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잠에서 깨어난 파타고니아 여행 사진첩 #27
세상을 사는 동안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은 누구인가..?!!
서기 2022년 6월 30일 저녁나절(현지시각),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서 파타고니아 여행 사진첩을 열어보고 있다. 그곳에는 바다를 닮은 거대한 호수가 거센 바람에 날려 조각조각 작은 물보라를 날리고 있다. 우리는 이미 바람의 땅 파타고니아로 들어가는 관문 뿌에르또 잉헤니에로 이바녜스(Puerto Ingeniero Ibáñez)를 출항하여 라고 헤네랄 까르레라(Lago Buenos Aires/General Carrera) 호수 위를 항해하고 있다. 협수로를 지나 바람의 땅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장차 죽기 전에 꼭 가 봐야 할 약속의 땅으로 향하고 있다. 그때 당신은 누구와 약속을 했단 말인가.. 시간을 지내놓고 보니 하늘이 우리에게 베푼 사랑의 선물이었다고나 할까.. 그저 바람이 부는 대로 몸을 맡겼더니 기적 같은 일이 우리 앞에 일어나고 있었다.
요즘 대한민국의 풍경을 참고하니 여행을 떠나기 좋은 때.. 하니와 함께 건넌 라고 헤네랄 까르레라 호수의 풍경을 끝으로 목적지인 칠레 치코에서 광활한 파타고니아 평원으로 나아갈 것이다. 사노라면 혼자할 수 없는 일들이 부지기 수로 많다. 그때 사랑하는 시람이 곁에 있다면 행복은 배가되고 고통은 절반 이하로 줄어들겠지.. 그녀와 함께 건넌 그 호수를 돌아보며 먼 나라 파타고니아로 떠난다.
세상에 이런 여행지도 있다..!! 아무도 살지 않을 것 같은 황량한 계곡. 쉼 없이 흐르는 비췻빛 강물. 그 곁으로 길게 이어지고 있는 먼짓길.. 이곳은 남미 칠레의 숨겨진 오지 코크랑(Cochrane_Cile)으로 가는 길의 낯선 풍경이다. 하니와 나는 파타고니아의 뿌에르또 리오 뜨랑퀼로(Puerto Rio Tranquillo)를 출발해 이곳(자료사진)까지 이동하는 동안, 사람의 흔적을 거의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우리가 타고 가는 버스 속에서 어디론가 하차하는 지점에 한 두 집이 눈에 띌 뿐이었다. 우리가 가끔씩 사용하는 '집도 절도 없는 없는 곳'을 가리키는 곳이랄까.
파타고니아의 숨겨진 오지 코크랑 마을을 찾아가는 길에 만난 풍경들은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한 때 사람들의 호기심이 달나라 혹은 저 먼 우주의 별나라로 향했을 때 호기심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굽이굽이 꺾어진 먼짓길 옆으로 비췻빛 강물이 넘실대는데 먼짓길은 강물을 따라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강물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니건만 시선은 강물과 처음 보는 풍경에 사로잡혀있었다. 버스 창 곁으로 무시로 먼지가 폴폴 날린다. 우리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뽀얀 먼지가 수증기처럼 피어오른다. 그리고 버스 앞으로는 장차 먼지를 일으킬 비포장 도로가 구불구불 앞서거니 뒤서거니를 반복한다.
참 특별해 보이는 여행사진을 앞에 두고 그림을 그리는 도구 몇 가지를 준비해 봤다. 도화지, 연필, 지우개가 전부이다. 보통 사람들은 미술시간에 혹은 사생대회 때 풍경화를 그려본 이후로 그림을 그릴 시간적 여유는 물론 취미생활로 이어가기 힘들 것이다.
더군다나 IT산업의 발달로 커뮤니티에서는 도화지 그림을 보기 힘들어졌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노트북만 해도 마우스를 사용하고 있지만 손가락 터치만으로도 그림은 물론 글까지 쓸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참 편리한 세상을 너머 마법의 시대가 됐다고나 할까.
