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성윤 Jun 26. 2018

멈춰야 비로소 보인다했다

쉼 없이 달려온 우리에게 갭이어가 필요하다

 한국 학생들은 초‧중‧고 12년을 쉼 없이 바쁘게 보낸다. 학교 – 학원 – 집을 오가며 월화수목금토일을 공부하고 또 공부하며 그렇게 12년을 보낸다. 몇몇 학생들은 유치원 때부터 이 삶을 시작한다. 고등학생의 연간 학습시간은 2,757시간으로 우리나라 연평균 노동시간인 2,069(2016년) 시간보다 무려 700시간 가까이 많았다.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를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도 밤 12시까지 야자를 해야 하는 것이 고등학생들의 운명이다. 공부를 해야 하는 시간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늘면 늘지, 절대 줄지 않는다. 고3이 되면 그나마 덜 스트레스받는 미술, 음악, 체육 시간마저 자습시간으로 바뀐다. 학생들에게 잠시 머리를 식힐 시간은 주어지지 않는다. 모든 것이 짜인 시간표에 맞춰, 정해진 시간에 공부하고, 이탈하면 벌 받고, 정해진 시간에 식사하는 학교의 모습은 감옥을 보는 듯하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이 문장은 우리가 흔히 행복추구권이라 부르는 헌법 제10조이다. 그러나 한국 청소년은 이 행복추구권에 철저하게 배제된다. 너무 심한 생각일까? 나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한다. 축사에서 개, 돼지나 다를 바 없이 길러지는 학생들에게, 하루 15시간을 학교에 갇혀 사는 학생들에게 과연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는지 나는 의문이다. 또 공부 때문에 행복을 미래로 미뤄야 하는 학생들에게 과연 행복추구권이 가당키나 한지 의문이다. 안타깝지만 학생들에게 개인의 행복을 좇아 인생을 설계할 권리 따위는 없다. 청소년들이 누리고자 하는 행복은 늘 공부에 밀린 2순위, 3순위였다. 운동을 하고 싶어도 대학에 가서, 여행을 가고 싶어도 대학에 가서, 연애를 하고 싶어도 대학에 가서, 뭐든 하고 싶은 게 생기면 “그런 건 대학 가면 네 맘대로 실컷 할 수 있단다”는 말 아래 청소년 시기에 하고 싶은 것들은 후순위로 밀려나야 했다. 


 그럼 청소년 때 하고 싶은 것들을 대학으로 미뤄두면, 진짜 대학가서는 할 수 있을까? 꼭 그렇지는 않다. 단지 중‧고등학생 때 보다 조금 나을 뿐이다. 잠시 1, 2학년 때 놀뿐 전과 준비에, 편입 준비에, 취직 준비에 또다시 행복을 취직 후로 연기해야 한다. 도대체 대한민국 청소년, 청년들은 언제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 수 있을까? 학생일 땐 입시를 위해서 하고 싶은 걸 미루고, 대학생 땐 취직을 위해서 또 미루고, 다음은 결혼을 위해, 다음은 자식을 위해, 또 다음은 노후를 위해, 행복을 미루다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게 우리네 삶일까? 지금의 청년세대는 인간이 처음으로 100살을 넘어 120살까지 사는 세대라는데 그 긴 시간을 어떻게,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지 정도는 고민할 시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20살이 되어 사회에 첫 발을 내딘 느낌은 ‘내팽겨졌다’였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 하는 어른이 되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몰랐다. 대학교를 다른 지역으로 간 친구들은 스스로 집을 구하고 요리를 하며 난생처음으로 혼자 사는 법을 익혀야 했고 알바를 처음 하는 친구들은 주휴수당은 제대로 챙겨 받는 것인지, 4대 보험은 가입하는 게 맞는지, 세금을 떼고 받은 알바비가 혹여나 ‘내가 덜 받은 것은 아닌지’하는 의문을 가득 안은 채 처음으로 돈을 버는 경험을 가졌다. 이처럼 20대는 모든 것이 처음이자 방황의 연속인 시간이다. 술이나 담배, 19금 영화 관람과 같은 청소년 때는 일탈이었던 것들이 지극히 평범한 생활이 되고, 그간 없었던 투표권도 생긴다.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시기지만 사회는 마음껏 방황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방황하면 할수록 그만큼 남들보다 늦어진다면서 말이다. 재수, 3수를 했다면 그만큼 학교에 늦게 들어갔으니 남들보다 2배, 3배 열심히 대학생활을 보내야 한다며, 대학교를 안 갔다면 남들이 학교에서 보낼 4년보다 더 알차게 살아야 한다면서 사회는 채찍질을 가한다.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 경주마처럼, 빠져나올 수 없는 쳇바퀴에 들어간 다람쥐처럼 우린 계속 달릴 것을 요구받는다.


