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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립일세 Jun 05. 2019

왕자를 암살한 소주

역사의 흐름에서 미약했던 풍운아

소주로 마음을 달래던 비운의 왕자 이방우 


 1354년은 강릉대군이던 공민왕이 왕위에 오른 지 3년 되던 해다. 이때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첫째아들인 이방우가 태어난다. 이성계는 총 6명의 부인이 있었는데 왕이 되기 전에 사망한 신의왕후 한 씨 사이에서 낳은 여섯 아들 중 첫째다. 원나라가 지배하던 쌍성총관부지역에서 공민왕의 밀지를 받고 때를 기다리던 이성계 집안은 아버지 이자춘을 중심으로 고려가 쌍성총관부를 공격할 때 공을 세워 공신이 됐다. 이를 계기로 중앙정계에 진출하고 이성계의 활약으로 왜구와 홍건적의 침입을 물리치며 가문의 명성이 날로 높아졌다.

 장성한 이방우는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예의판서까지 이르게 된다. 예의판서는 제사나 조정회의와 같은 업무를 비롯해서 과거시험 등의 일을 관장하는 예부의 수장을 뜻하는 직책이다. 우왕 14년이었던 1388년에는 아버지 이성계 장군에 의해 위화도 회군이 발발하고 정권이 장악되자 벼슬에 뜻이 없어 가족을 데리고 강원도 철원에 있는 보개산으로 들어가 은거하였으나 창왕이 즉위하자 1388년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밀직정사인 강회백과 같이 밀직부사의 신분으로 명나라에 다녀오게 된다. 이후에는 특별한 기록이 없다가 1392년 조선이 개국되면서 동생들과 함께 왕자의 지위에 오르고 군에 봉해지며 진안군으로 불려진다. 







 조선을 설계한 정도전은 신권(臣權)을 강화하려 했다. 이에 장성해서 아버지를 도와 나라를 일으킨 아들들보다는 나이가 어려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어린 왕자들을 상대하는 것이 수월하다고 생각했다. 왕후에 오른 신덕왕후 강씨는 자신의 아들을 왕세자의 자리에 앉히고 싶었다. 이들의 생각이 맞아 떨어져 조선이 건국한 음력 1392년 7월 17일로부터 한 달 뒤인 8월 20일에 막내왕자인 이방석이 세자에 오른다. 일반적인 집안이라면 맏이로써 마땅히 장자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었지만 나라의 세우고 나서부터는 장자의 권리보다는 건국에 대한 기여도나 힘의 균형이 중요해지게 됐다. 그래도 제향을 지내는데 있어서는 장자가 우선이다 보니 아버지 위로 4대조까지의 조상에게 제향 하는 것은 장자인 이방우의 몫이었다. 상대적으로 왕조가 개창하는 데에 기여한 바가 컸던 둘째 방과가 절제사로서 군권을 장악할 때에도 별다른 직책이 없이 명예직인 왕자의 지위만을 얻어서 실질적인 힘이 없었다. 







 정치에 뜻이 없다보니 굳이 개경에 남아있을 필요를 못 느낀 이방우는 아버지에게 청하여 땅과 집을 하사받고 고향 동북면의 함흥지역으로 옮겨갔다. 이후에 삶은 제대로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듬해인 음력 1393년 12월 13일에 기록된 실록의 내용을 보면 “성질이 술을 좋아하여 날마다 많이 마시는 것으로써 일을 삼더니, 소주(燒酒)를 마시고 병이 나서 졸(卒)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아버지인 태조 이성계도 3일 동안 조회를 열지 않을 정도로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였다. 이후에 이방우의 장남인 이복근에게 진안군의 지위를 이어받게 했지만 당시의 힘을 상징했던 사병은 이복근이 아닌 태조의 형 이원계의 아들인 이조에게 이어받게 하여 실질적인 장손의 대우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 눈에 띈다. 더불어 문종 때에 완성되는 고려사에서도 진안군의 장인인 ‘지윤’을 고려시대의 간신으로 규정하고 깎아 내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장자가 집안을 이어가던 관습을 봤을 때 걸맞은 대우와 직책이 주어지는 것이 상식이었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어려서 부모에게 효를 다했고 형제간에 우애가 돈독했다. 자라며 시서(詩書)에 몰두했고 검약(儉約)한 삶을 실천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서 소외된 자신의 처지에 위안을 얻고자 맛을 들인 소주에 취해 결국 40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한다. 실록에 소주를 마시다가 사망한 첫 번째 인물로 실리며 보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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