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다시 서울 시민이 되었다. 완전 지방도 아니고 서울과 근접한 도시에 살았었지만 서울 중심으로 이사를 오니 마음의 여유가 달라졌다. 어디를 가든지 교통이 편하고, 접근이 쉬운 것은 사실이므로 거리 때문에 망설이는 일은 많이 줄어들었다. 예전에는 일단 뭐가 있어도 반대 방향이라면 덮어놓고 포기했던 것이 많았었다.
밤늦게 돌아다니거나, 대중교통이 끊어지기 일보직전에 돌아다니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봐야 한다. 평소에 택시도 잘 타지 않고, 뭔가 밤이 되면 더 조용한 동네여서 습관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 마인드가 달라졌다. 더 이상 거리로 핑계를 삼지 않게 되었고, 어디든 그냥 서슴없이 가기도 하고, 안된다는 마음이 일단 무장해제된 것 같은 느낌이다.
면허가 있긴 하지만 운전은 못하는 그린 면허라서 대중교통의 힘을 많이 빌리게 되는데 요새는 어디를 가려면 어떤 루트를 선택해야 하는지가 고민일 정도다. 부천에 살 때는 그다지 선택권이 많지 않았는데, 요즘은 똑같은 데를 가도 루트가 많아서 이것저것 시도해보는데 어떤 날은 정말 새로운 루트를 선택해서 고생을 하기도 한다. 모험을 하는 것은 좋은데 늦을 수도 있고, 낯선 길에 대한 긴장감으로 심장이 쫄깃하게 되니 적당히 시도하려고 한다.
예전에는 기껏 열심히 뛰었는데 눈앞에서 버스를 놓치는 일이 너무 많았다. 아예 뛰지 않았다면 억울하지나 않지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는데 그 앞에서 속절없이 버스가 떠날 때의 속상함이란... 그런데 운동을 하고 나서는 아무래도 뛰기 실력이 향상되어서 넉넉하게 도착한다. 버스가 신호에 걸렸을 때 뛰어가야 하는 거리가 꽤 되는데 그걸 넉넉히 이겼을 때의 뿌듯함은 말로 할 수 없다. 그래서 요즘은 사소한 승리감을 자주 맛봐서 좋다. 그리고 버스 배차가 많은 것 또한 좋다. 부천에서는 한 대 놓치면 폭망인 경우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버스가 자주 오니 그런 걱정은 덜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일 좋은 것은 걸어서 스타벅스를 갈 수 있고, 걸어서 교보문고를 갈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둘 다 작은 곳이다. 주말에는 오히려 절대 가지 않는데 그 이유가 거의 시장처럼 사람이 많기 때문에 도저히 책을 읽을 분위기가 아니기도하고, 글을 쓸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서 나는 거의 평일에만 이용하고 있다. 그래도 어쨌든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서 갈 수 있다는 것에 난 만족한다. (원래부터 집 앞에 있었던 사람은 모르는 그 감정일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ㅋㅋ)
당분간은 이 도시에 정을 붙이고 살 수밖에 없다. 싫은 것, 안 좋은 것도 있을 수 있지만 어차피 내가 살 곳인데 그것을 계속 생각해봤자 나한테 좋은 게 없다. 내가 살아가고 있고, 내가 살아가야 할 이 도시를 마음껏 누리고, 사는 동안에는 사랑하면서 살아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