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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Jun 29. 2022

<그리스 7일차> 여행의 모든 순간은 우연이 만든 기적

 <이탈리아 1일차> 로마의 휴일, 그래도 팁

<이탈리아 2일차> 화려한 바티칸, 투박한 산탄젤로

<이탈리아 3일차> 로마 여행에서 놓치거나 놓칠뻔한

<이탈리아 4일차> 예나 지금이나 인간들이란

<이탈리아 5일차> 사기캐 토스카나에서 관광 대신 여행

<이탈리아 6일차> 몬테풀치아노, 로망이 이긴다

<이탈리아 7일차> 발도르차 평원의 빛과 바람

<이탈리아 8일차> 토스카나, 하늘이 다했다.

<이탈리아 9일차> 피렌체, 63층을 올라갔다니

<이탈리아 10일차> 오, 다비드.. 그리고 피스토야

<이탈리아 11일차> 파랗게 빛나는 친퀘테레..그리고

<이탈리아 12일차> 만토바 공국..가르다 호수
<이탈리아 13일차> 베로나, 시르미오네..넘치게 좋았다

<이탈리아 14일차> 구텐 탁, 돌로미티

<이탈리아 15일차> 돌로미티, 세체다에서 멈춘 시간

<이탈리아 16일차> 돌로미티, 길 위에서...친퀘토리

<이탈리아 17일차> 돌로미티, 트레치메 6시간이 남긴것

<이탈리아 18일차> 베네치아의 상인들

<이탈리아 19일차> 베네치아, 부라노 무라노

<이탈리아 20일차> 베네치아, 두칼레에서 키퍼에게

<이탈리아 21일차> 구겐하임& 베네치아 좋아진 이유

<그리스 2일차> 델피의 신탁, 우리의 제물은..

<그리스 3일차> 메테오라, 천공의 수도원이 기록한 것

<그리스 4일차> 아고라를 만든 아테네 시민들은..

<그리스 5일차> 산토리니에 친구가 찾아온 밤

<그리스 6일차> 산토리니, 영원한 사랑을 믿는다면


내가 비교적 눈가 주름이 적다면 선글라스 덕분이다. 햇살에 눈 찌푸리지 않고 눈도 보호한다는 설명에 30대 이후 365일 필수품이다. 산토리니는 그늘에 있어도 해가 높아지면 눈이 부시다. 선글라스를 꺼낼 수 밖에 없다. 그런 내가 선글라스 쓰기 아까워서 썼다 벗었다 되풀이한다. 바다가, 짙푸른 바다의 청색이 믿기지 않아서 계속 바라본다. 아침부터 밤까지 색이 계속 바뀌는데 순간순간 놀랍다. 이렇게 산토리니의 기억을 갖고 떠난다.


11시 체크아웃 뒤 짐을 맡기고, 피라마을에서 어슬렁거리기. 공항 인근 해변에서 물놀이 더 해볼까 마음이 있었으나 쉽게 포기했다. 충분히 즐겼다. 4시간 걸리는 배 대신 1시간 걸리는 비행기를 선택한건 잘했다. 비록 전체 일정 비행기 값에 비해 비싸게 왔지만 아깝지 않다. 첫 항공편을 워낙 싸게 구했지.


