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여행은 훌륭하다 #24
정부가 '합의'란 걸 했다. 할머니들은 우셨고 많은 이들이 가슴을 쳤다. 간혹 사과를 받아들이라며 할머니들을 윽박지르는 이들도 있다고 했다. 허. 답답한 마음에 뉴스창을 닫았다. 하 수상한 뉴스가 그것만은 아닐진데 유독 답답했다. 돌아가신 내 할머니가 생각났다. 할머니는 열 일곱 나이에 부랴부랴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혼사를 치르셨다. 이유는 하나였다. 위안부에 끌려갈까 두려워서. 그리고 스물 몇 살에 남편을 잃었다. 그 비극은 아빠와 나의 핏줄을 타고 여즉 흐른다. 할머니들의 눈물이 남의 이야기가 될 순 없었다. 다시 뉴스창을 켜 아베의 미끄러운 낯을 보고 있자니 문득 3년 전 베를린 여행이 떠올랐다.
베를린 여행에서 가장 강렬했던 순간을 맞닥뜨린 건 의외의 장소였다. 시내를 돌아보다 상점 사이에 섞인 한 기념관에 들어갔다. 40년 전 독일 총리를 지낸 빌리 브란트 Willy Brandt 를 기억하기 위한 곳이었다. 그 곳에 걸린 한 장의 사진 앞에 참 오래 서 있었다.
그는 1970년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를 방문한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그 날, 유태인 봉기 기념탑 앞에서 그는 무릎을 꿇고 울었다. 그의 방문을 맹렬히 비난했던 폴란드인들조차 그 순간을 숨죽여 지켜봤다. 전화로 사죄의 말을 전한 아베에게선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 찰나의 진심이다.
나도 부끄러운 건 감추고 싶다. 꺼내고 싶지 않다. 베를린 곳곳에 있었던 전쟁과 학살의 흔적은 그래서 더욱 의외였다.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가장 커다랗게 있었다. '우리가 이렇게 끔찍한 일을 저질렀습니다.'란 자기고백이었다.
유대인 학살 추모공원과 홀로코스트 기념관엔 전세계인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현장학습 나온 독일 아이들의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도심 한복판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독일에 의해 목숨을 잃은 이들의 기록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전세계인들은 베를린 한복판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는 사실을 곱씹고, 또 곱씹고 있다.
소녀상. 그 작은 흔적 하나마저 지우고자 하는 이들의 목소리에서 어찌 진심을 느낄 수 있을까.
빌리브란트의 독일과 아베의 일본만 다를까. 사실 가장 다른 건 우리일지도 모른다. 최근 뉴스를 보며 가장 마음 아팠던 건 이른바 어버이 연합, 엄마부대들의 목소리였다. 이젠 잊고 덮자며 할머니들을 윽박지르는 그 모습이 아베의 낯보다 더 낯설었다.
홀로코스트든 위안부든 우리에게 과연 '용서'란 걸 할 자격이란 게 있을까? 지금도 우리 사는 세상에선 너무나도 비인간적인 만행이 반복되고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듯 아픔을 잊은 이들에게 치유인들 있을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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