사노라면, 가끔씩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매우 좋은 일도 있지만 매우 나쁜 일도 있다. 대체로 우리는 매우 좋은 일만 기억하게 된다. 지금, 우리 앞에는 최고의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조물주가 만든 최고의 걸작품..! 작품의 이름은 또레스 델 빠이네(국립공원)이다. 그곳은 칠레의 자연보호구역이며, 약 181.414헥타르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고,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이곳의 위치는 뿌에르또 나딸레스 북쪽에서 112km, 뿐따 아레나스 시에서 312km 떨어진 곳. 우리가 달려온 길이다. 이곳은 다양한 자연경관을 갖추고 있다. 해발 3.050미터에 이르는 세로 빠이네(Cerro Paine)의 주요 봉우리 군(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평원과 강과 호수와 빙하 등.. 때 묻지 않은 자연이 반기는 곳이다. 우리는 세로 빠이네로 가기 위해 이른 아침에 일어났다. 야영지에서 하룻밤을 자고 트래킹을 나서는 것. 길을 나서자마자 놀라운 풍경이 우리를 압도한다. 우리의 목적지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말로만 듣던 걸작품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작품 주변에는 다양한 장식이 화려하게 펼쳐져 있었다. 진귀한 풀꽃과 이끼를 뒤집어쓴 나무와 동물들이 더불어 사는 곳. 우리가 꿈꾸던 곳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꿈이 이루어지던 아침이었다. 그 아침에 만난 걸작품들.. 그곳에 가면 경탄할 수밖에 없다. 여행자는 길 위에서 행복하다.
아직 해가 돋기도 전에 우리는 또레스 델 빠이네 국립공원 야영장에서 짐을 꾸리고 있었다. 이틀 전 오후 이곳에 도착한 후 텐트를 빌리고 하룻밤을 이곳에서 묵은 것이다. 새벽의 날씨는 약간은 썰렁했다. 짐을 챙기는 동안 저만치서 먼동이 밝아오고 있었다. 하니와 나는 서둘렀다. 또레스 델 빠이네 주봉까지 다녀오려면 해가 뉘엿거릴 때쯤이라야 될 것이다. 이번이 두 번째인데 첫 번째 트래킹은 실패로 끝났었다. 미처 준비도 하지 못한 채 로지에 들렀던 것이다. 가야 할 길은 멀었다.
포스트를 열면 맨 먼저 보이는 표지 사진 아래 황량해 보이는 산과 비췻빛 강물과 낯선 숲이 보인다. 덜컹 거리는 버스 창에서 바라본 풍경인데 초점이 흐리다. 대강의 윤곽은 보이지만 피사체가 뚜렷하지 못하므로, 크기가 작은 풀꽃들이나 나뭇잎 그리고 황량해 보이는 벌판의 본래 모습이 확실하지 않다.
조금만 설명을 곁들이면 이곳은 오래전 지각활동으로 용암이 들끓다가 식었던 것으로, 지구별 상부 맨틀의 대륙지각의 한 부분이자 바위 덩어리로 이루어진 산의 모습이다. 그 위에 타다 남은 재가 흙으로 덮이고 다시 그 위에 나무가 자라나 오늘날의 풍경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런 풍경은 세상에 널린 일반적인 풍경이 아니라, 지구별(행성)의 매우 제한적인 곳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매우 원초적인 풍경들..
남미 칠레의 파타고니아 지역에 위치한 또레스 델 빠이네 국립공원(Parco nazionale Torres del Paine)에 우뚝 솟아있는 해발 2,750미터의 꼬르디리에라 델 빠이네(Cordigliera del Paine)로 가는 길목에 아침햇살이 들기 시작했다. 하니가 저만치서 뒤따라 오고 있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면 나의 뷰파인더에 가끔씩 잡히는 아름다운 피사체이다.
자연 속의 길을 따라 걷는 사람.. 늘 산을 곁에 두고 싶어 하는 사람. 산을 너무 좋아한 하니는 지난 25일(일요일) 오후 코로나를 피해 한국으로 떠났다. 우리가 다녀온 여행기를 끼적일 때 하니를 소환한 건 당신의 습관 때문이다. 매일 아침 일어나는 즉시 하니는 집을 나선다. 하루라도 발품을 팔지 않는 날이면 몸이 찌뿌듯하다고 한다. 최소한 한두 시간은 동네 뒷산을 다녀와야 직성이 풀리는 것.