 그러나 이제는 사회가 청소년과 청년이 마음껏 방황할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해줘야 한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우리가 살아갈 시간은 계속 늘어날 것이며, 기술의 진화는 노동시간을 점차 줄여 나갈 것이다. 지금의 청소년과 청년들은 어느 때보다 ‘비어있는 시간’이 많은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중국의 IT 양대 산맥 중 하나인 알리바바 그룹 마윈 회장은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서 점차 줄어들 노동시간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제 할아버지는 하루 16시간을 일했습니다. 저는 하루 8시간을 일했죠. 제 아이들은 하루 3~4시간을 그것도 일주일에 3~4일만 일하게 될 것입니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오고 있습니다.” 마윈은 이런 미래가 10년 안에 현실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하루 24시간 중 3~4시간만 일하게 된다면 나머지 20시간은 우린 뭐 하는데 보낼 것인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는 우리 삶에 중요한 질문이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는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를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해줘야 한다. 모든 세대에게 이런 시간을 보장해줄 수 없다면 최소한 사회에 진출하는 시기에 놓여있는 청년들에게 우선적으로 줘야 한다. 이들이 살아갈 미래는 지금보다 훨씬 변화된 세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3~4시간만 일해도 되는 세상이 이들에겐 현실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미 해외 여러 나라에서는 대학 진학을 앞둔 청소년들에게 이런 시간을 주고 있다. 갭이어(Gap-Year)라고 불리는 이 시간은 말 그대로 비어있는, 휴식의 해다. 멈춰야 비로소 보인다고 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까지 총 12년의 시간을 숨 가쁘게 달려온 학생들이다. 하고 싶은 것들을 미뤄둔 채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려온 이들에게 잠시 지난날을 돌아보고 미래를 계획하는 시간을 줘야 한다. 학기 초 담임 선생님과 하는 진로시간은 많아봐야 10분 남짓이다. 게다가 그 시간은 진짜 미래를 위한 진로라기보다 가, 나, 다군이 적혀있는 등급표를 펼쳐놓고 어느 대학교 갈 수 있을 것인가를 논의하는 비참한 시간일 뿐이다. 한국 학생들에게 자신의 삶을 설계하거나, 미래를 고민할 시간은 사치일 뿐이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공부나 하라는 불호령이 떨어진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고등학교 땐 ‘우선 대학부터 가자’, 입학 후엔 ‘취직부터 하자’는 논리가 미래를 고민하는 시간을 그저 ‘쓸 데 없는 시간’으로 치부해버리고 만다. 쓸 데 없는 시간이란 무슨 공부를 하고 싶은지도 모른 채 점수 맞춰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 ‘어떻게 살 것인가’를 한 번도 고민해보지 못 한 채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시간, 그런 시간이야말로 쓸 데 없는 시간이 아닐까?

