울한 마음이 들 수 있을 것 같아서 저희는 안 받습니다. 하지만 이는 마트 내부 방침마다 다를 수 있으니 다른 마트에서 병을 깨셨다면 마트 측에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고객 과실이고 자기들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청소도 해야 하니 깨진 병에 대해서는 당연히 사야 한다고 생각하는 마트도 있을 수는 있으니까요. 깨진 병값은 안 받는다고 하면 '아 그래? 그럼 가서 실수인 척하고 스트레스 풀 겸 병 좀 깨 볼까?' 생각한 분은 설마 안 계시겠죠? 민법 제750조에는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7. 마트 주인은 먹고 싶은 거 그냥 갖다 먹나요?

아뇨 포스에서 계산하고 먹습니다. 스타일 따라서 그냥 먹고 싶으면 우적우적 먹는 분도 계실 수 있지만요. 저희는 재고관리 차원에서 무조건 계산하고 먹습니다. 찍어놔야 나중에 재고조사 때 헷갈리지 않기 때문에 실수를 줄일 수 있습니다.


8. 가장 기억에 남는 진상 손님이 있나요?(ID: 거성의꿈)

진상 손님은 엄청 다양하죠. 자기가 쓴 물건이나 먹다 만 제품 가져와서 반품해달라고 하는 건 예삿일이고요. 바로 생각나는 것 중에서 가장 심했던 건 생긴 게 맘에 안 든다고 '그렇게 생겼으면 장사를 하지 말아야지'라고 말하는 사람이랑 자기 분을 못 이겨서 사람을 향해 물건을 집어던졌던 사람이 생각나네요.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정말정말정말정말정말 소수 중의 소수입니다. 대부분의 고객분들은 작은 친절에도 크게 감동해주시는 감사한 분들입니다.


하나 더 첨언하자면, 개인적으로는 진상 손님과 강성 고객은 구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 그러면 내 마음에 조금만 안 들어도 진상으로 구분해버리는 사람이 많아지게 되거든요. 진상으로 구분하고 손절하는 고객들의 수가 많아지다 보면 통장잔고도 손절됩니다.


9. 댓글 달리는대로 추가됩니다 :)


Executive Summary : 
오빠랑 지게차 타러 갈래? (안정적 기름집 김 씨는 왜 불안정적인 마트삼촌 김씨가 되었을까) 


1부 - 대퇴사시대

0화 : 대퇴사시대, 도대체 왜 퇴사하세요?

1화 : Professionalism, 멋있잖아요

2화 : 노인의 얼굴에 나이테 대신 동심이 내린 이유

3화 : 내가 만난 '난놈'들의 공통점

4화 : 진짜 히치하이커는 엄지를 들지 않는다

5화 : 틀린 인생은 없어 다르게 살아도 괜찮아

6화 : 꿈을 강요하는 사회

7화 : 일출 보러 가다가 퇴사결심

8화 : 새장 속의 새는 새가 아니다(Brunch Editor's pick)

9화 :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10화 : 사직서를 준비하는 네가 알면 좋을 세 가지


2부 - 소상공인 라이프 소상히 알려드립니다.

11화 : 가라앉을 것인가 헤엄칠 것인가

12화 : 고객관리의 핵심은 메아리다

13화 : 그대, 존경받아 마땅한

14화 : 네비 있으세요?

15화 : 이 길로 가는 게 제대로 가는 걸까

16화 : 행복하자. 아프지말고.

17화 : 영민할 것인가 따뜻할 것인가

18화 : 우리 동네에서 가장 소중한 가게

19화 : 모범생 남 대리가 사업을 말아먹은 이유는

20화 : 칼퇴할 수 있고 주말근무 없으면 워라밸일까?(Brunch Editor's pick)

21화 : 왜 장사하는가?

22화 : 이 가게, 한 달에 얼마 벌까?

23화 : 사장님, 이렇게 팔아서 남아요? - 박리다매 경제학

24화 : 진상의 평범성(Brunch Editor's Pick)

25화 : 가장 오래된 빵집, 이성당이 잘 나가는 이유

26화 : 유해진에게 배우는 싸가지경영

27화 : 무른 귤과 아버지

28화 : 백종원이 말하는 장사 마인드

29화 :  이 식당은 50분만 일하면 한끼가 무료입니다

감사인사 : 꿈 하나를 이루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이성당 사장님을 만났어요)

30화 : 성심당은 파리바게뜨가 부러울까?

31화 : 그 자켓을 사지 말라던 파타고니아의 오랜 진심

감사인사 : 또 하나의 꿈이 이뤄졌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감사합니다

32화 : 어쩌다 대기업 그만두고 마트를 하게 됐어요?(Brunch Editor's Pick)

33화 : 울었다. 밥을 먹다 울었다.

34화 : 쿠팡의 시대, 동네마트 생존전략

35화 : 그렇게 마트가 된다

36화 : 가족같이 일하기 vs 가족이랑 일하기

37화 : 우리 동네 가장 소중한 가게가 되는 장사법

38화 : 현직 마트 삼촌입니다. 질문 답변드립니다

39화 : 군산에서 장사한다는 것

40화 : 사업... 나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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