파타고니아 여행 중에서 기억에 남는 곳은 우리가 발품을 판 곳 전부나 다름없었다. 어디를 가나 생전 처음 낯선 풍경 때문에 한시라도 눈을 떼지 못하는 것. 여행자들은 길을 걷거나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도 같은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때때로 탄식과 함성을 지르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별 것 아닌 듯한 풍경이지만 그들이 사는 곳과 너무 다른 모습의 신세계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렇게 아름다운 풍광을 곁에 두고 졸고 자빠진(?)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우리가 찾아가고 있는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 당신들이 살고 있는 마을보다 조금 더 큰 도시에서 장을 봐 온 그들은 먼짓길이 피곤할 법도 했다. 아니 얼마나 지겨웠을 것인가. 우리나라처럼 도로망이 잘 발달한 나라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비포장 먼짓길이 끝도 없을 것처럼 펼쳐지고 있으니 말이다.
비싼 비용과 시간과 노력 등을 통해 다녀온 여행자들의 안목이 조금 아쉬워 남긴 글이랄까. 여행자는 물론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당신과 생각이 다른 여러분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각자 당신이 처한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고 있는 것. 그런데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잘 살펴보지 않아도 매우 정형화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생로병사의 길이 서로 달라 보이는 듯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 유독 뛰어나 보이는 삶을 살아가는 이웃들도 종국에는 사람들로부터 잊혀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어 하는 것은 인지상정..!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남다른 당신만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 #5 남미 여행, 또레스 델 파이네 처음부터 끝까지에서 뻔한 듯 일면 다른 풍경을 통해 그 장면을 만나본다.
내 마음속에 꼭꼭 숨겨둔 보물..!! 세상의 때가 전혀 묻지 않은 곳. 그곳은 우리가 발견한 보물이었어. 물과 바람과 숲과 뭇새들과 풀꽃이 어우러진 곳. 그곳에서 머리를 뉘고 싶었어. 계수할 수 없는 시간이 묻힌 곳. 그곳은 장차 우리가 돌아갈 곳이라 생각했지. 아르헨티나의 파타고니아 엘 찰텐에서 멀지 않은 곳. 그곳에 한 웅덩이가 있었어. 시간은 그곳에서 시작되고 있었지. 이른 아침부터 하니와 함께 그곳을 찾아가는 거야. 오늘 아침 그 보물창고를 열었지. 파타고니아 엘 찰텐의 숨겨진 보물.. 그 보물이 마침내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거야. 내 마음속에 꼭꼭 숨겨둔 보물.. 여행자는 길 위에서 행복하다.
얼마 전 코로나 19를 피해 한국에 가 있는 하니는 입버릇처럼 "동네 뒷산이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말했다. 전문 산악인은 아니지만 산을 좋아하는 하니가 맨 처음 파타고니아의 엘 찰텐에 발을 디딘 후 한동안 피츠로이(Fitz Roy)를 잊지 못했다. 그곳은 오염원이 없는 청정지역이자 산하는 태곳적 모습을 하고 있었다. 파타고니아가 당신의 마음을 훔친 것이랄까.. 우리가 최근 다녀온 돌로미티에 둥지를 틀고 싶었던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파타고니아와 돌로미티.. 공간은 달라도 티 없이 맑은 공기와 옥수가 쉼 없이 흐르는 곳이었다. 산천초목들이 모두 제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가운데 어느 날 여행자들이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아침 일찍 먼동이 트기도 전에 야영장을 떠나 또레스 델 빠이네 정상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다. 저 멀리 평원 너머에서 막 해돋이가 시작되면서 세상은 점점 더 붉은 기운 아래 놓이게 됐다. 파타고니아의 색다른 아침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리오 코크랑은 굽이굽이 돌아가며 비췻빛 옥수를 쉼 없이 어디론가 흘려보내고 있었다. 코크랑 찾아가는 길은 강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었고 굽이굽이 먼짓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피곤한 듯 여행자를 재미있게 하는 풍경도 굽이굽이 돌아가는 먼짓길 때문이랄까. 한 굽이를 돌아갈 때마다 닮은 듯 서로 다른 풍경이 차창밖으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조국과 사뭇 다른 풍경들.. 황량해 보이는 듯 어디 하나 부족해 보이는 곳이 없을 정도로 파타고니아 깊숙한 곳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풍경들이 촘촘히 박혀있었다. 나는 그들 중 낯익은 풍경 하나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늘 보고 자란 미루나무(Populus deltoides)가 이곳에서 자라고 있었다.
