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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립일세 Sep 16. 2019

음악으로 표현된 '주정뱅이'

사계의 가을이 들려주는 '주정뱅이'

49회분 - 맛있는 술 이야기     

안토니오 비발디 사계의 가을     

 조금은 이른 추석에 차를 타고 길을 가다보면 아직도 녹색 빛이 감도는 들판이 시야에 들어온다. 곧 있으면 황금색으로 익어갈 들판들이 뒤로 가는 사이 뭉게뭉게 피어오른 구름사이로 넘어가는 주황색과 붉은빛으로 물든 해넘이가 보인다. 노을은 용광로의 철물을 뿌려 놓은 것 마냥 하늘을 온통 새빨갛게 물들이며 푸르렀던 하늘이 타들어가듯 해넘이의 장관이 펼쳐진다. 말 그대로 가을이다. 풍요를 나타내는 가을은 오랜 기간 동안 농경생활에 익숙해져 있던 인간들에게 한 해 동안의 고된 노동을 뒤로하고 수확이라는 기쁨을 맛보게 하는 즐거운 계절이다. 







 이러한 풍요를 음악으로 표현한 작곡가가 있다. 사제이기 전에 바이올리니스트였고 작곡가였던 안토니오 루치오 비발디(Antonio Lucio Vivaldi)는 1678년 3월 4일에 태어났다. 임신 중이던 어머니가 지진에 놀라 일찍 세상에 태어나버린 비발디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다. 사제서품을 받은 이후에도 미사 중에 숨이 차서 집전하지 못했을 정도다. 그래서 그는 미사를 집전하는 대신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중간 중간에 연주되는 미사곡을 작곡했고 교회합주와 성가대에 관련된 음악활동을 위해 좀 더 집중했다. 특히 1703년부터 1740년까지 베네치아에 있던 여자아이들의 고아원 겸 학교였던 피에타에서 근무하며 음악을 가르치며 많은 작품을 작곡한다. 성당의 바이올린주자였던 아버지로부터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레그렌치를 통해 배운 작곡기법을 이때부터 활용해서 많은 곡을 만들게 된다. 다른 작곡가들에 비해 곡을 완성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짧아 표절을 의심받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40여곡의 오페라를 비롯해서 500여곡의 기악곡과 수많은 미사곡, 오라토리오를 만들어냈다. 







 그중에서 비발디를 대표하는 곡인 사계(Le quattro stagioni, 레 꽈뜨로 스따지오니)는 1725년에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봄부터 겨울까지 계절마다 각각 3개의 악장을 두어 계절의 차이와 함께 다양한 모습들을 묘사했다. 자신이 살던 이태리의 베네치아지방의 전원을 현악기만을 가지고 목가적으로 표현했다. 특히 사계는 대표적인 표제음악으로 각 악장마다 연주자들이 곡을 연주할 때 이해를 돕기 위해 약간의 설명을 동반한 Sonnet(소네트,sonetto)라는 시구를 적어놓아 곡의 표현을 도왔다. 이러한 양식은 나중에 영국의 문호인 셰익스피어까지 이어지며 새로운 예술영역으로 발전하게 된다. 계절의 특징을 잘 살려 사람들이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표현한 사계는 오로지 음악의 빠르기나 악기의 특성을 살려 연주자의 현란한 운지와 활 놀림을 통한 화려한 기교로 현악기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내 서사적으로 표현했다. 







 사계에서 가을을 표현하는 Autunn는 세 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가을의 농촌모습을 표현해냈다. 그 주된 내용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여름내 경작한 익은 곡식들을 추수하고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사냥을 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특히 추수의 기쁨을 표현하며 춤곡을 집어넣어 마을잔치를 표현하는 등 여러 기법들을 엿볼 수 있다. 음악에 대한 설명 없이 들을 때는 흘러가는 음악이지만 그 안에는 즐겁게 춤추는 소리와 술을 마시고 취해서 잠든 사람을 표현하는 악기의 주법 등을 알고 듣게 되면 숨은그림찾기처럼 나름의 재미를 찾을 수 있다. 다른 계절과 마찬가지로, 악단의 반주에 맞추어 독주를 하는 바이올린 연주자의 연주에서는 가을에서만 있을 수 있는 들판에서 곡식을 수확하는 농부들의 뿌듯함이 표현되어 있다. 1악장은 노래와 춤으로 마을농부들이 한 해의 추수를 축하(Celebra il Vilanel con balli e Canti)하는 밝은 멜로디로 시작한다. 모두가 행복해하고 즐거워할 때(Del felice raccolto il bel piacere) ‘주정뱅이(L' UBRIACO)’라는 표현이 나오면서 많은 남자들이 술의 신 바쿠스가 만들어 준 술(E del liquor di Bacco accesi tanti)을 마구 마시며 즐거워하는 멜로디가 흐른다. 그러다 술에 취해 잠을 즐기는 어른들과 아이들의 모습(Finiscono col Sonno il lor godere)을 표현하는 잔잔한 음악이 흐르다가 1악장이 마무리된다. 취하는 선물(DORMIENTI UBRIACHI)을 얻은 이들이 아직도 흥에 겨워 몇몇 사람들은 노래와 춤(Fa' ch' ogn' uno tralasci e balli e canti)을 이어가는 2악장은 모닥불로 따뜻해진 온도와 즐거워(L' aria che temperata dà piacere)하는 사람들을 그리는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초대 받은 많은 사람들도 취해서 비틀(E la Staggion ch' invita tanti e tanti)거리는 모습과 농부들이 부드럽고 달콤한 잠(D' un dolcissimo sonno al ben godere.)을 청하면서 소박한 파티장면이 마무리된다.

 






 사계에서 음악으로 보여준 이러한 모습들을 통해 소박한 삶을 살아가던 농부들의 모습이 동서양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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