가성비도 맛도 좋았던 식당에서 에게해를 바라보며 점심을 먹었다. 탄성이 이어졌던 처음과 달리 환상적 풍경에도 익숙해진다고 웃었다. 체크아웃 후 시간이 애매했는데 3시간 여유있게 보내다보니 식당에서도 온갖 수다.. 처음에는 식당에 돌아다니는 고양이가 눈에 걸렸다. 비쩍 말랐는데 젖만 부었다. 새끼를 낳은지 얼마 안되지 싶다. 사람 음식 주면 안된다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감자를 씹어 짠기를 좀 뺀뒤 조금씩 먹였다. 납죽납죽 잘도 먹는다. 마지막 점심이라 느긋하게 즐기는데 골목의 꼬마가 눈에 들어왔다. 담벼락 옆 손바닥 만한 그늘에 자리잡고 아코디언을 켜는 10살 남짓 깡마른 소녀. 그리스에는 관광지마다 구걸하는 이가 있지만, 이번엔 눈을 뗼 수 없었다. 피아노 학원을 다녔을 것 같지는 않은데, 누가 아코디언을 가르쳤을까. 멀리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지갑을 열 것 같은 사람에겐 눈을 맞추고 웃는다. 조금 큰 소년과 소녀가 꼬마에게 가끔 들린다. 물도 갖다준다. 소년은 해가 더 뜨거워질 무렵 선수 교체. 소녀보다 연주는 뛰어나지만 관광객들의 선심을 얻는데는 실패했다. 아무래도 어린 소녀에게 마음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들에게 돈을 줘도 될까? 구호 시스템이 작동해야 하는데 구걸을 용인하는 건 문제가 되겠지? 하지만 정말 안되는걸까? 혹시 소녀는 어느 조직의 어른들이 내보낸걸까? 가족들이 어린 아이를 최전선에 내세운걸까? 빵은 먹을 수 있을까? 설마 맞지는 않겠지? ‘올리버 트위스트’가 옛날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어린 소녀는 영악할 수도 있고, 일찍 어른이 되고 있겠지. 괜찮다. 그저 살아가면 좋겠다.


산토리니를 떠나며, 역시 피사체에 대한 애정으로 연이 사진을 찍어줬다. 서울에서도 이렇게 해방된채 돌아다닐 수 있으면 좋을텐데. 에게항공 비행기는 앞뒤로 트랩을 오르며 탄다. 나는 어느새 그리스어로 Exit, 엑소더스 ΕΞΟΔΟΣ를 읽을 수 있다. 러시아어와 문자가 비슷하다. 


산토리니에서 아테네까지 비행시간만 따지면 30분? 큰 짐을 맡겨놓고 떠난 며칠전 숙소로 돌아왔다. WUKELA 아파트는 여행자로서 대만족. 가성비 좋고 쾌적한데다 아고라까지 걸어서 6분, 옥상에선 아크로폴리스가 보인다. 건물주는 중국인이다. 깨끗한 새 건물에 여행자들이 조용히 들락거린다. 인근 낡은 건물은 리모델링중이다. 관광이 살아나면 비슷한 숙소가 될지 모르겠다. 여름휴가가 시작된 탓인지 아테네 사람은 적고, 밤에도 불이 꺼진 건물이 많다. 몇 건물은 분명 버려진듯 하지만 알 수 없다. 


아테네 시내에서 헤드라이트 유리가 다 깨진 채로 다니는 BMW를 봤다. 어느 버스는 앞부분 철판이 떨어져나갔다. 범퍼가 없이 다니는 차도 있다. 국가부도를 맞은 그리스의 사정은 가끔씩 눈에 띈다. 건물 벽을 가득 채운 그래피티는 원래 분노와 저항의 흔적이라는 딸기는 말했다. 그리스 청년 10명 중 4명이 실업 상태다. 코로나로 관광산업이 타격을 받으면서 보릿고개를 넘겼을거라 이방인은 짐작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딸기는 “글로벌 중저가 의류브랜드도 그렇지만 그리스 옷가게에는 면 대신 온통 린넨 옷”이라고 말했다. 목화는 물을 많이 먹는 작물이라, 물이 부족해지면 다른 농작물에게 밀려 재배가 줄어든다. 면 대신 저렴한 린넨이 대중화되는 걸까. 
어제 줌으로 와인을 함께 마신 빈은 여행에서 어느 도시가 가장 좋았냐고 물었다. 나는 무엇이 가장 좋다며 한 가지만 꼽지 못하는 인간이다. 다만 아테네에는 괜한 연민이 생긴다. 감히 지나가는 관광객 주제에 짠하다. 사실 이탈리아도 선진국 느낌이 덜해서 놀랐다. 한국이 그새 강대국, 선진국이란걸 생각했다. 어쩌면 서울 사람인 내 눈높이로 이탈리아나 그리스의 지방 도시를 뭐라 하는 것 자체가 무리겠지만 뭔가 다르게 보인다. 선진국 중에 국제사회 공헌도, 한마디로 돈 내놓는데 인색한 한국이 어느새 많이 컸다. 어느 방향으로든 사람이나 국가나 변한다. 