바람의 땅 파타고니아.. 그곳에 오래된 전설이 있어요. 인디오들의 슬픈 전설입니다. 그들이 남긴 전설이지요. 노란색 꽃이 피고 새까만 열매를 맺는 나무.. 그 열매 이름은 깔라파테(Berberis microphylla)라 불러요. 아주 작은 열매랍니다. 나무에는 가시가 돋쳤어요. 열매 맛은 달콤해요. 열매의 진한 즙 때문에 이빨이 새까맣게 변해요. 이들은 주로 풀숲에 살아요. 오래전.. 이곳 원주민들이 따 먹던 열매랍니다. 그들의 전설에 따르면.. 열매를 따 먹으면 다시 그곳으로 돌아온다고 해요. 그 전설은 매혹적이었어요. 열매를 따 먹은 우리는 다시 그곳으로 갔지요. 그들이 살고 있는 땅은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그곳이 파타고니아였어요. 그러나 그곳에 인디오들은 살지 않아요. 그들 모두 침탈자에 의해 죽임을 당했지요. 서구인들 때문이었어요. 그들이 남긴 전설 때문에 우리는 그 자리로 돌아갔지만 그들이 사라진 다음이었지요. 전설이 깃든 나무.. 그들은 발아래에 살아요. 당신이 만약 파타고니아에 가시 거덜랑.. 가끔씩 발아래를 바라보세요. 그곳에 전설이 숨어있어요. 여행자는 길 위에서 가끔씩 슬퍼요.
칠레의 또레스 델 빠이네 국립공원 여행기를 끼적거리는 지금 이곳은 아침이다. 아침은 간단히 우유 한 잔으로 때우고 컴 앞에 앉았다. 컴을 열자마자 시원한 풍경이 반겨준다. 사람들은 이런 풍경들을 보면서 안구정화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보는 즉시 눈이 시원해지거나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그런 한편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슬슬 발동될 것이다.
이미 이곳을 다녀오신 분들은 아쉬움도 적지 않을 것이다. 사방에 널려있는 풍경들을 분명히 본 것 같은데 당신의 사진첩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 기념촬영으로 남긴 사진이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그곳은 여행지를 기념할만한 대표선수(?)들만 남아있는 것이다. 패키지여행으로 시간에 쫓기다 보면 그럴 수 있다. 제한된 시간 속에서 바쁘게 움직이다 보면 챙기는 것보다 놓치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또 개별행동은 쉽지 않다.
이른 아침, 먼동이 트기도 전에 우리는 아르헨티나의 엘 찰텐(El Chalten)의 숙소를 나섰다. 가로등이 노랗게 빛나는 가운데 사방은 어둑어둑했다. 우리가 묵고 있던 집 뒤로 라구나 또레(Laguna Torre)로 가는 오솔길이 나있었다. 라구나 또레라는 말은 호수보다 작은 크기의 커다란 웅덩이를 말한다. 우리가 가는 목적지는 세로 또래(Cerro Torre)에서 가까운 곳으로 그곳은 만년설과 빙하가 흐르고 있는 곳이다.
호수를 방불케 하는 그곳은 오래전 빙하가 만들어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다. 빙하가 흐르면서 지표면을 긁어 생긴 웅덩이인 것이다. 그곳에는 유빙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는데 웅덩이의 물 전부는 빙하가 녹아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가 묵었던 엘 찰텐으로부터 대략 10킬로미터 떨어진 그곳을 이른 아침부터 찾아 나선 것이다.
파타고니아 깊숙한 곳에 사는 사람들은 늘 도시를 동경하곤 했다. 아이들은 장차 자기가 살고 있는 고향을 떠나 도시로 유학을 가고 싶어 했다. 도시는 그들이 장차 가고 싶은 꿈의 무대였다. 어릴 적부터 매일 봐 왔던 풍경에 대해 자고 나면 보이는 똑같은 일상에 대해 지루함을 느낄 때쯤이면 어디론가 떠나게 된다. 그리고 한두 차례보다 더 큰 도회지를 다녀온 이후부터 점점 더 고향땅으로부터 멀어지려는 시도가 잦아진다. 그런 시도는 종국에 꿈에 그리던 도시에 발을 디디게 된다. 파타고니아(Puerto Río Tranquilo)에서 만난 한 여성의 증언이다.
