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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립일세 Sep 09. 2019

주세법이 파괴시킨 우리문화

48회분 - 이제라도 돌아가야 하지 않나

맛있는 술 이야기


술은 술이 아니었다.     


 1909년 무렵까지 술은 술이 아니었다. 술이 술이 아니었다면 술은 무엇이었을까? 우리가 흔히 부르는 음식이라는 단어에서 술은 ‘음(飮)’을 담당했었고 치아로 씹는 각종 곡식과 채소들이 나머지 ‘식(食)’을 담당했다. 술은 집집마다 만들어 마시는 음료 중에 하나로 당연시되었다. 그래서 이 땅에 조상들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조선과 대한제국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술은 세금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세금은 주로 사람이나 농지에 매겨졌고 일과 관련해서는 상거래를 하거나 가내수공품에 대한 상세와 공장세를 부과하였고 어전과 염전에도 세를 부과하였다. 삶을 영위하기 위해 먹고 마시는 음식은, 장사를 통해 얻은 소득에 과세가 될지언정 만들어진 음식 그 자체는 과세의 대상이 된 적이 없었다.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음료에 있어 술은 국가의 안위와 함께 갑작스런 변화가 찾아왔다. 자신들의 기준으로 세법을 만든 통감부는 우리의 음식을 자신들의 기준으로 나누려고 했다. 1904년 8월 22일에 대한제국과 일본제국간의 체결된 제1차 한일협약은 내각 부처에 외국인을 고문으로 임명하여 내정에 간섭하기 시작한다. 탁지부 재정고문으로 일본에서 파견된 메가타 다네타로(目賀田種太郎)는 대장성의 주세국장(主稅局長) 출신으로 이듬해 무리한 화폐정리사업을 진행해서 조선의 자본가들과 상업 및 은행들이 몰락하게 만들었다. 동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이라고 불리는 제2차 한일협약부터 통감부를 설치하고 기존 우리의 조세제도는 흔들기 시작했다. 1905년부터 일본에서 과세하던 물품들을 기준으로 조선에서 거래되는 물품과 조사하고 1909년부터 주세와 더불어 연초세의 항목이 신설되어 과세의 대상이 되었다. 생필품들은 어느새 과세품목이 되어 사람들의 의식에 혼란을 가져왔다.







 집에서 술을 빚어 마시지 않던 일본은 일찍부터 양조장 문화가 자리를 잡았다. 더운 기후로 인해 집에서 술을 만들기가 쉽지 않아 전문적으로 술을 만드는 양조장이라는 개념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일본은 많게는 850년에서부터 적게는 20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양조장들이 여럿 있다. 이렇게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양조장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상업적인 양조가 일찍부터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술 빚는 기술이 뛰어나 집집마다 필요한 술을 빚어 마시다보니 굳이 집밖에서 술을 사다가 마실 일이 적었다. 간혹 식당과 숙박업을 하던 주막에서 만들어 파는 경우는 있어도 양조장이라는 개념은 필요가 없었다.

 






이러한 오랜 역사의 차이는 조세를 받아들이는 개념도 달랐다. 그래서 주세가 적용되었던 초기에 술을 빚을 수 있는 면허제가 시행되면서 혼란이 시작되었다. 1909년은 지금처럼 통신이 수월하지도 교통이 자유롭지도 않았다. 그래서 면허를 신청하지 못하고 미처 허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은 몰래 술을 빚다가 단속에 걸려 과중한 벌금을 낼 수밖에 없었고 불만은 심해져갔다. 그에 비해 양조장 설립허가를 받고 양조장에서 술을 만들어 팔던 사람들은 초기에는 어려웠지만 점차 자가제조면허자들이 줄어들면서 술을 사먹게 되어 수입이 급격히 증가했다. 그에 따라 강점기 초기에는 주세가 전체세금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남짓이었으나 점차 ‘자가제조면허자’가 줄어들면서 세수가 늘어나 1935년에는 전체 세수에서 주세가 차지하는 비율이 30%를 초과하면서 총독부의 살림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중국을 침략하는데 필요한 군수물자를 공급하기 위해 조선에 공장들이 세워지면서 주세이외에도 다른 분야에서 내는 세금들이 많아져 전체 세수에서 주세가 차지하는 비율은 점점 줄어들었고 해방이후에는 더더욱 줄어들었다. 더욱이 60년대 이후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제조 산업분야와 서비스분야에서 많은 세수가 나오면서 주세는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점점 줄어 4~6%를 차지하는데 그쳤다. 점차 술의 소비량까지 줄어들면서 주세는 비율이 3.9%까지 줄어들어 점점 그 의미가 약해지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서 주세의 비율은 더욱 낮아져1% 중반 대를 유지하다가 2018년 기준으로 전체세수대비  1.107%를 차지하며 주세의 비율은 급격히 낮아졌다.







 1965년 6월 22일 우리나라는 당시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아 지금도 말썽을 일으키고 있는 한일기본조약을 일본 정부와 체결했다. 한일 국교를 정상화를 위한 조약으로 제 2조에는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하여 일제에 의해 만들어졌던 주세법도 무효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그 당시의 주세법에 영향을 받고 있다. 주세법이 생기면서 우리 술의 정체성도 흔들렸고 자가주조를 할 수 없었던 벽도 오랫동안 존재했다. 시절은 변해 남아도는 쌀의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자가소비를 위한 자가주조’는 제한이 풀렸지만 예전에 우리 조상들이 이웃과 술을 나눠마시던 모습은 아직까지 제한이 많아 불법으로 간주되고 있다.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주세라는 개념이 보편화된 시대라고는 하지만 우리의 조상들이 그랬듯이 이웃이나 친한 벗과 빚은 술을 서로 나누어 마실 수 있는 제도적인 해결책이 나오면 좋지 않을까 싶다.







 음식(飮食)의 식(食)만을 내세우는 한식은 그 생태적 한계를 갖고 있다. 따라서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제대로 된 음(飮)도 내세워야 한다. 이미 단절된 술들은 복원시킬 수가 없다. 우리는 광복 이후에 전 국토를 휩쓴 6.25 전쟁을 겪었고 온난화로 인한 기후의 변화와 농산물이 바뀌면서 '균' 자체가 변했기 때문이다. 물론 고조리서를 통해 남아있는 기록들로 예전에 마시던 술을 재현해 볼 수는 있다. 이것이 다양한 술의 재현을 통해 문화를 복원하는데 좀 더 신경을 써야하는 이유다. 그래서 집집마다 음식(飮食)의 음(飮)이 복원되어 가양주문화를 꽃피우며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음식문화가 다시 꽃피울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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