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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진 Jun 07. 2024

책속에서_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211

10월 30일 새벽부터 이틀간 나는 잠을 자지 못했다.

뉴스 집착증에라도 걸린 것처럼 잠도 자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고 밥도 먹지 않으며 뉴스만 바라봤다.

친구들과 가족들에게서 전화가 쏟아졌고 아무렇지 않게

“어, 나 괜찮아” 하고 대답했다. 정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한 동네에 같이 사는 친한 언니가 내 상태를 실시간으로 체크했다.

나는 인지할 수 없는 내 상태를 언니가 대신 인지했다.

진지하게 전화 상담을 권유했다. 언니의 거듭된 설득 끝에 나는

몇 번의 전화 통화 시도를 했다. 전화를 걸다가 그냥 끊어버리는

일을 반복했지만, 결국 마지막에 한 명의 심리 상담사와 연결이 됐다.

상담사는 나더러 ‘생존자’라고 했다. 상담사가 오버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냥, 일반인인데요. 난 그렇게 특별한 무언가를 겪지 않았는데요?

몸이 다치지도 않았고, 죽지도 않았고 멀쩡히 숨 쉬고 살아 있는데요?

다만 그냥 거기에 있었을 뿐인걸요. 나는 물었다.

“선생님,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김초롱,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42~43]      



212          

통화는 한 시간 넘게 이어졌다. 나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날 일을 처음으로 자세하게 털어놓고 내 상태를 내보였던

것뿐이었다. 울면서 상담사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선생님. 아무래도 그날 거기를 가지 말았어야 했어요. 너무 후회돼요.”

그리고 이어진 상담사의 대답은 내게 첫 치료의 문을 열어주었다.

“아니에요. 그날 거기를 가지 말았어야 하는 게 아니라 어디를 가도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지켜주는 것이 맞아요. 놀다가 참사를

당한 게 아니라 일상을 살다가 참사를 당한 겁니다.”  

[김초롱,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50~51]      



213          

나를 죄책감과 자기혐오에 빠지게 한 또 다른 요인은 ‘무지’였다.

나는 그날, 무지했다. 어찌 그토록 무지할 수 있었을까.

나는 내 아둔함을 오래도록 치가 떨리게 싫어하고 미워했다.

현장에 있었으면서 어떻게 참사를 인지하지 못했을까.

아무것도 모르고 잘도 놀았던 내가 한심했다. 사람이 실려 나가는 데도

죽음과 상관없다고 여기며 놀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해

나는 끙끙 앓았다. 그날 그 시간에 내가 찍어둔 영상은 내 무지함을

낱낱이 보여주고 있었다. 나 자신이 징그러웠다. 사람이 뭐에 홀리면

주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예 모를 수 있는 건가 싶기도 했다.

귀여운 텔레토비 친구들에게 꽂혀서 바로 뒤로 사람이 실려 가고 있었음을

몰랐다는 게, 영상을 찍을 당시 그 상황이 내 눈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김초롱,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77~78]



214

나는 여전히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다행’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보다는 겪지 않아도 될 일, 겪어서는 안 될 일을 겪었다고

생각하는 편에 더 가깝다. 주위의 많은 사람이 내게 묻는다.

“참사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 이야기에 네가 왜 그렇게까지 힘들어하고 아파하니?”

내 대답은 한 가지다. 나는 그들의 죽음을 내 죽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날 참사 현장에 있던 사람 중 죽음을 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순전히 ‘운’으로 누군가는 살고 누군가는 죽음을 맞이했다.

그 사실을 나는 여전히 ‘다행’으로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내 삶을 무거운 책임감과 부담감으로 짊어지고 있다.  

[김초롱,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96]



2024.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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