경험칙에 따르면 자주 먼 길을 떠날 수 없는 여행은 훌쩍 떠나는 것도 좋지만 가능하면 준비를 많이 하는 게 좋다. 배낭여행으로 떠난 파타고니아는 출발 전부터 이미지 트레이닝은 물론 현지에서 어떤 것을 카메라에 담아올지 등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그냥 지나치기에 너무 귀한 풍경들..
요즘 브런치에 공개되고 있는 파타고니아 풍경들은 죽기 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니의 그림과 함께 전시회를 하고 싶었다. 혼자 즐기는 것보다 여러분들과 공유하면 행복이 배가될 게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는 자주 인용한 가브리엘라 미스뜨랄의 <예술가의 십계명>도 포함됐다.
따라서 이런저런 이유 등으로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사전첩 속에서 빠르마지아노 렛지아노처럼 숙성에 숙성을 거치다가 마침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예술가의 십계명 다섯째와 여섯째를 소개하며 여정을 이어나간다.
라구나 또레로 가는 길은 우리나라 설악산의 어느 곳에 펼쳐진 산길처럼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우기가 오시려면 아직은 좀 더 기다려야 했다. 고사목들은 점점 더 야위어 가고 있었으며 풀숲은 물론 주변의 풍광들이 점차 가을색을 띠고 있었다. 목적지로 천천히 이동하고 있는 좌측으로는 라구나 또레에서 발원한 빙하가 녹은 물이 작은 강을 이루며 계속 깊숙한 곳으로 흐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을 리오 피츠로이(Rio Fitz Roy) 강이라 불렀다.
피츠로이 강은 장차 엘 찰텐 앞을 지나치는 리오 라스 부엘따스(Rio las Vueltas) 강과 합쳐지며 비에드마 호수(Lago Viedma)로 흘러들어 갈 것이다. 숲 속으로 이어지는 산길에서는 볼 수 없지만 여정이 시작될 때 좌측 계곡으로 흐르는 비경을 본 적 있다. 강물은 누가 본다고 흐르는 것도 아니고 그렇지 않다고 멈추는 것도 아니다. 숲도 그렇고 우리네 삶도 그러하지 않은가.
목마른 자 우물을 판다(渴而穿井)
그럴 리가 없지만.. 만약, 당시 내가 운전석 옆의 계단에서 바깥 풍경을 기록에 남기지 않었다면 지금 컴 앞에 등장한 풍경들은 그저 기억에 남았다가 어느 날 흐지부지 잊히고 말 것이었다. 먼지가 폴폴 날리는 파타고니아의 어느 시골로 가는 길.. 그때 만난 거대한 바위산과 이름도 알 수 없는 나무와 풀숲의 풍경들.. 그리고 엄청난 수량을 지닌 리오 코크랑(Rio Cochrane).. 정도가 기억에 남았다가 어느 날 사라지게 될 것.
미지의 세계에서 여행자의 눈에 나타난 풍경들은 대부분 처음 보는 것들이며, 어떤 때는 그냥 지나칠 때가 있었으므로, 그때마다 후회가 남기도 했다. 여행 경험이다. 따라서 초행길의 여행지에 들어서면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그냥 시간만 때우다가 목적지에 도착하는 일 따위는 적성에 맞지도 않고 도무지 성에 차지 않았다.
우리의 경우 평지에서 시간당 대략 3킬로미터의 속도로 걷고 있고 내설악의 공룡능선 같은 경우 1킬로미터도 안 되는 경우의 수도 발생하기도 했다. 그곳은 이른바 '악산'이었으나 또레스 델 빠이네 가는 길은 '흙산'이어서 걷는 데는 큰 무리가 없었다. 1부 능선만 넘어서면 그때부터는 거대한 계곡 사이로 거의 평 짓길처럼 이어진 길이 이어지는 것이다.