이번 매거진은 출판을 목적으로 쓰고 있습니다 ^.^
읽어보시고 괜찮으시다면 '좋아요', '공유', '댓글' 부탁드립니다~
연락이 필요하신 분은 s_ylee1109@hanmail.net으로 메일 주시면 답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프롤로그 "정치는 볼드모트가 아니야!" https://brunch.co.kr/@youthpolitica/80

우리가 개새끼라고? 왈왈 https://brunch.co.kr/@youthpolitica/82 

2016년 청년들은 왜? https://brunch.co.kr/@youthpolitica/83

춤추고 싶으면 홍대 클럽 갈게요. 정당은 아니네요. https://brunch.co.kr/@youthpolitica/84

19금 정치는 직무유기 https://brunch.co.kr/@youthpolitica/85

과연 저들이 우리를 대표할 수 있을까? https://brunch.co.kr/@youthpolitica/88

청년들이 뭘 알아? "우리도 알 건 압니다!" https://brunch.co.kr/@youthpolitica/89

회식은 야근이야! https://brunch.co.kr/@youthpolitica/91

야근... 두꺼비집을 내릴까? https://brunch.co.kr/@youthpolitica/92

개, 돼지로 길러지는 아이들 https://brunch.co.kr/@youthpolitica/93

아이비리그 학생도 못 푸는 수능? https://brunch.co.kr/@youthpolitica/94

결혼이요? 선배를 보니까 하기 싫어져요! https://brunch.co.kr/@youthpolitica/95

죽음의 공식 '수능' https://brunch.co.kr/@youthpolitica/107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 '갭이어' https://brunch.co.kr/@youthpolitica/108

요즘 젊은이들은 끈기가 부족해! https://brunch.co.kr/@youthpolitica/109

사랑하기엔 너무 비싼 그대 https://brunch.co.kr/@youthpolitica/112

아프니까 청춘이다 https://brunch.co.kr/@youthpolitica/113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아니, 어떻게 해서든 피해 https://brunch.co.kr/@youthpolitica/114

통일, 청년과 멀어 보이나요? https://brunch.co.kr/@youthpolitica/116

정치판에 청년이 설 자리는 없다. https://brunch.co.kr/@youthpolitica/117

내 연애는 내가 알아서 할게! https://brunch.co.kr/@youthpolitica/118

회장님! UFC에 도전해보실래요? https://brunch.co.kr/@youthpolitica/119

촛불 1주년, 정치는 여전히 그대로? https://brunch.co.kr/@youthpolitica/121

출산 지도에 돈 쓰지 말고 그냥 돈을 줘! https://brunch.co.kr/@youthpolitica/122

생활 속 갑질 https://brunch.co.kr/@youthpolitica/123

어떡하려고 또 임신을 했대, 참 이기적이다! https://brunch.co.kr/@youthpolitica/124

결혼, 독립해야 하는데 갈 곳이 없어! https://brunch.co.kr/@youthpolitica/128

육아정책, 국회의원들한테 맡겨도 될까? https://brunch.co.kr/@youthpolitica/129

미혼이 아니라, 비혼입니다. https://brunch.co.kr/@youthpolitica/130

최저임금, 을들의 싸움은 이제 그만! https://brunch.co.kr/@youthpolitica/131

비트코인, 한탕주의, 그게 그렇게도 걱정되십니까? https://brunch.co.kr/@youthpolitica/132

워라밸, 저녁이 있는 삶! https://brunch.co.kr/@youthpolitica/133

선거권, 피선거권 연령 인하는 제2의 훈민정음이 될 것 https://brunch.co.kr/@youthpolitica/135

중학생 농부 태웅이에게 배우다 https://brunch.co.kr/@youthpolitica/136

잊지 마라, 나는 너와 계약을 한 것 뿐 https://brunch.co.kr/@youthpolitica/137

대기업 입사가 인생의 최종 목표인 나라 https://brunch.co.kr/@youthpolitica/140

매거진의 이전글 대기업 입사가 인생의 최종 목표인 나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