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소설
편의점에서 사 온 맛없는 샌드위치와 탄산수 한 잔을 마시고 있으니 마침 청소업체가 도착했다. 그들은 고려청자 같은 진기한 문화재를 난생처음 구경하는 사람처럼 집안 구석구석을 살펴보더니 계산기를 꺼내서 요모조모 두들겨댔다. 견적이 꽤 나오게 될 거라는 일종의 암시 장치인 셈이었다. 나로서는 그 부분에 대하여 심적으로 나름 대비가 되어있었으므로 그들이 아무리 충격적인 금액을 제시할지라도 덤덤하게 받아들일 자세가 마련되어있었다.
그들은 프로답게 계약서에 사인을 하자마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박살 나 있던 물건은 언제 우리 집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지, 자리에 있건 그들에 의해서 말끔하게 치워지던 달라진 건 없었다. 그들은 조각난 책상을 바깥으로 옮겼고, 내가 아끼던 문구용품을 한꺼번에 빗자루로 쓸어서 쓰레기봉투에 넣어버렸다. 그리고 종이들은 재활용으로 분류되었고 냉장고 본연의 기능을 상실한 냉장고도 문짝과 몸통이 분리된 채로 그들의 트럭으로 옮겨졌으며 싱크대와 그 밖의 세간살이들도 재빠르게 옮겨졌다.
그때, 누군가 집에 찾아왔다. 연희였다. 연희에게 얼핏 집주소와 연락처를 알려주긴 했지만, 그것은 숙박업소에서 작성하는 흔한 기록의 취지였다. 헤어진 당일날 저녁에 바로 그 정보를 이용할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와, 이게 무슨 일이래요? 아포칼립스적인 구도네요 완전. 여기 사진 좀 찍어도 돼요? 기념으로 남겨 두게요.”라고 물었으나 이미 그녀는 카메라를 켜고 여기저기를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기겠다는 그런 근면 성실한 자세로 사진으로 담아내고 있었다. 흡사 그녀는 종군기자와 같았다고 할까. 물론 나는 종군기자를 영화에서만 봤다. 지금 내 눈앞에 종군기자가 나타나서 여기저기를 허락도 없이 찍어낸다면, 분명 뒤통수 한 대를 갈겨버릴 것 같은데, 그런 생각으로 나는 한심하게 연희를 바라봤다.
연희는 마치 이 집의 여주인처럼 청소업체 사람들을 따라다니며 지적질을 했다. 때로는 마치 자신이 청소반장이라도 된 것처럼 직접 나서기도 했고. 게다가 더 버릴 건 없냐고 이 참에 다 갖다 버리자고.
“아니, 전화나 카톡을 하시지 뭐하러 이런 전쟁터 같은 현장에까지 찾아오셨어요?” 내가 물었다.
“와 이건 범죄현장 딱 재현하는 느낌인 걸요? 도대체 여기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이 책상은 마치 프레데터가 일부러 반쪽으로 딱 갈라놓은 느낌이잖아요. 우워. 누가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아주 작정했네 작정했어.”라고 하며 너무나 신기한 구경거리를 실시간으로 목격하게 되었다며, 나름 들뜨고 긴장된 목소리로 말하는 거였다.
“그러게요. 경찰관만 한 명 있으면 완벽하게 현장검증이라고 해도 되겠어요”라고 내가 말하자, 연희는 “진짜로 경찰에 신고했어요?”라고 물었다. 그래, 내가 경찰에 신고했을까., 안 했을까. 물론 어딘가 전화를 걸어서 신고를 한 것 같긴 하다. 그런 기억도 이제 너무 멀리 달아나버린 것 같지만…
연희는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다니더니, 뭔가 지친 표정을 짓더니 다시 내 앞으로 왔다. 뭔가 말을 건넬 모양이었다.
“내일이에요.”
“뭐가요? 뭐가 내일인가요?”