이른 아침 해가 뜨기도 전부터 시작된 트래킹은 해가 질 때까지 이어질 것이므로 걷는 속도에 관계없이 엄청난 피로도에 시달릴 게 틀림없었다. 발그레한 햇살이 대지를 붉게 물들이는 가운데 우리가 지온 길을 뒤돌아 보니 대장관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 길을 따라 먼저 가던 하니가 힘겨워하며 뒤따라 오고 있는 것이다.
라구나 또레로 가는 길 옆에는 고사목들이 줄지어 있고 그 곁 풀숲에서는 깔라파테 열매가 까맣게 익어가고 있었다. 또 꽃잎을 떨군 풀꽃들은 먼 여행을 떠날 차비를 하고 있었다. 간간이 가시덤불 나무(Mulinum spinosum)가 보였으며 땅은 가물어 단비가 필요해 보였다.
그러나 대자연은 특정 생물의 필요에 따라 비를 내놓거나 눈을 쏟아붓지 않는다. 태곳적으로부터 시작된 우리 행성의 순환은 묵묵히 자연계의 시간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목적지 라구나 또레의 만년설과 빙하는 그 시간이 박제된 거대한 시간의 박물관이라고 불러야 할까..
하니와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발품을 판 곳에서 만난 풍경들은 일찍이 어디서 만난 적도 없다. 이곳으로 오기 전 남미 일주를 통해 피츠로이의 산길을 걸은 바 있지만 그때는 지금과 전혀 다른 날씨였다. 건기 때와 우기를 앞둔 때의 풍경은 적지 않은 차이를 보였다. 잎을 다 떨군 나무와 잎이 서서히 아름답게 물들어 가는 차이는 여행자에게 전혀 다른 물이자 색다른 감흥을 주었다고나 할까..
포스트에 구글 지도를 삽입해 둔 건 다름 아니다. 우리가 서 있는 현재 위치와 이동 경로 및 우리(인간)를 돌아보는 시간을 잠시 갖고 싶은 것이다. 지난 시간에는 대한민국에 당면한 과제가 무엇인지 일면 살펴보았으며, 코로나 19가 창궐하고 있는 이때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검찰개혁의 당위성을 잠시 언급한 바 있다. 수능날 아침이었다.
이른 아침 먼동이 트기도 전에 야영장을 나선 우리는 아침햇살이 황금빛으로 변한 능선 위에서 또레스 델 빠이네 평원을 바라봤다. 아침햇살이 평원을 톡톡 건드려 깨울 때쯤 장차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기어코 이 산의 정상까지 다녀올 작정을 하고 있었다.
능선에서 바라본 정상은 비스듬히 누운 거대한 산 뒤로 꼭꼭 숨어있었다. 다만 그 일부가 노출되어 있을 뿐이었다. 능선에서 바라본 정상은 너무 거대하여 주변의 풍광과 단박에 비교되곤 했다. 능선에서 바라본 또레스 델 빠이네 계곡은 실로 아름다웠으며 가슴이 뻥 뚫렸다.
잠에서 깨어나 우리나라 소식에 귀를 기울였다. 뻔한 결과가 예상되었지만 긴장된 순간이었다. 그리고 대략 1시간 30분 정도가 경과되었을 무렵 공수처(고위공직자 비리 수사처) 법이 마침내 국회를 통과했다.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그리고 눈시울이 뜨거워져 왔다.
마침내 대한민국이 새로 태어나는 순간이자 그동안 우리를 힘들게 해 왔던 어둠의 세력들이 민주시민들의 손에 든 더없이 밝고 빛나는 염원에 따라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역사적인 현장이었다. 코로나 19가 대한민국의 존재감을 세계만방에 과시하고 있었다면, 공수처법 개정안의 발효는 우리나라가 21세기 최선진국의 모습으로 도약하는 일대 변곡점이랄까..
파타고니아, 치유의 숲길
우리는 이른 아침 엘 찰텐의 숙소를 떠나 라구나 또레가 저만치 보이는 언덕 위에 서서 빙하가 녹아 만들어진 호수로부터 발원된 피츠로이 강(Rio Fitz Roy)을 굽어보고 있었다. 산중에 드넓은 평원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곳은 한 때 빙하에 묻혀있던 자리였으며, 빙하가 물러간 자리에 숲이 빼곡하게 자라고 있었다. 우리는 언덕 위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길을 나설 텐데 언덕을 지나면서 기나긴 숲길을 통과해야 한다.
