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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립일세 Sep 02. 2019

조강을 같이 먹던 처

47회분 - 어려운 시절을 함께 겪은 동지를 함부로 하지 마라

맛있는 술 이야기 

    

조강지처란     


 어지러웠던 주나라시절의 춘추5패와 전국7웅을 정복하고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는 스스로 황제라 칭했던 시황제의 강압적인 통치에 지쳐있었다. 각 지역에서 일어난 반란으로 세상은 다시 어지러워졌다. 이 때 나타난 유방은 항우를 무찌르고 한(漢)나라를 세우게 된다. 잠시 왕망이 세운 신나라가 있었으나 이를 제압하고 다시 유씨의 한나라를 일으켜 세운 이가 광무제다. 







 광무제가 한나라를 다시 일으키자 신하를 아끼는 성군이라는 소문이 퍼져 많은 인재들이 모였다. 이 중에는 ’송홍(宋弘)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광무제의 연호인 건무(建武) 2년부터 관료들의 감찰기능을 하던 대사공(大司空)이라는 직위를 맡고 있었다. 풍채도 당당했지만 온화하면서도 강직한 성품을 갖고 있어 주변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고 광무제의 신임을 얻고 있었다. 

 범엽(范曄)이 쓴 후한서(後漢書)에는 광무제와 송홍에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광무제(光武帝)에게는 남편을 잃고 살아가던 호양공주(湖陽公主)라는 누나가 있었다. 남편이 죽어 외롭게 사는 모습이 안타까워 좋은 인연을 찾아주고 싶었던 광무제는 이 문제를 조정의 신하들과 논의하다가 호양공주의 마음을 알고 싶어 넌지시 속마음을 떠보았다. 공주는 송공(宋公)의 위용과 덕행, 기량을 뛰어넘을 신하가 없다고 칭찬을 하자 눈치를 챈 광무제는 공주의 마음이 송홍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같이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도록 신하들에게 지시한다.   

 






 광무제의 지시를 받은 신하들은 며칠 후에 송홍이 황제를 알현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광무제는 자신의 뒤에 세워둔 병풍의 안쪽으로 호양공주를 앉게 하고 송홍이 볼 수 없도록 한 다음에 알현하려고 찾아온 송홍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질문을 한다.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으니 신분이 귀해지면 사귀던 사람을 바꾸고 돈이 많아 부유해지면 부인을 바꾼다는 말이 있던데 이러한 말이 사람들 사이에서는 인지상정이지 않겠는가?”라며 송홍의 의견을 물었다. 이에 송홍은 자신이 듣기에는 “빈천지교 불가망(貧賤之交不可忘) 조강지처 불하당(糟糠之妻不下堂)” 이라고 답한다. 이러한 답을 듣자 광무제는 뒤에 있는 병풍 쪽으로 고개를 돌려 안쪽에 있었던 호양공주를 향해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하며 단념했다고 한다.  







 송홍이 했던 말의 뜻을 살펴보면 가난하고 천한 신분일 때 사귄 친구는 잊으면 안 되고 먹을 것이 없어 조강을 같이 먹으면서 함께 고생한 부인을 집에서 내보내면 안 된다는 뜻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고 듣는 ‘조강지처(糟糠之妻)’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오는데 조강이라는 단어의 조(糟)는 술을 짜고 남는 지게미를 의미하는 것이고 강(糠)은 도정을 통해 쌀에서 벗겨내고 남은 거친 껍질인 겨를 의미한다. 조강은 술을 짜고 남은 지게미와 쌀의 껍질이기 때문에 먹을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가공 후에 남은 부산물로, 먹을 것이 없어 부산물들을 모아 음식을 만들어 먹을 정도로 가난하다는 것을 표현하는 단어다. 요즘은 술을 만드는 사람들이 적어 지게미를 접할 기회가 없지만 집안에서 술을 빚어마시던 당시에는 음식을 구하기 어려워 이것으로 끼니를 때우던 사람들이 있었다. 조강지처는 살림살이가 어려웠던 시절에 같이 고생하며 거친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살았던 배우자를 소중히 여기는 것을 표현한 말이다. 







 송홍이 한 말은 유교를 숭상하던 당시의 지식층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의(義)’를 지켜야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가난과 역경을 함께 이겨낸 동지인 배우자를 부유해졌다고 해서 함부로 대하고 좋은 조건을 갖춘 새로운 사람을 들이는 일은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송홍은 그 후 건무 6년까지 관직에 있다가 무고한 일에 연관되어 면직되었고 집으로 돌아가 여생을 마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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