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과 사유
플라톤은 좋음의 이데아를 태양의 비유로 설명하고 나서,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다며 선분의 비유로 다시 설명합니다.
앎에는 그 대상과 단계에 따라 4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크게는 눈으로 보이는 가시적 영역과 지성으로만 보이는 가지적 영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눈으로 보이는 가시적 영역은 다시, 사물의 그림자를 보는 것과 같은 상상의 영역과 실제 존재하는 실재물, 즉 우리 주변의 동식물들 같은 것을 오감의 감각기관으로 보고 믿는 믿음의 영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림자는 실제 모습의 모방에 불과하므로, '그럴 것이다'라는 상상이나 짐작으로 알 수 있는 상상의 영역이고, 실제 존재하는 동식물 모습 등은 신체기관인 오감으로 보고, 보이는 그대로를 그냥 믿음이나 신념으로 믿어버리는 믿음의 영역입니다. 五感으로 보는 이런 가시적 영역은 오류를 동반하므로 실체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지성으로만 볼 수 있는 가지적인 영역은 수학의 도형이나 숫자 같은 것들을 추론하는 사고의 영역과 본질 즉 이데아로만 지각할 수 있는 지성의 영역으로 다시 나눌 수 있습니다. 도형이나 숫자의 영역은 가정이나 전제를 설정하여 추론적 사고로 알 수 있고, 이데아 영역은 직관과 사유인 지성으로 알 수 있습니다.
요약하면, 플라톤은 앎의 영역에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영역과 지성으로만 볼 수 있는 영역이 있습니다. 지성으로 볼 수 있는 영역 중 오로지 직관과 사유로만 볼 수 있는 이데아의 영역이 최고의 앎의 단계라 하였습니다.
플라톤이 앎의 대상과 단계를 네 가지로 구분하여 하나의 선분으로 연결, 설명하는 것이 선분의 비유입니다.
플라톤은 선분의 비유를 통하여, 최고의 앎의 대상은 이데아 영역이고, 이는 어떤 추론과 가정도 필요 없는 직관과 사유로만 알 수 있는 것으로, 태양의 비유에서 말하는 인식을 있게 하는 근원인 좋음의 이데아와 같은 최고의 인식의 단계라는 점을 재차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선 가장 낮은 단계의 앎은 상상의 영역입니다.
우리는 사자의 탈을 쓴 사람의 그림자를 보고는 사자라고 상상하거나 짐작합니다. 그러나 실제는 사자가 아니니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 째는 사자의 탈을 쓴 사람을 직접 눈으로 보고 사자라고 믿고 신념으로 확신합니다. 왜냐면 실제 사자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사자가 아닌 사람입니다. 따라서 눈으로만 보는 앎은 낮은 단계의 앎입니다.
세 번 째는 사자의 탈을 한 사람을 보고 사납고 거칠 것이라고 추론하는 단계입니다. 사자는 당연히 거칠고 사나우므로 사자탈을 한 사람은 거칠 것이라고 추론하는 것입니다. 이 단계 또한 본질에는 접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자탈을 쓴 것은 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사납다는 추론은 잘못된 것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 단계는 사자탈을 쓴 것을 사람으로 인식하는 단계입니다. 이는 오로지 직관과 사유로서만 판단하는 단계입니다. 즉, 사자탈을 하고 있지만 움직임이나 모습에서 사자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고 그렇다면 움직임의 특성을 봤을 때 사람이라고 사유하는 것입니다.
이는 앎의 단계 중 최고의 단계로써, 눈이 아닌 지성으로만 볼 수 있고, 오직 직관과 사유로서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앎의 최고 단계는 이데아 영역으로써, 눈으로는 볼 수 없고 오직 사유와 직관의 지성으로만 알 수 있으며 이것이 좋음의 이데아라고 하였습니다.
이상적인 국가의 통치자는 좋음의 이데아에 접근하기 위하여 배움을 좋아하고 게으르지 말아야 하며 경솔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배움의 시작은 스스로 부족함을 인정할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입니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고 주머니 속의 송곳은 언젠가는 들어 나게 되어 있습니다. 좋음의 이데아에 접근한 리더라면 언젠가는 그 재능이나 통솔력이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자신의 리더십을 성급히 드러내려고 서두를 때, 모순과 피해가 발생하고 주변 사람들이 그 피해를 보게 됩니다. 낭중지추의 마음가짐을 가지고 배우며 때를 기다리는 리더가 진정한 리더입니다.
경영학에 계량 경영이 있습니다.
투자나 의사결정을 할 때 과거의 계량적 수치들을 각종 경영기법으로 분석해서 미래의 이익규모를 예측하는 이론이 계량 경영입니다.
경영의 대가는 계량 경영을 참조하나 이를 통해 의사결정을 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계량 경영을 아예 무시하는 경영의 대가도 많습니다.
이유는 오히려 의사결정을 방해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경영의 대가들은 그들만의 촉(觸)이 있습니다.
이를 감(感)이라고도 하지요.
고수를 가리켜 '촉'이 있다고 합니다.
'감'이 왔다고도 말합니다.
한 분야에 오랜 시간 동안 경험과 지식이 쌓이고 거기에 수많은 착오와 실패를 경험하고 사색을 지속적으로 동반하면 '촉'이란 게 생기게 됩니다.
그 '촉'이 선분의 비유에서 말하는 오직 직관과 사유로만 알 수 있는 지성의 영역입니다.
상식으로 판단하면 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상식은 남들도 다 그렇게 알고 판단하므로 상식으로 판단하면 찬스가 오지 않으며, 찬스가 와도 다수가 참여하므로 이미 끝물인 경우가 많습니다.
기회는 낙엽이 떨어지는 그 순간에 느껴야 합니다. 단풍 물이 들어 있는 잎이 떨어지는 것은 순간입니다. 그 순간에 바로 겨울이 올 것을 직감하고 얼어 죽지 않도록 대비하는 것, 새봄이 올 때를 대비해서 큰 준비를 하는 것이 리더의 자세입니다.
촉(觸), 감(感), 직관과 사유로만 알 수 있는 지성의 단계가 최고의 리더, 철인 만이 다다를 수 있는 앎의 단계입니다.
낭중지추의 자세로 때를 기다리고(중용의 자세) 기회를 포착하는 직관, (좋음의 이데아) 사유로 느낄 수 있는 촉(관조적 삶)을 갖출 수만 있다면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을 것이며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중용과 관조적 삶을 살 수 있고 행복감은 극에 달할 것입니다.
나에게 낭추지추, 직관, 촉이 있는지 살피는 하루 보내셔요.
플라톤 국가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