곧 우기가 다가오면 마른 풀꽃들과 숲은 생기를 되찾을 것이며, 그동안 숲은 알록달록한 잎을 내놓을 것이다. 그런 일들은 억만 겁을 이어왔다. 눈앞에 펼쳐진 장관은 그중 하나일 뿐이다.
또레스 델 빠이네 정상으로 가는 길은 순탄했다. 능선 하나를 넘자마자 산길은 거대한 골짜기의 산기슭을 따라 고불고불 길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길 옆으로 내려다보니 천 길 낭떠러지가 있고 멀리 계곡에서 들려오는 물소리는 천둥소리를 닮았다.
그리고 파타고니아에서만 주로 볼 수 있는 가시덤불 나무가 몽실몽실 벼랑길을 덮고 있었다. 이 식물의 이름은 물리눔 스피노줌 (Mulinum spinosum)으로 불리는 가시덤불(떨기나무)이었다. 내겐 깔라파테 열매와 더불어 파타고니아를 상기시켜 주는 대표 식물로 자리 잡았다. 그들은 거대한 산자락 아래서 사이좋게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행위는 조폭이나 양아치 배들이 하던 버릇인 줄 알았지만 국가의 기관이 그 일을 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국민의 심복이어야 할 일개 공무원이 국민을 볼모로 잡고 되려 주인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대략 지난 70년 동안 우리 국민을 못살게 구는 정도 이상의 나쁜 짓을 저질러온 정치셰력의 앞잡이가 된 것이다. 선조님들을 능욕한 것도 모자라 아예 국민들이 선출해준 대통령의 목에 칼을 겨누고 있는 게 아닌가..
이제 이들 무리의 민낯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적폐 세력의 앞잡이 었던 정치검찰은 수구 보수 언론(조중동 등)과 국민의 힘 당과 카르텔을 이루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런 일에 잘 나서지 않는다. 자칫 잘 못 나섰다가 낭패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런 죄도 없는 선량한 국민은 물론 전직 대통령까지 없는 죄를 일부러 만들어 죄인을 만들곤 했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 엘 찰텐의 숙소를 떠난 하니와 나는 라구나 또레가 저만치 멀리 보이는 언덕까지 진출한 후 목적지로 이어지는 꽤 긴 숲 속을 걷고 있었다. 숙소로부터 언덕까지 전체 여정의 1/3 정도라면, 숲길은 2/3 정도에 해당하는 것으로 평탄한 길이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산중에 펼쳐진 펼쳐진 작은 평원은 한 때 빙하로 채워졌을 것이지만 지금은 그 자리를 빼곡한 숲으로 채워진 것이다.
그곳에는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나목들이 빼곡했다. 곧 우기가 오시면 세찬 바람과 비와 눈이 이 평원을 휩쓸 것이다. 하니가 저만치 앞서 걷는 가운데 나는 파타고니아가 빚어낸 걸작품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빠져들고 있었다. 한 때 그림이나 서예에 심취한 적도 있었지만 그 또한 나를 채워주지 못했다. 먹고살기 바빴던 이유도 거들었지만 자연을 향한 나의 들끓는 열정을 맞지 못했던 것이다. 그게 나의 브런치에 등장하는 사진들이자 대자연의 풍경들이다.
휴우.. 지난 여정의 파타고니아 여행 사진첩과 포스트를 편집해 놓고 보니 언제 이렇게 열심히 끼적거렸는가 싶은 생각이 단박에 든다. 그리움 가득 묻어나는 풍경들.. 우리가 너무도 사랑했던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이 충만했던 곳. 요즘도 가끔씩 하니는 "파타고니아로 다시 돌아가 볼 수 있을까.."하고 말한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겠지.. 그러나 하늘은 우리에게 딱 한 번의 기회만 허락한다. 우리 함께 그 호수를 건넜지..
il Nostro viaggio in Sudamerica_Lago Buenos Aires/General Carrera CILE
il 30 Maggio 2022,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