“제가 민석씨에게 도움이 될 만한 분이 서울에 계시다고 했잖아요. 그분과 연락을 주고받았거든요. 엄청 바쁘신 분인데, 당분간 여유가 좀 있다고 하니, 그분한테 도움을 좀 구해봐요. 내일 아침 그분에게 찾아가 봐요”
“아니, 잠깐만요. 저기 연희씨, 그 도움을 주신다는 분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당장 내일 찾아가자고요? 그리고 대체 어떤 도움을 받는 건지, 좀 알아야 도움을 받던가 말던가 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다짜고짜 치고 들어오면 제가 어떡한단 말이에요. 그리고 제가 도움이 필요한지 그렇지 않은지 연희씨가 어떻게 알고 그래요.”
“뭐, 어차피 고민하는 척하다, 마지못해서 갈 거잖아요. 괜히 내빼는 척하지 말고 그냥 나만 믿고 갑시다.”
나만 믿고 갑시다? 내가 연희를 믿으라는 건가. 어떤 근거로, 어떻게 연희를 내가 신뢰할 수 있을까. 단지 1주일 넘게 그녀의 펜션에서 숙식했다는 이유만으로? 버스 안에서 만나서 드라마를 함께 들여다봤다는 이유로? 그런 이유라면 나는 멕시코에서 만나는 모든 갱스터과 바로 친구가 될 수 있을 테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그녀와 그녀의 주변 인물들과 관계를 맺어도 나쁠 건 없겠다 싶기도 했다. 나는 여기서 물러설 곳도 없고 더 이상 손해 볼 것도 없다. 단지 건강한 몸 하나가 유일한 재산인데, 그건 늘 내 정신과 동행하는 편이니 걱정 없다. 다만 재정적으로는 퇴직금으로 받은 천만 원 정도가 전부인데 그 카드도 내가 가지고 다닌다. 그것도 냉장고와 책상을 구매하는 데 적잖이 들어갈 게 분명할 테지만.
천만 원으로 몇 개월이나 버틸 수 있을까. 그 돈을 탕진하면 나중에 여기 월세도 지불해야 할 테고, 설상가상 직장까지 얻지 못한다면 서울역 노숙자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앞뒤 가리고 줄자로 여기저기를 재단할 여유는 없다. 일단 빵이든 떡이든 넙죽 받아 들고 맛있게 먹어야 한다.
“내일 아침 8시, 신림역 4번 출구에서 만나요.”
“신림역요?” 내가 놀란듯한 표정을 지었다.
“뭐 신림역 처음이라도 가봐요?”
“네 그쪽 동네는 처음 가봅니다. 제가 동쪽에서만 쭉 살아봐서…”
“뭐 지하철 타고 오면 간단하잖아요. 청소 업체 사람들 빨리 물리고 오늘은 좀 일찍 자요. 내일 늦으면 절대 안 되거든요. 저의 정신적 스승님은 늦는 걸, 제일 싫어하세요. 알았죠?”
“아무튼 알았어요. 휴… 신림동 4번 출구로 8시까지 가면 되죠? 특별히 준비해 갈 건 없나요? 혹시 남대문 가서 총이나 탱크 같은 거 사 오라는 농담할 거면 일 없습니다.”
“민석씨 누굴 구석기시대 사람으로 알아요. 그런 농담하면 어디 가서 진짜 총 맞아요. 알겠죠? 그럼 내일 아침 8시. 신림역 4번 출구 앞에서 만나요. 내일 아침에 만나면 더 자세한 이야기 해줄 게요”
연희는 그 말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청소업체 사람들을 독려했다. 그들은 예정에 없던 다그침 때문에 기분이 다소 상하긴 했지만, 그런 일은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흔히 부리는 진상짓이라는 생각이 든 것인지, 금방 납득하는 눈치였다. 그들이 깔끔하게 물건들을 비운 다음, 누울 자리가 생기자, 나는 바닥에 이불을 대충 깔아놓고 누워서 알람을 확인한 다음 나도 모르게 까무룩 잠이 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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