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on Jan 07. 2016

빌리브란트의 독일과 아베의 일본이 다른 이유 3가지

모든 여행은 훌륭하다 #24

할머니들이 울고 계셨다.


정부가 '합의'란 걸 했다. 할머니들은 우셨고 많은 이들이 가슴을 쳤다. 간혹 사과를 받아들이라며 할머니들을 윽박지르는 이들도 있다고 했다. 허. 답답한 마음에 뉴스창을 닫았다. 하 수상한 뉴스가 그것만은 아닐진데 유독 답답했다. 돌아가신 내 할머니가 생각났다. 할머니는 열 일곱 나이에 부랴부랴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혼사를 치르셨다. 이유는 하나였다. 위안부에 끌려갈까 두려워서. 그리고 스물 몇 살에 남편을 잃었다. 그 비극은 아빠와 나의 핏줄을 타고 여즉 흐른다. 할머니들의 눈물이 남의 이야기가 될 순 없었다. 다시 뉴스창을 켜 아베의 미끄러운 낯을 보고 있자니 문득 3년 전 베를린 여행이 떠올랐다.



머리 굴려 전화 건 아베

vs 빗속에 무릎꿇은 빌리브란트


베를린 여행에서 가장 강렬했던 순간을 맞닥뜨린 건 의외의 장소였다. 시내를 돌아보다 상점 사이에 섞인 한 기념관에 들어갔다. 40년 전 독일 총리를 지낸 빌리 브란트 Willy Brandt 를 기억하기 위한 곳이었다. 그 곳에 걸린 한 장의 사진 앞에 참 오래 서 있었다.



그는 1970년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를 방문한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그 날, 유태인 봉기 기념탑 앞에서 그는 무릎을 꿇고 울었다. 그의 방문을 맹렬히 비난했던 폴란드인들조차 그 순간을 숨죽여 지켜봤다. 전화로 사죄의 말을 전한 아베에게선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 찰나의 진심이다.




어디든 있는 학살의 기록

vs 어떻게든 없애려는 소녀상


나도 부끄러운 건 감추고 싶다. 꺼내고 싶지 않다. 베를린 곳곳에 있었던 전쟁과 학살의 흔적은 그래서 더욱 의외였다.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가장 커다랗게 있었다. '우리가 이렇게 끔찍한 일을 저질렀습니다.'란 자기고백이었다.



유대인 학살 추모공원과 홀로코스트 기념관엔 전세계인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현장학습 나온 독일 아이들의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도심 한복판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독일에 의해 목숨을 잃은 이들의 기록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전세계인들은 베를린 한복판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는 사실을 곱씹고, 또 곱씹고 있다.


유대인 박물관, 학살당한 유대인들을 상징하는 작품


소녀상. 그 작은 흔적 하나마저 지우고자 하는 이들의 목소리에서 어찌 진심을 느낄 수 있을까.





영원히 기억하자는 이들

vs 이젠 덮자는 이들


빌리브란트의 독일과 아베의 일본만 다를까. 사실 가장 다른 건 우리일지도 모른다. 최근 뉴스를 보며 가장 마음 아팠던 건 이른바 어버이 연합, 엄마부대들의 목소리였다. 이젠 잊고 덮자며 할머니들을 윽박지르는 그 모습이 아베의 낯보다 더 낯설었다.


@ohmynews, 어버이연합


@news1, 효녀연합


홀로코스트든 위안부든 우리에게 과연 '용서'란 걸 할 자격이란 게 있을까? 지금도 우리 사는 세상에선 너무나도 비인간적인 만행이 반복되고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듯 아픔을 잊은 이들에게 치유인들 있을까싶다. 






<모든 여행은 훌륭하다>의 다른 글

#1. 포르투로 떠나야만 하는 이유 3가지

#2. 한겨울의 피오르드로 떠냐야만 하는 이유 3가지

#3. 마카오로 떠나야만 하는 이유 3가지

#4. 웰링턴으로 떠나야 하는 이유 5가지

#5. 프라하로 떠나야만 하는 이유 4가지

#6. 걷기 여행을 떠나야만 하는 이유 4가지

#7. 트롬소로 떠나야만 하는 이유 3가지

#8. 지우펀으로 떠나야만 하는 이유 3가지

#9. 테헤란으로 떠나야만 하는 이유 3가지

#10. 리스본으로 떠나야만 하는 이유 4가지

#11. 셜록 매니아가 런던으로 떠나야만 하는 이유 4가지

#12. 부다페스트로 떠나야만 하는 이유 3가지

#13. 로토루아로 떠나야만 하는 이유 3가지

#14. 브라티슬라바로 떠나야만 하는 이유 3가지

#15. 베를린으로 떠나야만 하는 이유 3가지

#16. 오클랜드로 떠나야만 하는 이유 4가지

#17. 에든버러로 떠나야만 하는 이유 3가지

#18. 추억 많은 당신이 파리로 떠나야만 하는 이유 4가지

#19. 면허없는 당신이 독일로 떠나야만 하는 이유 3가지

#20. 육아 중인 당신이 LA로 떠나야만 하는 이유 5가지

#21. 로맨틱한 당신이 훗카이도로 떠나야만 하는 이유 3가지

#22. 이 가을, 교토로 떠나야만 하는 이유 6가지

#23. 새해의 시작, 당신이 크라이스트처치로 떠나야 하는 이유

#24. 빌리브란트의 독일과 아베의 일본이 다른 이유 3가지

매거진의 이전글 새해의 시작, 당신이 크라이스트처치로 떠나야 하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