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만에 다시 찾은 아빠의 공간

오늘을 살아가며

by 연은미 작가



봄이 돌아왔다.

아빠의 텃밭에 6년 만에 다시 왔다. 아빠의 텃밭에서 뛰어다니며 놀던 꼬꼬마였던 아이들은 사춘기 청소년이 되었다. 이틀 전 언니 오빠와 1박을 한 후 헤어지고 아빠와 하루 더 함께 경주여행을 했다. 오늘은 시어머니 10주기 제사를 지내러 부산 형님댁으로 출발해야 한다. 어제는 한여름 날씨라 한낮에 다니는 게 힘들었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남편과 나, 아이들 모두 7시까지 곤히 자는 사이 아빠는 일치감치 일어나 밖을 몇 번 나갔다 오시는 기척이었다. 겨우 눈을 비비고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분리수거를 다 하시고 근처 산책까지 7 천보를 찍으셨다. 어제도 1만 4 천보를 걸으시고 걸음이 느리셔도 매일 열심히 걸어 다니시니 존경스럽다. 짐을 정리해 체크아웃을 하고 부산 시댁으로 가려는데 아빠가 밭에 들러가라고 하셨다. 양파를 뽑아줄 테니 시댁에도 드리고 서울까지 가져가서 언니와 나눠먹으란다.


나는 먹거리에 관심이 많고 농산물 직거래를 좋아하기에 편의점에서 박스까지 구해 밭으로 향했다. 비가 조금 내리다 잠시 그쳐서 다행히 양파를 뽑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알려준 대로 손주들이 양파를 뽑기 시작한다. 상일꾼 아들이 순식간에 양파를 뽑았다. 가위로 위쪽 대를 자르고 두 박스와 검은 봉투에 나눠 담았다. 차 트렁크에 실을 동안 아빠와 텃밭 여기저기 구경을 한다.







텃밭에 자주 먹는 상추가 안 보인다.

“아빠 왜 상추는 안 심어요?”

“심어봤자 먹을 사람도 없는데 뭐.”

“아쉽다. 똑똑 따서 된장 찍어 쌈 싸 먹으면 맛있을 텐데.”

아빠가 웃으신다. 정말이다. 키우는 건 재능이 없지만 아빠 텃밭이 가까이 있으면 수시로 와서 쏙쏙 뽑고, 똑똑 따서 무치고 볶고 장아찌도 담을 텐데 너무 아쉽다. 텃밭을 보면 마음이 따뜻하고 편안해진다. 고랑마다 푸성귀들이 줄을 맞춰 가지런히 자라는 것을 보면 주인의 손길이 느껴진다. 아빠 텃밭이 6년 전과 달라진 것이 눈에 띄었는데 바로 물웅덩이다. 못 보던 웅덩이라고 했더니 삽으로 직접 파서 만드셨단다. 수도가 없는 텃밭에 물대기가 한결 수월해졌겠다. 잠시 앉아서 쉬는 천막도 만드셨다. 처음 돈을 주고 쳐 놓은 천막이 태풍에 날아가서 직접 대를 세우고 얼기설키 덮어서 만드셨단다. 깔끔하진 않지만 일하다 잠시 몸을 쉬기에 손색이 없어 보였다. 불편한 건 어떻게든 머리를 써서 만들어 쓰는 아빠의 지혜가 느껴진다. 참깨, 들깨, 대파, 고구마, 오이, 가지, 감자가 아빠의 사랑을 받아 쑥쑥 자란다. 몇 달 후 아빠의 손을 떠난 농산물이 박스에 소중히 담겨 우리 집에 도착하겠지. 아빠의 텃밭을 떠올리며 감사히 먹어야겠다.


아빠의 텃밭을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생각하니 서운하고 애잔하다. 내가 모르는 아빠의 시간이 이곳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아빠에게 위로가 되고 삶의 기운을 주는 텃밭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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