과거 산토리니는 몹시 가난하고 평범했다. 해운업계 거물 Evangelos P. Nomikos와 그의 아내 Loula가 1950년대 초 고향을 지원하겠다고 나섰을 때, 호텔이나 병원 중 산토리니 사람들은 호텔을 청했다. 관광객이 거의 없던 시절이다. 당시 가장 화려한 호텔 아틀란티스는 1956년 7.8 지진을 버텨낸 몇 안되는 건물이 됐다. (참고) 이후 산토리니는 알다시피 환골탈태. 사람들의 의지는 많은걸 바꾼다.
관광객들로 시끌벅적한 아테네 거리, 호사로운 바버샵을 지나다가 별 생각이 다 든다. 시간이 지나면 또 어떻게 달라질지 모른다. 잘 되기를. 



그래서, 그리하여, 드디어.. 마지막 밤이다. 옆 골목 베트남식당에서 공수한 쌀국수에 숙소에서 제공한 와인을 곁들여 옥상 테이블에서 늦은 저녁을 즐겼다. 아크로폴리스 야경도, 시원한 바람도 조용한 거리도 완벽했다. 사실 야경이 없었다해도, 음식이 달랐다고 해도, 그저 우리는 두런두런 이야기를 실컷 나눴을거다. 여행지의 아름다운 풍경, 인상적 아우라는 우리를 거들 뿐이다. 


6월1일에 출국해서 30일에 귀국하니, 2022년 6월은 다정한 이들과 유쾌했던 인생의 쉼표다. 코로나 불확실성을 뚫고 어쩌다 뭉쳤고 날마다 감사했다. 우리는 모두 토스카나 황금 밀밭의 바람을 기억한다. 마침 아무도 없었고, 마침 바람은 좋았다. 다른 계절, 다른 사람과 간다면 또 다를테고, 관광객이 늘어나도 그 분위기가 아닐게다. 돌로미티나 산토리니에서는 날씨가 우리를 도왔다. 빈은 늘 날씨의 신이 보살펴준다는데 연도 그렇다니, 도저히 나쁘기 힘든 조합이지. 여행의 모든 순간은 우연이 수백번 겹친 기적 같다. 그 시간을 만들어내는 수많은 변수들이 딱 어느 지점에서 만난다. 어디가 가장 좋았다고 단순하게 말하기 힘든 이유다. 어쩌면 우리는 각자 마음에 드는대로 다르게 기억할 수도 있다. 상관 없다. 좋았던 시간이 서로 다른게 당연하고, 우리는 만날 때 마다 서로 다른 버전으로 계속 떠들거다. 
몬테풀치아노 인근 농가민박의 안드레아, 피스토야 숙소의 엔리코, 베네치아 아파트 매니저 사라, 와인샵 밀레비니의 아저씨, 아테네 숙소의 디미트리스, 델피 메테오라 가이드 헬렌 등 세심하게 자기 일을 척척 해내며 우리를 도와준 사람들이 있었다. 베네치아의 안종철, 이효진쌤, 산토리니에서 우연히 만난 안윤교쌤 등 여행의 기억을 완전히 바꿔준 분들도 있다. 고마운 마음을 다시 나눌 날이 있겠지. 아니, 평소에 누군가에게 다정함을 나누면 된다. 
가끔 한 잔 하는 것과 날마다 붙어 사는 건 완전히 다르다. 빈과 연, 딸기와 여행 끝나고 안 보고 싶어지면 어쩌나 1%쯤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조심스럽게 서로를 배려하면서
 우리는 더 편해졌다. 혼자 하는 것보다 둘이, 넷이 하는게 뭐가 다르고 어떻게 좋은지 아는 친구들이다. 취향을 존중하고 따로 또 같이 어울리는 법을 아는 이들이다. 좋은 사람들은 좋은 사람끼리 만날 수 밖에 없다는데 딱 그렇다고 우리는 말한다. 여행은 소재일 뿐, 주제는 사랑과 우정이라니까. 다음에 빈과 점프샷을 함께 남기려면, 우리 또 여행가려면 몸이나 챙겨야겠다. 그냥 어디 틀어박혀 놀아도 상관없지만, 일상에서 잠시 해방되는 여행이 다르다는 걸 아는 친구들이니, 또 설레임을 쌓아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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